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 대권 2007 > 들어가는 말
한국의 미래선택, 대선 2007
한반도 운명선택, 대권 2007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2006년 5월 27일 오전 8시 36분이다.
내가 과연 이 글을 쓰는 게 옳은지 많은 망설임의 다리에서 갈등하고 있다. 다리를 일단 건널 것인가, 아님 되돌아 갈 것인가.
나는 정말 못난 사람이다. 그런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과연 보람과 기쁨은 있을 것인지 심히 두렵고 불안하다.
왜 생업도 건사하지 못한 미천한 인간이 이런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일까.
난 사실, 언젠가는 정치소설을 써보고픈 열망을 안고 있었으나, 어쩌면 끝내 써내지 못할 거라는 예감을 안고 있었다.
한시간 반정도 전이었을 것이다. 내 못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수없이 돌면서 인생고민을 해나갔다.
내 인생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가, 진정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새출발을 힘차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직업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생이었다. 트럭운전수에서부터 영업사원, 과외선생, 대학교수, 투기꾼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포기할 수 없는 열망 하나가 있었으니, 그 어떤 직업이더라도 가급적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픈 열망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알게 모르게 내 오랜 탐색과 열망의 무대였다. 작가야말로 나로선 신성할 정도로 고귀한 직업이었다. 창의성이야말로 미래사회의 핵심 자산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오늘 아침의 고민은 주로 아르바이트 성 돈벌이에 대한 고민이었다. 영업직을 선택할까, 강사직을 선택할까, 좀 더 참신한 일을 해볼까. 많은 시간을 금융 컨설턴트--인생 재무 상담--업을 새롭게 시작해볼까 검토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참으로 많이도 돌았다. 내 고민과 선택은 운동장을 끝없이 돌아도 결정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역시 돈이 문제였다. 사무실 하나 얻을 돈도, 작은 회사 하나 차릴 돈도 없는 내가 맨손으로 하기엔 공신력의 한계가 너무도 명백해 보였다. 재미와 보람은 있을 것 같지만 스케일 면에서는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이런 검토와 망설임이 최근에 본격화된 것은 이미 2주 전부터 시작되었고 그때마다 난 수없이 운동장을 돌았다. 야심한 시간 70바퀴도 넘게 돌았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열망과 현실적 선택 사이에서의 갈등은 참으로 오랜 연륜을 거듭했다 할 것이다.
정치와 국가경영에의 참여는 나에게 얼마나 오랜 연혁을 지니고 있을까.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것은 98년 민주당 출범 때였다. 정책분야에서 국가미래를 연구할 책상 하나만 준다면, 혼신의 힘을 다할 것만 같은데. 하나, 난 자신감 부족으로 그런 열망을 잠재우곤 하면서도, 항상 갈증과 갈망과 포기의 쳇바퀴를 돌았다.
3년 전 2003년, 6월 어느날 난 정치 칼럼리스트가 되고 싶어 2주간의 시험기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또 그 6개월 전쯤에는 세계경제 연구가가 되어 경제칼럼리스트를 꿈꾸기도 했었다.
오늘 아침에도 또 그 고질병이 도졌다. 서울에 올라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책을 건의해볼까. 정동영을 만나볼까, 강금실을 만나볼까.
역시나 오늘도 헛된 망상이라 치부했다. 언제까지 그런 망상을 거듭할 것인지,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이 열망, 국가경영에의 참여와 봉사 그리고 헌신.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못난 이 인간에게 그런 열망은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정신적 사치인가, 고귀한 공동체정신인가.
내가 실패하고 폐인처럼 살았을 때, 내 주위의 인간들은 어떠했던가. 난 인간이, 이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지 알만큼 알게되었지 않던가. 스스로의 인생도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이 어이 치국을 논하고 평천하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가. 얼마나 이 더러운 사회의 서러움을 맛봐야 제정신을 차릴 것인가.
그럼에도, 그럼에도, 내 이 알 수 없는 열망과 갈증은 영원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것만 같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그럼 또 백견이 불여일행은 또 어떨까. 아무리 많이 보고 생각하고 뭐하리. 실천할 수 없다면 탁상공론일 것을.
인간은 사색 속에서만 존재할 수 없는 행동의 동물이 아니겠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고민만 하고 망상만 거듭할 것인가. 부딛치고 싸워봐야할 거 아닌가. 그게 자기 존재증명이 아니겠는가.
지방선거가 아직도 나흘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 대권타령인가 ? 운동에 열성인 분들에겐 힘 빠지는 짓일지는 모르지만, 이번 선거는 우리당의 참패로 끝날 것이 거의 예정되어 있다. 더 기다릴 실익도 없기에 차라리 이제부터라도 대권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애초부터 지방선거엔 큰 관심이 없었으나, 내년의 대권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년의 대권 선택은 한국 미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고 있다. 한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한국사회변혁의 엄청난 승부처인 것이다. 과연 국가는, 국민은 어떤 선택을 통해 어떤 미래를 창출해 나갈 것인지, 개인적인 호기심 또한 억누를 길이 없었다.
