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한 시간 내에 두 가지 일이 생긴 셈이었다.
오랫동안 두려워하며 기다리던 소식, 그리고 이 정찰, 또다른 통보.
기민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타난,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 중 첫번째.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저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까?
결코 수가 줄어들지 않는 케이프타운의 부식동물들.
벗고 다녀도 추위를 타지 않고, 밖에서 잠을 자도 아프지 않고, 밥을 굶어도 쇠약해지지 않고, 술기운으로 속에서부터 따뜻해지고, 핏 속에 든 전염병과 감염병도 술의 불길에 타버리는 사람들. 잔치가 끝난 후의 뒤처리꾼들.
마른 날개와 반들반들한 눈의 무자비한 파리들.
나의 상속인들.
울리던 소리가 모두 잦아들고, 바닥을 밟는 발바닥 소리도 단조롭고 밋밋하기만 한 이 텅 빈 집안으로, 나는 얼마나 더 걸음으로 들어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네가 여기에 있어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줬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나는 껴안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안기기 위해 껴안는다.
우리는 미래의 팔에 안기도록, 우리들 자신이 죽음을 넘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우리의 자식들을 껴안는다.
내가 너를 껴안았을 때는 늘 그랬던 거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기 위해 그들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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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남자에게 음식을 주느냐고?
이 개(틀림없이 훔친 개다)가 졸라대면 먹이를 주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너한테 젖을 먹인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줄 정도로 충만하기 위해서다. 충만하니까 주는 거다.
그보다 더 깊은 충동이 어디 있겠니?
노인들도 그 쪼글쪼글한 몸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주려고 하는 법이다.
주고자 하는, 살지게 하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
죽음이 그의 첫 화살을 내 가슴에 겨냥했을 때, 그것은 과녁에 정확하게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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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굴러떨어지게 될 참호의 가장자리에서 있는 죄수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사격수들에게 애원해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농담을 해보기도 하고, 뇌물을 써보기도 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줘보기도 한다.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주기도 하고, 등에 걸친 옷을 벗어주기도 한다.
군인들은 웃는다. 결국에는 그들이 모든 걸 다 갖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죄수들의 입속에 있는 금니까지도 말이다.
내가 방심한 사이에, 유리창을 통해 텅 빈 침대 위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텅 빈 집과, 푸른 하늘 아래 순박하고 인적 없는 폴스만의 모습이 느닷없이 덮치듯 떠오를 때.
내가 인생을 보냈던 세계가 또렷이 나타나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의 일부가 아니라고 문득 느껴질 때.
그럴 때 나를 강타하는 고통의 충격 외에 진실이란 없다.
내게 있어 하루하루 산다는 건 내 눈을 피하고, 움츠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남아 있는 유일한 진실은 죽음이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걸 참을 수 없다.
내가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진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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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을 안락사시켜야 할 것 같네요." 내가 말했다.
"너무 늙어서 다른 집에 보낼 수도 없으니까요."
바위에 물이 부딪히듯 나의 말이 그의 침묵에 부딪혔다.
"고양이들을 어떻게든 처리해야겠어요." 내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당신도 내 입장이 되면 똑같이 느낄걸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 아니다. 정말로, 사실이 아니다.
조만간, 어느 겨울밤에, 그의 혈관 속에 있는 인위적인 불꽃이 더이상 그를 지탱해줄 수 있을 정도로 뜨겁지 않게 되면, 그는 죽을 것이다.
그는 양팔로 가슴을 감싼 채 문간이나 골목에서 죽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개나 다른 개가 곁에서 구슬픈 소리를 내며 그의 얼굴을 핥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의 시체를 수레에 싣고 가버릴 것이고, 개는 거리에 혼자 남겨질 것이고, 그게 마지막일 것이다.
방도도 없고, 유산도 없고, 거창한 무덤도 없이.
"당신을 위해 소포를 부쳐드릴게요."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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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았을 때, 그곳을 즉시 떠났어야 했다.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나 내가 보았던 걸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떠나는 대신, 세 남자가 날 줄 모르는 새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얼이 빠져 닭장 앞에 서 있었다.
내 곁에서 손가락으로 철망을 움켜쥐고 있던 아이도 그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너무나 어렵지만 너무나 쉬운, 죽이는 일, 죽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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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아이들, 나는 생각했다. 플로렌스 자신도 철과 다르지 않다.
철의 시대. 그다음에 오는 청동의 시대.
그러한 순환주기에서, 점토의 시대, 흙의 시대 같은 더 부드러운 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걸릴까?
국가를 위해 싸울 아들들을 낳는, 심장이 철로 된 스파르타 부인.
'우리는 이애들이 자랑스러워요.' 우리.
살아서 방패를 들고 집에 와라, 아니면 죽어서 방패에 실려 집에 와라.
그렇다면 나는? 내 심장은 이 모든 것 가운데 어디쯤에 있는 걸까?
내 유일한 자식은 수천 마일 떨어진 안전한 곳에 있다. 곧 나는 연기와 재가 되겠지.
그렇다면 어린 시절이 멸시당하고, 아이들이 서로에게 웃지도, 울지도 말아야 하고, 주먹을 망치처럼 공중에 들어올리라고 가르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게 내게 무슨 의미지?
