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 그렇게라도 나는 살아야 하는가?
10회가 끝나고
나는 심장 밑바닥까지 사정없이 휘저어버린 감동에 전율했다.
‘이제 가는 거야~~~~’를 야무지게 외치며
‘늦게 시작한’ 이라는 핸디캡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괜찮은 드라마 한편이
드디어 세간을 뒤흔들고야 말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말이다, 아니었다.
11회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감이 있었다.
뭐랄까?
폭풍우가 들이닥친다고 해서
그 여파가 아주 심각할 것이라고 해서
며칠 밤잠 설쳐가며 단단히 대비를 했다.
이번만큼은 인재도 자연재해도 기필코 피하고 말리라
입술 단단히 깨물고, 올 테면 와라 벼르고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시커먼 먹구름 앞세우고 거센 바람 휘몰아치며 폭풍이 상륙하자
사람들은 자연재해도 기필코 이겨보리라
이 악물고 하늘 노려보는데
기세도 등등하게 들이닥친 폭풍우가 바람만 거칠게 휘몰아치더니
그래서 사람들을 잔뜩 긴장하고 경계하게 만들더니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거세게 휘몰아치던 비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급기야 먹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살마저 뚫고 비치는,
폭우가 쉽게 물려가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단
뭔가 속은 것 같은 허탈감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코웃음 픽픽 날리게 만드는 그런 형국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받은 느낌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내게 11회는
10회의 강력한 포스만큼이나
짜증나는 한 회였다.
이산 관련 게시판을 두루 섭렵해보니
이딴 식으로 싸가지 없는 글을 쓰면
당연히 저 짝에서 건너온 것으로 아시던데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거니와
혹여, 이놈 뭐야? 스브스에서 또 건너왔군.
눈살 찌푸린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썩 길어지지 않을까 싶은 (쓰고 나니 엄청 길다)
이 글을 풀어가기에 앞서
나는 ‘이산’의 열열 팬이며
‘이서진교’의 절대 추종자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하하하. 내가 이쯤 사설을 풀어내면
이놈이 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싶어 이다지도 서론이 긴가,
하시는 분들 계시리라.
그렇다, ‘작정하고 까겠다.’ 는 것이다.
자! 이쯤에서 임산부나 노약자,
성질 급하신 분이나 혈압 허벌나게 높으신 분들은
패스하시길 바란다.
이리 경고하였는데도 오기로 끝까지 읽으시는 분들,
뒷목 잡고 쓰러지시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절대 책임지지 않음을 밝히는 바이다.
하하하.
‘우리에게 임금은 오직 사도세자 아들이신 세손저하뿐이다.’
노발대발한 영조임금님은 금군별장을 불러
역당 놈을 당장 잡아들이라, 호통이시다.
세손 저하를 바라보시는, 뼈마디도 아작아작 부수어버릴 것 같은 강력한 눈빛과
영조 임금님 강력한 눈빛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려 드시는 세손 저하.
그야말로 폭풍전야인 것이다.
이 급박한 상황에 숨쉬는 것조차 송구해 숨소리조차 죽인 채
tv를 뚫을 듯 집중했다.
금군들이 죄인을 잡기 위해 달려 나가고
도화서 화공들이 죄인의 용모를 그리는데 말이다.
난 이 장면부터 ‘엥?’ 삐딱선 타기 시작했다.
저들은 대체 언제 황망한 글을 적어올린 그 놈의 얼굴을 보았다는 말인가?
시험 치라는데 시험은 안 치고 옆 사람 시험지만 쳐다봤단 말인가?
어떤 놈이 어떤 글을 적어 올렸는지 어찌 알았냐고요?
보지 못했다. 모르겠다.
그래서 화공들은 그자의 용모조차 그릴 수 없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별 것 다 신경 쓰는 시청자가 아닐 수 없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열 냈음을 시인한다.
극의 긴박감을 떨어드릴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장면이 대수가 무과 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분명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론
극의 긴박감을 폴싹 꺼뜨리는 장면이 아닌가 싶었다.
대수가 무과 보는 장면이
10회에 이미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영조임금님 노발대발 신에 이어 대수가 무과 보는 장면이 나온 것은
극의 흐름상
금방 터질 것처럼 타닥타닥 타오르던 화약이
피식 불발로 끝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더란 말이다.
혹, 소손의 뜻이라 여기시는 것이옵니까?
노하신 임금님께서는 과장을 빠져나가고
그 뒤로 세손 저하께서 다급히 달려 나오신다.
근데 말이다.
달려 나오시는 세손 저하의 걸음이 어째
다급한 세손의 걸음 같지가 않고
징징거리며 떼쓰는 어린아이 걸음 같은 것인지.