유사이래 처음일 것만 같은 여당의 지방선거 대참패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당에 미래는 있는가. 이토록 무기력한 정당이 없었다는 시중의 여론과 우리당에 대한 염증을 생각하면 생각할 거리도 없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도 희망을 버리기엔 성급하다는 것. 아니, 앞으로 우리당이 하기에 따라선 아직도 우리당에 베팅을 하고 싶은 심정이기에 이 글을 꼭 써보고 싶었다.
객관적으로 보아 내 정치적 성향은 조금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경제정책 쪽으로는 비교적 우파의 성장론을 중시하면서, 분배에서는 좌파적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우리나라 경제와 서민들의 삶에 걱정이 적지 않다.
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오래 전부터 많은 갈등을 하고 있었다. 경제정책에서 비교적 우파를 지지하는 나에게 신자유주의는 필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회는 신귀족사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빈부의 차이는 벌어져만 가고, 약자들의 고통은 늘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3년 전 이 무렵에 쓴 글이 <신자유주의와 세계경제공황의 위기가 막스를 무덤에서 깨어나게 한다.>라는 글이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말로 계급투쟁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내 견해는 달랐다. 앞으로 21세기야말로 진정한 계급투쟁의 신세기가 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이런 두려움이 나에게 우파를 지지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분배를 통해서라도 성장의 과실을 약자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런 핵심적인 이유가 있기에 난 우파정당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이유만으로 우리당이 더 좋은 당이고 한나라당이 더 나쁜 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결코 될 수 없다 할 것이다. 총체적인 국가운영능력과 비젼창출 경쟁을 통해서 우열을 가름해야 하리라 믿고 있다.
난 지금 이대로의 우리당은 결코 집권할 수 없다고 믿고 있으며, 또 집권하더라도 국가의 비극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난 분명 열린우리당 열성 지지자였다. 그러나 그 지지정도는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노무현 정권과 우리당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것일까. 난 이 글을 통해 그런 문제점들을 밝히려 노력할 것이고, 문제 당사자들에게 통렬한 공격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난 아직도 정동영 노무현 유시민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들의 과오 또한 적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정동영의장은 전당대회에서의 몽골기병론 선언과 달리 전혀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해 큰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그의 의욕은 참으로 대견했으나 인적 정책적 자원의 미비로 거대여당의 몰락을 방관하는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다.
그러나 더 큰 공포심은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의 사회적 참극이다. 어쩌면 성장은 더 이뤄낼지 모른다. 사실 이 점도 난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경제불황은 전 정권 민주당시절부터 누적된 구조적인 측면이 강하기에 노무현의 죄라고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했다 할지라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있고, 그런 그들이 대신 집권한다고 경제가 크게 나아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사회는 갈수록 빈부격차가 확대되어 신귀족사회가 되어갈 것이다. 이영애가 선전하는 자이에서 그들끼리만 울타리 지어 빈자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세태는 갈수록 악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난 국가경쟁력은 강화하여 국가 전체의 파이는 키우되, 그 성장의 결실은 같이 나누는 쪽이 좋다고 믿고 있다. 그게 사회적 안녕과 인간존중의 이상에 가까우며 빈자들의 재교육과 소비를 통한 국가잠재경쟁력 및 성장력을 키우는 길이라 믿고 있다.
앞으로 갈수록 실업문제는 경제문제의 핵심이 되어갈 것이다. 복지정책과 재교육 그리고 실업대책을 어떻게 결합하는 정책을 내놓을 지가 매우 중요하다 믿으며, 이 부분에서 우리당에 강점이 있다고 믿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당의 장점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당이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크게 암울하게 하는 우매한 선택이 되지 않을지 두려운 것이다.
해서 난,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를 가정해서 그들이 얼마나 비극적인 국가운영을 펼칠지 경고가 되는 글을 써내고 싶었다.
그것은 먼 시점의 이야기이다. 2007년 그때 우리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설명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당에도 대해서 채찍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국가의 번영과 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대중영합적인 꼼수만을 연구한다면 그들은 도태되어야할 국민의 적들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나 난 이 글을 가급적 공평하게 써보려 노력은 할 것이다. 그게 글의 설득력을 위해서도, 작가적 양심을 위해서도, 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당연하다 믿기에.
또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들의 잠재능력과 정책들을 세세히 알아야하며,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간됨이나 이력에 대해 풍부한 자료와 분석이 필요하리라 믿고 있다.
( 글의 재미나 미래 예측능력을 위해선 후보들의 문제점에 대한 공방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으나, 명예훼손의 문제가 걸려 있어서 상당히 힘겨운 글이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난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386세대이다. 우리 세대의 경험과 투쟁은 한국역사에서 독특했고 고귀한 결실은 안겼다고 믿고 있다.
당시 우리는 무엇을 배웠던가. 그야말로 참여와 투쟁의 정신은 아니었을까.
그런 우리 세대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난 많이 아쉽고, 때때론 배신감을 안곤 한다. 난 당시 열성 운동파 참여자는 아니었다. 비판적 지지자였고 신중한 선택자였다. 그때 우리 앞에서 소리쳐 외치던 그 많은 친구 선후배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난 참여와 투쟁의 고귀함을 굳게 믿었다. 하이텔시절부터 지금까지 정치논쟁에는 많은 참여와 투쟁을 벌였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는 인터넷 카페 등 생활정치 현장에서도 과도한 민주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싸움과 투쟁을 벌였고, 우애를 잃고 후회의 눈물도 뿌리기도 했었다.