이 시대는 정말로, 땅에서 부풀어오른, 잘못 태어나고 기괴한, 제때가 아닌 시대인 걸까?
결국, 철의 시대를 도래하게 만든 건 화강암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니?
우리에게는 푸어트레커들이, 수세대에 걸친 푸어트레커들이 있지 않았니?
험상궂은 얼굴에 입술을 꼭 다문 채, 애국에 대한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을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조국을 위해 죽겠다고 맹세하는 아프리카너 아이들이 있지 않았니?
온스 살 리어버, 온스 살 스테르버. 규율, 일, 복종, 자기희생의 낡은 양식.
죽음의 양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때로는 운동화 끈도 묶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백인 광신도들이 아직도 있지 않니?
처음부터 끝까지 이 무슨 악몽이란 말이냐! 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제네바 정신.
검은 옷을 입고, 피가 묽고, 몸이 영원히 차갑고, 사후 세계에서 손을 비비며, 냉담한 미소를 짓고 있을 칼뱅.
양편 군대의 교조주의자들과 마녀 사냥꾼들 속에서 다시 태어나 승리를 거둔 칼뱅.
이 모든 걸 두고 떠났으니 너는 얼마나 운이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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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했다.
어머니, 저를 내려다보세요, 손을 내밀어주세요!
오싹한 전율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흘렀다.
눈을 감으니 어머니가 보였다.
노인이 입는 칙칙한 옷을 걸치고 얼굴을 가린 채 내 앞에 나타난 어머니.
"저에게 와주세요!"나는 속삭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지 않으려 했다.
활공하는 매가 그러듯 팔을 벌린 어머니는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더욱더 높이 어머니는 내 위로 올라갔다.
구름층에 도달해 그곳을 뚫고 계속 올라갔다. 일 마일을 올라갈 때마다 어머니는 더 젊어졌다.
머리는 다시 검어졌고, 피부는 팽팽해졌다.
낡은 옷이 마른잎처럼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자 단춧구멍에 깃털이 꽂힌 푸른 드레스가 드러났다. 어머니에 관한 나의 최초의 기억에서 그녀가 입고 있던, 세상이 젊고 모든 게 가능했을 때의 드레스였다.
어머니는 계속 올라갔다.
젊음의 완벽함 속에서, 변치 않고, 미소 짓고, 황홀해하고, 망각하며, 천국의 가장자리까지 계속 올라갔다.
"어머니, 저를 내려다보세요!" 나는 텅 빈 욕실에 대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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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처 부위를 두 손가락으로 꼭 누르고 있는 동안은 피가 거의 멈췄다.
그러나 내가 힘을 풀면 피가 다시 끊임없이 나왔다.
그건 피였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네 피나 내 피와 똑같은 피였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진홍색이고 그처럼 검은 것을 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젊고 탄력 있고 우단처럼 검은 피부에 피가 흐르니 그런 느낌을 받은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내 손에 묻었을 때도 보통의 피보다 더 짙고 더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그걸 응시하며 매혹되면서도 두려워하고, 완전히 망연자실해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망연자실함에 완전히 빠져서, 긴장을 풀고, 지혈을 위한 조취를 취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째서 그럴까?
지금 자문해본다. 그리고 답해본다.
피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피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삶을 사는 우리 사이에 분산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소속이 같은 생명의 웅덩이.
주어진 게 아니라 빌린 것.
서로 간의 신뢰 속에서 공동으로 보존해야 하는 것.
우리 안에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인 것.
실제로는, 우리가 그 안에 살기 때문에.
함께 돌아온, 피의 바다.
이게 세상이 마지막에 다다를 때 처하게 될 상황일까?
모두의 피.
차갑고 푸른 시베리아 하늘 아래에 펼쳐진 검붉은 바이칼호, 주변의 얼음 절벽, 끈적끈적하고 느릿느릿한 피가 찰싹대는 새하얀 해안들.
원래 상태로 복원된 인간의 피. 피의 몸.
모든 인간의 피? 그건 아니고.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는, 철조망이 둘러싸고 햇볕이 불처럼 내려쬐는 카루의, 토담이 둘러쳐진 댐에 아직도 괴어 있는, 아프리카너들과 그들에게 공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의 피.
신성하고도, 혐오의 대상인 피.
그리고 매월 외국 땅에 피를 흘리는 너, 내 살에서 나온 살, 내 피에서 나온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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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동안 나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지금 나를 좀먹는 병은 토성이 보낸, 메마르고 피도 없고 느리고 차가운 병이다.
그 병에는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는 점이 있다.
이러한 종양을, 이 냉혹하고 추잡한 종기를 잉태했다는 것.
이 새끼들을 자연스러운 기간 이상으로 품고 다니되 그들을 낳을 수도 없고, 그들의 배고픔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는 것.
날마다 먹는 게 더 많아지고, 자라지는 않지만 부풀고 치아와 발톱이 나고, 영원히 차갑고 탐욕 스러운, 내 속에 있는 아이들. 메마르고 또 메마른 것.
