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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8일 오늘의 역사
2023년 태국 송끄란 축제 기간 중 교통사고 등으로 모두 236명이 숨지고 2천여 명 부상
2023년 중국 베이징 병원에서 불이 나 최소 21명이 숨지고, 환자 70여 명이 대피
2022년 도산안창호함에서 20초 간격으로 탄도미사일 2발이 연속 발사성공 400km 날아가 목표물 명중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2003.12.27 미국 워싱턴 주에서 광우병 걸린 소 발견되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2005.6.10 미국에서 광우병 걸린 소 추가발견, 2006.9.8 농림부, 2년 10개월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최종 승인, 2007.5.22 국제수역사무국(OIE) 미국과 캐나다 광우병 위험통제국 판정, 2007.8.24 농림부, 미 쇠고기 검역 중단 해제, 수입재개, 2008.4.11 한미, 쇠고기 수입조건 개정협상 재개
2008년 ‘영등포 슈바이처’ 선우경식 원장 별세
서울 신림동과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을 거치며 21년간 노숙자와 행려병자를 무료로 진료해온 요셉의원 선우경식(63·사진) 원장이 2008년 4월 18일 오전 4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서울고·가톨릭의대를 나와 미국유학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을 지낸 선우 원장은 1983년 신림동 철거민촌 의료봉사를 계기로 안정된 미래를 접고 1987년 뜻을 같이하는 의료진들과 함께 서울 신림동에 행려병자 등을 위한 요셉의원을 설립하여, 1997년 영등포로 옮겨서까지 21년간을 노숙자 무료진료에 바쳤다.
8월 21일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되었으며, 6월 12일 의료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수준의 훈장인 국민훈장 동백장이 추서되었다.
2007년 쿠웨이트 폭우 강풍 우박 쿠웨이트공항에 300mm 비 쏟아짐
2005년 자이툰 부대 교체병력 환송식
2004년 세계최초 무인 로봇비행기 1만m 상공서 폭격에 성공
2004년 애국지사 임창원 선생 별세
애국지사 임창원(林昌元·95) 선생이 2004년4월18일 오후 5시55분 국립의료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평북 정주 출신인 선생은 오산고보 3학년이던 1930년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를 계획해 만세삼창 등 학생 궐기를 이끌었다.
2000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복섭씨와 장남 왕석씨 등 1남4녀가 있다.
2003년 러시아 송유관 ‘중국라인(러시아 이르쿠츠크~중국 다칭)’으로 확정
중국과 일본의 뜨거운 유치 경쟁으로 관심을 모았던 러시아의 송유관 최종 목적지가 중국으로 결정됐다.
중국라인 결정은 러시아가 추진해 온 원안에 가까운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1999년 양국 총리회담에서 송유관 건설을 합의·추진해 왔다. 중국라인은 2400km로 공사비도 29억달러 정도가 소요될 예정으로 일본라인에 비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라인은 오는 2005년 완공예정으로 하루 40만~50만배럴의 석유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이집트 카이로 호텔에 회교무장단체 침입, 기관총 난사로 18명 사망
1995년 아르트로 프론디지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86) 심장질환으로 사망
1994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경부고속철도 차량형식을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로 최종확정
1994년 제43차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총회 개막(서울)
1992년 만경교서 빗길과속으로 버스 추락 - 15명 사망
1984년 전남 여천 앞바다 카페리(부산-제주) 기관고장 사망 12명
1983년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 이슬람 과격파에 의해 폭발
1983년 4월 18일 오후 1시경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이란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성전단체가 트럭에 폭탄을 싣고 돌진, 대사관이 폭발했다.
이 사고로 7층 건물의 대사관 북쪽면이 붕괴돼 90명이 사망-행방불명되었고 100여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17명의 미국인이 포함돼 있었다.
사건의 배경에는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PLO 세력을 현지에서 몰아낸 데 따른 저항으로 분석됐다.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의 조지 슐츠 국무장관이 현지로 날아가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협정중재에 나서 5월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안전보장지대를 레바논 남부에 설치하고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결정하는 협정이 양국간에 체결됐다. 그러나 PLO와 4만명의 군대를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는 이를 거부해 중동에서의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1983년 대구 디스코홀 화재, 25명 사망 65명 부상
1982년 소련, 대미 정상회담 제의
1980년 로디지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짐바브웨공화국으로 발족
구 영국령 식민지 로디지아가 1980년 4월 18일 독립해 정복자 셀 로즈의 이름을 딴 국가명으로부터 남부아프리카 흑인문명을 상징하는 유적 이름을 붙인 짐바브웨 공화국으로 개칭했다.
로디지아는 1965년 백인 스미스정권이 독립을 선언한 이래 국제적인 고립과 내전이 이어져 왔다. 1979년 6월 백인정권이 흑인온건파에 정권을 이양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백인우위체제를 온존시켜 왔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후 영국, 온건파정부, 애국전선의 3자 교섭에 의해 정식 독립에 이르렀다.