난 소시민으로써 정치에 참여해온 과거를 많이 후회하기도 했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내 직업활동에 엄청난 장애가 되곤 했었다.
글을 쓰는 직업은, 작가라는 직업은 그야말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아주 특별한 세계의 사람들이다. 특정 사건이나 정치토론에 참여할 때마다, 내 인생은 구겨지고 제 갈 길을 잃곤 헤매곤 했었다.
그런데도, 이젠 내 일만 집중하겠다며 정치를 멀리한 그 시간들이 또 아쉽고 후회되는 때가 있곤 했다.
내가 좀 더 참여했다면, 그래도 이 나라가 좀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많이 아쉽기도 했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난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직업전문화사회이고 정치의 영역은 또 그 세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소시민으로써 참여할 공간과 역할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 시간과 열정은 무모하기 십상이다.
내가 정치가들의 일에 과도하게 참여하고 간섭한다는 것은 일종의 오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생업을 걸고, 정말 인생승부를 하듯이 날마다 좋은 정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내가 무슨 시간이 있다고, 돈이 되지 않을 게 뻔한 이런 활동을 펼쳐야만 한단 말인가. 오만이며 착각이고 망상이며 그들 세계에서 본다면 불쾌하고 괘씸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난 아직도 이번에 시도하고자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다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 무엇이 나를 이리도 집착하게 하고 미련을 떨치지 못하게 하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열정과 보람을 빼면, 인간은 그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
생동감 있는 하루란, 시간들, 그리고 인생이란, 자신이 진정 열망하는 그 무엇에 대한 도전의 과정이 아닐까 ?
나에겐 분명, 그 알 수 없는 크기의 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다.
현실적으로 내 갈망은 아주 소소한 것이다. 잘해야 정당에서 정책실 말단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바라지 않고 있을 것 같다. 난 그런 자리가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많은 고민을 할 것 같고, 호기심 삼아 몇 개월은 일할지 모르겠으나 일년 이상을 버틸지는 자신이 없다.
아직도 난 내 인생을 그 무엇으로 채워나가야 할지 갈등하고 있고 번민하고 있기에.
한 국가경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내 보람과 헌신감을 큰 만족을 안길 것이다. 하나 그것만으로 살아가기는 또 만만치 않지 않는가.
돈도 벌고 싶고, 더더욱 거시적인 시공간과 지적 세계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잠재울 수 없는 이들이 작가라는 괴물들이니까.
그럼에도 정치에 대한 내 갈망이 작지는 않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내 능력의 크기에 따라 많은 변수가 따르는 일이다. 권력으로써의 정치에 대한 갈망은 미미하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픈 정신적 보람의 영역에서의 갈망의 크기-- 그것도 일종의 소극적 정치의지요 욕망이며 권력욕일지 모른다 -- 그 누구에게도 쉽게 지고싶지는 않다.
나의 이런 욕망, 공동체에의 참여와 봉사정신 그리고 헌신욕은 상당부분 386세대의 공통 된 정신적 유물이라고 믿고 있다. 난 그것을 유신의 아이들이라는 세뇌교육에서 찾고 있다.
(386 세대와 유신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그 언젠가는 소설을 써볼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애국심과 민족애를 유난히 강조했던 박정희 유신이념이 70년대에 정서적으로 민감한 10대를 보냈던 이들에게 주입된 국수주의적 세계관의 전형이라 믿고 있다.
그런 극우파적 국수주의 위험성은 80년대 대학생활을 통해 비판적으로 어느 정도 해체되고 좌파 사회주의과 결합, 융합되게 된다. (그럼 국수적 사회주의가 되나 ? ^^ 좋게 말해 민족적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
난 386 세대의 대체적인 정신적 세계관을 그렇게 보고 있다. 그 누구는 좀 더 우파적이고, 또 누구는 좀 더 좌파적이며, 그 누구는 중도적인지는 생활환경에 많이 좌우되지 않았을지.
386세대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그 부분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소설을 쓰게 될 때 더 깊이 연구해 보기로 하겠다.
인간의 대체적인 성격은 17세 정도에 결정된다는 말도 있다.
내 중학시절이 유신교육의 절정기였다. 중 3시절, 국가가 나에게 가미가제를 타라고 부탁한다면, 난 기꺼이 탔을 것이다.
정서적으로, 세계관형성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절을 우리세대들은 유신세례를 온몸과 정신 그리고 생활 속에서 받아냈다. 그 전형적인 이야기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라 할 것이다. 난 그 영화를 그 누구보다도 많이 봤고, 볼 때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386세대는 한국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정치적 세대들이다.
그들에게는 많은 물리적 정신적 심리적 압박과 압제가 가해져, 과연 바람직한 인간성과 세계관을 형성했는지, 연구거리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세대들을 심히 안타깝고 안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또 깊이 사랑하고 있다. 연민과 사랑이 교차하는 애증의 심리와도 유사하다.