‘다급하다’는 것과 ‘떼쓰는 듯’ 은 하늘과 땅 차이이지 싶은데 말이다.
순간 ‘헉! 오라버니께서 어찌 저러신다냐?’ 불안해지기 시작했단 말이지.
허면 네 아비의 일은 어떠하냐?
내가 어진 네 아비를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아갔다는데
그건 네 뜻이 아니냐?
넌 한번도 그리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냐?
임금님 앞에 세손저하는 한없이 나약해보인다.
이 장면에서 오라버니의 목소리 톤을 두고 조금은 말들이 오간 듯 했다.
‘너무 나약해 보인다.’라고 말이다.
나도 그런 느낌이 들긴 했다.
뭔가 모르게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겐 선입견이라는 것이 있다.
그 선입견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올 때 분명 이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정조대왕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아니 ‘왕’ 이라는 그 단어 자체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포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세손 이산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건
선입견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영조 앞에서
더군다나 누군가가 세손을 역당으로 은근히 몰아세운 이 시점에서
세손은 절대 강력한 무엇을 뿜어낼 수 없다.
강하게 항변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세손은 영조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그리고 짐작하건데
세손의 마음에 할바마마를 향한 원망과 함께 연민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세손은 알고 있다, 그 무서운 정치판을.
또한 세손은 알고 있다.
사도세자의 일이 영조 임금님에게도 피맺힌 한이라는 것을.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있으나
정작 영조의 심장은 지난날에 대한 후회로 뜨겁게 울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손은 더더욱 조심스럽고 더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손에게 영조는 임금이기 전에
살과 피를 나눈 할아비와 손자이다.
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임금이기 전에
그리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그 순간이 심장에 박힌 칼끝처럼 아파야 했던
제 아비의 아비인 것이다.
영조 임금님을 제 아비를 죽인 원수가 아니라
그리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제 아비의 아비로 연민을 품었던 정조의 올곧은 성품이
오늘날 이토록 추앙받는 대왕 정조를 만든 바탕이 아닐까?
이쯤 되면 그가 캐릭터 분석을 잘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의하시는 분 태사기 모드로 발 굴러!!!!
ㅎㅎㅎㅎ
용서할 수가 없네.
나를 치려했다면 차라리 내 목에 칼을 겨누었어야 했어.
아바마마를 죽음으로 몬 것도 모자라
돌아가신 그 분을 다시 욕되게 하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자. 문제는 요부분인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조임금님 앞에서의 세손은
‘그가 분석을 잘 했구나!’ 싶었지만
요 부분은 ‘아무래도 좀.’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소곤소곤 하셨단 말이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분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한번 지적한 적이 있거니와 너무 안으로 삼키셨단 말이다.
이것이 그의 최대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그의 앞엔 채제공과 남사초가 앉아 있다.
좌포청 종사관에게 어서 군사를 내어놓아라 호통할 때처럼 할 수도 없고
누가 옥인을 훔쳐간 것이냐 내관들을 호통하듯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란 말이다.
한마디로 ‘버럭’은 ‘oh, no.' 란 말씀이다.
그럼 어찌 할 것인가?
‘낮지만 강하게!’
그렇다.
목소리는 낮지만 낮은 목소리에 힘과 분노가 실려
검을 품은 듯 예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낮은 목소리가 살점을 뚫고 들어와 혈관을 낫낫이 베어낼 듯
매서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라버니께선 아직 그런 힘이 부족한 듯 하다.
‘낮지만 강하게!’
하지만 예상하건데 그는 분명
‘낮지만 강하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정말?)
그가 누군가?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닌가?
‘낮지만 강하게’ 에도 열나게 박수 칠 날을 기다리며,
나 오늘 오라버니 너무 지적하는 것 같다.
나 너무 미워하지마용.
ㅎㅎㅎ
세손을 궁지로 몰아붙인 화완과 그 일당들은
그 밤으로 세손의 목숨 줄을 끊어놓고자 일을 꾸민다.
화약을 든 놈들이 궁궐 담을 넘어 들어오는데.
요놈들은 뻑 하면 궐 담을 넘는 것인지.
궐 담이 그리 허술한 곳인가?
하긴 병판에,
금군별장에(근데 요 아저씬 분명 저들편인 것으로 아는데
가끔은 요 아저씨 소속이 어딘지 헷갈린다. 나만 그런가?ㅎㅎㅎ)
세손 익위들까지 저들 편이니
같은 편끼리 눈 감아 주고 샬라샬라 했다 치자.
그래도 그렇지.
제 나라 세손 모함하는데 쓰라고
최무선 나으리께서 골머리 싸매고 화약을 발명하신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최무선 나으리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로세!
