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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객사(新春客思) > 거제유배인의 봄날 시름. 고영화(高永和)
새봄이 완연하니 귀양살이 쓸쓸한 객지생활, 시름의 병 암담하여 가는 세월 겁이 난다.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것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는데 귀양살이 백발의 외로운 신세 어찌 탄식하지 않으리. 봄비 뒤에 꽃가지는 낮은 담장을 덮고 밤이면 밤마다 외로운 베갯머리 졸졸 시냇물 소리 감당치 못하겠네. 천리 멀리 고향 쪽 하늘 보며 창가에 우두커니 있노라니 돌아가고픈 이 심정을 어찌하누. 몸은 산중의 스님같이 속세에 멀어져 있는데 수염만 무성하다. 쓸쓸한 거제 바닷가 물과 구름 가녘, 푸른 바다에 저녁 조수 밀려가고 석양에 넋을 실은 지친 새는 둥지로 날아간다.
밤마다 꿈결에 젖어드는 천리 고향 길, 꿈결도 고달프고 유배 생활에 옛 친구가 그립다. 동산의 지저귀는 새소리, 들꽃과 봄바람, 성 머리 피리 소리, 언덕 위의 꽃들은 눈 가득히 피었건만 바다를 비추는 해는 새로운 서광이런가? 아침 일찍 끝난 비가 무지개를 만들어도 끝내는 돌아갈 나루터가 없어 그림자만 맴돌 뿐. 몸은 마치 고목이요 머리는 쑥대이니 궁벽한 마을에 쓸쓸히 문을 닫고 지낸다. 굶주린 까마귀 떠들어대고 하룻밤 차가운 바다 물결 굽이칠 때, 만 그루 죽림 속엔 둥근 달이 높이 떴다. 한 가락 맑은 바람소리 찬 하늘에 사무쳐라. 인간은 잠깐 사이에 고금을 이루나니 때때로 하늘 떠도는 조각구름 쳐다본다.
봄바람이 큰 들판에 불어오고 새벽달은 높은 봉우리에 걸렸어도 추위가 무서워라. 병든 몸은 피곤하고 옛일을 논하자니 외로움이 가련하네. 새봄 객지의 해변 가, 떼머리서 살진 고기 잡으니 팔짝팔짝 춤추고 뗏목꼬리에선 사어 올리며 발랄하게 웃는다. 매인 배는 포구 앞 몽돌 밭에 의지해 있고, 석양빛에 기댄 어부의 초가집은 해안가를 둘렀네. 인간 세상 오만 일 있다고 뉘가 말했나? 오랜 세월 고향 떠난 외로움을 한(恨)하지만, 일 년 내내 이내 몸에 한 가지도 일 없다네. 때로는 미친 흥취를 발산해도 모든 일엔 슬픈 노래만 뱉어낼 뿐. 곧은길엔 다니는 사람 없고 아득한 외로움만 걸어가는데 산천은 끝없이 광활하구나. 쓸쓸한 잠자리에 덧없이 가는 세월, 초승달 쳐다보며 밤새 모래톱을 거닐다가, 도착한 나루터에 혹여 노 젖는 소리 들리면, 서글픈 이별의 회포 생각날까? 가슴 졸이네. 백 년의 귀양살이 몇 사람의 정(情)이런가? 수양버들 춤을 추고 뭇 새들의 반가운 노랫소리, 다시 들을 수 있으려나?
1) 신춘객사(新春客思) 새봄 나그네 시름 / 김진규(金鎭圭).
異域春歸獨未歸 먼 땅에 봄이 와도 홀로 돌아가지 못한
羇蹤蕭瑟影相依 쓸쓸한 객지 생활, 그림자에 의지할 뿐,
遙空目極孤鴻遠 눈앞 아득한 먼 하늘, 외기러기 멀리 날고
落日魂隨倦鳥飛 석양에 넋을 실은 지친 새 날아간다.
身似山僧唯有髮 몸은 산속 중과 같은데 수염만 더할 뿐,
心同海客已忘機 마음은 바닷가 나그네라, 이미 욕심 잊었다네.
人間閱盡無窮事 인간 세상 무궁한 일 다 겪은 후라,
自斷餘生與世違 남은여생은 속세의 일 끊고 멀리하리라.