우리 대학시절엔 낭만을 죄스러워한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 행복을 죄스러워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아픔과 눈물이, 그 언젠가 미래세대들의 행복의 씨앗과 거름이 되길 바라는 시절이었다.
이 어찌 안쓰럽고 또 대견하고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난 우리세대들이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 인간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에 이바지할 많은 것들을 가진 고귀한 세대들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우리세대들이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는 시대가 되면, 과연 이 민족은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염려하고 있다.
그 누가 뭐라해도 한국은 여전히 우파사회다. 그것도 과거엔 심각한 극우파 사회였었다. 386 세대의 영향으로 그나마 서민들의 권익이 이만큼이나 성장하고 민주화를 이룬 게 아니겠는가.
난 맑스주의를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혁명의 비민주성과 통치의 압제, 폭력적 지배는 독재성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과거의 소련 등 사회주의권과 현재의 북한이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민주노동당에 상당히 호의적인 사람이다. 물론 절대적 호의는 아니다. 상대적, 권력균형적 시각에서의 호의일 뿐이다. 극우파적 많은 요소들을 개혁하는 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왜이리 장황하게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까.
이글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정치적인 글이 될 것이다.
결코 가치중립적인 글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분명 편파성을 안고 들어가는 글일 수도 있다.
필자가 어떤 입장에서 글을 쓰는냐는, 그 글의 가치성과 공평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정보원이다.
난 가급적 투명하고 싶고, 가급적 공평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하나 글이란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쓰는 자의 이익을 떠나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물론, 오늘 구상한 글이기에 시간적으로는 길지 않다. 아니, 극히 짧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할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목적실현을 위해, 어떤 방식의 글쓰기가 필요한지 설명해야하고, 거기서 어떤 위험성들이 잠재되어 있는지, 왜 이 글쓰기가 어렵고 위험한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난 열린우리당 지지자이다. 그리고 정동영지지자이고 아직도 노사모소속이며 노무현대통령의 정치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난 언제라도 필요하다면 그들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 특정의 사적, 집단적 이익을 위해 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위에 서 있는 것은 어떤 가치인가.
국가와 민족이다. 그리고 세계인류애이다.
허황된가 ? 공허한가 ?
인생의 아픔을 아는 이로써, 나 역시 조금 망설여지는 부분은 분명 있다.
그런데, 진실된 내 바람과 열망이라 말할 수 있다. 월드컵이 아니라, 단지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만 봐도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왜 초봄에 야구 월드클래식에서 그토록 한국팀의 선전에 열광하였던가. 삼성과 엘지 그리고 현대차의 세계적 선전에 기분이 좋고, 하인즈 워드가 한국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영웅으로 모시는 심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들 안에는 분명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조국애와 국가애가 강렬한 민족이다.
나 역시 그렇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멋진 나라가 되길 바라고, 국민들의 삶이 행복하길 바라고, 한국인이라는 브랜드를 안고 외국인들을 만날 때 당당하고 자랑스럽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열망은 정말, 생각이상으로 크고도 강렬한 열망, 그것이다.
난 2001년 초부터 틈틈이 경제칼럼류의 글을 인터넷 카페에 올리며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문제들을 다뤄왔다. 그리고 2002년 2월경이었을까. 북핵문제가 터지자 그 문제를 심히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해법을 연구하기도 했었다.
난 노무현정치에 대한 평가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정치적, 국가통합적, 역사적으로 긍정적 평가도 많지만 경제적으로는 많은 문제도 안고 있는 정권이라 할 것이다.
한국정치는 3류 수준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곤 한다. 난 일정부분 긍정하고, 또 일정 부분 부정한다. 분명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데,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들과 비교해서 한국정치는 역동성이 있다. 국가통합적으로도 그런대로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시민정치라 할 수 있는 NGO활동은 세계정치사적으로 평가할만한 부분이 분명 있음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엔, 한국정치 뿐만 아니라 서구민주주의에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순 없을 것 같다.
서구민주주의자가 아니냐고 ? 물론 나 역시 서구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한데, 현실적 정치에서 많은 한계를 안고 있고 개혁이 필요하는 말이다.
정치, 즉 국가영영도 기업경영과 마찬가지로 비용과 기대이익의 함수가 적용된다.
난 오늘날의 서구민주주의를 비교적 적은 비용의 적은 기대이익 정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 어떤 이익들이 더 필요하는 말인가 ?
의회민주주의, 즉 대의정치는 직접민주주의에 비해 저비용 저효율정치라 믿고 있는 것.
난 좀 더 시민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해서, 좀 더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정치를 꿈꾸고 있다.
그렇다 ! 바로 노무현 정권이 주창했던 참여정치를 꿈꾸고 있다 !!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좀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통해,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써나갈 정치소설--빅뱅 ! 2007 대선 (한국의 미래선택, 대선 2007)--도 참여정치의 실현인 것이다.
이 못난 사람이, 왜 그리도 정치에의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조금 설명해 보고싶다.