그들이 밤에 내 메마른 몸 안에서 위치를 바꾸고, 인간의 아이가 그러하듯이 몸을 뻗고 발로 차 는 게 아니라 각도를 바꿔 갉아먹을 새로운 곳을 찾는 걸 느끼는 것.
숙주의 몸에 까놓은 벌레의 알처럼, 이제 유충으로 자라 무자비하게 숙주를 먹어치우는 것.
내 안에서 자란 내 알들. 나, 내 것. 쓰면서도 몸서리가 쳐지지만 사실인 말들.
나의 딸들인 죽음, 내 진짜 딸인 너와는 자매가 되는 셈이지.
모성이 스스로를 놀리는 지점에 다다르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손에 피를 끈적끈적 묻히고 남자아이 위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쭈그렁 할멈.
지금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혐오스러운 이미지.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불로 죽는 것이 내게 남겨진 유일하게 품위 있는 죽음이다.
불속으로 걸어들어가, 섬유 부스러기가 타듯 활활 타고, 이 은밀한 동반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아직 써보지 못한 거칠고 작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움츠리는 걸 느끼는 것.
불에 타 없어지고, 제거되어, 세상을 깨끗하게 남겨두는 것.
기괴한 성장과 유산품은, 주어진 기간을 넘겼다는 표시다.
이 나라도 그렇다.
불을 위한 시간, 종말을 위한 시간, 잿더미에서 무엇인가가 자라야 할 시간.
앰뷸런스가 왔을 때, 나는 몸이 너무 뺏뻣하게 굳어서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줘야 했다.
내가 끈적끈적한 손가락을 상처에서 떼자 다시 상처 부위가 벌어졌다.
"피를 많이 흘렸어요." 내가 말했다.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앰뷸런스에서 나온 사람이 짤막하게 말했다.
그는 소년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뇌진탕이군요," 그가 말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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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새로운 배터리가 필요 없어요.
이해 못하겠어요? 굳이 설명을 해야 하나요?
이 차는 낡았고, 이제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에 속하지만 굴러가긴 하죠.
나는 그 세계에서 남겨진 것 중 아직까지 작동하는 것을 고수하려고 할 뿐이에요.
내가 그걸 사랑하든 싫어하든, 그 점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는 그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에요.
다행히도, 나는 변해버린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 세계에서는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시동이 걸리리라고 확신할 수 없어요.
내 세계에서는 자동시동장치를 이용하죠. 그 방법도 안 되면 크랭크를 돌리고요.
그 방법도 안 되면, 다른 사람에게 밀어달라고 하면 되죠.
그래도 차에 시동이 안 걸리면,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집에 있으면 되고요.
내가 속한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요. 나는 거기에서 편안해요. 그게 내가 이해하는 세계이구요.
내가 왜 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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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중에도 딸에게 얘기하지 마세요.
그건 너무 늦어요. 딸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그의 힐난을 받으니, 얼굴을 얻어맞은 듯했다.
"당신이 이해 못하는 게 있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내 딸을 이곳으로 다시 부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애가 그리울 순 있어도 그애가 여기 있는 건 원치 않아요.
그래서 그리움이라는 말을 쓰는 거예요.
그리움이란 먼길 을 가야 하는 거예요.
지구의 끝까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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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한테 아이들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요.
이게 남자한테도 똑같은 걸 의미하는지 모르고요.
자기 몸으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는 거예요.
특히 첫아이는, 첫번째로 태어난 아이는 더욱 그래요.
자기 삶이 더이상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도 더이상 자기가 아니고, 아이와 같이 살아가는 삶이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가 실제로는 죽지 않는 이유예요.
우리는 단지 우리의 삶을, 우리 안에 잠시 머물렀던 삶을 물려주고, 뒤에 남겨지는 거예요.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껍데기에 불과해요.
내 아이가 뒤에 남기고 간 껍데기에 불과하죠.
그래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이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건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도 - 이런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당신이 이해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네요. 그러나 괘념치 마세요 - 떠날 때가 되니까 두렵군요.
그게 설령 손끝과 손끝이 닿는 것일 뿐이더라도,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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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디데스는 규칙을 만들어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에 관해서 썼단다.
그들은 규칙에 따라, 모든 계층의 적들을 예외 없이 죽였지.
죽은 사람들 대부분은 틀림없이, 무슨 끔찍한 오해가 있었으며, 그 규칙이 무엇이든, 자신들을 향한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나!' 이것이 목이 잘릴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항의의 말. 나, 나는 예외인데.
그들이 예외였을까?
사실대로 얘기하면, 우리는 말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모두 예외라고 주장할 것이다.
저마다 할 얘기가 있을 테니까 말이야. 우리는 모두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을 자격이 있지.
그러나 그런 걸 일일이 들어주고 예외를 따지고 자비심을 거론할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다시 규칙을 따른다.
그건 아주 애석한 일이지, 너무너무 애석한 일이지.
어쩌면 그것이 네가 투키디데스에게서 배울 점일 게다.
우리가 그런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게 너무나 애석하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런 시대로 들어가야 해.
그런 시대는 결코 환영 할 만한 것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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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굳이 빗속에 눕혀놓아야만 하나요?" 나는 타바니 씨에게 물었다.
"네, 그래야 해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누가 이런 거죠?"