[주] 권조비(倦鳥飛) :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새도 날다가 지치면 돌아올 줄 알도다.”라는 말이 있다.
김진규 선생이 1689년 거제면 읍내 풍경을 보고 느낀 바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거친 산이 비좁게 막혀있어 답답하고 사방을 바라보니 모두가 소금밭과 갯벌이다. 고을 관아는 물가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고 백성의 집은 대숲과 섞여 있다. 새벽안개가 아닌데도 항상 변방 마을을 뒤덮고 고래가 희롱하여 파도를 밀어 올린다“
2) 봄을 그리며(春懷) / 김진규(金鎭圭).
浦樹枝枝變 포구의 나무는 가지마다 변하고
園禽語語新 동산의 새 지저귀는 소리 새롭구나.
春天千里目 봄 하늘은 천리 밖을 본다하는데
炎海百年身 찌는 듯한 바다에서 백년의 몸 되었네.
謾憶西疇事 서쪽 밭에서 일할 때, 아득한 기억으론
長爲北戶民 (관리들은)항상 백성을 저버렸다.
流光那有繫 세월이 빨라도 얽매여 있으니 어찌하리?
末路轉無津 끝내 돌아갈 나루터가 없어 맴돌 뿐.
[주] 백년신(百年身) : 백년 평생 동안, or 내세, 후세라는 뜻이며 이승에 기회는 없다는 뜻.
3) 봄날 회포(春懷) / 1722년 김창집(金昌集).
嚴霜更剝曾凋桂 늦가을 된서리가 다시 내려 계수나무 거듭 시들어도
春雨猶滋已茁蘭 봄비에 이미 난초의 싹이 무성히 트게 하였네.
却恨十年調鼎手 도리어 한스런 10년 사용한 솥을 직접 다루는데
鹽梅全昧劑鹹酸 매화열매 소금에 절일 때, 짜고 신맛 조절이 어렵구나.
/ 已茁一作欲採 이미 싹이 튼 난초를 제일 잘 캐고자 하였다.
정황(丁熿)은 복숭아 오얏꽃 버들가지 만개한 거제의 봄날에 매화나무를 옮겨 심는다. 매화꽃이 가지에 가득하니 사람보고 웃는 듯 고운웃음 만발해 흥겹다. 세월은 시름의 병 만들고 죄 많은 여생 또 무엇을 구할까? 유배객 자신은 저문 봄에 놀라며, 바다 위에 둥둥 뜬 갈매기를 한가히 본다. 구름 속을 나는 저 기러기 예까지 날아와 고향소식 전할까? 봄이 온 외진 바닷가에서 문을 열고 보니 무심한 방초만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훈훈한 꽃바람에 새들의 노래 소리 덩달아 타고 간다. 가랑비 내린 뒤 숲에는 나무하는 아이와 소먹이는 총각, 꽃 사이 새소리 간들하다. 고현 시냇가엔 버드나무 늘어있고 푸른 산은 석양에 짙푸른데 유배객의 시름만 해마다 더한다. 봄 경치 다 모아 술잔 속에 담그곤 여유로운 봄날 가슴에 안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4) 저무는 봄날(春暮) / 1549년 정황(丁熿).
北望山河隔暮雲 북쪽을 바라보니 산과 강을 저물녘 구름이 갈라놓는데
美人消息幾時聞 사랑하는 여인의 소식은 언제 쯤 들을 수 있을까?
春風莫自無情極 봄바람에 스스로 정 없이 사무치지 말고
千里辭歸寄尺文 천리를 돌아갔다고 전하며 증표을 보내거라.
5) 비온 뒤 봄날 기다리며(雨後春望) / 1551년 정황.
花柳濃光小雨餘 꽃과 버들 가랑비 내린 뒤 짙게 빛나니
東君心事婦人如 봄(春) 신(神)의 심사가 부인과 같구나
四年住得天涯客 4년을 먼 변방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非此將何慰索居 이런 봄날 홀로 살면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주] 비차막가(非此莫可) : 없어서는 안 될, 꼭 그것이라야만 될 것.
6) 꽃바람을 만나(姤花風) / 정황.
