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내가 아니어도 때로 그 누구여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 분의 눈길이 닿는 곳에서 그렇게 바라보며 살 수 있다면 참으로 괜찮다 |
가을을 기억하는 정경 셋
올해 가을은 한번도 마주 보고 바라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겨울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 밖에 나가보니 살짝 얼음이 얼고 바람이 지나는 곳마다 몸을 움츠린 풀잎이 시들고 단풍이 드는가 했더니 우수수 떨어진 잎들로 정원이 어수선합니다. 가을은 짧고 밤이 길어진 때 더 늦기전에 겨울 채비를 합니다. 아직 꽃을 달고 있는 국화와 구절초 그리고 정원 구석구석 남아 있는 꽃들과 열매....봄 여름동안 치열하게 견뎌온 흔적들을 바라보다 이제 그 수고에 대한 응원과 박수를 보내며 내년 봄을 위해 자를 것은 자르고 비질하고 모아서 부대에 담고.... 텃밭 농사에 쓰던 농기구며 장화와 밀짚모자까지 창고로 자리를 옮깁니다.
화분도 겨울을 나기 위한 장소로 모두 옮기고 부산하게 오가며 겨울 채비를 마쳤습니다.공동주택에서 살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 당연한 저의 일로 다가옵니다. 일을 마치고 정원과 텃밭을 천천히 돌아보며 나무와 풀들에서 새들에게까지 인사를 나눕니다. 올해도 고맙고 애 많이 썼노라고 쓰다듬고 겨울 잘 견디라고 토닥이며 둘러봅니다. 동백나무에 꽃눈이 많이 달렸는데 올해는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기를 특별히 당부해 둡니다.
올해 봄에 우리집으로 이사온 함박꽃나무와 미국산딸나무 레드피그미와 서부해당화와 레드로빈과 미스김라일락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줄 수선화같은 구근화초에게도 손뼉을 쳐서 소식 전합니다.
천천히 한바퀴 돌고나니 비로소 가을이 저만치서 손짓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며칠만이라도 더 얼굴 보여주기를...너무 서둘러 떠나지 않기를....
첫째장면> 노닐다.장자처럼....
이 가을에는 더 가볍고 더 부드럽고 더 자유로운 솜털같은 시간들로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자신에게 더 너그럽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돌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친절해지는 방법을 찾고 적절한 자기 반성과 자기검열로 적절한 선을 지키며 살고자 애쓰기를 그만두고 ‘괜찮다, 다 괜찮다!’의 넉넉함만으로 살아보기를...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무소유의 삶을 생각하고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는 축적의 삶을 당장 그만두기를,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다운 삶이 진짜 삶이라는 진리를 실천하는 가을이기를 바라고 또 원합니다.
.....장자는 자기가 먹을 만큼만 생산되는 땅을 가지고 먹고 남지 않을 정도의 채소밭을 가꾸었습니다.소요하고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자기 먹을 것만을 위해 생산하고 남에게 내놓지 않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삶이 필요합니다. ‘노닒’의 여유와 자유를 깊이 생각합니다.
둘째장면> 만추의 음악회....3000원의 행복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은 오케스트라의 수준으로 가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필하모닉,암스테르담 로열콘서트헤보우,베르린필,런던심포니,시카고심포니,뉴욕필, 부다페스트, 서울시향,포항시향...그렇다면 경주는?
내가 한 달 중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포항시향의 정기연주회입니다.매월3주 목요일에 정기연주회가 있고 입장권은 3000원입니다.8년 전에는 1000원이었지만 관객은 별로 없었고 연주도 관객의 매너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랄데 없는 매너와 실력을 보여줍니다.어제는 11월 정기 연주회가 있었습니다.가을비가 내리는 저녁 연주회 주제도 ‘만추’였고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베토벤 교향곡5번’이 연주되었습니다. 객석은 근래 드물게 채워졌고 박수소리도 연주자와 지휘자의 열정도 가을밤을 뜨겁게 타오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3000원으로 ‘가을밤 행복’을 누릴 수 있다니? 놀랍고 감격스러웠습니다. 늘 불이 꺼져있는 경주예술의전당을 생각하면 문화의 차이를 실감합니다. 건물은 웅장하고 화려함이 넘치지만 내용은 경주시민과는 동떨어져 누구도 잘 알지 못합니다.누군가는 공연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커진다고 하고, 누군가는 관객 탓을 하거나 시의 재정 탓을 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답은 아닐 것입니다.
나라 한쪽에서는 k팝 열풍이 불고 다른쪽에서는 트롯 경연이 대세인 듯 보입니다.
그렇지만 한 도시가 역사문화 도시라고 자부할 정도라면 그에 걸맞은 전통과 권위, 실력과 명성을 갖춘 오케스트라, 전통예술관현악단 하나 정도는 보유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주가 그런 여건을 갖춰가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을 갖췄다고 보여집니다.
