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구석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계단을 오르고 있다.
동굴벽화 몇곳에 계단이 그려져 있고
점토판 설형문자는 `계단을 올랐다`로 해석되었다.*
계단 끝에서 신들을 만났다는 소문이 돌자
엎드리고, 경배하고, 움츠리는 버릇이 생겼다.
길이 이어진 계단에서 버려진 육체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막다른 계단은 따뜻했다.
`벽돌 창으로 새어나온 불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그 빛은 언제나 나에게 사랑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스무개의 절망과 한개의 사랑을 품은 채
늙은 봉우리로 가는 계단에서 네루다는 실종되었다.
지상의 계단이 왜 하늘을 향하는지 아직 모른다.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찰나만큼 수명이 길어질까,
시간은 계단 위를 아주 느리게 파고들었다.
* 조지 이글턴 『계단의 상징, 신에게 가는 길』, 1995.
** 파블로 네루다 「계단 끝 집」, 1971.
서촌, 인왕제색(仁王霽色), 이상
서촌에서 어깻죽지가 간지럽다면 금홍을 사랑했던 마음, 이상이 만든 이상적이고 근대적인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고대 이카로스의 날개를 갖게 되었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사랑하게 되어서 송강 정철의 집터까지 가다보면 '중국'이라는 작은 국숫집, 깃발을 내리면 영업이 끝났다는 것, 번번이 발길을 돌리면 관동에는 절친 율곡의 집, 오죽헌에 남긴 금주(禁酒) 십계명은 율곡의 반듯함을 생각하게 했는데, 당쟁을 중재하고 두주불사 송강과 세상을 논하고 종묘사직을 걱정하며 율곡이 마신 술이 얼마나 될지, 나의 옛 스승은 간경화로 인해 천재(天才)를 일찍 거둬들여야 했으나, 길 건너 경복고등학교 쪽에는 드디어 겸재가 율곡을 사모하며 밝은 눈을 더해 조선의 마음, 색을 끄집어내었는데, 인왕이 매일매일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었으나 우리의 마음까지 요동칠 줄 어찌 알았던지, 북방에서 온 '동주의 별'이 인왕제색 앞에 오래 머물러 자하문 쪽으로 졌을 것, 여항의 젊고 도발적이며 권위와는 담을 쌓았던 시인들이 골목골목 지금도 마음의 색을 바꿔내고 있는데, 오직 북악 아래 외로운 군왕만이 율곡에게 지혜를 묻는다.
날개는 아직 녹아리리지 않았고, 여전히 서촌을 헤매고 있는 이상(李箱), 이상(理想), 이상(異常)들.
겨울새
구만리의 집들은 지붕이 낮다. 눈이 내리면 어깨까지 굽어서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그만 작은 산봉우리가 될 것처럼, 부끄러운 듯 눈 아래 가만히 세속을 감춘다. 새 한마리가 가끔 손님으로 찾아와 작은 흔적을 남기며 처마 밑에 머문다.
겨울 아침은 참나무같이 손이 딱딱해진 할머니가 하얀 머리를 빗으며 온다. 참나무가 참나무를 쓰다듬고 참나무가 참나무를 태운다. 붉은 불이 하얀 밥을 데우고 하얀 연기가 하얀 세상으로 날아가면 하얀 사람들이 하얀 입김을 피우며 눈을 비빈다. 아궁이 앞에 앉은 할머니가 하얗게 피어오를 것처럼.
구만리의 겨울은 끝내 길을 잃지 않았다. 발목이 잠겨 따라간 노루의 발자국 끝에는 미처 얼지 않은 샘물이 있었다. 산꿩이 나는 허공의 길엔 이미 눈물 많은 이들이 숱하게 지나갔다. 낮아지고 낮아져서 그만 그대로 멈춘 세월이 겨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아이야, 춥다, 그만 가자.
바리깡 오일을 찾아서
강아지 이발기 세트 안엔 파란색 뚜껑의 조그만 기름통이 있다. 우리 집 푸들은 털이 비비 꼬이고 방향이 일정치 않아 이발기가 자주 헛돈다. 기름 몇방울의 쓸모를 그제야 알았다.
