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종말론적 신앙 공동체에 대한 소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각 시대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 의식이 요청된다 할지라도 어느 시대든 교회는 본질적인 속성을 떠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약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뿌리가 무엇이며, 그 뿌리로부터 무엇을 공급받고 있는가를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제 막 교회 시대의 문을 활짝 열고 출범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울 사도가 바라보았던 종말론적 교회관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로마서를 중심으로 말세에 존재하는 교회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교회가 늘 확인하고 있어야 할 존재 의의에 대해 점검하고 마땅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회의 방향을 확인하고자 한다. 1. 창조 질서의 회복과 복음의 능력 복음이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롬 1:2)이라고 바울은 정의한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신 분이다(롬 1:3).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가 사람을 살리는 원동력이라는 의미로써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심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왕권(kingship)을 다윗에게 위임하셨음을 의미한다(삼하 7장). 다윗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다윗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함과 같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의당히 다윗의 왕권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것은 다윗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완전한 통치자는 아니었다. 때문에 다윗이 건설한 이스라엘 국가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었다.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이신 예수가 나셨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신 통치자요 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윗은 비록 국가라는 체제를 갖고 그 백성을 다스렸지만 왕으로 오신 예수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모으고 다스릴 것이다. 곧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은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이념이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재창조'(recreation) 사역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도록 왕권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생명'(the living soul)을 잃게 됨으로써 왕권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 결과 우주까지도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통하여 생명을 회복해 주심으로써 왕권을 다시 찾도록 해주신 것이 곧 부활 사건이다. 부활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생명의 주'라는 증표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영성을 회복케 하는 획기적인 분기점으로서 새 창조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왕이시며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적 각성이 되어 생령(the living soul)으로 복권되어 우주 만물을 다스림으로써 파괴된 창조 질서를 회복(재창조)하도록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을 바울은 '복음'이라고 이해하였다.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은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복음은 인간성의 회복을 통한 전 우주적인 재창조를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인식하고 확고한 삶의 방향을 찾아가게 된다. 복음 안에서 왕직을 복권받은 제사장들로서 사명과 역할(벧전 2:9)을 재확인하고 새로워진 영(the newly living soul)으로 새 삶을 살아가야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곧 복음의 능력이다. 2. 새로운 질서로 주어진 義 바울은 죄와 사망의 창시자인 아담에게 속해 있던 하나님의 백성이 이제는 구원과 생명의 창시자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며 이것은 평화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됨으로써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열렸다는 증표로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의 백성에게 부어주신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성령의 부어주심은 종말론적 완성에 대한 보증의 의미를 가진다(고후 1:22; 5:5; 엡 1:14)는 점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소망이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의 성격을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와 사망의 시대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구원과 생명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원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의에 근거한 것으로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적 과정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평화의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1) 새로운 질서에 속한 교회 새 질서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은혜로운 통치의 현장이다. 따라서 은혜는 자기 스스로 어떤 도모를 행하거나 혹은 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죄에 대하여 항거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림과 같다. 이것이 은혜 아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의 위치이다. 바울은 이 상태를 가리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고 말한다. 여기에서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순종의 본을 지시한다. 곧 모든 교회에 새롭게 전수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새로운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순종이다(롬 15:1-6; 고전 11:1; 골 2:6; 살전 4:1-2; 살후 3:6). 이제 새로운 질서에 속한 교회는 더 이상 율법이 모범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참된 모범이 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화하며(롬 5:15; 고후 8:9)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교회에게 분명한 교훈의 본이 된다. 전에는 죄에 속한 종이었지만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께 속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순종과 충성해야 한다. 죄는 사람들을 부패와 사망으로 끌고 가지만 '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완전히 공유하게 하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인간의 특성을 드러내게 하기 때문이다(롬 6:18). 2) 새 질서의 세계를 위한 '義' 성도에게는 율법에 의해 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 의가 결정된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의 질서이며 그 '의'가 거룩을 성취시키는 것이다(출 29:1, 21, 33, 36-37, 44; 30:29-30). 교회는 유대의 전통적인 도덕적 기준과 의식적 정결로써 거룩이 아닌 은혜의 의에 의해 실행되는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은혜는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위기이다. 은혜는 죄에 맞서 있는 절대적 요구이며 절대적 복종의 힘이다. 따라서 은혜와 죄 사이에는 어떤 긴장도 양극성도 불가능하며 타협이나 평행이나 중간적 해결 역시 불가능하다." 