난 한때 증권으로 거부가 되어 금융재벌이 되어보고 싶었던, 남들이 말하길 과대망상증 환자였었다. (그런 사람이 좌파일 수 있을까 ? ^^ 난 분명 좌파는 아니다. 최소한 내 야망은 그렇다. 하나, 내 가슴--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뜨거운 인류애적 양심이나 동포애 또는 인간적 사랑의 정신이라 말할까 --은 분명 좀 더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
어느 날이었을까. 2004년 초쯤이었을까. 내가 참 비천하고 스케일 작은 인간 같았다. 내가 증권으로 성공해서 한해 10억을 벌어보겠다고 ? 코웃음이 나왔다. 물론, 실력이 되면 적은 돈으로도 그리 성공할 수도 있다. 낙타가 바늘구멍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런데 말이다. 국가가 한해 성장률 1%만 더 성장해도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
계산상의 편의상 5000만 국민이라 해두자. 아직 2만불이 안되지만 편의상 일인당 2만불 국민소득이라 해두자. GNP가 얼마인가 ? 1조 달러가 아닌가 ? 1000조원에 가깝다. 5% 성장이면 ? 50조원. 국민 일인당 100만원. 갖난애기에서 치매 노인까지 말이다. 1%를 더 성장하면, GNP 10조원, 일인당 20만원인 것 같다.
10조원이라. 얼마나 큰 금액일까, 쉽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어머어마한 천문학적 금액이라는 것. 100억 짜리 건물이나 다리 학교 등을 1000개 정도는 건설할 수 있는 돈이다.
누가 한해에 국가재산, 시민들 재산 10조원을 날리거나 얻어내는가. 그것도 사실 10조원 자체만이 아니다. 같은 성장률 차이가 누적되면 액수는 점점 승수효과를 발휘하며 커진다. 성장률이 2% 차이를 내면 그 차이는 더더욱 엄청날 것이다.
정확한 정답은, 전 국민들의 책임이요 역할이었을 것이다. 하나, 말이 좋아 전 국민이지, 그들이 모두 같은 역할가지고 있지 않기에 책임 또한 모두 같을 순 없다.
그렇다 ! 여기에 정치의 중요성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정치권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해 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난 그때 전율했던 것 같다.
아, 정치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구나 !!
정치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구나 !!
정치의 영향력은 정말 막강한 것이고, 심대한 중요성을 안고 있었다.
위의 예는 단 한해의 경제적 성취만을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는, 우리의 거의 모든 것들을 좌우하고 있었다. 문화며, 환경이며, 생활이며, 의료며, 오락이며 심지어 연애나 결혼, 생존권까지도.
정치 결정론자가 아니냐고 ?
난 아니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 직업을 선택하진 않았다.
하나 정치는 우리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열정이 과도한 거라고 ?
천만에 !! 난 부족하면 부족했지 더 강화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정치를 누가 결정하고 있는가.
물론 거의가 정치인들이다. 재벌도 있고, 검찰 등 권력기관도 있고, NGO니 시민들도 있지만, 핵심은 정치권인사들, 바로 정치를 생업으로 하는 이들이다.
난 서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잘 보호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정치의 틈은 너무 많고, 유능하지도 못한 이들이 도둑질은 그 얼마나 많이 하고 있을지.
그러기에 감시하고 지도하고 싸워야한다고 믿는다 !!
한국,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이다. 정말 해가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이제 경찰과 군인과 검찰도 무서운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재벌도 깽들도 두려운 존재들은 아니다. 이 정도면 대충 살만한 나라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우리 주위엔 무능해서 밥값을 못하면서도 필요 이상의 권력과 이권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적들이 숨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현재의 정권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많은 부분 무능했고, 작은 도적질이 차라리 나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민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했다. 한나라당을 차떼기당, 성추행당이라 말하곤 하지만 보이지 않은, 아니 들키지 않은 정권의 도적들은 또 숨어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 무엇으로 이들을 견제하고 지도하고 싸워나갈 것인가 !
참여정치 ! 바로 그것이다 !!
현 정권이 참여정치를 표방했음에도, 우리는 과연 참여했고 그 결실을 맛보았던가 ?
그대, 무엇을 참여했는가 ?
그러고도 또 무엇을 불만해하고 원망해하고 미워하는가.
그대, 노력하지도 않고 감이 입으로 떨어지길 기대하는가 ?!!
노력하지도 않고 그 무엇을 기대하는가 말이다 !!
난 생활정치, 서민정치가 열려야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참여정치의 실현이다.
이 점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이 민주노동당이다. 난 그들에게서 한국정치의 미래를 보고 있다.
하나, 난 정치적 지향점과 그 결과를 믿을 수 없기에, 좌파의 경제운영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확인된다면, 누구더라...아주 똑똑한 그 의원, 노회찬 같은 이들이 비젼만 보여준다면, 난 과감하게 우리당을 버리고 그들에게 달려갈 것이다.
난 미국정치가 우리보다는 앞서 있다고 믿고 있다. 지방에서 검사도 판사도 소방소장도 교육책임자도 서민들이 직접 평가하고 뽑는다. 그만큼 서민들의 선택과 권력은 우대받고 있는 것이다.
또 그들은 많은 국민들이 정당활동을 펼치고 그들의 대표를 선출한다.