밤 열한시, 털을 반쯤 남겨둔 채 기름이 떨어졌다. 라이터 기름을 발라보고 자전거 체인 기름도 써봤는데 효과가 없다. 강아지는 우스꽝스러운 채 방치됐다. 다음 날 막내는 창피할 거라고 산책도 생략.
편의점에 가봤지만 있을 리가 없다. 이마트에 들러봤다. 기름 때문에 이발기 세트를 또 살 수는 없는 노릇. 다이소에 있을까. 소소하고 값싼 무리들 사이에 역시 찾을 수 없다. 애견센터 점원이 "올리브오일 써요" 하길래, 요란한 소리에 그날 밤 기계 망가진 줄 알았다.
'털 깎는 기계 기름' '미용 기계 기름'으로 네이버에 물어보니 '바리깡 오일'이 떴다. 빢빡머리 중학생 시절 바리깡. 인터넷 구입은 한통에 이천원. 머쓱해서 어디서 파는가 봤더니 미용 재료상들이다. 상계동엔 없고 구로에 많다. 거기까지? 막내는 성화인데.
상왕십리 '왕십리 미용 재료'를 발견하고, 화들짝 버스에서 내려 가보았다. 한때 뜨개질 장인이었음 직한 아주머니께서 큰 건 없고 작은 것만 있다신다. 오일 하나에 천원, 세개를 샀는데 새면 어쪄냐고 굳이 비닐봉투에 넣어주신다.
자주 쓰진 않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나도 그럴까. 누군가 찾아줄까.
서툰 아버지 탓에 막내는 새벽 한시까지 기다렸다가 강아지 목욕을 시켰다. 옷에 붙은 강아지 털 뭉치를 떼어내다 말고 소매에 매달린 젊은 날 치기를 발견했다. 얼른 털어냈다.
111번 버스를 위하여
어깨를 내주었던, 읽던 줄을 자꾸 놓치니까 흔들흔들 집중력을 잡아주었던, 동대문과 종암동의 오래된 저녁 풍경을 나눠주었던, 무력한 현실의 도심과 망각이 떠다니는 동네, 그 사이를 오갔던 도덕과 그리움 사이를 멀리멀리, 되돌아가기를 포기하게 했던, 피로를 연료 삼아 조금씩 매연을 배출했던, 허기를 갈망으로 바꿔주었던, 보드라웠던, 반복적이었거나 혹은 처음이었던.
버스가 없다. 111번 버스가 없다. 양주행 111번 버스가 없다. 무교동 뒷길에서 회차하던 양주행 111번 버스에 내가 없다.
수십년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 비틀대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노을을 기다리며, 선율을 기다리며. 나의 중얼거림을 한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던, 오른쪽 앞에서 두번째 자리여, 안녕.
메기
파로호의 메기는 물안개를 먹고 산다.
안개는 추문을 감추지만, 흐릿하게, 아주 잊히지 않을 만큼만, 아는 사람들만 알 정도로만 사랑을 드러낸다. 깊은 자맥질. 강을 흐린 메기의 흔적만 쫓을 뿐, 미끄덩, 손에서 빠져나간 기억들을 주워 담기에 우리들 마음이 너무 가난하다.
주낙을 드리우고 물안개를 기다렸다.
강물이 안개와 뒤섞여 낡은 거룻배의 바닥에서 찰랑댈 때 저녁의 메기들이 옛일을 떠올렸다. 안개를 좋아했던 작은 형의 두툼한손이 지금도 뒤춤을 잡곤 한다. 파로호에서는 메기가 우리를 선택했다. 번번이 빈 주낙 때문에 낙담할 것 없다.
귀면암의 겨울
손목을 보는 버릇이 있다. 뼈다구가 궁금하다. 겨울산을 다니며 산의 뼈를 본 뒤부터. 뼈가 가는 사람은 애틋하다. 손목을 오래오래 잡고 멀리멀리 가고 싶다. 굵은 뼈를 보면 북방의 찬 바람 앞에 선 기분이다.