海城無日不顚風 바다 성에는 날마다 돌개바람 부는데
次第花明瘴霧中 나쁜 안개 속에서 차례로 꽃을 피운다.
病臥山齋春事去 산 집에서 병으로 누웠는데 봄날이 가니
明朝那見滿枝空 어쩌면 내일 아침 가지에 꽃 가득한 하늘 보려나.
7) 영매(詠梅) 매화를 노래하다. / 정황.
不及孤山處士栽 외로운 산, 처사의 묘목에는 미치지는 않지만
荒原何事盡情開 거친 들에 어찌하여 정겨웁게 피었을까?
樵童牧豎尋常見 나무하는 아이와 소먹이는 총각, 예사로이 보는데
誰折瓊梢獨嗅回 홀로 냄새 맡고자 옥 같은 나뭇가지 누가 꺾으리..
[주] 처사(處士) : 거사(居士), 세파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
이매(移梅) 매화를 옮겨놓고. / 정황.
失地君移異我移 잃어버린 땅에 그대가 있어 특별히 내가 옮겨놓고,
天涯相得亦云奇 먼 변방에서 서로 좋게 만나니 기특함이 이와 같다.
春深桃李方姸笑 봄이 깊어져 복숭아 오얏꽃이 사방에 고운 웃음 가득하여,
霜雪應尋玉樹知 눈서리 찾으려니 아름다운 나무가 나타나 응하네.
<정혼성(鄭渾性)의 "우조운묘(遇朝雲墓)">
거제학자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1779~1843)의 문집 中, "遇朝雲墓(우조운묘)"라는 7언 시(詩)를 소개한다. 선생은 중국 고전 한시와 고사성어를 이용, 자신의 "우조운묘" 한시(漢詩) 속에다 차운하고 인용하였는데 구절마다 인용한 중국 문인이, "소식(蘇軾), 두보(杜甫), 온정균(溫庭筠) 조맹부, 두목(杜牧), 장손좌보(長孫佐輔), 원교(袁郊), 고저(高翥), 백거이(白居易), 許渾(허혼), 방간(方幹), 王安石(왕안석), 이섭(李涉), 임제(林悌), 주부자(朱子), 안기도(晏幾道), 남효온, 사공서(司空曙), 이백(李白), 장중양(張仲陽), 육구몽(陸龜蒙), 이하(李賀), 이상은(李商隱), 황보염(皇甫冉), 위응물(韋應物), 설능(薛能), 유우석(劉禹錫)"등이다. 이 많은 분들의 글귀를 차용하였고, 때로는 문장 구성을 위해 직접 글귀를 짓기도 하면서, 찬찬히 선생의 느낌을 표현하셨다. 이렇게 수많은 글귀를 차용하여 쓴 문장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옛것을 빌려서 지금 것을 비유하고 사물을 비유하여 인사를 징험한다.(借古喩今, 比物徵事.)"의 묘법을 강조 하신 듯하다. 봄날에 밀려오는 만물의 생동과 자연의 풍경을 조목조목 꺼집어 내어, 자연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 남녀의 원초적인 사랑을 멋지게 표현했다. 글을 번역하는 동안 몇 번이나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으나, 막상 끝까지 읽어보니 최소 만권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는 이러한 퍼즐 같은 세밀한 묘사를 꿰맞추어 내기란 불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시(詩) 절구마다 음률에 맞춰 시구를 배열하여 시가 지닌, 장단의 음악적 성질을 절묘하게 나타낸 선생의 감수성과 치밀함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낸다. 아래는 "우조운모우(遇朝雲暮雨)" 집구(集句)라부왕선고(羅浮王仙姑, 매화의 하늘나라 신선 할미) 사용(容) 중에, 일부를 소개한다.
野草拍霜霜拍日 들풀은 서리를 사랑하고 서리는 태양을 사랑하니
月光如水水如天 달빛은 물 같고 물은 하늘같도다.
人間俯仰成今古 인간세상 살다보니 이제가 옛날 되나니
只是當時已惘然 그저 그때부터 이미 망연했다네.