무시로 궐 담을 넘은 놈들이 금군을 희롱하고 물러가니
그들 품에선 ‘회고천사’ 라고 적힌 쪽지가 떡하니 발견됐다.
‘고천사’ 함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영우원을 지칭하는 옛말이라
영조의 명을 받은 금군 병사들이 영우원으로 달려갔으니,
그들은 하필 그때 딱, 어째서 하필 그때 딱, 제를 올리고 있는 것이냔 말이다.
후겸이 쳐놓은 덫에 제대로 걸려
서인수를 비롯한 선세자 마마의 익위들이 잡혀 오고
서인수의 집에선 그들이 세손 저하를 옹립하고자 수결 한 영판장까지 발견된다.
후겸이 요놈, 치밀하기도 하지!
추국이 열리고
세손은 내 아비의 충신들을 보리라 득달같이 달려갔으나
세손 저하는 들이지 말라는 판의금부사의 명이 있었다 하니,
도리에 어긋나는 짓은 죽어도 하지 않으시는 세손 저하
명을 받아 지키는 병졸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되었다 하고
돌아가시는 쓸쓸한 걸음에
‘너는 잠시 나갔다 오너라’
친절한 이천 나으리 배려에 추국장 밖으로 나온 송연의 눈길이
찌릿찌릿 세손 저하의 뒤통수를 당겨주시는 게다.
나는 세손 저하께서 송연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시길 바랐다.
그리 하는 것이 더 애뜻할 듯싶었다.
송연이 뚫어지게 보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그냥 가려는 듯 고개를 휘리릭 돌리던 저하께서는
송연이 쏘아대는 백반볼트 전기를 가차 없이 감지하시고 뒤를 돌아봐 주신다.
‘성은이 망극!’ 한 것은 송연이 뿐이고,
나는 '요건 좀 아니잖아' 했더랬는데,
어쩔 수 없이 나는 세손 저하 편인가 보다.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며
반가운 미소 샤방 날려주시는 저하의 모습에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괜찮다. 별 일 없을 것이니 걱정말거라.
고작 이만한 일로 내가 너희와 한 약조를 못 지킬 것 같더냐?
그래도 이리 날 만나러 와줘 고맙구나.
송연을 보내고 홀로 서 있는 저하의 모습은 시리도록 아프기만 했다.
그의 등은 늘 외롭다.
이리 만나러 와줘서 고맙다는 그의 말만큼이나
외롭다.
깊이 울음을 머금은 눈동자에선 금방이라도
서러운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나라도 그의 힘겨운 어깨 한번 다독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영조는 역당의 무리가 수결한 연판장을 세손에게 던지며
이래도 모르는 일이라 할 수 있느냐 호통한다.
세손은 저는 죽어도 모르는 일이거니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잡혀온 저들도 모르는 일이라 한다.
전하. 세손 저하의 말씀에 일리가 있사옵니다.
후겸이 요놈이 어찌 세손 저하의 편을 들고 나서나 했더니,
혹 자금 세손 저하께선 임오년의 죄인을
죄인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제대로 태글 들어와 주시는 게다.
후겸, 너 죽고 싶어?
ㅋㅋ
이에 영조마저 사도세자가 죄인이냐 아니냐 하문하니,
영조께서는 세손에게 어찌 이토록 가혹하단 말인가?
세손이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자
홍봉한이 나서서 저들이 죄인임은 저하께서 더 잘 아실 것이라 한다.
사사로이 저의 사위이며
국본인 세손의 아비를 두고 죄인이라 하니
냉큼 나서서 세손을 비호하는 홍봉한이 하나 달갑지 않다.
이에 영조는 네가 정말 저들을 죄인으로 생각한다면
저들을 친국하라 한다.
여기까지 대략 40분이었다.
40분이 4분인 듯 숨 가빴는데
그 다음에서 이천 나으리 춘화 들고 등장해주시면서
긴장감이 풀썩 꺼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극엔 기증전결이 있다.
서서히 달구어 어느 시점 절정으로 치달아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절대 고삐를 늦추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건 단편이든 20부작 미니시리즈든 60부작 대작이든 마찬가지다.
한번 붙은 불을 쉬이 꺼뜨려서는 아니 된단 말이다.
아주 타이트하게 극을 몰아가다가
갑자기 이천 나으리 등장하는 부분에서
뭐랄까, 급경사인 비탈길을 질주하며 신나게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시동을 꺼뜨려 비탈길 아래로
사정없이, 속수무책 추락하는 것 같았단 말이다.
쇳불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고
쇠는 달구어졌을 때 두드리란 말이 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사정없이 휘몰아쳐 줘야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타오르는 화약심지 댕강 끊어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천 나으리 장면은 쓸데없이 길다.
