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목) 22. 강력한 동맹을 통한 소나무 살해자, 솔수염하늘소
하늘소 중에는 소나무에만 사는 종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솔수염하늘소이다. 이 종의 어른벌레는 소나무의 새 가지에서 나무껍질을 뜯어 먹는다. 반면에 애벌레는 쇠약한 소나무에서 나무껍질의 속껍질을 먹고 살다가 나무를 뚫고 들어가 목재의 내부에서 목질부를 먹는다. 이 같은 습성으로 보면, 이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듯싶다. 즉 숲에서 쇠약해지는 나무를 공격하는 보통의 하늘소들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동안 산림관계자들은 이 종의 분포와 이동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고, 요즘은 조경용 소나무뿐 아니라 땔감용에 이르기까지 검문검색을 통해 이들의 이동을 막고 있다. 도대체 하늘소 한 종이 소나무를 먹어 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한반도 소나무 위기론까지 거론하는 것일까?
▣ 과거와 다른 솔수염하늘소
솔수염하늘소는 과거에는 해송수염치레하늘소란 이름으로 불렸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의 관음사 부근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이들에 의한 소나무의 심각한 피해는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하지만 1988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그해 10월에 부산의 금정산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피해가 일본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의 피해와 매우 유사했다. 산림과학원의 연구자들은 피해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 나무로부터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솔수염하늘소를 발견했고, 이와 더불어 소나무재선충을 분리해 냈다. 또한 피해 나무에서 어른벌레가 되어 나온 솔수염하늘소의 몸에서도 많은 수의 재선충이 검출되어 소나무재선충이 발생했고 확산할 수 있음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과연 금정산에 나타난 솔수염하늘소는 원래부터 이 땅에 살던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금정산에서 원숭이의 사육사를 짓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한 소나무 원목을 통해 소나무재선충이 들어 온 것으로 보아, 그 원목 속에는 일본산 솔수염하늘소의 애벌레도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 소나무재선충의 교통수단일 뿐인가?
소나무재선충은 우리 몸속에 사는 회충처럼 나무에 기생하는 기생충인데, 선형동물문에 속한다. 이들은 스스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동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동 수단으로 곤충을 이용하는데, 그 운반수단이 되는 곤충이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인 것으로 일본에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방수염하늘소가 소나무재선충의 진짜 운반수단이 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재선충의 몸길이는 기껏해야 1mm 정도로 미세하지만, 번식 능력이 뛰어나서 높은 온도에서는 3~4일 정도면 한 세대가 돌 정도로 증식이 빠르다. 소나무에서 살던 솔수염하늘소 애벌레가 다 자라서 번데기 방을 만들 때쯤에 재선충의 애벌레들도 번데기 방으로 모인다. 재선충의 몸에는 점액질이 있어서 하늘소의 번데기가 어른벌레로 날개돋이를 할 때 본능적으로 배에 있는 숨구멍을 찾아 하늘소 몸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재선충을 받아들인 솔수염하늘소는 날개돋이를 마치고 피해 나무로부터 나와 새로운 먹이가 될 멀쩡한 소나무를 찾아 이동한다. 마침내 어른 하늘소가 소나무의 새 가지를 먹으면 몸속에 있던 재선충이 하늘소의 몸 밖으로 나와 나무의 상처 부분을 통해 나무속으로 파고든다. 아주 편리한 자가용 비행기처럼 하늘소를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은 무엇일까?