1979년 정효주양 유괴사건에 박정희 대통령 담화문 발표
1979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준공
1977년 소설가 남석(南石) 안수길 사망
1977년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여수권 지정
1976년 로버트 멀둔 뉴질랜드 수상 내한
1975년 김일성 14년 만에 중국 방문, 모택동과 회담
1974년 한국-카타르, 국교 수립
1974년 임자도 간첩사건
1972년 대일 청구권 최종집계. 14만건 39억원
1971년 美 육상선수 라이언 재기(再起)
1971년 그리스, 부활절 행사
1969년 한국-필리핀 항공협정 조인
1968년 한국-보츠와나 국교 수립
1968년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 회담 (호눌룰루. 북괴 침략시 즉각 지원 등 공동성명)
1967년 남미 이민, 부산 출항
1963년 이탈리아 총선, 반공파 승리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 채택
외교사절에 관한 각국의 관습법상의 제도를 통일하고 법전화하기 위해 유엔 국제법위원회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 1961년 4월 18일 비엔나에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이 채택됐다. 이 협약은 외교사절의 특권-면제-파견과 접수 등을 포함해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현행 국제법 법규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외교사절에 대한 정의와 유형에 합의해 협약 체결 전까지의 개념상의 혼란으로 갈등을 빚었던 외교관계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없앴다. 1964년 4월24일에 공식 발효됐으며 한국은 1970년 12월28일 국회 동의에 이어 1971년 1월27일 발효됐다. 1999년 8월 당시 전세계 179개국이 조인했다.
1960년 정치깡패들 3·15부정선거 규탄 고대생 습격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전국이 들끓던 1960 년 4월 18일 낮 12시50분, 3000여명의 고려대 학생들이 “민주역적을 몰아내자”며 시내로 행진했다. 안암동∼신설동∼종로를 거쳐 국회의사당(현 태평로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 도착한 학생들은 1만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유진오 총장과 선배 이철승 의원의 설득으로 농성을 푼 시각은 오후 6시40분. 질서정연하게 귀교하는 학생들의 뒤를 7대의 버스와 2대의 트럭에 나눠 탄 경찰들이 따랐다. 7시20분경 을지로4가를 지나던 시위대열이 종로4가로 방향을 틀었다. 앞서가던 경찰차가 방향을 종로로 바꾸자 시위대도 무심결에 그 방향을 따른 것이다.
종로4가 천일백화점(현 광장시장) 앞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60여명의 깡패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쇠갈고리와 쇠망치·쇠사슬 등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1명이 숨지고 학생 40여명과 기자 6명이 피를 흘리며 현장에 쓰러졌다. 이날의 폭력장면은 4월19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폭력이 휩쓴 서울의 야음(夜陰)’이란 제목의 기사와 함께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도됐다. 조선일보 정범태 기자만이 유일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1958년 프랑스 데모대, 알제리 정부청사 점거. 공공치안위원회 설립
1956년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 레이니3세와 결혼
1956년 4월18일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이스 캘 리가 모나코 궁전에서 레이니3세와 결혼해 모나코 완비가 되었다.
그녀는 인기 절정이던 26세에 영화계를 떠났다
켈리는 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가 모나코 왕자 레이니3세를 만나 결혼에 까지 이르렀다
불행ㅎ도 켈리는 1982년 9월14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5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망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1955년 4월 18일 미국 프린스턴병원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76세의 나이였다.
1879년 독일의 울름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스위스 취리히 이공 대학을 마치고 연구에 몰두하여 1905년 봄 베른의 스위스 특허국에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라는 이름의 논문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그 뒤 프라하 대학 교수와 베를린 대학 교수가 된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여 물리학자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1921년에 이 연구결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히틀러 독재 정권에 쫓겨, 193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재적인 과학자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그였지만 냉전의 조짐이 확연하던 시대에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1950년대 미국 매카시즘의 광풍에 맞서 불복종운동을 전개했던 진보적 지식인이었으며, 전쟁의 영원한 종식을 꿈꾸었던 반전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1939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친필로 서명한 편지에서 원자 폭탄 제조의 필요성을 역설해 평화주의자로서 오점을 남겼다. 이것이 미국에서 원자 폭탄 연구의 시초가 됐는데 훗날 아인슈타인은 그 편지에 서명한 것을 후회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똑같이 경멸한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미국 내 소수인종을 위해서도 힘썼으며 이같은 정치적 입장으로 나치의 처형 명단은 물론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1급 감시대상에도 올라있었다.