나는 떨고 있었다. 한기가 몸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손이 떨렸다. 아이의 뜬 눈을 떠올렸다.
나는 생각했다.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무엇이었 을까?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목격했던 장면 중 최 악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눈을 떴고 다시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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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원했느냐고? 이 노부인이 원한 게 무엇이었느냐고?
그녀가 원 했던 건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드러낼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들에게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원했던 건, 그들이 그녀를 보내 버리기 전에 상처를, 아픔을 꺼내, 그들에게 들이밀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들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이 상처를, 모든 상처를, 이 모든 고통의 상처를, 그러나 우리가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상처는 우리 자신의 상처이기 때문에 결국 내 것인 상처를,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내 드레스의 단추 위쪽에 한 손을 갖다 대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 손가락은 새 파랗게 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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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거다.
죽은 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까?
아니. 죽은 자에게는 어떤 것도 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에게는, 깊은 잠을 잘 때, 암시가 주어질 수 있다.
나에게는, 언젠가 한때 내가 살아 있었다는, 살아 있다가 삶으로부터 강탈당했다는, 어떤 기억보다 더 오래되고 요지부동한 암시들이 있다.
요람에서부터 도둑질이 일어났다.
어린애를 훔쳐가고 그 자리에 놓아둔 인형이 키워지고 양육되었다.
내가 나라고 부르는 건 바로 그 인형이다.
인형? 인형의 삶? 그게 내가 살았던 삶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능력이 인형에게 주어진 걸까?
혹은, 그 생각은 다른 암시처럼, 번개의 번쩍임처럼, 천사가 지혜의 창으로 안개를 푹 찌르는 것처럼, 왔다가 가는 걸까?
인형이 인형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인형은 죽음을 알 수 있을까? 아니.
인형들은 자라고 말을 습득하고 걷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들은 나이를 먹는다. 그들은 시든다. 그들은 소멸한다.
불속으로 던져지거나 땅속에 묻힌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빼앗길 때, 그들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리에 그들이 하나의 표시로 남겨졌을 뿐인 삶을 빼앗길 때, 모든 기억에 앞서 망연자실하는 순간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그들이 아는 지식은, 텅 빈 채 바람만 든 인형의 머리처럼, 내용도 없고, 세상의 무게도 없다.
그들 자신이 갓난애가 아니라, 실제의 갓난애보다 더 둥글고 더 핑크빛이고 더 텅 비고 더 눈이 푸른 갓난애의 관념이기에.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모든 관념들처럼, 불멸하고 죽지 않는, 삶의 관념을 사는 것이기에 저승, 지옥. 관념의 영역.
지옥이 남극대륙의 얼음 속이나 화산의 분화구 아래와 같은 외떨어진 곳에 있다는 생각은 왜 필
요했던 걸까?
지옥이 아프리카의 발치에 있으면 왜 안 되는 걸까?
그리고 지옥의 존재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다니면 왜 안 되는 걸까?
"아버지, 제가 불에 타는 모습이 안 보이세요?"
아이가 아버지의 침대맡에서서 간청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잠에 빠져 꿈을 꾸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 했다.
그게 바로 내가 어머니의 기억에 그처럼 단단히 매달리는 이유다.
네가 그걸 알 수 있도록, 그 얘기를 지금 꺼내는 거다.
어머니가 내게 삶을 주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 만이 아니라 어머니 자신에게, 어머니의 몸에, 어머니의 몸에서 이 세상으로 나온 나의 탄생에도 매달린다.
나는 피와 젖 속에서 어머니의 몸을 들이 마시며 삶 속으로 나왔다.
그런 다음 강탈당했고, 그 이후로는 잃어버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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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어처구니없이 들린다면 미안해요." 내가 말했다.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
나는 절박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 절박한 마음이 자꾸 없어지려고 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니 집에서도 내가 쓰던 물건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내 주변에 살인과 타락이 일어나는 지역이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어져요.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내 안에서 뭔가가 누르고 자극해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 그러네요.
내가 조금 양보하면, 그것은 더 세게 밀어붙여요.
내가 안도감을 느끼고 굴복하면, 갑자기 세상은 다시 평범해져요.
안도감을 느끼며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죠. 나는 그 안에서 뒹굴어요.
수치심을 잃고, 어린아이처럼 수치심을 모르게 돼요.
수치심을 모르는 수치스러움, 이게 내가 잊을 수 없는 거예요.
이게 이후에 내가 견딜 수 없는 거예요.
이게 바로 내가 나 자신을 붙들고 길 아래쪽을 가리켜야 하는 이유예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길을 잃어버릴 테니까요. 이해하겠어요?"
퍼케일은 눈이 나쁜 사람처럼 핸들 위에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매의 눈을 가진 사람. 그가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무슨 상관이랴?
"그건 술을 끊으려고 하는 일과 같아요." 내가 말을 이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늘 노력해도, 자신이 슬그머니 되돌아가리라는 걸 처음부터 너무 나 잘 알고 있는 거죠. 그걸 안다는 게 수치스러워요.
너무나 따뜻하고 너무나 친밀하고 너무나 위안이 되어서 결국에는 더 큰 수치심이 몰려오죠.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치심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자살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사람은 삶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존재잖아요!