三生石上舊精魂 삼생의 돌 위의 옛 넋이여~
化作陽臺一片雲 사랑한 남녀의 정교(情交)도 한 조각 뜬 구름인걸,
詞客有靈應識我 사객(문사)이 신령이 있어 나에게 응당 알리니
碧山如畵又逢君 푸른 산이 마치 그림 같아, 또 그대를 만났네.
花邊古寺翔金雀 꽃이 두른 옛 절에 누른 참새 빙빙 날고
竹裏春愁冷翠裙 대숲 속 봄철 시름에 짙푸른 치마 낯설다
莫向西湖歌此曲 이 노래를 부르니 서호(西湖)로 향하지 말라
淸明時節雨紛紛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東望望春春可憐 동쪽으로 망춘궁을 바라보니 봄이 아름다운데
江籬漠漠行田田 막막한 강가 가다보면 울타리 줄지어 이어있네
繞籬野菜飛黃蝶 울타리 주위, 들나물에 노랑나비 날고
糝逕楊花鋪白氈 버들 꽃이 길가에 가루같이 뿌려져 흰 모포를 펼친 것 같구나
雲近蓬萊常五色 봉래에 가까운 구름 언제나 오색 빛이고
鶴歸華表已千年 학 되어 돌아와 화표에 앉은 세월 이미 천년일세.
夢回明月望南浦 밝은 달에 선잠 깨어 남쪽 갯가 바라보니
血淚染成紅杜鵑 흘리는 피눈물 진달래를 물들이네.
浮雲漠漠草離離 떠도는 구름 막막하고 풀 무성한데
氊濕春祝䰌脚毛 축축한 담요가 봄을 맞으니 다리털이 흐트러진다.
秋水爲神玉爲骨 가을 물처럼 맑은 정신과 옥처럼 고귀한 뼈대를 가졌는데
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귀비의 얼굴 같고 버들은 그녀의 눈썹 같도다.
//去日漸多來日少 지나간 날들은 너무 많고 올 날은 적은데
別時害易見時難 헤어질 때는 쉽지만 만나기는 어렵다네.
明朝爲約誰先到 내일 아침 맺은 약속, 누가 먼저 도착할까?
靑鳥殷懃爲揮秀 파랑새만 은근히 높이 날아오른다.
杏花踈雨入黃昏 살구꽃에 가랑비 내리니 황혼이 드리우고
奎屋無人見復痕 인적 없이 글 짓는 집은 언제 다시 자취 보일까
短䰌弄星愁有效 흐트러진 머리털에 별이 희롱하며 흉을 봐도, 근심엔 효과가 있어
此身雖異性長存 이 몸이 달라졌지만 본성은 길이 그대로라오.
[주] 삼생석(三生石) 석상정혼(石上精魂) : 당나라 때의 고승(高僧) 원택(圓澤)이 그의 친구 이원(李源)과 함께 삼협(三峽)에 이르러 어느 물 긷는 부인을 보고 이원에게 말하기를, "저 부인이 바로 내 몸을 의탁할 곳이다" "앞으로 12년 뒤에 항주의 천축사 뒷산의 삼생석에서 서로 다시 만나자" 하고는 그날 밤에 원택이 죽었는데, 그 후 12년만에 이원이 약속한대로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원택이 재생하여 목동이 되어 노래하기를,"⌈三生石上舊精魂 賞月吟風不要論 慙愧情人遠相訪 此身雖異性長存⌋"삼생석 위의 옛 정혼이 풍월을 읊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네,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주니, 부끄러워라. 이 몸은 달라졌지만 본성은 길이 그대로라오." 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윗글에 소개한 노래는 바로 그가 처음에 천축사 앞에서 부른 것이다. 또 그가 떠나며 부른 노래는 이러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일은 아득하여 인연을 얘기하자니 애간장이 끊어질 듯. 오·월의 계곡과 산은 두루 돌아보았으니 뱃길을 돌려 구당협(瞿塘峽)으로 올라가야지."⌈身前身後事茫茫 欲話因緣恐斷腸 吳越溪山尋己遍 却迴烟棹上瞿塘⌋그로부터 3년 뒤에 이원은 간의대부에 제수되었고, 다시 2년 후에 죽었다.