(이점 나도 부끄럽다. 난 우리당 인터넷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는 했지만 기간당원도 못되었기에.)
지금 지방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인들처럼 자원봉사로 선거에 참여하지는 못할망정 , 이번에 시의원, 구의원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과 누가 국가의 공복감인지 평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광역행정후보만을 겨우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비교적 정치의식이 있다는 나 같은 사람도 이럴 정도이니 일반 서민들의 정치관심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그 정도의 관심과 참여로, 3년의 임기를 맡기고 자기 지역을 책임지게 할 수 있겠는가.
우민정치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
정치권에 큰 책임이 있다고 믿고 있다.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선거법만 좀 더 개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겠는가. 정치관심이 높다는 한민족이 말이다.
들어가는 말치곤 꽤나 길어지고 있는데, 꼭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지난 겨울에 우리당에서는 기간당원 문제로 홍역을 앓았었다. 난 그 문제가 참으로 민감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난 정동영도 노무현도 유시민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들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었다. 참으로 난감한 심정이었다.
원칙은 기간당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게 맞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제도의 도입이 정착되지 않았고, 이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인정할만 했다.
장기적으로 기간당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정치실현의 핵심적 수단이라 믿고 있다.
그런데 기간당원의 의미와 역할 및 책임을 명확히 해둬야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같이 이름만 걸고 소액의 당비만 내면 기간당원일 수 있을까. 과연 그 정도로 기간...당원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그 악용이 심각한 실정인데도 ?
뭐 꼭 그렇게 해서라도 당비를 좀 걷겠다면 반대할 생각까지는 없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정치참여열정으로 모든 기간당원들이 같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반대하고 싶다.
그 정도로는 도저히 시민참여정치, 생활정치를 이뤄낼 수 없다. 정당의 이념과 정치력이 서민들 생활 깊숙이 파고들 수 있기 위해서는 좀 더 심도 있고 지속적인 조직력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기간당원제 위에 핵심당원제 같은 이름은 어떨까. (지금의 대의원제가 이런 역할일까 ?)
난 시민들이 정당건물에 모여 구체적으로 정치를 따지고 평가하고 정책을 선택하고 대표를 뽑을 수 있을 때, 진정 시민참여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지역정치에 참여하고 또 국가정책에 대해 토론해 나가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정당의 역할이다. 정당이 어떻게 이끄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참여열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정치이고, 서민들의 목소리가 중앙당에 반영될 때 가능할 수 있다. 많이나아졌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런 시스템으로는 시민참여정치는 헛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386세대뿐 아니라 475세대 그리고 297세대들 모두 대학시절 데모에 참여한 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이 직업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겠으며 참여열정이 없는 것 아니리라. 어떻게 하고 이끄냐에 다라서 그들이 다시금 시민참여정치에 합류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돈 안 드는 정치를 위해 지역구사무실을 폐쇄한다고 했던가 ?
아니, 나는 더 돈 드는 정치를 할지라도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확히 반영만 될 수 있다면, 조직과 자금력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누가 돈을 내는가. 재벌이나 향토토호들이 아니다. 서민들이 자발적으로 신바람 내서 당비를 낼 수 있는 그런 유인책을 강구해야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토록 선거에 무심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도무지 선거다운 신바람이 일지 않았다. 정치무기력증과 혐오증이 그것이다.
누구의 책임일까. 아무래도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의 책임이었다.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다. 좋아하는 정동영, 노무현, 그리고 최고의원들이 일단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리고 신바람 정치를 시작해야만 한다.
날마다 연구해야한다. 프로야구선수들이 날마다 좋은 타격 보이려 갖은 노력을 다하듯이, 정치인들도 날마다 시민들이 신바람이 날 수 있는 안타를 날마다 생산해야만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정책연구이고 아이디어 개발이다.
무엇이 가능케 하는가. 그 뜨거운 열정을 ?
물론 정치인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무엇이 그들을 생존케 하는가. 물론 국민들의 지지이다.
지지는 무엇으로 오지 ? 물론 국민들의 신바람이다.
신바람 정치, 신명나는 정치가 아니면 안된다 !!
어떤 힘이 시민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국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 내 가족 같은 사랑. 바로 그것이다.
사랑과 감동 그리고 보람이야말로 인간 생명력과 활동력의 원천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받겠다는 욕심, 그건 도둑놈 심보이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겠다는 욕심, 그게 거지 근성이다.
국민들에게 뭘 해줬다고, 감히 표라는 크나는 권력을 공짜로 달란 말인가.
고마우면 주지 말라고 해도, 가만있어도 다 내준다. 그게 사랑의 법칙이다.
그대들, 사랑받고자 한다면,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라.
그대들, 권력을 행사하려 들려면, 그 권력을 아름답고 고귀하고 참되게 행사하라.
난 우리당 창당이전, 민주당 분당사태 때부터 열렬 지지자였었다.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공감해 주었다. 그러나, 한해 두해 지나면서 내 주변의 친구들 거의 모두가 떨어져 나갔다. 민주당으로, 한나라당으로, 민노당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그래도 난 아직도 우리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들의 정신, 지향점에 공감하고 있기에. 또, 경제정책에는 아쉬움이 많으나, 정치 전반과 외교에서는 평가할 부분이 많기에.