재선충이 소나무의 몸에 들어가면 먼저 수지 세포를 파괴한다. 수지 세포는 송진인 수지를 내는 세포들로서 파괴당하면 나무껍질로 송진을 흘러 내보내지 못한다. 그 덕에 하늘소는 나무껍질을 뜯어내고 안전하게 알을 낳는다. 또한 재선충은 나무의 물질 이동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증식하므로 자연스레 물질 이동로가 폐쇄된다. 재선충에 나무에 침입하여 6일 정도 지나면 잎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할 정도로 뿌리에서 잎으로 연결된 수분공급 통로를 신속히 막아버린다. 소나무재선충의 빠른 증식으로 20일 정도면 나무가 시들고, 한 달이 지나면 나뭇잎이 붉게 변색하고 마침내 3개월 정도가 되면 완전히 말라 죽게 된다. 솔수염하늘소의 애벌레는 재선충이 죽여 놓은 소나무의 조직을 먹으면서 자란다. 소나무재선충은 이렇게 하늘소의 애벌레가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들 사이에 공생관계가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솔수염하늘소는 소나무재선충을 건강한 나무에 옮겨주고는 자신의 영토를 개척하도록 하는 것이다.
▣ 솔수염하늘소의 생활사
어미가 죽어가는 나무에 낳은 알에서 깨어난 솔수염하늘소 애벌레는 나무껍질 밑의 속껍질을 먹으면서 4령 정도의 애벌레까지 자란다. 이때가 7월 하순~8월경으로 애벌레는 침입 구멍을 뚫고 목재의 내부로 들어간다. 나무껍질을 조사해보면, 구멍은 D자형 내지는 타원형이다. 애벌레들은 들어간 구멍을 따라서 갱도를 파고, 그 속에서 겨울을 보낸 뒤, 이듬해 번데기가 된다. 목질부 속에 번데기 방을 만들고 5월 중순부터 새로운 어른벌레가 날개돋이 한다. 날개돋이가 끝나고 나올 때는 벽을 뚫고 나와야 하므로 그때 나는 소리로 이들이 날개가 돋는 시기를 알 수 있다. 나올 때의 구멍은 어른벌레의 몸이 빠져나와야 하므로 원형의 형태를 띤다. 이들이 들어간 구멍과 나온 구멍은 각자의 생김새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지름 8~10cm 정도의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고, 나뭇가지 쪽보다는 주로 몸통 쪽에서 침입한 흔적이 많다.
▣ 솔수염하늘소와 소나무재선충은 북상 중
솔수염하늘소가 옮기는 소나무재선충은 시듦병을 옮기는 선충으로 원래 미국 등 북미 대륙의 토착종이었다. 원산지의 자생 소나무는 이들에 대해서 저항성을 갖고 있으므로 잘 죽지 않는다. 이 선충은 1900년대 초에 일본으로 옮겨졌는데, 저항성이 없는 소나무들은 이들을 이겨내지 못해 매년 100만 그루가 사라져서 갔고, 이 선충은 소나무재선충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중국에는 1982년에, 그리고 대만에는 1985년에 들어가 해당 지역 소나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했고 약 19년이 지났다. 첫 발생 후 15년 정도까지는 북동쪽으로 울산과 포항까지, 북서쪽으로 경북의 구미까지 도달했다. 일정한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2002년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목포에서도 피해를 본 것이다. 영남에서 호남으로 이동한 것인데, 사람의 이동으로 이들이 급속히 확산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2005년에는 북동쪽으로 안동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멀리 뛰기를 하여 강원도의 강릉과 동해에도 출현했다. 연간 이동 거리가 2~3km에 불과한 솔수염하늘소를 이렇게 멀리 옮겨주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는 죽은 나무에서 나온 솔수염하늘소가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게 퇴로를 차단하고, 피해 나무를 베어 내 증기로 찌거나 잘게 부수어 재선충이 살지 못하도록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여전하다. 더 큰 문제는 피해 나무인지 모르고 또는 돈에 눈이 멀어 피해 나무를 다른 지역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현재는 각 지역의 조경업체가 소나무를 운반할 때, 찜질방의 땔감용에, 제재소의 제재목에 피해 나무가 숨어 들어갈 수 있다. 방제와 관련된 이들만 주의해서 될 일이 아니다. 국민이 모두 관심을 두고 부주의한 일을 하지 않아야 이들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
박해철. 딱정벌레. 다른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