<거제도 지명 재담(才談)>
지명재담은 지명(地名)의 설화 또는 유래와는 구분되는데, 보통 재치 있는 말과 익살로써 재미있게 말해,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짧고 강한 이야기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고 의미의 예술이다. 그중 재담은 청각에 의한 의미의 예술이다. 의미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여 감동을 자아내려면 관심과 흥미 즉 재미를 이끌어 내야한다.
예전에 한문(漢文)이 지금보다 널리 쓰이던 시절, 재밌는 지명 재담이 있었다. "청주(淸州 충청도) 안주(安州 평안도)는 대구(大丘)요, 상주(尙州 경북) 장단(長湍 경기도)은 곡성(谷城 전남)이라" 전국 각 지역지명을 한자만 다르게 표현하여, "청주(술) 안주는 대구(생선)요, 상주(喪主 맏상제) 장단(長短 음악)은 곡성(哭聲 곡소리)이라"하였다. 그리고 강원도 인제와 원통지방으로 군대 갔다 온 분들은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일반적으로 재담은 '언어유희담'에 속하며, 구연자가 일방적으로 구연하고 청중은 이를 듣고 언어의 묘미를 즐기면 그만이다. 이 경우 재담의 텍스트가 흥미로워야하고 구연이 완벽할 필요가 있다. 거제지방의 지명재담은 거제도 지역에 한정된 것과 다른 지방지명과 함께 쓰인 것으로 나눌 수 있으며, 사설이나 가락이 아주 소박하고 향토적이다. 혼자 구연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나 가끔 번갈아 말하기도 한다. 또한 거제도 지명에 관한 관용구를 사용해 높낮이 없이 평탄조로 한 음보를 전부 2/4박자에 맞추어서 읊는 특징이 있다.
1) "에루하" / 김옥란, 거제시 하청면 어은리 장곶.
칠천도 최참봉 파란부치 / 연지기 장단에 다떨어진다 / 에루하 춘향아 네로구나. [주] 칠천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던 최참봉이 첩 연지기의 놀음에 재산을 탕진한다. 아마도 연지기 미모가 춘향이 버금갔던 모양이다.
2) "가지매 놋다리" / 임봉진, 거제시 하청면 어은리 장곶.
가지매는 놋다리 / 거제는 산달이 / 영둥은 개다리. [주] '가지매 놋다리'는 가조도(加助島) 놋다리이고 '산달이'는 거제면 산달도(山達島)이다. 그리고 영동(永登)은 둔덕 학산리(鶴山里), '개다리(갠나리)'는 견내량 다리를 이렇게 부른다. -다리는 운율을 더하기 위한 각운이다.
3) "우스개 나쁜 사설" / 임봉진, 어은리 장곶 .
제주 년 속곳가래 / 삼도 갓김치 / 청산도 고춧가루. [주] 옛날 거제 어부들이 전라도 제주도에 고기잡이 다녀보고 나쁜 점을 재담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주년 속곳가래'는 제주 해녀가 선상에서 잠수복으로 갈아입는데 대한 거제어부들의 비아냥이고 '삼도'와 '청산도'는 전라남도의 섬으로 갓김치가 보기에 거멓고 맛이 없었으며, 고춧가루는 아주 저질품이었다고 한다.
4) "못된 사설" / 임봉진, 어은리 장곶.
가시나 못된 것 망태 볼알네 집 / 머스마 못된 것 함안 띠골네 네골네. [주] 망태는 일운면 망치리 망치마을을 말한다. 구전(口傳)에는 옆마을 양화에 볼알네집이 있었는데 바스라진 머리의 작은 딸이 있었다 전한다.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지명재담의 특성上 양화마을 ‘볼알네집’이 ‘불알’과 음운적 유사성으로 인해 지어낸 말로 판단된다. 함안은 경남 함안군(咸安郡)인데 '띠골네 네골네'는 산골이름인 듯하나 운율을 갖추기 위해 우스개로 만든 말이다.
5) "야주가 났다" / 이월아, 하청면 어은리 장곶.
방개방개 구방개 / 야주가 났다 이물섬(利水島). [주] '방개’는 밤개로 장목면 율천리(栗浦)이다. '야주가 났다'는 야단이 났다. 거덜이 났다는 뜻인데, 이것은 밤개와 이물섬이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이 심한 곳인지라 항상 주의를 당부하는 말이다.
