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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하 13;1-5. 35-38. 환란이 떠나지 않는 이유. 2023. 10. 8.
여러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무엇이라 합니까? 초역전의 시대와 리버스 멘토링 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초 역전의 시대, 리버스 멘토링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자녀가 부모보다 똑똑하고 후배가 선배보다 똑똑하고 사원이 임원보다 똑똑하고 병사가 간부보다 똑똑하게 보이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되었나요? 문명의 주기가 단축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농업혁명은 수 천 년을 거쳤으며, 산업혁명은 300여년 지속되었고, 정보혁명은 30여년에 불과합니다. 제4차 산업혁명은 20여년 예상되고 제5차 산업혁명은 15년 정도가 예상됩니다. 거기에다 의술이 발달하고 좋아하는 건강한 식습관으로 수명은 늘고 신문명 주기는 짧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 시대는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4 ~ 5번의 변신이 되기 때문에 제1세대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을 하면 기성세대는 이미 구세대가 됩니다. 그래서 시대에 대한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MZ세대가 있습니다. MZ세대는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정보화 사회 1세대인데, 이 MZ세대는 컴퓨터로 소통을 하고, 또한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놀이 문화를 함께 찾습니다. MZ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너뛰고, 인권과 공정과 합리성과 정의와 행복을 추구하지만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그런가하면 저처럼 나이가 든 세대를 죄송합니다만 꼰대 세대라고 합니다. 이 꼰대 세대는 나이와 직급과 스펙과 경력과 관록과 위계질서를 앞세우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싸가지가없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한국의 이야기인데요. 동대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해서 흥인지문(興仁之門)이고, 서대문은 의(義)를 두텁게 갈고 닦는 문이라 해서. 돈의문(敦義門)이고, 남대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 해서 숭례문(崇禮門)이며, 북문은 지(智)를 넓히는 문이라는 뜻으로 홍지문(弘智門)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가운데를 뜻하는 신(信)을 넣어 보신각(普信閣)을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의 한양인 지금의 서울을 오상(五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으로 인간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기본 덕목을 기초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고, 의(義)는 수오지심 (羞惡之心)으로 불의와 악한 것은 수치로 여기는 마음이며, 예(禮)는 사양지심 (辭讓之心)으로 자신은 겸손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고, 지(智)는 시비지심 (是非之心)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이고, 신(信)은 광명지심 (光名之心)으로 항상 중심 가운데 믿음을 갖고 그 믿음에 따라 나오는 삶을 보여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 의. 예. 지. 4가지가 없는 사람을 가리켜서 사(四)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MZ세대는 이것이 그대로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싸가지가 없는 세대라고 하지만 MZ세대는 또 다른 생각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MZ세대들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살아가면서도 꼰대세대에 대하여 극렬하게 저항하며, SNS에 부당함을 알리고, 법적 대응을 하고, 거리낌과 언짢은 일이 있으면 참아내지 못하고 사직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긍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면 신속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장점과 단점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이후에는 어떤 세대가 올까요? 알파세대가 다가옵니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는 제4차 산업혁명의 1세대입니다. 이들은 소통과 기구와 사용기술과 도구가 다른 메타버스 세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초 역전 시대에 대한 대응이고 리버스 멘토링입니다. MZ세대를 인정하고, 소통하며 하나라도 배우는 것이 기성세대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MZ세대와 알파세대는 권위와 관습과 전통으로 신앙생활을 강조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신앙과 믿음의 사고가 그들에게 합당해야 교회를 출석합니다. 전도도 되지 않고 말씀에 대한 적용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포털 사이트에 GOD people 이라는 닷컴이 있는데, 이 사이트에서, 왜 성도들이 예배에 지각을 할까? 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이유가 4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제일 큰 이유는 약 15%의 성도들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예배에 늦는다고 합니다. 이것저것을 보다가 5분만 더, 10분만 더 하다가 늦게 예배를 드립니다. 무엇입니까? 기성세대가 볼 때는 결단의 부족이지만 MZ세대는 이 것도 신앙의 일부라고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약 13%의 성도들이 습관적으로 지각한다는 고백입니다. 매너리즘 습관이고 나쁜 습관입니다. 그런데 MZ세대들이 탐독하는 어느 책에, 사회에서 처신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데, 당신이 어떤 모임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적어도 약속된 시간에서 5분 정도는 늦게 가라는 제안을 합니다. 흔히 책을 가리켜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서점에 있는 책들이라 하더라도 마음의 독이 될 수 있는, 아주 잘못된 가치관을 제시하는 책들로 인하여 MZ세대들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 번째는 약 12% 정도의 성도들이 가족의 준비를 기다리다가 늦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야성들이 부지런하지죠? 양치질하세요. 예배인데 양복은 입어야지요? 양복 입으세요. 대충대충이 안됩니다. 네 번째는 약 11%가 토요일 날 늦게까지, 주일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예배에 늦는다는 고백인데 준비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환경적 요인보다 심앙의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심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줍니다. 롬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있는데 그 것은 거룩하고 살아 있는 예배를 몸으로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예배입니다. 초역전의 시대이고 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4-5번씩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겠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리버스 멘토링을 마음에 두셔야 합니다. 왜요? 세상의 어두움과 흑암이 내게 몰려오기 때문이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나에게 달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리버스 멘토링을 어디서 확인 하나요? 말씀과 예배입니다. 말씀과 예배를 통해서 리버스 멘토링을 받게 되는 데 그 곳이 예배당이고 교회인데, 이 것을 마음에 두고 오늘 본문을 봅니다.