내년에는 3000원의 행복이 경주에서도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포항시향 12월 송년음악회는 모차르트 교향곡41번이 기다립니다. 미리 행복해지는 시간입니다.
셋째장면> 다시 11월...골방으로 스며들다
가을은 스며들 틈도 없이 스쳐갑니다.그가 오는 길목에서 미리 마중을 나가도 만나지 못할 때가 있고 옆에서 스치듯 만나도 악수를 나누거나 손을 흔들 겨를도 없이 멀어지기도 합니다. 올해는 곱게 물든 단풍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가을에는 ‘우곡성지’를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본당 30주년 행사로 한번 다녀왔고 한 달 뒤에는 성심시녀회 봉사회원들과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다녀와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나를 다시 부른 것은 우곡성지의 성모님이었습니다. 누구나 뒤를 돌아볼 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우곡성지의 성모님은 내게는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갔을 때에 미사를 마치고 곧바로 성물방에 들러 한 달간 내 마음에 깊이 자리한 성모님을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하선재로 이사를 하면서 책장 배치를 하면서 우연히 생긴 아주 작은 골방이 하나 생겼습니다. 문을 닫으면 혼자 앉아서 기도하기에 맞춤인 그분의 선물인 곳입니다. 그곳을 드나드는 입구에 성모님을 모시고 이 가을에는 골방으로 스며드는 시간을 늘려 가고자 합니다.그분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자 늘 기다리는 곳입니다. 나는 그저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그리 분주하고 바쁜지? 핑계는 왜 그리 많고 주저리 주저리 이어지는지? 이 가을을 떠나 보내는 지금은 모든 말을 그만두고 그분께로 스며들 때입니다. 그분께 나의 열쇠를 건네 드리고 골방의 주인으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잘 가시게 가을...
2023.11.17(쇠의 날)
자기자비 너 자신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라. 이 가을에는 사랑만으로 바라보기 |
내 안에 고요를 만나다 잠시 멈춰 차 한 잔 마시는 시간 지금 이 순간 호흡에 집중하며 그저 바라보다 보면 야생마처럼 날뛰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고 고요와 평안이 감싸 안아 줍니다.철새는 날아오고 바람도 잠든 이른 아침을 그 먼 곳까지 가서야 만나는 까닭은? |
더 단순하게 상쾌한 아침처럼 자유롭게 바라보기...더딘 걸음과 수줍음과 서툰 손길로 쓰다듬기 저기 어디쯤에서 단체 사진을 찍던 천진함으로...바로보기. 바라보기 |
나타남과 사라짐 바라보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 안개를, 떠오르는 햇살을, 세발자전거 뒷모습을.... 혼자만의 기다림도 때로 왁자지껄합니다 |
고백 매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 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은 사진을 담으려 노력합니다 나는 왜 사진을 하는가? 늘 생각합니다....그럼에도 나의 사진은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지? |
가을로의 초대 내가 최고로 뽑는 절집 선암사에도 가을이 깊게 잠겼습니다. ...승선교를 건너면 강선루...신선을 그렇게 만나도 아직 나는 통성명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
자족 평범함에서 오는 자유...감을 따던 장대가 깊은 침묵에 들어 무심한 가을...산사의 시간은 늘 비어 있지는 않습니다. 靜中動...백척간두 진일보의 화두가 번득이는 진검승부의 현장.... |
다투지 않음 오늘은 이 사진 딱 한장만 찍고 바라보기만 합니다. 자리다툼도 포기하고 감탄사나 느낌표도 그만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놓아두기 기다리지 않았지만, 빨리 찍고 떠나기를 바랐지만 그 마음은 나와 같지 않고....슬쩍 자리를 내어주니 그 또한 괜찮습니다. 그런날도 있는 것이지요. 오늘 맘에 쏙드는 사진 담아 가시기를... |
그 집앞 여기를 지날때마다 때를 맞춰 다시 오리라 기억하고 있었지만 올해도 그 때를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아무때나 괜찮을 그런 때를 꿈꿔 봅니다. 무심코 바라봐도 그저 좋은 그런 사람과 그런 때.... |
은행잎 책갈피 11월도 깊은...글 읽던 집에는 새벽부터 불청객으로 가득하고 가끔은 혼자 노는 어른들이 풍경이 되기도 합니다 저 잎이 지고나면 부산한 발길은 끊어지고 고요와 침잠으로 겨울이 깊어질 것입니다. 그때쯤 혼자 다시 오면 잠시 아는 척 해 주실건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곧 뵙지요. |
첫댓글 늘... ^^
오후 네시님. 좋은 글, 좋은 사진... 잘 보았습니다.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를 경주의 예쁜 가을을 붙잡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