6) "사랑가" / 박갑순, 거제시 둔덕면 학산리 큰마을.
사랑도 못 믿을 사랑 남해 사랑 / 사랑도(통영) 처녀가 인물이 잘나서 / 남해(남해군) 총객이 손을 쥔다 / 손 쥐는 대는 대낮에 가고 / 눈 주는 데는 야밤에 간다. [주] ‘사랑’이란 발음과 유사한 ‘사랑도’와 ‘님의’ 혹은 ‘남아(男兒)’의 발음과 비슷한 ‘남해도’를 살려 만든 노래이다. 남아(男兒)가 여자에 반해 손을 잡고 이끌 때는 대낮인데, 서로가 눈이 맞으면 밤에 다시 만난다.
7) "못난 것들"/ 송복금,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망치.
양화정에 굿났다 / 망태에 굿났다 / 망태 볼안네 딸 못된 것은 / 진들 용시 / 괴현 촉새. [주] '양화정'은 일운면 양화마을로 양태라고도 한다. 망태는 망치마을, '진들 용시'는 상문동 들판에 사는 용수같이 얼굴이 길고 못 생긴 처녀의 별명이고 '괴현 촉새'는 고현동에 촉새처럼 입이 뾰족 티어 나온 못생긴 처녀의 별명이다.
"인사말 사설" / 임봉진, 어은리 장곶
대구문딩이는 진문딩이 / 울산지랄은 몰지랄 / 안동끙끙이 세 번에 파장이다. [주] 이것은 각 지방의 시장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말하는 첫 인사말의 특징을 모은 것이다. 대구 사람들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야, 이 문둥아’라고 하고, 울산 사람들은 ‘야, 이 지랄아’라고 첫마디를 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라 한다. 안동 사람은 시장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끙끙’하고 손을 마주 잡는데 너무 느려서 세 사람 만나고 나면 파장이 되었다고 한다.
9) "동네재담" / 송복금, 거제시 망치리 망치.
학동(동부면)학을 한 마리 타고 / 고동기미(螺仇味 수산마을)가서 고동하나 주어먹고 / 망태(일운면 망치)와서 망을 딱 보온께 / 윤돌(윤돌섬)가서 윷을 한방 놀고 / 구조라가서 국을 한그릇 사 묵고 / 지세포가서 쥐를 한 마리 잡아서 / 배숲개(일운면 옥림, 주림포)가서 배를 하나 따 묵고 / 장승포가서 세장을 봐서 / 마산가서 마차를 타고 / 부산을 가논께 부대해서(마음이 부풀어서) / 일본 시모노세끼로 건너갔네.
10) "동네노래" / 제명순, 망치리 망치.
구조라동네 도투마리동네 / 아현랑동네 소쿠리동네 / 에기미라 반도방에 / 반활량이 다모아드네. [주] 일운면 구조라는 곶(岬,串)에 이룩된 마을로 도투마리처럼 마을 가운데가 잘룩하게 들어갔다고 하여 도투마리 동네라 한다. 일운면 와현리(臥峴里)는 오목한 소쿠리 같고. 에기미는 예구마을로써 길옆 떨어진 곳, 즉 반도방(半道傍)이며 이 동네들은 경치가 좋아 한량 같은 놈들이 다 모여든다고 한다.
11) "생선재담" / 최유엽(친정 추자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씨아방 소라고딩 씨어멍 늘근전복 / 남편은 쑤기미 씨누이는 노래미.
<거제도 민요 '화조가(花鳥歌)'>
민요는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삶의 현장과 직결된 일반 생활 속의 노래인지라, 우리의 혼(魂)이 담겨있다. 거제민요 중에는 구전(口傳)에 의해 육지로부터 전해 온 것들이 특히 많다. 그 중에 '화조가'는 원래 18세기 이후 영남지방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규방가사(閨房歌辭)의 일종이었으나, 전승과정에서 그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호남지역의 판소리와 민요가 들어와 변이된 점이 특이하다. 또한 거제민요 '화조가'는 가창 방식이 독창이라, 주로 놀이를 할 때 불렀으며, 한 음보를 2/4 박자에 곡조를 붙여서 경쾌하게 노래한다. 이 노래는 집단적인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민요이기 때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청중들이 손뼉을 치며 흥이 나서 함께 춤을 춘다. 특히 '화조가'는 '춘향전', '창부가'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으며, 다른 지방에도 유사한 내용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경북 영덕군의 '화조가'는 태평성대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안동지방 『조선민요집성(朝鮮民謠集成)』 영남 내방 가사편에 수록된 170구의 '화조가'는 유명한 가사문학이다.
