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자 :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행하는 자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마태복음 5장의 결론은
48절에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율법의 세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건네주신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께 건네받은 것을 건네주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16절 이하의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로 주신 율법을 다 팔아
가난(프토코스)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온전이며
(텔레이오스, 혹은 구제, 기도, 금식), 예수를 좇아가는 삶입니다.
부자는 진리를 알라고
하나님이 건네주신 율법을 자기 것으로 알기 때문에(자기 소유)
그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팔수가(디도미)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선악구조와 선악욕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
구제, 기도, 금식하는 삶
6장은 그렇게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받은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세 가지 정도로 말씀하고 있는데, 구제와 기도와 금식입니다.
외식하는 자들
당대 율법주의 안에 갇혀 있었던 유대인들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마 6:1절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자기 으義의의 차원에서 열심히 행하였습니다.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아버지가 주는 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으로 주신 것을 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그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신들의 의를 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상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함
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가
원어로 “데아오마이”로서 “부정사,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려고”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가 행하는 의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여지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요?
내가 행하는 의를 다른 사람이 보지 않으면 누가 보겠습니까?
이 말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무명으로 이런 의를 행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의 진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은밀(비밀)이라고 합니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만 보시는 은밀한 것
왼편이 모르는 오늘 편의 구제,
은밀한 중에 하나님만 아시는 기도,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만 보시는 금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율법의 선악욕망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자기 욕망의 투영으로서 하나님을 해석하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제, 기도,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 갇혀 있는 자들,
자기 욕망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겐
진리 편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구제, 기도,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그런데 율법아래서 율법의 선악욕망 아래 갇혀 있는 자들은
사람에게 보이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행합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진리 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프토코스”하지도 않는 자들이
받아먹을 수 있는 그런 양식을(세상의 양식) 주는 행위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 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시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 31: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마 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엡 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천국의 비밀
우리가 이 진리의 복음을 접하고,
이것이 깨달아 질 때 드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이 복음을 듣고, 이해하게 되었을까? 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힘든 것이 이 세상의 상식과
보편적 편견에 있는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은밀한 것,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편 욕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그러나 율법종교는 사람들의 보편적 욕망으로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집니다.
인간의 종교적 의와, 자기들의 가치를 치장하고 확장해주는 좋은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고통을 종교적 소망과 희망으로 견디게도 하고,
과거의 죄와 악을 회개라는 종교의식으로 벗어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율법종교에는 그렇게 행사와 의식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는 그 종교의식을 인본주의적인 이벤트로 환원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해준 이 진리는
오직 하나님 편에 속한 자, 오른 쪽에 있는 자, 진리로 함몰된 자들에게만 보이고, 들려지고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선악욕망을 따라 살고 있는 보편 인생들에게 보이는 그런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
그렇게 율법의 선악욕망 아래 있는 자들에게 보이는 의를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라고 합니다.
“외식하는”를 원문으로 보면
“휘포크리테스”로서 “위선자, 사칭하는 자, 불신앙 자”입니다.
“휘포크리테스”는
“휘포크리노마이”에서 왔는데 “가장하다, 숨기다, ~인체하다”라는 뜻입니다.
눅 20:20 이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님과 신학적으로 논쟁하던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가 “휘포크리노마이”이고
이것의 명사형이 “휘포크리테스”로서 “외식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이 비판하고 송사할 때
사용된 단어인 “크리노”가 이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마 5:40 또 너를 송사하여(크리노)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크리노)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자기의의 가면
그러니까 외식하는 자는 율법 아래서
율법의 선악구조와 그 욕망으로 나와 타인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자기 의의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율법의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타인을 그 율법으로 판단하고 송사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으로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한다는 것입니다.
외식하지 않는 자
그러나 외식하지 않는 자,
즉 율법의 선악구조가 깨지고,
그 욕망으로 나와 타인을 판단하고 해석하지 않는 자는
자기 의의 가면이 벗겨졌기 때문에 은밀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합니다.
가면을 벗어 자유에 이르게 함
율법 아래 태어난 모든 인간은 자기 의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율법의 선악으로 자기를 치장하고 화장합니다.
이 가면은 두 가지 극단으로 나타나는데 죄책감과 자기 정당화입니다.
이는 모두 사회 규범과 공동체 윤리와 관련되어 있는데,
죄책감은 어떤 사건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지우는 것이고,
자기 정당화는 그 반대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건네준 복음의 진리는
죄에 대한 법적, 윤리적, 실제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율법적 자기 의로부터 해방되어 예수의 의를 붙잡고
그 예수의 의에 의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용서의 복음, 자유의 복음, 안식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런데 율법의 선악욕망으로
자기 의라는 가면을 쓰는 자들에게는 이 그리스도의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외식하는 자들을(율법의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마 2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마 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9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여섯 번 저주를 선포하심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 6번의 화를 선언하시면서
동일하게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비판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라고 건네주신 율법으로 스스로 자기를 의롭다하며,
율법 안에 있는 진의는 알지 못하고
사람들로 죄책감과 자기 의에 갇혀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천국에 못 들어가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도 막는 자가 된 것입니다.
거짓말과 진리를 말하는 것
진리를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은 “비진리를 말하다“, 입니다.
비진리는 율법을 그 내용과 의미로 설명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율법을 비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것을 거짓말하다“(휘포크리노)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헬라시대 극장에서 연기자가
자신의 역할에 일치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가면을 쓰고 있는 그 상태를
진리를 말하지 못하다,(휘포크리노) 비진리를 말하다, 거짓말 하다, 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겔 22: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갈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진리를 건네주지 아니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가난한 형제를 부요하게 하는 진리의 양식을 건네는 것)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된 자
그러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라는 것은
율법의 선악판단과 선악욕망으로
자기 의의 가면을 쓰면서 자기를 정당화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의만을 붙잡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있는 자에게서 비밀스러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이 흘러 나와
“프토코스”한 자들이 그것을 보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계명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말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