1. 본문의 내용입니다. 1-5.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무엇보다도 요나답이 이 사건에 개입을 합니다. 요나답은 큰 아버지의 아들, 사촌 형 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심히 간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암논의 위치와 힘과 능력에 그 어떤 것을 위하여 간교함을 드러냅니다. 사람을 잘보고 잘 참고하여 결정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데 암논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환란을 당하고 다윗의 가문에 환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28-35.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그들이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습니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습니다. 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파수하는 청년이 눈을 들어 보니 보아라. 뒷산 언덕길로 여러 사람이 오는 도다. 요나답이 왕께 아뢰되 보소서 왕자들이 오나이다 당신의 종이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요나답은 이제 압살롬을 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나답이 떠나고 다윗이 힘들어 하고 괴로울 때에 다시 작은 아버지인 다윗에게 다가 옵니다. 위로를 하고 정확한 내용을 말해 줍니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얼마나 간사하고 얼마나 간교합니까? 이전의 압살롬의 일을 생각한다면 어디 다윗 왕에게 나타납니까? 세상과 세상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잘 판단하지 못하고 바르게 결정하지 못하고 통합적인 통찰력이 없으면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환란이 매듭되지 않습니다. 이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인데 그러면 이 본문의 내용이 무엇을 말씀하나요?
1. 다윗의 가정사입니다. 그 중에 다윗의 삶입니다. 현실적으로 다윗이 걸어온 삶의 발자취인데 자녀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달라는 사람들의 문제 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암논은 다윗의 장자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암논 에게 다음 왕권이 주어질 것입니다. 야심이 컸던 압살롬은 세 번째 왕자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정치적 야심을 채우던 사람이 바로 다윗 왕의 세 번째 형인 삼마 혹은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 이었습니다. 암논과 압살롬, 그리고 요나답은 결국 친구이면서 사촌지간 입니다. 하지만 암논은 앞으로 왕이 될 사람이고, 요나답은 신하로써의 처신을 해야 할 위치로 보면 하늘 과 땅 입니다. 암논과 압살롬과 요나답의 관계의 형성에서 빚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찮은 일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탄은 가장 호감이 가는 일로 우리를 끌어 들입니다. 가장 호감이 가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감정의 문제로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암논이 이복동생 중에 다말이라고 하는 누이동생을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14절 이후에 다말을 내어 쫒는 일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미워하는 미움이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그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 안에서 인격과 도덕적인 바탕을 가진 사랑이 아니라 깊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일수록 목적 이후에는 떠나고 버리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암논이 그렇습니다. 짝사랑 하는 일로 인해서 마음의 병인 상사병이 걸렸습니다. 짝 사랑 때문에 발생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요나답이 개입을 합니다. 여러분, 만남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지만 관계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기준으로 따라가면 얼마 못 되어 폭풍과 환란이 밀려 옵니다. 압살롬이 그의 형 암논을 죽이고 결국에는 다윗 왕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고 고통을 겪고 방랑생활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2. 간교한 사람을 주의해야 환란을 겪지 않습니다. 여러분, 환란이 떠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12장과 13장의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일어나는 환란의 이유와 환란이 매듭지지 않는 이유를 은혜로 나누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의 허물 때문이었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이 자녀들에 대하여 화목과 용서의 교육과 권면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윗이 주의 깊게 영적인 통찰력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암논과 압살롬의 관계를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번적인 환란의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어두움과 흑암의 권세를 잡은 사탄이 개입했기 때문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환란이 무조건 두렵고 고생이 되고 삶의 파괴만을 가져 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환란과 고통은 요셉이 알지 못하는 것을 경험케 하고 요셉과 요셉의 가족과 민족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직임을 맡기시기에 충분하고 필요하도록 하시기 위한 환란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쉽게 넘길 수 있는 사건이 직접적으로 환란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것이 무엇입니까? 압살롬과 다윗이 환란과 고통을 받게 되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가까이 다가오는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환란입니다. 무엇일까요? 요나답이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성심히 간교한 사람입니다. 정치적 판단이 빠른 사람입니다. 같은 사촌지간이지만,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고, 친구 지간이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관계이었습니다. 내가 이 친구에게 어떻게 함으로써 이 친구가 왕이 되었을 때 내가 그 어떤 권세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사람입니다. 