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 <가장 낮은 나의 삶을 높은 삶으로 스케치하신 하나님>
‘나’라는 사람을 보통 사람의 기준에서 생각한다면 마이너스부터 보일 수밖에 없다. 팔, 다리의 성장판 이상으로 저신장(低身長) 장애에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신체적 조건이지만, 유일한 플러스는 가장 낮은 나의 삶을 높은 삶으로 스케치하신 하나님이다.
나는 아무도 예측하거나 단언하지 못한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어둠 같았지만, 빛이었고, 불행 같았지만, 행복이었으며, 무력하게 보였지만, 능력이었다.
물이라고 해서 모두 물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기암, 절벽, 험준한 바위 모서리, 그리고 흐름을 거스르는 돌쩌귀를 지나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때만이 비로소 힘찬 소리와 눈부신 물살을 만들어 냈다.
나도 한 줄기 폭포처럼 나만의 소리와 아우라로 존재하고 싶었던 바람대로 그분은 나의 삶을 통쾌한 반전의 소리로 이끌어 주셨다.
‘나’는 어느 한 시점이나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광야와 같은 빈 들에서, 열악한 시대적 상황에서, 나와 같이 장애를 가진 이들과 울고 웃는 순간을 포함한 모든 내가 ‘나’였고, ‘나’이며, 또한 ‘나’일 것이다.
첫 책을 내면서 바람이 있다면 부족한 글이지만, 기갈(飢渴)한 영혼들과 공감하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옹달샘이 되고 공명하는 한 줄기 바람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끝으로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분들과 여든이 넘은 고령에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유언처럼 출간을 권하며 도움을 주신 형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내 글에 공감하며 응원과 격려로 출간을 기다려 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2023년 여름
가온 최명숙
책의 첫 글 - 나는 광야의 종이로소이다
그 사람은 차가 들어설 수도 없는 농지(農地)를 ‘곧 길이 난다’는 말에 속아 사채를 얻어서 매입했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과 지역 행정기관에 알아본 결과 ‘그건 도시계획일 뿐이고 그 계획이 몇십 년 후에 시행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이자를 감당하기도 힘든데 팔고 싶어도 살 사람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은 시점은 공교롭게도 적금을 타기 한 달 전이었다. 부지(敷地)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그 사람이 받고자 하는 액수와 신기하게도 딱 맞았기에 흥정할 것도 없이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주위에서는 “언제 길이 날지도 모르는 땅인데…”라고 걱정했지만, 당장 공사비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아무 때든 길이 나는 때가 건축을 할 시기”라고만 말해 뒀다.
이듬해 봄, 그곳을 지나는 길에 사 둔 땅을 다시 한번 보려고 찾아갔다. 딱 한 번 보고 매입한 땅, 차가 들어설 수도 없었던 땅, 그 좁은 농로(農路)에서 차바퀴가 빠져 고생했던 생각을 더듬으면서 가 보니 그곳엔 어느새 2차 선의 하얀 신작로가 꿈처럼 나 있었다. 그렇게 빨리 길이 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내게 그분은 마치 따라오라는 듯 햇살 밝은 길을 기적처럼 보여 주셨다.
막막한 빈들에서도 눈을 감으면 등 뒤에서 나를 감싸고 계시는 그분의 사랑이 눈시울 가득한 눈물로 차오른다. 언제나 그분은 나를 빈들에서 부르셨다. 때로는 외로움에 가슴이 시리고, 서러움에 연기라도 마신 것처럼 목이 메는 날이면 나는 작은 소리로 묻는다. “또 저에게 무슨 은혜를 주시려고 이 빈들로 부르시는가요?”
벳세다 들녘에 수많은 군중들이 모였지만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제자의 말처럼 그곳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광야였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동반자도 없고 쉴 곳도 없는 여정에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외롭고 슬픈 밤을 보냈던 ‘루스’라고 하는 쓸쓸한 들녘에도 그분은 계셨다. 그때 야곱은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빈들은 그분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조건이며, 계시의 무대이다. 나는 빈들이 가진 무한한 비전을 바라보면서 봄바람으로 생명을 일으키시는 그분의 기적이 우리가 있는 빈들에서도 역사하실 것을 믿는다.
논(沓) 중에는 옥답(沃畓)이 있는 반면에 천수답(天水畓)도 있다. 오직 하늘만 바라보는 땅,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만 논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천수답이야말로 나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사역이었다.
앞을 볼 수 없이 막막하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땅이다. 가장 낮은 곳이기에 반비례로 가장 높은 기대치를 가질 수 있고, 이 땅의 물꼬가 아닌 하늘의 물꼬가 있어 행복하다. 햇살이 은가루로 내리는 봄바람 부는 광야에 있노라면 내 영혼 차라리 한 줌 가루로 하얗게 부서져 그분 앞에 소제(素祭)로 드리고 싶어진다.
“나는 광야의 종이로소이다. 때로는 고독하고 힘들지만, 당신이 주신 천수답 같은 사역을 끌어안고 메마른 사막을 가는, 나는 행복한 광야의 종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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