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36gO3rKJ1Ew?si=P_64vXHnWqd2R5Cr
Aram Khachaturian:Symphony No.2 e minor(1943) The Armenian Philharmonic Orchestra Cond.by Hisayoshi Inoue
교향곡 제 2번 E단조 “The Bell” 1943년 작곡
하차투리안이 남긴 세곡의 교향곡 작품은 서사적이고 또한 변화무쌍한 것들이어서 한결같이 스펙터클 영화 한편씩을 보는것 같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완성된 2번 교향곡은, 1번 교향곡의 그늘을 벗어나는 분위기이다. 전쟁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영웅을 찬양하고 비극적 분위기로 가득찬 그런 작품이라고 그 당시 여타 러시아 작곡가들의 찬양을 듣게 되는데 특히 쇼스타코비치가 이 2번을 두고 “비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에 피어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눈부신 승전가와도 같다”라고 하며 추켜세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과연 하차투리얀,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제에 나와 있는 “종”의 폭발음이 귀를 때린다 싶다가도 안단테에 이르러서는 숨어있는 서정이 고개를 드는데 이 때 하차투리얀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있는 것 아닐까요?. 제 3자인 우리는 이 2번 교향곡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번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해 주위의 칭찬에 힘입어 1946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그 해 최고의 작품상을 받게되는 사연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
하차투리안 [Khachaturian, Aram Il'ich, 1903.6.6~1978.5.1]
하차투리안은 제정 러시아 당시에 Tiflis ,Georgia (지금의 트빌리시, 그루지아 공화국의 수도) 에서 1903년 가난한 아르메니아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주위에서 들리는 음악에 매혹되곤 하였으나 여느 작곡자 들 처럼 어려서 부터 음악을 배우지 못했다. 1921 년 나이 18 세에 음악에 관해 아무런 배운 것도 없이, 더구나 러시아 말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그는 음악을 배우기 위하여 홀홀단신 모스크바로 올라 왔다. 그러나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보여 그네신 음악학교 (Gnesin Institute) 에 입학이 허락되었고 그곳에서 첼로를 배웠다.
1929년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옮겨 니콜라이 마이아코브스키로 부터 작곡을 배웠으며 그곳에서 같이 작곡을 전공하던 니나 마카로바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1951년에는 기네신 주립 음악원과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으며 소련 작곡가 연맹의 요직을 맡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프로코피에프와 함께 작곡가 연맹으로 부터 맹비난을 받게 되는데 소위 소련 음악의 3대 거인으로 불리우는 이 세 사람이 20세기 음악을 이끌어 나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3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발레음악등을 남겼으며 후에는 영화음악에도 손을 댔다. 1970 년대에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 The Onedin Line 에 삽입된 그의 발레 음악 스파르타쿠스는 이 드라마를 보다 격조 높게 변신시켰다고 할 수 있으며 그후로 영국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클래시컬 음악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1978 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75세를 조금 못 채우고 불귀의 길을 걸었으며 조국 아르메니아의 이름을 드높힌 다른 아르메니아 선배들과 함께 에레반 (Yerevan)에서 영면하고 있다. 대표작에 발레모음곡 《가이느》(3막 6장, 1942) 《스파르타쿠스》(4막 9장, 1954) 등이 있다.
글출처: 하늘바람꽃
https://youtu.be/tpqSwXuFaJc?si=9WwCccRQ3DbW_7TV
Aram Khachaturian - Symphony No.2 "The Bell" Armenian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Loris Tjeknavorian
Aram Khachaturian Concert Hall. Yerevan - Armenia아르메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