암논이 죽은 다음에 소식을 듣고 당황하는 다윗 왕 앞에 나타나서 감언이설로 금방 모습을 바꾸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암논이 다말로 인해서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왜 병이 들었습니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것 가지고 걱정합니까? 내가 해결해 드리지요. 대책을 알려 주었습니다. 정당하지 않는 방법과 허물의 비결을 암논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암논은 이 요나답이 알려준 방법대로 그대로 수행하면서 아버지도 속이고, 누이동생도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였습니다. 여러분, 옳지 않는 방법과 정당하지 않는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면 많은 사람들이 속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떠나고, 세상의 길을 가려면 여러 사람들을 속여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를 떠나려면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암논과 이 요나답의 모습에서 은혜의 자리를 떠난 삶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요나답이 알려준 방법대로 암논은 그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요나답은 그만이었습니다. 그를 책임질만한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었고, 그는 대낮에 누이동생을 내어 쫒았습니다. 나가지 않겠노라고, 이런 행동은 조금 전의 나에게 행한 악보다 더 큰 악이라고 그렇게 충고했지만, 그런 충고도 들을 만한 암논이 아니었습니다. 다말은 울면서 암논의 처소에서 쫒겨 났습니다. 공주들은 채색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도 같은 형제라도 남자들은 공주들이 거하는 궁에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아버지로 하여금 다말이 암논의 처소에 오도록 그렇게 간사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채색 옷도 찢겼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머리에 썼던 베일도 벗겨졌습니다. 여성으로써 자신의 명예와 체면을 세워줬던 베일도 벗겨졌습니다. 대낮에 쫒아냈습니다. 같은 형제였던 압살롬이 자기의 누이동생이 그러한 환경에 처해있음을 듣고서 누이동생을 자기의 처소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시방은 잠잠한지라 시방은!!! 이 표현은 지금 일을 끄집어 낼 때가 아니라고 하는 압살롬은 기회를 봅니다. 압살롬 3번째 아들입니다. 자기에게 왕권이 오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 이 압살롬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무언가 기회를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뜻하지 않은 나쁜 일이 더 큰 잘못된 일을 모색 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의 속마음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버선목 뒤집어 보듯이 마음을 뒤집어 보여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지금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이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장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장자의 기회를 생각을 했습니다. 잠잠하자. 기회를 보았습니다. 21절은 다윗이 자기 형제들 간에 일어난 이 모든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심히 노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화를 낸 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면서 나쁜 놈들, 나쁜 자식들 하면서 그만 두시는 것이 맞습니까? 이 가정의 엄청난 혈육의 투쟁과 살육이 벌어진 것은 다윗의 책임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면서도 화를 내는 것으로 그만 두었던 책임은 압살롬이 2년 후에 비로소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왜 압살롬이 2년을 기다렸습니까?
2-1. 첫 번째는 다윗왕의 처리입니다. 아버지가 아셨으니까. 아버지가 해결하시겠지. 나라의 왕일 뿐 아니라 재판장이시니까 아버지가 해결하시겠지. 재판장으로써, 왕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2년이나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재판장으로서의 역할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재판장과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나단선지자로 부터 양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으면서 가난한 양 한 마리. 자식처럼 간수했고 그 양 한 마리를 빼앗아서 부자가 손님을 대접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단선지의 말을 막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안 들어도 그 나쁜 놈은 죽여야 되는데 그 이유를 이스라엘에는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왕으로써, 재판장으로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 왜 내랴야 합니까? 레 20장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던 다윗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자신의 아들들에 대하여 말씀의 선고를 내리고 살리는 방법의 은혜를 모색해야 되는데 그는 판결도 내리지 못하고 은혜의 길을 놓쳤습니다. 2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그냥 보냈습니다. 그냥 흐지부지 되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동안에 압살롬은 이제 2년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아버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는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자기 목장에 양털을 깎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 년에 2-3차례 양털을 깎는 일이 있었는데, 그는 2년 동안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기다렸습니다. 치밀한 사람이었습니다. 축제입니다. 그 축제에 압살롬은 왕을 찾아가서 왕과 모든 왕자들이 자기의 목장에 참여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왕이 말합니다. 내가 가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그러지 말고 너희들끼리 가서 해라. 간청을 했으나 내가 누가 될까 염려해서 왕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압살롬의 간청을 사양하고 오히려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압살롬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다가갑니다. 왕이 오지 않는다면 왕자들이라도 보내 주세요. 왕자들까지 갈 일이 뭐가 있냐? 너희들끼리 해라. 그렇지만 압살롬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모든 아들을 저와 함께 보내니라. 