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鐘이 있는 풍경 / 홍해리
1 종은 혼자서 울지 않는다 종은 스스로 울지 않고 맞을수록 맑고 고운 소리를 짓는다 종鐘은 소리가 부리는 종 울림의 몸, 소리의 자궁 소리는 떨며 가명가명 길을 지우고 금빛으로 퍼지는 울림을 낳는다
2 종은 맞을수록 뜨거운 몸으로 운다 나의 귀는 종 소리가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종은 나의 꿈을 깨우는 아름다운 폭탄 그 몸 속에 눈뜬 폭약이 있다 위로의 말 한마디를 위하여 종은 마침내 소리의 집에서 쉰다
3 종은 때려야 산다 선다 제 분을 삭여 파르르파르르 떨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으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호박 / 홍해리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머나 먼 슬픔 / 홍해리
나무들은 꼿꼿이 서서 꿈을 꾼다
꿈에 젖은 숲은 팽팽하다 숲이 지척인데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적막에 들지 못하고 지천인 나무들에 들지 못하고 눈을 들면 푸른 게릴라들이 국지전 아닌 전면전을 감행하고 있다 녹음 아래 노금노금 가고 있는 비구니의 바구니 안 소복히 쌓이는 그늘, 그늘 속으로 이엄이엄 질탕한 놀음이 노름인 줄 모르는 한낮의 머나먼 슬픔.
지독한 사랑 / 홍해리
나, 이제 그대와 헤어지려 하네 지난 60년 동안 나를 먹여 살린 조강지처 그대를 이제 보내주려 하네 그간 단단하던 우리 사이 서서히 금이 가고 틈이 벌어져 이제 그대와 갈라서려 하나 그대는 떠나려 하지 않네 남은 생을 빛내기 위해 금빛 처녀 하나 모셔올까 헤어지는 기념으로 사진도 두 번이나 찍고 그대와 나 사이를 이간질하던 나의 나태와 무관심을 나무랐지만 그대를 버리기 이렇게 힘들고 아플 줄이야 이 좋은 계절 빛나는 가을에 오, 나의 지독한 사랑, 6번 어금니여 나 이제 그대와 작별하려 하네!
詩 / 홍해리
1 슬픔보다 순수한 언어로 말의 집을 이루고자 했었다
가장 아름답고 힘있는 살아 있는 말로
이리저리 엮고 얽어 놓으면 별이 보이고 새들도 날아와 우짖거니 했으나
단지 지붕을 인 벽일 뿐이었다
향그런 흙과 바람 시원한 내가 흐르고 햇빛이 찬란히 비춰 주기만 한다면
새싹이 트일 일이었다.
11 부드러운 혀로 쓰다듬고 눈으로 백 번 천 번 핥으며 가슴으로 너를 안고 싶었다
몇 채의 집을 지으면서도 흙벽돌 하나 제대로 쌓지 못하고 벽도 바르지 못한 채
무허가 판자집 철거민의 꿈을 안고 안타까울 뿐
너는 어디에도 없이 막막한 허공이 끝없이 지고 있다.
(3인시집『元旦記行』1981)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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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를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언제나 활기차고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시어들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오늘이 선물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자 합니다.
호박, 멋진 시,
감사히 읽었습니다.
집 마당에 호박에 열댓 개 달렸습니다.
늙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