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 예화
겔18: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참을성을 잃지 않습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화가 났을 때라도 건설적인 길을 모색합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행운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좋은 예법의 선지자입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화를 낼 권리가 있다고 느낄 때 조차도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가장 나쁜 점보다는 가장 좋은 점을 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데 있어 현명하고 비둘기처럼 악의 없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사악함을 고소한듯이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상한 그리스도인은 그의 마음과 생활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긍휼의 댓가
불란서 혁명 때의 일이다. 어느 무더운 날 여학생 셋이 길을 가고 있는데 한 모퉁이를 돌아서자 다리에 상처를 입은 젊은이들이 도움을 청했다. 그때 두 여학생은 못 들은 체하며 지나쳤으나 한 학생은 구급약을 구해와서는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그러자 그 젊은이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아가씨는 어디 사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영국에서 온 학생으로 대학 기숙사 3호실에 있어요. 이름은 매리예요' 그 후 두 달이 지난 한밤중에 어떤 젊은이가 기숙사에 달려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데리고 어딘가로 달려갔는데 얼마 후 기숙사에 난동이 일어나 모든 학생들은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긍휼을 베풀며 살자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음껏 인생의 향락을 즐기던 탕자는 결국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합니다. 아버지께서 자기를 받아 주실 지, 내쫓지는 않으실 지 몹시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를 위해 잔치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데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그런 행동은 마치 100억을 빚진 사람이 그 빚을 탕감 받은 후, 자신에게 3만원 빚진 친구를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긍휼 없는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휼은 부모가 자녀를 불쌍히 여기듯 다른 사람의 아픔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긍휼을 베푸는 삶
긍휼 없는 죄는 긍휼 없는 형벌을 받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긍휼 때문에 살면서 긍휼을 베풀지 못하고 삽니다. 차머스라는 분이 쓴 「정오의 강풍」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강 이런 얘기입니다. 건축 기사인 피어홈은 도처에 많은 다리와 터널을 건설했습니다. 이 때문에 큰 명성을 얻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질병과 실패로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낙향하여 삽니다. 피어홈의 이웃에 한 몰인정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매우 사나운 개를 기르고 있어 피어홈은 늘 위협을 느꼈습니다. 피어홈은 개가 너무 사납다고 여러 번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오히려 번번이 피어홈은 모욕만 당했습니다.
그러던 중 불행은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그 개가 피어홈의 어린 딸을 물어 죽인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일제히 개 주인인 이 노인을 비난했습니다. 파종기가 되었지만 그 노인에게 한 톨의 곡식 종자를 주거나 팔지 않았습니다. 그 노인은 맨 밭을 간 후에 씨를 달라고 애걸하였지만 그 노인이 거리에 나오면 사람들은 냉소하였습니다. 그런 노인의 모습을 본 피어홈은 다음날 아침 일찍 광에서 자신이 쓸 씨앗 반 되를 가지고 나와서 열심히 노인의 밭에 씨를 뿌려 주었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노인의 밭은 파릇파릇한 반면 피어홈의 밭은 그 일부가 아직도 빈 땅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긍휼은 원수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리도록 요구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비록 우리 자신의 밭 일부가 맨 땅으로 남겨집니다. 긍휼을 베푼다는 것은 베푼 후에 내가 손해 보는 일입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강원도 모사단 모대대 브라보포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브라보포대 김병장은 작업 중에 낮잠을 자다 중대장에게 걸렸다. 김병장은 5분 내로 완전군장하고 그만 돌라고 할 때까지 계속 연병장을 돌라는 지시를 받았다. 때는 6월 한여름. 군대의 여름은 참 덥다. 김병장이 더위와 싸워가며 군장을 돌고 있는 동안 중대장은 포대본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중대장은 김병장이 보기가 안 됐던지 포대본부에서 근무하던 계원을 불렀다. 중대장:야,쟤 그만 돌고 반성문이나 써오라고 해. 계원:예,알겠습니다.그러나 계원은 귀차니즘이 발동했는지 연병장까지 안 나가고 사열대 앞에서 소리를 쳤다. 계원:김병장님! 중대장님이 반성문 쓰시랍니다! 그러자. 김병장은 속으로 갖은 욕을 다해 가면서 ‘방독면’을 쓰기 시작했다
강도와 신경통