의지가 아닌 어떤 것이 마지막 순간에 작동하는 듯해요.
뭔가 이질적이고, 뭔가 생각도 없는 것이 결정적인 고비에서 엄습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돼야 해요.
그런데 그게 누굴까요?
내가 그의 그림자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굴까요?
나는 그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언젠가 당신에게 내 어머니에 대해 얘기한 적 있죠."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더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그분이 어렸을 때 자신의 몸 위로 수레바퀴가 구르는지 아니면 별들이 구르는지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는 얘기를 했었죠.
나는 평생 그 이야기에 매달렸어요.
만약 각자에게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내 이야기는 바로 그거예 요. 그게 내가 선택한 이야기예요. 아니면 그 이야기가 나를 선택했든가요.
나는 그곳에서 왔어요. 내가 시작된 곳은 거기예요.
당신은 나한테 드라이브를 계속할 거냐고 물었죠.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이스턴케이프에, 오테니카산맥에 가고 싶고, 프린스 앨프리드 고갯길의 정상에 있는 쉼터에 가보고 싶어요.
심지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지도는 필요 없어요, 태양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차를 모세요, 그곳이 나오면 내가 알아볼 테니까요. 쉬는 지점, 시작하는 지점, 중간 지점, 내가 세상에 합류한 지점 말이에요.
고갯길 정상에 나를 내려주세요, 그리고 가세요.
내가 밤과 별들과 유령처럼 희미한 수레가 굴러오길 기다리도록 놔두고 말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도가 있든 없든, 이제 나는 그곳을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왜냐고요? 그러고 싶은 욕망이 나한테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에요.
일 년 전이나 한 달 전이었다면 달랐겠죠.
욕망이, 어쩌면 내게 가능한 가장 심오한 욕망이 내게서 흘러나와 땅 위의 한 지점을 향해 나를 이끌었을 거예요. 이게 나의 어머니예요. 나는 그곳에 무릎을 꿇고 말했을 거예요.
이게 나한테 생명을 주는 거예요.
신성한 땅. 무덤으로서가 아니라 재생의 장소로서 신성한 땅. 땅에서 비롯되는 영원한 재생.
이제 그 욕망이,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그 욕망이, 사라지고 없어요.
나는 이 땅을 더는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게 단순한 거예요.
나는 거세당한 남자 같아요. 성인이 되어 거세당한 남자 말이에요.
나는 그런 일을 당한 남자에게 삶이 어떨지 상상해봐요.
전에 사랑했던 것들을 바라보며, 기억을 통해 자신이 아직도 그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더이상 사랑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남자의 모습을 상상해봐요.
사랑은 어떤 거였지?
그는 옛날에 느꼈던 감정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제 주변에는 온통 단조로움과 고요와 정적뿐이에요.
그는 자신이 한때 가졌던 걸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집중해 빼앗겼음을 예민하게 느껴보려고 하겠죠. 그러나 예민함은 없을 거예요. 예민함은 모든 것에서 사라져버리고 없어요.
대신, 그 사람은 무감각과 초연함 쪽으로 미약하지만 자신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느낄 거예요.
초연함, 그는 혼잣말로 그 날카로운 말을 발음해보고 그 날카로움을 시험해보려 손을 뻗겠죠.
그러나 거기에도 흐릿함과 무덤덤함이 끼어들 뿐이겠죠.
그는 생각할 거예요. 모든 게 희미해져가는구나.
한 주나 한 달이 지나면, 모든 게 잊히겠구나.
나는 외따로 떨어져 떠내려가는 몽상가들 사이에 있게 되겠구나.
마지막으로 그는 헤어짐의 고통을 느껴보려 할 거예요.
그러나 덧없는 슬픔의 형태로 다가올 뿐이겠죠.
퍼케일 씨, 내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는 내 결심에 대해서, 아니 내 결심을 지키려고 애쓰다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나는 물에 빠져 죽어간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여기, 당신 옆에 앉아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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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는 이 혼란이 단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나는 말을 이었다.
"사실, 그건 개인적인 게 전혀 아니에요. 나는 베키가 어렸을 때는 그애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커가면서 하는 행동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뭔가 다른 모습을 기대했었거든요. 그애와 친 구들은 유년기는 잊었다고 말하죠.
그들은 어린애이기를 그만뒀을지 몰라요. 그런데 그애들이 뭐가 됐죠?
웃음도 경멸하고 놀이도 경멸하는 음침한 작은 청교도들이 됐어요.
그렇다면 내가 왜 그애를 위해서 슬퍼해야 하죠? 내가 그애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에요.
그애는 죽을 때 다시 어린애가 됐어요.
그애는 마지막 순간에, 돌을 던지고 총을 쏘는 일이 결국 장난이 아니고, 자신의 입에 쑤셔넣으려 고 손에 모래를 잔뜩 움켜쥔 채 비틀비틀 다가오는 거인을 함성이나 구호만으로 쫓아버릴 수 없으며, 질식하여 속이 메슥거리고 숨을 쉴 수 없는 긴 통로의 끝에는 아무런 빛도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어린애처럼 놀라서 가면이 떨어져버린 거예요.