(1) 거제 "화조가(花鳥歌)" / 윤부금,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 당산몰
백살같은(백설같은) 흰나비는 / 부모님천상을 입었던가 / 소복단장 곱기나하고 / 장다리밭을 날아든다 / 얼씨구나좋다 지화자좋네 / 아니놀고서 무엇하리.
꽅아꽅아(꽃아 꽃아) 곱은꽅아(고운꽃아) / 높은봉에도 피지마라 / 해운이(비바람) 재촉하여 / 반마피고도 오갈졌네(시들었네). 요내인생 날적에는 / 곱기곱기도 났건마는 / 얼씨구나좋다 지화자좋네 / 반만피고서 오갈졌다 / 얼씨구좋네 지화자좋네 / 아니놀고서 무엇하리.
위 첫 구절은 전라도 임실 전래민요 '흰나비'와 내용이 동일하다. ["백설같은 흰나비는 / 부모님 의상을 입어야 하고 / 소복단장을 곱게 하고 / 장다리 밭에도 넘노는다."]
둘째 구절은 거제민요 "곱은 꽃아"(김재연, 거제면 내간리)의 첫 구절과 거의 유사하며, 마지막 구절 '요내인생 ~~' 은 1,2구절로 이어진 정서를 바탕으로, 생의 허무함에 화자의 자조서린 한(恨)인 신세타령을 정화하여, 승화시키고 있다.
흥겨운 민요, 화조가는 먼저 한 사람이 선창한다. 이어 반복구인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아니놀고서 무엇하리'를 청중 모두가 함께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는 논리성을 강조하지 않고 현장성을 바탕으로, 리듬을 중요시한 민요이기 때문이다.
아래 민요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꽃과 앵두 회화 정자나무들의 상황을, 당시의 모습으로 재미있게 풍자해 놓아, 선조들의 익살스런 모습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육지에서 들어온 '화조가'를 자신의 뜻에 따라 재창조하니 시의 언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구연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곧 시인인 것이다.
(2) "곱은 꽃아" / 김재연, 거제면 내간리 내간.
꽃타꽃타 곱은꽃타 / 높은봉에 피들마소 / 해운이 재촉하면 / 반만피고 가을지네(떨어지네). / 담안에라 꽃을숨거 / 담밖으로 후와졌네(휘어졌네). / 질로가는 호골양반 / 후와잡아서 다꺾는데 / 옥천앵두 반만붉어 / 만천잡것이 다끊어내고 / 앵두씨만 남았고나 / 서당골 해와나무(회화나무) / 선부지치서 해누었소(선비들 등쌀에 뒤로 기울었소). / 들가안데 정자나무 / 농부지치서 해누었소.
현대사회에서 자기 정체성의 확립에는 역사문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는 것처럼 국가에도 국가정신(national geist), 혹은 민족혼(volkseele)이 있다. 지역의 정체성(local identity)도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선사의 신화시대부터 현재까지를 고찰하게 된다. 그 중에 설화 한문학 민속 민요 등에는 지역의 혼이 잠재해 있다. 특히 민요 설화는 개인소작이 아니라 민중의 소산이다. 민중의 무의식적 표현이기 때문에 가장 자연 친근적인 문학이다. 그 옛날 굶주리는 학정 속에서 몸부림쳐 살아온 선조들은 먹고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생활 속에서 생겨나는 자그마하고 짧은 노래에다 행복을 추구했다. 이때 밝고 리듬감 있는 민요는 선조들에게 마음의 위안이자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따라서 민요야말로 유독 서민들만이 부른 서민의 예술이다. 이러한 민속 문학은 가장 정신적 지주 문학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거제의 정체성(Geoje's identity) 확립에는 이러한 점을 눈여겨 고찰해야하며,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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