이번에 지방선거가 끝나면 우리당은 모든 것들을 원점으로 돌려, 총체적으로 자기점검을 하고, 정당 모두를 리빌딩하지 않아선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있다. 아니 재기도 할 수 없이 분열과 붕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듯이 그 한없는 무능력이다. 심하게 말하면 골빈당이다. 가슴만 있고 머리는 없는 정당이다. 국가의 팔다리인 서민들만 죽어나는 정당이다. 머리를 바꾸자는 말이 왜 시민들이 하지 않겠는가.
정당 자체를 봐도 머리는 없이 손과 발만으로 포즈연습하는 당의 모습이다.
정당의 머리는 무엇인가 ?
정책이 아니겠는가 ?
우리당 조직도를 보면, 열린정책연구실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생산한 정책들이 무엇이었을까 ?
그럴 듯한 대표적인 상품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 난 기억하지 못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당이 파멸에서 재기하는 길은
시민참여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민주화를 선창해야만 하고,
이를 통해 기간당원제, 핵심당원제(대의원제) 등을 강화해서 조직을 강화하고,
신바람 정치를 위해 온 정당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날마다 안타정치, 신명정치를 실천하고,
장기적으로 국가운영과 국민행복을 위해 뛰어난 정책들을 연구해 내는 것이다.
마지막, 정책능력개발을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연구해볼만 하겠다.
기존의 조직을 확대개편함은 당연하고
재원과 인적한계가 명확하다면, 모든 조직을 총동원하여 정책 쪽으로 수혈해야만 한다.
즉, 국회의원 비서관 보좌관들, 지역정치인들, 대의원 및 기간당원들까지 정책 소위원회에 편입시켜 안타를 만들어 내게 해야하는 것이다.
난 사실, 개인적인 정책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5월 17일 정도영 당의장을 만나 건의를 해볼까, 서울로 올라가 강금실후보를 만나볼까 고민도 했었다. 대통령선거시의 정책으로 내면 좋겠으나, 정책도 시기가 있기에 나름대로 고심하다가 여건이 안되어 포기한 것이다.
(기회가 있었다면, (꼭 당사자가 아니어도 좋았다. 보좌관이나 지지자들 모임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건의 가능했었다.) 위에 적은 대부분의 정당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싶었다. 지방선거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획기적인 빅히트가 필요하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일반 서민들에게도 나름대로 그럴 듯하다고 믿는 정책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은 귀찮다는 이유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하곤 한다.
시민들을 정치로 유인할 수 있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책에 대해선 앞으로의 소설 전개에 포함시키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 글을 써나감에 있어서의 애로사항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정치소설에 대한 욕망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매우 어렵고도 금전적으로 보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왜 그러한다.
현실정치와 소설 간의 거리유지가 어렵다.
현실성을 무시한다면, 정치에 기여하는 비중이 낮아진다. 재미와 쓰기의 편의성을 위해서는 픽션이 가미될 필요가 있는데, 그 거리감 유지가 매우 어렵다고 믿고 있었다. 영화로는 강제규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소설로는 고원정씨의 소설 몇 개가 생각나고, 사마달씨 등 몇 명이 무림을 빗대어 대권이야기를 쓴 것 같다.
난 사실 정치권에 인맥이 없다. 어떤 지적 자산으로 이런 글을 소화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픽션으로 갈 수밖에 없다.
픽션의 비중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재밌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가미할 수 있을까.
난 이 소설을 현실성이 떨어진 재미에 치중할 생각이 없다. 구체적인 정치에서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가급적 등장인물도 모델을 차용해 이야기를 꾸려갈 생각이다. 직접 실명까지 거론하면 좋겠으나, 중요 정치인이 아니라면 그들을 알지 못하고 실명사용의 위험성은 아주 높다. 시비 걸기 좋아하는 그들이 어떤 법적 소송을 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두려운 점이 이쪽이었다. 이 글은 분명 돈이 되지 않는 글이다. 나로선 봉사하는 기분으로, 차후 정치소설을 쓰기 위한 습작성 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막대한 배상과 소송의 힘겨움까지 대비해야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 모 통신사에 대한 소송도 몇 개월 째 미루고 있는데. 소송을 못 걸면 이 소설에서 언급을 할 것 같다.)
누구를 확실히 지지하고, 그를 대변한다면 문제가 생길 때 소송비용이라도 대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누구에게 창끝이 미칠지 아직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필연적으로 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재미가 많이 반감되고,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사건을 충분히 예시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난 소설 구성에서, 가급적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빨리 쓰기 위해서는 미래의 특정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듯이 선무당 점치는 심정으로 미래예측 소설식으로 써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필연적으로 현실에서 이반될 수밖에 없고, 정치적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소설은 완성작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완성작이 나온다 할지라도 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 회상식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 이뤄지지 않는 미래의 일을 예측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또 현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또 무엇인가. 현재 진행을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수법을 믹스한다고 ? 매우 위험하다. 왜 이런 무모한 방식을 선택한 것인가 ? 소설의 재미와 교훈 그리고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법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단 이야기는 아주 아마추어적 심정으로 편하게 풀어나갈 생각이다. 완성되지 않는 글을, 문제 투성이의 글을 그래도 올려버릴 것이다.