겨울산이 주는 솔직함이 좋다 민얼굴, 노골적인 주름, 웃통을 벗어젖힌 근육, 잘못을 고백해도 될 듯하다. 시작과 끝이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느낌이다.
겨울 금강 개골산. 만물상으로 가는 긴 계단 초입에 귀면암이 서 있다. 나무도, 길도, 능선도, 또 나도 귀면암 앞에서 뼈를 드러낸다. 동면을 지키는 귀면암. 바람만 간혹 방향을 잃고, 겨울산들이 남쪽을 향해 내달렸다.
하강(下降)
소년들은 가출한다. 강원도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기로 작정한 소년들은 부산에 도착했고 수영장에서 청소를 했다. 모험담은 겨울 내내 계속되었고, 일탈이 부러웠던 나는 매일 밤 끙끙 앓았다.
하강은 돌아가는 일이다. 낮은 곳으로, 일상으로, 세속으로. 언덕배기와 산등성, 비닐 포대든 작은 판자때기든 엉덩이에 깔고 가출했던 소년들은 끊임없이 일상으로, 집으로 귀환했다.
반복되는 일상, 일상들. 아마도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해야만 하는 삶의 즐거움,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야 일탈은 의미가 있었을 것. 썰매를 타자. 일탈의 기억이 아주 급속도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워주는 그 썰매를.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저무는 거리, 바람에 흔들려야 하는데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길어진 만큼 갈 길은 멀고 마음은 쓸쓸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그림자가 없다. 황혼이 몸을 지나 빠져나간다. 황혼을 붙잡아야 심장이 뜨거워질 터였다. 틈도 순간도 없다. 창백한 얼굴들만 제자리걸음이다.
그해 가을이 분명하다. 그림자를 두고 왔다. 보통강 가 버드나무길 어디다. 그림자가 버드나무 그늘에 묻혔을 때 사랑에 빠진 걸 눈치챘어야 했다. 버드나무 가지들이 이리저리 그림자를 보듬었다. 눈물이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느낀 것 같은데 이념의 관성이 가로막았다. 평양의 쓸쓸함은 그림자 탓이다. 북방의 남자들이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순전히 두고 온 그림자 탓이다.
변명이 소용없고 이성으로 살아가질 않는다. 가을이 오기 전에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그림자에는 고요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건 그림자 때문이다. 앞으로만 가는 발길을 붙잡기 위해, 쓸쓸한 날의 머뭇거림을 위해 그림자를,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ㅡ 신동호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창비, 2022
시인의 말
열일곱살 골목에 머물러 있다. 그늘과 햇빛의 조각들, 식구 수만큼 낡아진 대문과 제각각인 살림들, 골목 끝과 모든 시작이 궁금하다. 군중 속 외로움과 남산 수사실에서의 외로움이 썩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보통강 버들과 삼지연 개박달나무, 그 색다름이 우리 집 뒷산 봄날 진달래로 반복되어 핀다는 것도 안다. 권력의 바깥과 안 역시 미완성인 목소리들의 높낮이 향연일 뿐이다.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 모두 무덤덤하게 평범해진다. 무척 아련하다. 여전히 골목을 서성일 수 밖에 없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
2022년 6월
신동호
신동호
1965년 강원 화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산문집 『유쾌한 교양 읽기』 『꽃분이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다』 『분단아, 고맙다』 『세월의 쓸모』 등이 있다. 이용악문학상을 수상했다.
김광석 - 그날들
첫댓글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는 구절이 가슴을 파고 드네요.
내 인생길 얼마나 더 가야 하고 또 누구를 더 만나야 할까요?
계단이란 시를 읽고나니 계단이 참 새롭게 느껴지네요.
반지하 전세집은 계단이 하나라도 적을수록 장점이 되는데
마야문명, 아즈텍 왕들은 한 계단이라도 더 높이 쌓을려고 애쓴 걸 생각하니 극명한 차이가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