이제 그 아이는 묻혔고, 우리는 그 위로 걸어가요.
나는 이 땅, 이곳 남아프리카에서 걸을 때, 흑인들의 얼굴 위로 지나간다는 느낌을 점점 더 강하게 받아요. 그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그들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들은 무겁고 완강하게 거기에 누워서 내 발이 통과하기를 기다리고,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다시 들어올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무쇠로 된 수백만의 형체들이 지구의 표면 아래에서 떠다니고 있어요.
철의 시대가 돌아오길 기 다리는 거죠.
당신은 내가 흥분했지만 곧 극복할 거라고 생각하겠죠.
오늘, 여기에서 흘리는 싸구려 눈물, 감상적인 눈물이 내일이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겠죠.
그래요, 나는 과거에도 흥분한 적이 있어요.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은 없을 거라고 상상했죠. 그런데 어김없이 더 나쁜 상황이 닥치더라고요.
그 상황을 극복했었어요. 아니 그런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게 문제예요!
나는 수치심 에 마비되지 않기 위해, 더 나쁜 상황을 극복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거예요.
내가 더이상 극복할 수 없는 건 극복하는 일 자체예요.
내가 이번에 극복한다면, 나한테는 극복하지 않을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나 자신의 부활을 위해서, 이번에는 극복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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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퍼케일이 이 글을 보내지 않는다면, 너는 결코 이걸 읽지 못하겠지.
너는 이 글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알 수 없겠지.
진실의 어떤 몸에는 살이 붙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진실 말이다.
내가 이 시대에 이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에 대한 진실 말이다.
내가 퍼케일과 함께, 퍼케일에게 걸고 있는 내기는 뭘까?
그건 신뢰에 관한 내기다. 매우 사소한 일이다.
소포를 우체국에 가지고 가서 창구 너머로 넘겨달라는 것뿐이다.
너무나 사소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소포를 집어드는 일과 집어들지 않는 일 사이의 차이는 깃털처럼 가볍다.
내가 죽고 없을 때 만약 신뢰, 의무, 충성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는 분명히 그걸 집어들 거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신뢰가 없는 거다.
우리는, 우리 모두는, 차라리 구멍 속으로 떨어져 사라져버리는 게 더 낫다.
나는 퍼케일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신뢰해야 한다.
나는 영혼을 환대하지 않는 시대에, 영혼이 살아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아가 된 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배고픈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기란 쉽다.
마음이 괴로운 이(나는 플로렌스를 생각한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게 더 어렵다.
그러나 내가 퍼케일에게 베푸는 자선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너그러움이 없고, 용서도 없다. (너그러움? 퍼케일이 말한다. 용서?)
그의 용서도 없이, 나는 너그러움 없이 주고, 사랑 없이 봉사한다. 불모의 땅에 내리는 비.
내가 더 젊었다면, 나는 그에게 나 자신을 육체적으로 내줬을지 모른다.
실수라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렇게 했고.
이제 나는 그러는 대신 내 삶을 그의 손에 맡긴다. 이게 내 삶이다.
내 말들이, 종이 위에서 손가락들이 비뚤비뚤 움직인 흔적들이 말이다.
네가 읽을 때, 이 말들은 네 안에 들어가 새로이 숨쉬게 될 거다. 네가 읽게 된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내가 계속 살아가는 방식이다. 옛날에는 네가 내 몸속에 살았었다.
내가 내 어머니의 몸속에 살았듯이 말이다.
내가 어머니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 어머니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듯, 나도 네 안에 살았으면 싶구나.
나는 퍼케일이 가지고 가도록 내 삶을 그에게 준다.
나는 퍼케일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퍼케일을 신뢰한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그가 약한 갈대이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기댄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정말이지 그렇지 않단다.
나는 처음부터, 그가 차고 뒤에 종이박스로 잠자리를 만들고 자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가는 길이 점점 더 어두워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너를 향하여 가는 나의 길을 느낀다. 한 마디 할 때마다, 나는 그 길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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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이 싸울 때라고 말하지. 이기거나 져야 할 때라고 말하지.
승리 혹은 패배에 대해 내가 얘기해주마. 양자택일에 대해 얘기해주마. 내 말 잘 들어라.
너도 내가 아프다는 건 알 거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니?
나는 암에 걸렸다. 평생 견뎌왔던 치욕이 쌓여 암에 걸렸다.
암이란 그렇게 생기는 거다.
자기혐오 때문에 몸이 악의를 띠고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게 암이다.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치욕과 혐오에 자신을 소진시켜 어쩌겠다는 건가요?
나는 당신이 어떤 느낌을 받는지, 그런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건 다른 얘기일 뿐이에요. 뭔가를 하는 게 어때요?'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그래'라고 대답하지.
’그래’ 그래 네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그래'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래'라고 말하는 게 어떤 건지 얘기해주지.
그건 자신의 생사가 걸린 재판에서 오직 그래요, 아니요 두 마디만 할 수 있는 것과 같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재판관들이 ‘그래요, 아니요 외에 다른 말은 안 된다'라고 경고하지.
그래서 '그래'라고 하는 거야.