미래를 예측해서 풀어간 부분은 필연적으로 틀린 전망이 대부분일 것이다. 앞으로의 남은 이야기들을 계속 설득력있게 써내기 위해선, 앞에서 잘못 전망한 부분을 필연적으로 고쳐줘야만 한다. 15회 이야기를 하다가 말도 안되는 4회 10회 이야기들을 수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를 보는 기분일 것이다.
등장인물만도 그렇다. 신문이, 내년의 등장인물을 예측할 수 있는가. 신문은 어제의 일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일을 일을 써보려고 한다. 필연적으로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지금은 이런 인물들을 유력한 대권후보들로 보고 있는데, 6개월 후 1년 후에도 토용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소설은 줄거리도, 등장인물도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그야말로 아마추어리즘의 극치, 되는 대로 즉흥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 뭐 이점 신문들의 전망기사도 비슷하겠지만.)
아주 유감스럽게도, 이 글은 좋은 작품일 수가 없다. 일단, 필자의 시간여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글에서 돈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필요로 하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누구의 후원을 받는 것은 기필코 거절할 것이다. 이 글의 순수성을 떠나 작가적 재미 자체가 상실될 것을 잘 알기에.
이 글은 부정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으며, 글의 분량이나 수준 또한 필자의 재미와 보람에 달렸다 할 것이다.
이거 초면에 건방지고 오만한 말이지만, 정말 필자의 생활고가 힘들어진다면, 이런 부탁은 개인적으로 해볼지 모르겠다.
그 누구의 특정인이 아닌, 정당 자체가 나의 글에서 도움을 받고 영감을 받아 당의 생산성을 높였다고 믿는다면, 그 부분에 한해 정책개발비조로 문학인을 후원해 달라고.
물론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작가적 양심을 걸고, 그 후원 내역을 발표할 것이다. 그런 조건으로만 후원을 고려할 것이다.
이 부분 많이 부끄럽고, 넓은 혜량 있으시길...
앞으로 이 글을 얼마나 읽어줄지 걱정입니다.
가장 큰 바람은 정치개혁에 작은 이바지나마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쓴이로써 가장 큰 재미와 보람은 아마도 독자들의 리플이겠죠. 난 가급적 즉시소통을 바라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부족하더라도 빨리 빨리 올려주는 리플이 가장 소중한 즐거움이 될 것 같군요.
특히 난 이 소설을 내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개의 공간--특히 정치적인 공간--에 글을 올려 읽는 분들의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글의 말미에 취재 협조를 부탁하는 글이 자주 오를 거예요.
그런 도움들에 개인적인 보답은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으로야 큰 고마움을 느끼겠지만, 현실적인 보상수단이 어렵네요. 단지 더 좋은 글을 통해, 읽는 재미를 증진시키는 것, 그리고 한국정치의 개혁이 조그만 보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물론, 혹시라도 이 글이 조그만 돈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금전적 보상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잡지연재도 고려했습니다만, 이름도 없는 이 사람으로선 무리네요. 또 자유롭고 공평한 글쓰기를 위해선 잡지기고는 또 악영향도 있을 거라고 믿구요. 그저 가급적 순수성을 안은 아마추어리즘의 실현이 제 길이겠죠. ^^
제 나름대로의 대의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나, 언제 어떤 사정으로 글이 중단될지도 모르고, 내 정치적 지향점이 있기에 편파성이 없는 글이라 말할 순 없겠습니다. 이 점, 충분히 혜량해주시길....
오늘 글 오타수정도 안보고 올리겠습니다. 오타수정을 보다보면 수없이 고치고 싶은 충동을 안을 것이고, 어쩌면 이 글을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제 글은 앞으로 수시로 과거의 글이 수정될 것입니다. 좀 더 완성도 있는 글을 원하시는 분들은 조금 늦게 (몇 일) 보는 것도 좋겠군요.
예상보다 길고 길어진 잡글성 서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뵙고 많은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2006 5 27 토요일 오후 2시 30분 경.
강세진.
아, 앞으로 이 글을 소화해 나갈 수 있을지...
구성, 메시지, 정치인들 자료, 경험 모두 태부족인데, 걱정이 앞서는군요. ■■
많이들 도와주세요...
<빅뱅 !! 대권 2007>은 가제입니다. 적당한 제목 있으시면 추천 부탁합니다.
<대선 2007>로 고치면 너무 평범할까요 ?
첫댓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정치판 풍경인데 2007년을 내다보시겠다는 과감함에 경의를 표하고요, 굉장히 궁금해집니다. 객관성을 잃지 않고 설득력 많은 글 기대합니다.
관심에 감사. 설정이 상당히 어렵네요. 돈이 되지 않을 글이기에 내년말까지 쓴다는 기분으로 틈틈히 써볼까도 싶구요. 등장인물선택도, 전개시점, 구성 등...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은데, 일단 즐기는 기분으로 써볼까 합니다. 틈틈히 관전평 부탁할게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