의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관에 따른 결과이기에 그 외의 다른 것으로는 결코 의를 실현할 수 없다. 오직 헌신과 계속된 순종을 통해 성도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이 의를 실현하게 하며 거룩에 도달하게 한다(롬 6:20-21). 죄는 자신을 섬기는 종들에게 사망을 삯으로 준다. 이것이 '죄'라는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보상하는 방법이며 '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종들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인 영생을 그 삯으로 받는다(롬 6:21). 여기에서 바울은 '거룩'을 성도에게 영생의 열매를 가져오게 하는 점진적인 변화(성화)이며 영생을 전체 과정의 완성으로 묘사하고 있다(고후 4:16-5:5).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도들이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거룩한 삶으로 이해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영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최종 단계였다. 그러므로 영생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은혜의 행위이며 은혜의 구현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는 바울의 논증은 영생이 하나님의 은사( ), 곧 하나님께서 자의적으로 베푸시는 능력의 선물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영생은 하나님의 소유를 떠나 신자의 소유가 되는 대상이 아니다. 영생은 선하신 하나님의 넘치는 능력과 전체 인격 속에 그와 동일한 선하심을 구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성도와 유지되는 관계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새로운 질서의 완성된 세계이다. 3. 새 질서의 생명 공동체인 교회 신약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영원한 사망의 법에 아직도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고백한다. 곧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처럼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사건을 예수의 부활 사건으로 이해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구약의 완성이며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려준 증표가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성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 거하시고 활동하시고 이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을 나의 백성이라고 선언하신다(롬 9:25-26; 고후 6:16). 이러한 개념들은 옛 언약과 달리하는 새 언약의 개념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부활 사건 이후에 존재하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자신이 영원한 삶으로 인도되었으며 바로 지금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안에 살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이제부터는 의문에 쌓인 법(율법)이 아닌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법 곧 '복음' 안에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골 2:12-15). 나아가 재림 사건이 있을 때 비로소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소망한다. 이 날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만이 온 인류의 심판주로서 모든 존귀를 받으시게 될 것이다. 신약의 성도가 어느 위치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자기의 위치가 아직도 구약의 위치에 있다면 그는 여전히 예수의 십자가 구속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는 아직도 부활의 권능을 알지도 못하고 참예하지도 못하고 있다. 유대주의가 그러하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고 있다면 '새 질서'에 속한 새 사람(The New Self)인 것을 인식하게 된다. 복음이 무엇이며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나아가 그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삶을 가르친 이가 바울 사도이다. 바울의 복음은 "누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로마서 1-8장에서 바울은 믿는 자들이 의롭게 여김을 받음으로써 '의에 대한 섬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줄곧 강조해 왔다(롬 6:1, 15; 8:3-11). 그리고 9-11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한 형제가 됨으로써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강조했다. 로마서 12:1-2이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집약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바울은 새로운 질서로 주어진 '의'를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취하는 교회 공동체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께 드리는 계속적인 제물로 살아가고 새로운 실재에 속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뜻을 위해 온전히 살기 위해 변화되어야 한다. 4. 마치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신앙 공동체의 구체적인 속성에 대한 바울의 관점을 보게 된다. 바울은 먼저 유대인-이방인이라는 대결 구도를 떠나 모든 믿는 성도들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재 정의함으로써 '옛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 이스라엘'로서 '온 이스라엘' 개념을 정립하였다. 역사적인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스라엘'로 남아 있는 반면에 다른 조건 없이 오직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은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롭게 형성된 신앙 공동체는 열방들에 대한 축복을 위해 선택된 역사적 이스라엘의 일차적 사명과 열방에 대한 빛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예언적 사명의 성취라는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바울은 이 신앙 공동체의 성격에 대하여 '성도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과 같은 용어를 사용해 정립해 오고 있었다(롬 8:27-33). 이러한 바울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배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고백(Shema)에 근거한다(신 6:4-6).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은 유대인과 아울러 이방인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적 이스라엘은 언제나 우거하는 객, 이방인 개종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포용해 왔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참고 왕상 8:41-43; 대하 6:32-33). 셋째, 모든 열방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으리라는 언약에 근거한다(참 12:1-3).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열방의 빛으로 비유하였다(사 49:6; 51:4). 넷째,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근거한다. 종말에 열방들이 시온으로 순례를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유대인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내용이었다(시 22:27-31; 86:9; 사 2:2-3; 25:6-8; 66:18-23; 미 4:1-2; 습 3:9; 슥 2:11). 바울은 신약 시대에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야 말로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들의 신앙 공동체라는 사실을 로마서에서 재확인하고 있다. 동시에 이 사상은 이 종말론적 신앙 공동체야말로 역사적 이스라엘과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상을 집약시켜 신앙 공동체를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일컫고 있다(롬 16:4, 16). 그리고 교회가 새로운 이스라엘로 형성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