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상한 사람이 많이 늘었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아.” 20~30대가 자주 하는 말이다. “매일 논쟁이 붙고 사건이 일어나니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어.”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들의 근거는 주로 PC모니터와 TV 브라운관, 스마트폰 액정 안에서 나온다. “여성 혐오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그렇다는 얘기다. 비상식적이거나 비합리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봤다”는 것은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봤다는 말로 쓰인다. “내가 OO 사이트에서” “페이스북에서 봤는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온라인 세계에서 보고 읽은 것은 현실세계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헬조선’ 혹은 ‘헬조센’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영어로 지옥을 뜻하는 ‘헬(Hell)’을 붙여 만든 신조어인데 대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동시간 1위 등의 각종 통계로 볼 때 한국 사회는 ‘살기에 지옥 같다’는 의미다. OECD가 2011년부터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를 보면 한국의 삶의 질이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데, 해마다 악화되고 있고 올해는 36개 조사 대상국 중 27위로 지난해에 비해 2단계 떨어졌다. 각종 통계를 묶어 제시하며 “한국은 더 이상 살 만한 곳이 아니다, 떠나자”라고 말하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술의 심리학(Psychology of tech-nology) 분야를 개척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심리학부 교수 래리 로젠(Larry D. Rosen)과 동료들은 얼마 전 ‘아이디스오더(iDisorder)’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들은 일생 동안 정신질환을 겪은 미국인이 전체인구의 46%이며, 이 중 과학기술로 인한 소통장애, 불안장애, 주의력결핍, 강박증, 관음증, 자아도취, 중독증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며 새로운 정신병 분야 ‘아이디스오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말해 사회 전반에 짜증과 분노, 우울감이 커지고 있는데 이 원인의 대부분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각종 네트워크 서비스는 사회 통합에 긍정적인 요인을 줄 것으로 기대돼 왔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와 서울대 융합과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오종환씨가 지난 3월 학회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발표한 논문 ‘SNS를 통한 현실인식 가능성에 대한 고찰’을 보면 트위터 같은 뉴미디어는 “각자 다르게 행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통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었다. 오종환씨는 이 논문에서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해 7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태풍 ‘하이옌’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면서 “트위터가 제공하는 정보는 기존의 뉴스와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건의 순서대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덩어리째 제공됩니다. 이건 무질서해 보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서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자면, 해시태그(#을 붙여 SNS에서 검색이 쉽게 돕는 기능)로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한 수퍼 태풍 하이옌을 검색했을 때 트위터 이용자는 하이옌이 초토화한 마을의 처참한 현장 사진과 하이옌 피해자를 위한 구호기금을 모집하는 캠페인 정보를 동시에 보게 된다. “무엇을 읽어낼지는 이용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항상 똑같은 논리로 정보를 접하는 것이 아니지요.”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선형적이지도 않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주로 얘기하는 ‘배양효과(cultivation effect)’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해 온 나은영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배양효과는 TV 같은 전통적 미디어뿐 아니라 SNS 같은 뉴미디어에서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미디어가 현실을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따라 미디어 현실이 실제 현실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 배양효과”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정보를 자신의 취향과 신념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의견이 실제보다 더 많다고 느껴지는 ‘합의착각효과(false consensus effect)’가 작동한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다 ‘내 편이 많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제가 논문을 쓰기 위해 조사해 본 결과 보수든 진보든 SNS를 많이 이용하면 할수록 현실세계에서 ‘자기 편’이 얼마나 있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보수·진보 모두 실제 비율보다 높은 숫자를 답했지요.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많이 이용하는 진보가 있다고 가정하면 현실세계에도 진보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동질적인 정보만을 계속 접할 경우 이른바 ‘집단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는 여러 사람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원래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집단극화 현상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있다고 칩시다. 여기에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잘 접근하지 않아요. 모두가 비슷비슷한 말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강한 주장을 하게 되면 쉽게 휩쓸릴 수 있죠.”
그렇다면 ‘헬조선’이나 ‘김치녀’같이 온라인상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일반화 현상 역시 설명 가능한 것일까. 나은영 교수는 온라인상의 현실인식이 현실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종의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SNS에서 부정적인 현실을 자주 접하는 사람은, 점점 더 관련된 정보만을 찾아볼 가능성이 높고 결국 현실세계도 그런 식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역으로 온라인에 부정적인 정보나 의견을 게재하게 되지요.”
나은영 교수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극단적으로 커진 공포심을 예로 들었다. 메르스 사태를 사회문제로까지 키운 것은 보건 당국과 정부의 잘못된 대응방식과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나 교수는 “공포심이나 불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은 생각할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자기설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 채널이 많아진 것이 부정적 감정을 키우는 원인입니다. 정보를 접하기 너무 쉽고, 그 정보마저 취사선택하기 쉬운 상황에서 반복되는 부정적 정보는 정상적인 사람까지 부정적인 정서에 감염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 현상이 온라인에서 강화되고 있는 이유는 여성 혐오 현상의 근거가 되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이용자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나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역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질수록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부정적인 사례나 통계가 더 쉽게 눈에 띄는 데다 반복되는데, 현실세계의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나은영 교수는 ‘SNS 중(重)이용자와 경(輕)이용자의 현실인식 차이’라는 논문에서 SNS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범죄에 희생될 확률이나 실업률 같은 부정적인 사회문제에 대해 현실의 통계치보다 더욱 높게 인식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자주 접하는 사람은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논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SNS에서는 끊임없이 이슈가 발생된다. 나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논쟁에 합류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소수인데 그 논쟁을 누구나 접할 수 있다 보니 모두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이슈에 대해서 생산적인 공론장(Public sphere)이 형성되기도 전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해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트윗(tweet)과 게시글에 노출되다 보니 아예 관련 이슈에 대한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든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대안이다. 온라인의 정보가 반드시 현실세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도형 국민대 교수(경영정보학)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지 않고 단지 읽기만 하는 ‘잠복 활동’이 왜 많은지에 대해 조사하면서 “자기존중감이 낮을수록 활발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는 기존 여러 연구의 가설을 재확인했다. 권정혜 고려대 교수(심리학) 연구팀 역시 지난해 8월 한국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거나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을 꺼리는 사회불안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나은영 교수는 “온라인의 정보를 한 번 더 살펴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결정을 하는 데 온라인으로 취사선택한 정보만을 근거로 삼지 말고, 보다 현실적이고 다양한 측면의 정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온라인에서 소통은 양면성이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더욱 많이 교류하며 소통을 확장시키는 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한 융통성도 오프라인 현실에서보다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동질적으로 강화될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의견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 교수 역시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앞으로 개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