그러나 그러는 동안, 다른 말들이 뱃속의 생명체처럼 마음속에서 꿈틀거리지.
아직 태아가 발길질을 하는 상태는 아니고, 여자가 임신을 했을 때, 아주 초기에, 저 깊숙한 안쪽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걸 느끼는 상태라고나 할까.
내 안에는 죽음만이 있는 게 아니다. 삶도 있다.
죽음은 강하고 삶은 약하지.
그러나 내 의무는 삶에 있다. 나는 그걸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너는 말을 믿지 않지. 네 생각엔 싸움만이, 싸움과 총알만이 진짜겠지.
그러나 내 말 잘 들어라. 너는 내가 하는 말이 진짜라는 걸 네 귀로 확인하지 못 하겠니?
들어보렴! 내 말은 공기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가슴에서, 내 뱃속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 말은 '그래요'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건 다른 것이다, 다른 말이다.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 말을 위해, 그 말이 질식당하지 않게 하려고 싸우고 있는 거다.
나는 필요한 게,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게, 마을이 필요로 하는 게 팔힘이 강한 남자아이라서 딸을 낳으면 그 딸이 죽임을 당하리라는 걸 알고 있는 중국의 어머니가 된 느낌이야.
그들은 출산 후에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방에 들어와, 산파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 성별을 확인한 다음, 잘못된 성이면 예의상 그들에게서 몸을 돌린 채 갓난애의 턱을 다물리고 코를 죄어 질식시키리라는 걸 알지.
일 분이면 모든 게 끝나지.
나중에 그 어머니는 이런 말을 듣는단다. 슬퍼하고 싶으면 하시오. 슬픔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러나, 아들이라 불리는 게 뭐죠? 죽어야 하는 딸이라 는 게 뭐죠?라고 묻지는 마시오.
내 말을 오해하지 마라. 너는 아들이다. 누군가의 아들이다. 나는 아들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너는 갓 태어난 아이를 본 적이 있니?
너한테 얘기해주는 건데,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란다.
갓난아기의 다리 사이에는 모두 똑같이 생긴 부풀어오른 주름이 있기 마련이다.
남아의 특징인 꼭지나 덩굴손은 실제로는 별게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차이는 별게 아니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것은, 분명치 않은 모든 것은, 힘이 가해지면 굴복하는 모든 것은 무시당할 운명에 처해 있다. 나는 무시당하는 것을 위해 말하고 있는 거야.
네 얼굴을 보니 나이든 사람의 말을 듣는 일에 넌더리가 나 있구나.
너는 남자이고 싶고, 남자가 하는 일을 하고 싶어 좀이 쑤시겠지.
너는 삶을 준비하는 데 넌더리가 나 있겠지.
너는 이제 삶 그 자체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
너는 큰 실수를 하고 있어!
삶이란 막대기, 쇠파이프, 깃대, 총을 따라가서, 그것이 너를 어디로 이끄는지 보는 게 아니다.
삶은 가까이 있는 게 아니다. 너는 이미 삶의 한복판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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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요." 내가 말했다.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작아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동지애를 너무나 잘 알아요.
독일인들한테는 동지애가 있었어요. 일본인들도 그랬고 스파르타인들도 그랬어요.
샤카의 전사들에게도 틀림없이 있었을 거예요.
동지애란 당신이 유대감(무엇에 대한 유대감이죠? 사랑인가요?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이라고 부르는 걸로 가장하고, 죽음을 신비화하고 죽이고 또 죽는 일을 신비화하는 것에 불과해요.
나는 그런 동지애를 찬성할 수 없어요.
당신은, 아니 당신과 플로렌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틀렸어요.
당신들은 그것에 속고,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에게 그걸 부추기고 있어요.
냉혹하고 배타적이고 죽음에 눈이 먼 남자들이 만들어낸 또다른 허구일 뿐이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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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해줄게요. 베키가 죽은 날, 나는 플로렌스의 남동생을 만났어요.
동생인지 사촌인지 어떤 관계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유식한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 사람에게, 베키가 그- 그걸 뭐라고 해야 하죠?- 싸움에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그애는 그저 어린애일 뿐이에요. 그애는 준비가 안 됐어요. 친구라고 하는 그애만 없었다면, 그 일에 말려들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나중에 다시 그 사람과 전화로 얘기를 하게 됐어요.
나는 그에게, 두 아이를 죽게 만든 동지애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말했어요.
나는 그게 죽음을 신비화한다고 말했어요.
그 일을 막으려 전혀 노력하지 않은 플로렌스와 그 같은 사람들을 비난했어요.
그는 예의바르게 내 말을 다 듣더니, 내게도 나름의 견해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그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던 거죠.
그러나 나는 지금 자문하고 있어요.
내가 무슨 권리로 동지애나 다른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걸까요?
무슨 권리로 베키와 그애의 친구가 이 문제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요?
진공 상태에서 의견을 갖는다는 건,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의견을 갖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여요.
의견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줘야 해요, 예의상 들어주는 게 아니라 듣고 평가해줘야 해요.
평가를 받으려면 무게가 있어야 해요. 타바니 씨는 내가 말 하는 바에 무게를 두지 않아요.
내 말은 그에게 아무런 무게도 없는 거죠.
