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발표된 당초 계획으로는, 2011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위에 800만평의 공단과 1,200만 평의 배후도시를 계획하고,
70만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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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남북 간의 경제 협력 모델로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개성공단 생산액은 가동 첫 해인 2005년 1491만 달러에서 시작해 2007년 1억8478만 달러, 2012년 4억 6950만 달러 등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입주업체도 2005년 18개 업체로 시작해 이듬해 30개, 2011년 123개, 2016년 2월 기준 124개로 늘어났다.
개성공단은 5만 명의 북한 노동자가 근무하면서 개혁·개방 및 자본주의 학습장이 됐다. 북한 근로자수는 2004년 10월 55명에서 시작해 2012년 처음 5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중소규모 공단에 버금가는 인력규모다. 2014년 12월 기준 개성공단에는 북한 근로자 5만 3947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남한 경제에도 도움이 됐다. 특히 해외 진출에 실패한 중소기업의 활로 모색의 장이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를 노동집약 산업인 봉제, 섬유 산업과 생산 조립 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업종별로 보면 섬유업종이 73개사로 58%를 차지함으로써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기계금속(24개사, 19%), 전기전자(13개사, 11%), 화학(9개사, 7%) 순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4년 보고서에서 "개성공단 사업은 지난 10년간 남한에는 32.6억 달러의 내수 진작 효과를, 북한에는 3.8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가져다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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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의의
개성공업지구 설립 전에는 동 지역 내에 북한군 2군단 6사단과 62포병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6사단은 4개 보병연대 및 1개 포병연대, 탱크대대, 경보병대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들 부대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의 전방사단에 대한 공격을 담당할 것이었으나 개성공업지구 설립 이후 최소 10 KM 이상 북진하여 전략적 이점을 상당부분 포기한 상황이다. 특히 62포병여단의 경우 개성공업지구 설립 이전에는 서울 용산지역을 사정거리로 두었으나 이후에는 서울 북방 변두리까지만 타격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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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국정원 개혁
국정원은 사실상 해체 후 재편에 준하는 대변화를 맞는다. 국내 정보수집 업무 및 수사기능은 전면 폐지되고 대북한 및 해외·국제 범죄를 전담하는 전문 정보기관으로 개편된다. 명칭도 한국형 CIA(미국 중앙정보국)를 표방한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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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밖에 완성되지 않은 개성공단의 성과는 매우 크고 뚜렷한것.
개성공단이 북핵을 해결 못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집에가서 엄마젖을 먹어야지.
남한은 이렇게 착한데 ,북한 너 나빠. 우리 놀지 말자 하는 생각은 어린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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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문재인의 국정원 개혁, ,포탄 하나 안 떨어지게 북한 군사해제하고 무력통일의 가능성,
남한 군사 진입할때 북한군은 술 먹고 낮잠 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