사당역 1번 출구 - 부소산성 - 낙화암 - 백마강 유람선 - 능산리고분 - 부여박물관
부소산성
백제 사비기 수도의 배후산성이다. 편의상 사비성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웅진시기 공산성]과는 달리 배후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소산성 자체만을 사비성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던 부소산성 남쪽의 관북리 유적이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는데 관북리 유적이 바로 수도 사비의 주요 왕궁 시설들로 추정되는 건물의 터들이 발견된 유적이었다.
사실상 사비성의 주요 시설이 관북리 유적에 있기 때문에 부소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때도 관북리 유적과 함께 지정되었다.부소산성의 성벽 구조를 두고 발굴하기 이전에는 백제의 왕성은 이중성 구조를 취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부소산성을 조사하여 내부 내성 구간의 축조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고 일부 구간은 조선시대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백제 왕성의 특징이 이중성 구조라는 견해는 사장되었다.
부소산성에 남은 사비기의 성벽구간에서는 한성기 이래로 내려오는 백제 특유의 판축구조가 확인되었다. 백제 토성의 특징 중에는 영정주(永定柱)를 사용했다는 것이 있다. 부소산성에서는 그러한 영정주, 다시 말해 판축을 위한 틀을 만들고 고운 점토로 판축하는 기법이 남아 백제의 성곽 축조 방식을 추정할 근거를 남겨 주었다. 사실 판축으로 쌓았다면 영정주를 박은 흔적(영정주공永定柱孔)이 있음은 당연하다. 다만 고구려나 신라의 판축에서는 영정주의 흔적이 있는 곳도 있지만 없는 곳도 많다. 그래서 위 사진처럼 비교적 굵직한 영정주가 횡, 종방향으로 박힌 점토로 판축한 성을 흔히 백제의 토성으로 추정한다. 비단 부소산성뿐만 아니라 한성기 백제의 왕성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을 비롯하여, 백제 옛 땅의 백제와 관련된 여러 토성을 발굴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기법들을 사용한 흔적이 나왔다.
부소산성 입구
부소산성
백재 역사유적지구
의열문
삼충사
백제의 세 충신 성충, 홍수 계백 세분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
삼충사
삼충사 옆 연못
부소산성 산성길
부소산성
반월루
백마강이 반달모양으로 끼고 도는 부여 시가지가 휜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1972년 세운 이층 누각
반월루
반월루에서 바라본 풍경
백화정
낙화암 정상에 세워진 육각지붕으로 세워진 정자
백제 멸망 당시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 여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9 건립했다.
백화정
백화정에서 바라본 백마강 풍경
고란사
백제와 관련된 전설이 전하나 정확한 유적이나 유물은 없고, 현재의 고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백제여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고란사
고란사 극락보전
백마강 유람선
백마강 운행하는 수륙양용버스
유람선에서 바라본 백마강
백마강 그드래나루터
구드래조각공원내 조각
부여 왕릉원
부여군의 동쪽에 위치한 고분군이다. 3개의 무덤군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사비시대의 백제 왕릉원으로 알려져 있다. 총 7기의 왕릉급 고분과 동쪽에 5기 서쪽으로 몇 기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모두 도굴당하여 소수의 금제, 금동제 유물만이 수습되었다.
익산시 쌍릉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왕과 선화공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비시대 백제왕들은 이곳에 묻혔다고 추정하고 있다. 물론 무령왕릉의 지석처럼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무덤의 시대별 양식 변화나 출토품의 양상을 연구한 결과 정황상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다.
바로 옆에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능사지와 사비의 외곽성인 나성이 있다.
부여 왕릉원
왕릉원 목탑에 이르는 기와로 만든 디딤돌
부여왕릉 벽화고분 모형
모형내부
의자왕 가묘
5호, 7호, 6호분
국립 부여 박물관
부여 석조
석조에 비추진 레이저 쇼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일)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이후 조사 결과 해당 향로가 발견된 주차장 공사 현장이 백제 시대 왕실의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졌다.
대향로를 언제 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 말-7세기 초라고 추정한다.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래 내정의 혼란을 거듭하던 백제가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연꽃은 물론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신선이 조각되어 도교와 불교적 요소가 모두 있다. (다만 도불습합적 유물이라는 점에 대한 반론도 있다. 불교적 도상만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조형 솜씨가 워낙 훌륭하고 뛰어난 수준이라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손꼽을 수 있는, 능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조상들의 걸작품이다. 신라라고 하면 떠오르는 금관처럼 일반 대중들이 백제라고 하면 딱 떠올리는 멋진 상징적 유물이 없던 차에 그 자리를 차지했다.
백제금동대향
박물관내 서산마애삼존불
박물관내 불상
서울, 경기에서 이루어진 궁능성시는 조선시대에 왕릉을 투어 한 것이라면, 이번 부여 투어는 백제시대의 왕릉을 투어한 것입니다. 버스안에서 들려준 백제 전륜성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역사책에서 접할 수 없는 귀한 백제에 대한 역사공부 였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지역 해설사의 친철한 해설로 인하여 버스안에서 들었던 강의를 복습 할 수 있는 알찬 기회였고,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본 진품 백제금동대향로는 또 한번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투어였습니다.
가을에 예정된 경주투어 까지 마무리하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왕릉 투어는 어느정도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우리나라 부여가 아름다운것을 지금에야 깨달았으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