여러분, 간청한다고 하는 표현을 무려 3번이나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간청도 기도해보고 들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끈질긴 간청 속에 나쁜 일도 있고 휘말릴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과 미래를 꿈꾸고 소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종합적인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들어줄 간청인지 아닌지? 알아야 실수를 하지 않고 메이지 않습니다. 이제 왕자들이 왔습니다. 부하장수들에게 지시해 놓았습니다. 암논이 술이 취할 때 되면 내가 지시하면 그를 죽여라. 이미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문이 납니다. 압살롬의 모든 부하들이 왕의 아들들을 다 죽였다는 잘못된 정보였지만 왕은 옷을 찢고 땅에 엎드러지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 때에 암논의 친구이면서 사촌이었던 그리고 그의 범죄를 부추겼던 요나답이 또 다시 나타납니다. 왕이여, 다 죽지 않았습니다. 암논만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여 괘념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암논만 죽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왕을 위로 합니다. 한 때는 암논 편이 되어서 왕세자의 편에서 권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싶었던 요나답 이었습니다, 암논이 죽자 다시금 다윗 왕에게 다가와서 다윗 왕을 위로하면서 왕의 마음을 사려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혹시 요나답처럼 처신하지 않습니까? 이중적이 플레이를 하고 있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요나답 같은 존재가 횡행하는 그런 사회 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세상의 일이라 그렇겠지?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살잖아요? 보지 않고, 듣지 않을 수 없지요. 일본에 살면서 일본 문화 떠나서 살 수 없지요. 왜요? 우리가 세상위에 발을 올려놓고 살고 있잖아요. 무대가 흑암과 어두움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는 그런 삶이 나의 삶의 분위기가 되고 주된 삶의 모습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 옵니다. 여러분, 왜 이런 환란이 이어질까요? 믿음의 통찰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교한 사람의 말을 쉽게 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몫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함이 충만할 때 성령이 충만 했을 때에 영적인 시인이 되었습니다.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하지만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이 멀어져 있을 때 그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과 믿음의 통찰력과 리더쉽이 여기서 요구됩니다. 힘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나 놓았을 때나 변함없이 자신의 길을 가듯이, 신앙과 믿음의 길을 갈 때에도 유익이 되거나 희생이 될지라도 자리를 마다 않는 사명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내일과 미래의 소망을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조명하시고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입니다. 이 것이 가정과 삶에 녹아지고, 이런 삶의 모습들이 되었을 때에 세상의 어두움과 흑암과 사탄의 세력을 구분 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적용은 MZ세대와 알파세대와 기성세대가 다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제외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일에 분명하고 단호한 일이 있습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작은 일이라도 단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합적인 판단과 통찰력이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 상대방의 입장에서 뿐만아니라, 주님께서 계획하시고 보고 계시는 상대방의 내일과 미래를 위하여 권면해야 합니다. 그러면 환란의 문제에 개입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상대방이 직면하고 있는 형편이나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전에는 함부로 비평하고 책망하고 평가절하 해서는 아니 됩니다. 잠시 전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미래를 위하여 오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 했습니다. 애플사의 CEO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 란 말을 했습니다. 당시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생과 축하하는 재학생들에게 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준 표현입니다. 배부름보다 배고픔에 머물러라! 그 고통이 나를 깨어 있게 하리라! 똑똑함보다는 늘 나 자신을 모자람 때문에 배움의 길을 떠나지 않게 된다는 생각을 하라! 그 비움이 자신을 더욱 채워줄 것이며 그 비움이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하고 그 비움이 새로이 열리는 시대를 보고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왜 배고픔에 머물러야 됩니까? 왜 모자람에 머물러야 합니까? 왜 꼰대 세대까지 이르렀는데도 배움의 길을 가야 합니까? 다른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내일과 미래를 위하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현실의 여건에 맞추어 안주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렵게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보고 살았습니다. 그 비전으로 공부를 했고 그 비전으로 살았습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친구들을 평가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두움과 흑암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애플을 창업했습니다. 그의 스탠포드 대학의 연설은 부모 잘 만나서 비싼 등록금 내고 졸업하는 졸업생에게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역경을 즐겨 위대한 가치를 창출하라고 강조했던 연설입니다. 이 같은 적용은 MZ세대와 알파세대와 기성세대가 다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제외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락한 삶이 나를 달콤하게 하지만, 달콤한 말이 좋게 들리지만 그로 인하여 성장이 멈출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려움과 고통이 힘들게 하지만, 그로 인하여 새로운 성공을 찾아내는 계기가 또한 됩니다. 주님께서 필요한 사람과 채워야 할, 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 복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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