어떤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주인 몰래 물건만 훔치고 달아나려고 했는데 그만 주인에게 틀키고 말았다. 강도는 자신의 보호를 위하여 총을 겨누었다. "손 들어!" 주인은 총을 보고 놀라서 왼쪽 손을 들었다. 강도는 주인이 오른손으로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권총을 뺄 것 같아서 고함을 질렀다. "오른 손도 들어!" 주인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강도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른쪽 팔은 지금 신경통을 앓고 있어서 들 수가 없소." 주인의 신경통이라는 말에 강도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신경통이요? 실은 나도 신경통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신경통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강도의 태도가 누그러져 자연스럽게 신경통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강도는 물건을 훔치러왔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신경통의 치료 방법 등에 관하여 주인과 의견을 나누었다. 주인 또한 강도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단지 이웃집 남자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경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이야기는 코미디나 개그 이야기가 아니라 오 헨리의 소설 "강도와 신경통"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걷지 못하는 강하지
어떤 사람이 '강아지를 팝니다'라는 광고를 냈더니, 어린 소년 하나가 찾아와서 값을 물었다. "한마리에 만오천 원...." 주인의 말에 실망한 소년이 "주머니에 칠천 원 밖에 없는데... 그래도 강아지를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무렴, 보여주고 말고." 털뭉치 같은 조그만 강아지 다섯 마리가 소년의 눈앞에 펼쳐졌다. 다섯 마리를 하나씩 살펴 가던 소년이, "이 강아지는 다리를 절름거리는군요. 이 강아지를 사고 싶어요, 모자라는 돈은 조금씩 갚아드릴께요. 네?" "절름발이를? 그건 구색 맞추기로 보여준거야... 평생 다리를 절텐데 어떻게 키우 겠니?" "이 강아지는 많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니까 꼭 제가 샀으면 좋겠어 요." 강아지의 주인은 다리가 온전치 않은 강아지를 사려는 소년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소년의 간청이 얼마나 간절한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제가 나머지 돈을 꼭 갚을께요. 고맙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고 뒤돌아 가는 소년의 팔에는 절름발이 강아지가 행복한 듯 쏘옥 안겨 있었다. 소년의 걸음을 무심코 바라보던 주인은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걷지 못하는 강 아지를 안은 그 소년도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던 것이다.
따뜻한 사람들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을 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뉴욕에는 케네디 공항 외에 또 하나의 공항이 있다. 그 공항은 라구아디아 공항이다. 본래 이 “라구아디아”라는 이름은 뉴욕 시민이 아주 사랑했던 유명한 한 시장의 이름이다. 그런데 그가 시장이 되기 전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이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추운 겨울 어느 날 한번은 라구아디아 판사가 재판석상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노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들 없이 외롭게 사는 분이었다. 그는 돈도 없고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20불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판결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판사가 그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 노인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한다. “판사님, 저에게 한번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잠시 동안 그 노인장을 조용히 굽어보던 판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맞습니다. 노인장에게는 정말 긍휼이 필요하군요. 그러나 노인이 잘못한 그 20불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침 제게 10불이 있군요. 제가 이 10불을 노인장을 대신해서 변상하겠습니다. 노인장을 춥고 배고프도록 버려둔 데에는 저의 책임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0불이 더 필요한데 여기 계신, 이 법정에 계신, 방청하시는 여러분! 우리 사회와 여러분도 이 노인이 춥고 배고파 방황하도록 그리고 도둑질하도록 내버려둔 데, 공동책임이 있습니다. 이 노인을 위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좀 하시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 재판관의 명판결을 보고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여 노인을 구한다. 그리고 뉴욕시민들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인정하여 그를 시장으로까지 세우게 된다. 우리의 가슴도 이렇게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넓었으면 좋겠다. 춥고 힘든 이 세상에, 굶주린 이웃에게 사랑의 불씨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격려하기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경기중 히딩크 감독은 골을 넣지 못하고 지쳐 있는 설기현 선수에게 "너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수 있어. 힘을 내!" 하고 격려했습니다. 설기현은 동점골을 터트립니다. 페널티 킥을 실축한 안정환을 붙들고 "다시 너를 믿을 거야. 너는 다시 골을 넣어서 모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 하고 격려했습니다. 안정환은 연장전에서 시원하게 헤딩슛으로 역전골을 터트렸습니다. 안정환은 히딩크 감독이 자신을 믿고 격려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내 머리 위에 골을 얹어 놓는 것 같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칭찬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칭찬은 잘한 것을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칭찬을 많이 들어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사람들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눅6:12)고 합니다. 왜냐하면 칭찬을 자꾸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의 마음은 얼마든지 격려할 수 있으며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