필요한 장면이긴 하나 그 장면이 쓸데없이 길어짐으로서
필요 없는 장면쯤으로 인식되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오버는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선에 당도했다.
맛깔스럽게 극의 흐름을 조절하는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쯤에서 ‘이천’ 그의 역할과 연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초심으로 돌아가잔 말이다.
맛깔스럽게 웃음을 주던 처음으로!
11회 명장면이 많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단연코 11회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다.
붉어진 눈시울에서 이미 그의 깊은 고뇌를 느낄 수 있거니와
캡쳐 한 사진에선 그 예리함이 덜 하지만
이 장면을 다시 보기 하시면 느끼실 수 있는 바.
붉어진 눈시울뿐 아니라
아프게 들이키는 한숨과
파르르 떨리는 눈썹과
힘겨움으로 한인치는 꺼진 듯 보이는 그의 어깨는
그가 얼마나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그의 연기가 얼마나 섬세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나는 이래서 그가 좋다.
그의 연기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세밀하며,
또한 소름끼칠 정도로 예리하다.
그 밤 세손은 죄인들이 갇혀있는 옥사로 납시는데.
하아.
이 장면을 쓰려고 하니 참으로 복잡하게 생각이 많다.
본시 후기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의 나열이지만
요 부분은 전적으로,
100%로다가 아니 1000%로다가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미리 밝히고 싶다.
왜냐하면 눈물 줄줄 흘리시며 익위들의 손을 잡은 세손 저하신데
나는 전혀 그의 연기에 동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무슨 어이없는 짓인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감정이 그러했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뭘 착각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세손 저하께서 옥사로 납시는 순간부터 내 머리는
이리 버젓이 옥사로 납시어도 되는 것인가?
세손을 헤하고자 하는 이들의 눈이 도처에 있거늘
세손께서 옥사까지 납시어
저들의 손을 붙들고 눈물까지 흘렸다함은
당장이라도 세손을 저들과 동패로 몰수 있는 끈덕지가 되는 일이 아닌가
떼굴떼굴 소리도 요란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떼굴떼굴 요란하게 구르는 머릿속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저하의 눈빛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 연기의 최대 강점은 눈빛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감정의 95%는
단박에 흡수해버릴 수 있는 것이
그간 그의 팬이라 자처하며 쌓은 세월의 내공이라고 나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다.
허나 나는 이 신에서 그의 눈이 쏟아내는 말들을 읽어내지 못했다.
혹시 오라버니께서 연기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신 건 아닌가?
혼이 없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그 감정은 뼈 속까지 취하지 못하고
그저 얄팍하게 눈물만 쏟고 있는 건 아닌가?
저리 인상을 쓰고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감정에 빠지는 것은 아닌데.
나는 괜히 엄한 트집까지 잡았다.
돌 던지시라!
기꺼이 감수할 터!
모두가 취해버린 그의 연기에
나는 왜 취할 수 없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요런 애기는 살짝 빼고
감동적이더라,
다른 사람들 느낌을 내 느낌처럼 쓸 수도 있었다.
허나 되도록이면 내 느낌을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고 싶은 것이
후기를 쓰는 내 입장이다.
100명이 모두 감동해도 내가 감동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리 했노라 말하고 싶다.
(쓰고나니 참으로 쌩뚱맞긴 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게. 그래서 어쩌라고! ㅎㅎ)
하여간 요 부분은 나에겐 심히 아쉬움으로 남은 장면이었다.
아씨! 나는 왜 대체 집중을 못하고 감정이 겉도는 걸까?
누가 나 좀 말려줘.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꼭, 꼭! 성군이 되거라.
어찌 이리 모질 수가 있는가?
어찌 나에겐 이토록 모든 게 가혹하단 말인가?
저들은 무고하네. 아무 죄가 없어.
그런데도 내 손으로 벌해야 하는가?
죄 없는 내 아비의 충신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그렇게라도 나는 살아야 하는가?
정말 그런가?
그리고 다음 그의 독백과 같은 대사가 이어진다.
터덜터덜 이어지는 발걸음에서부터
내 심장은 사정없이 떨려왔다.
아비의 충신들을 추국해야하는 그 기막힌 상황에서 떠오르는 것은
그래도 살아, 그래도 성군이 되어라 하시던
아바마마의 천금같은 마지막 당부이니.
그때 세손의 심정이 진퇴양난이었을까?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어찌 나에겐 이토록 모든 게 가혹하단 말인가?’
‘죄 없는 내 아비의 충신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그렇게라도 나는 살아야 하는가? 정말 그런가?‘
그의 독백과도 같은 한숨이 시리도록 가슴을 뚫었다.
아~~ 정말이지.
이런 장면들은 말이 필요 없는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