1955년 반둥회의(아시아-아프리카 회의) 개막
1955년 4월 18일 아시아 23개국과 아프리카 6개국의 대표들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반둥에 모여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AA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열린 도시 이름을 따서 반둥회의라고 불리는 이 모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잇달아 독립한 구 식민지 국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회의를 마련한 것은 콜롬보 그룹이라고 불리던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버마의 5개국이었다. 남-북한, 대만, 남아공, 이스라엘 등 어느 한 진영에 현저하게 치우쳤거나 인종차별적인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초청됐다. 29개국 국기가 휘날리는 회의장에 자리를 함께 한 320명의 사절단은 14억명을 대표했으며 이는 당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반둥회의는 4월 24일 `세계 평화와 국제협력 증진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고 폐막됐다. 보통 `반둥 10원칙`이라 불리는 이 선언은 비동맹과 중립주의, 상호협력 등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제3세계`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둥 회의장에서 드러난 각국의 상이한 이해관계는 곧 이어 발생한 중국-인도 국경분쟁, 중소분쟁 등으로 심화됐고 결국 알제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회의`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반둥회의를 계기로 등장한 `비동맹` 그룹은 점차 세를 더해갔고 이들은 1960, 70년대를 지나면서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
아일랜드 자유국 26州가 800년 가까운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마침내 英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더블린에서 일어난 1916년의 이스터(Easter) 봉기로부터 33년이 된 1949년 4월 18일, 아일랜드공화국이 정식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느낌은 달랐다. 1920년에 이뤄진 국토분할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기독교가 다수를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6주는 英연방내에 남았다. 아일랜드는 영국이 독립을 승인하기전 12년 전부터 이미 사실상의 자치국이었다. 1937년 발레라 아일랜드 수상이 영국에 대한 충성을 파기하고 아일랜드의 자치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지도해 온 그는 1916년의 유혈봉기에서 반역죄에 처해졌지만 미국 국적을 소지하고 있어 사형은 면할 수 있었다. 그후에도 그는 아일랜드의 영국종속을 규정한 1922년 협정을 파기하고 투옥된 적이 있다.
자치선언으로부터 완전독립에 이르기까지 아일랜드 자유국은 영국의 해석으로는 변함없는 英연방의 구성국이었지만 아일랜드인은 자신들을 `에이레`란 이름의 주권국가로 간주했다.
1946년 국제연맹 마지막 총회 폐회. 해산 결정.
1946년 국제사법재판소(ICJ) 발족
1942년 미국 B25기, 일본 본토에 최초의 공습
1927년 장개석, 남경에 반공정부 수립
1923년 미국 양키 스타디움 개장
1911년 미국의 물리학자 골드하버 출생 - 중수소의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사실 발견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지진. 7백여명 사망
1901년 한국 기독교 선각자 김교신 출생
1885년 일본-청나라 천진(텐진)조약 체결(음력)
1868년 남연군분묘 도굴 사건
1797년 프랑스 제3공화국의 창조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티에르 출생
1715(조선 숙종 41) 허원, 청국에서 역서 측산기기 자명종 들여옴
1480년 `교황을 타락케 한 마녀`로 불리는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딸 루 보르자 출생
중세시대 `마녀의 화신`으로 불리운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1480년 4월 18일 태어났다. 로마 교황(1492-1503) 알렉산드르 6세의 딸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때까지 바티칸 근교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점 외에 특별히 알려진 내용은 없다. 1488년 그는 아직 교황에 피임되기전의 아버지 로드리고 보르자 추기경에 의해 숙부인 아드리아나 데 밀라에게 맡겨졌다.
아버지 로드리고는 그가 열두살이었을 때인 1492년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되었다. 교황은 성직자 신분으로 다른 교황처럼 자녀를 일곱이나 낳았으나 다른 교황과 달리 자녀들의 존재를 사생아 위치에 버려두지 않고 공공연히 인정해, 권력의 중심에 끌여들였다. 루크레치아의 오빠 체사레 보르자도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한때는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통치했다.
루크레치아는 아버지가 벌인 정치게임의 일환으로 동시에 두남자와 결혼해야 했다. 한번의 결혼은 무효로 끝났고, 또 한번의 결혼은 체사레 보르자가 사주한 고용인에 의해 남편이 교살됨으로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는 다시 몇 년이 지나 페라라의 세습공작인 알폰소와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순탄해 자식을 여덟명이나 낳아 결국 산욕열로 서른 아홉에 마감했지만 적어도 페라라에서만은 공작 부인으로 시인과 예술가를 인정할 줄 아는 아름답고 총명한 부인의 모습을 유지했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결혼전 아버지를 대신해 교황청의 정사를 돌본데서 비롯된다. 당시로서는 교황도 엄연한 정치인인 관계로 그는 냉엄한 현실정치를 그곳에서 과감히 구현해 냈다. 이 때문에 서양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를 `교황을 타락케 한 마녀`라며 비난하거나 `금발의 야수로 남자들을 차례차례 홀린 다음 독살하는 바티칸의 요부`로 그리고 있다.
1338(고려 충숙왕 7) 최영 장군 4만 군사 이끌고 요동 정벌에 나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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