플로렌스는 내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아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플로렌스에게 완전한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에요, 나는 그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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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몰랐던 건, 내가 정말 몰랐던 건 - 내 말 좀 들어줘요! - 죗값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이었어요. 내가 잘못 계산했던 거죠. 착오가 어디서 생겼을까요?
그건 명예와 관련이 있어요.
내가 교육을 통해, 그리고 독서를 통해 시종일관 고수해왔던, 명예로운 사람은 영혼에 상처를 입을 수 없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어요.
나는 수치심을 안내자로 삼아 명예를, 사적인 명예를 늘 갈구 해왔어요.
나는 내가 수치심을 느끼는 한, 불명예 속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그게 수치심의 용도였어요.
수치심은 언제나 그 자 리에 있어서, 언제라도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그러듯 돌아가 만지며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일종의 시금석이었던 거죠.
그 외에는, 나는 내 수치심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았죠.
나는 그것에 탐닉하지 않았어요.
수치심은 결코 수치스러운 쾌락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건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었어요.
나는 그게 자랑스럽지 않았어요, 수치스러웠어요.
내 수치심, 나 자신의 것. 끊임없이 재 같은 맛이 나는, 날이면 날마다 내 입속에 들어 있는 재.
퍼케일 씨, 나는 오늘 아침 여기에서 고백을 하는 거예요.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완전한 고백을 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요. 나는 선한 사람이었어요. 그건 거리낌없이 고백할 수 있어요.
나는 아직도 선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선한 사람인 걸로 충분하지 않은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일까요!
내가 계산하지 못했던 점은 선함 이상이 요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 나라에는 선한 사람들이 많아요. 선하거나 거의 선한 우리 둘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시대가 요구하는 바는 선함과는 꽤 달라요.
시대는 영웅적 행위를 요구하고 있어요.
내 입으로 그 단어를 발음하고 있지만, 어쩐지 낯설게 들리네요.
나는 강의를 할 때도 그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왜냐고요? 어쩌면 존경심 때문에 그랬을지 모르고, 어쩌면 수치심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죠.
벌거벗은 남자 앞에서 고개를 떨구듯이 말이죠.
나는 강의를 할 때 그 말 대신, 영웅적 상태라는 말을 사용하곤 했어요.
영웅적 상태의 영웅. 고대의 벌거벗은 형상인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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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애의 눈은 깜빡거리지 않고 문을 응시한다.
그 문을 통해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지만 두렵지는 않다.
그애의 심장은 쥐었다 펴졌다 하는 주먹처럼 고르게 뛰고 있다.
그애는 눈을 뜨고 있고, 내 눈은 글을 쓰는 와중에도 감겨 있다.
내 눈은 바라보기 위해 감겨 있다.
이 사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애의 심장은 시간에 맞춰 뛰지만 말이다.
나는 이 밤에 여기 내 방에 있지만, 항상, 그애와 함께 있기도 하다.
내가 바다를 건너 네 주변을 맴돌듯이 말이다.
맴도는 시간. 그러나 영원은 아니다.
문이 벌컥 열리고, 우리가, 처음에는 그애가, 그리고 내가, 거대한 하얀 섬광을 마주하게 될 시간이 돌아오기 전의 정지상태인,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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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아서, 네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보낸 사진들을 뒤적이고 있다.
나는 배경들을, 네가 셔터를 누른 순간 닥치는 대로 사진 속으로 들어온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어, 카누를 타고 있는 두 남자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내 눈길은 그 아이들의 얼굴로부터 호수 위의 잔물결과 전나무들의 짙은 녹색으로 옮겨갔다가, 옛날에 수영 연습을 할 때 양쪽 겨드랑이에 끼던 날개 모양의 부낭과 흡사한,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오렌지색 구명 복으로 되돌아간다.
구명복 표면의 흐릿하고 부드러운 광택을 바라보고 있자니 최면에 걸린 것 같구나.
고무나 비닐, 아니 어쩌면 그 중간쯤 되는 물질로 만들어진 구명복.
몸에 닿으면 거칠고 단단한 이물감이 느껴지는 물질.
내게는 이물감이 느껴지는 이 물질이,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도 이물감이 느껴질 이 물질이, 형체를 잡아 봉하고 부풀려서 네 아이들의 몸에 묶어 둔 이 물질이,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내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주는데, 그 이유가 뭘까?
그리고 어째서 그게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이 거듭하여 아무 생각도 없는 곳에서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으니, 이 말만은 가설적으로 해보기로 하자.
네 아이들이 결코 물에 빠져 죽는 일은 없으리라는 사실이 어쩌면 나를 낙담시킬지 모른다는 가설 말이다.
그 모든 호수들, 그 모든 물. 호수와 강이 많은 땅. 그러나 운이 없어 카누 밖으로 떨어져도, 그들은 밝은 오렌지색 부낭 덕택에 물위에 안전하게 떠서 몸을 깐닥거릴 것이다.
그러고 있으면 모터보트가 와서 그들을 태우고 가고,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 가겠지.
너는 사진의 뒷면에 휴양지라고 써놓았다. 새로운 이름이 붙여진, 길들여진 호수, 길들여진 숲.
너는 자식들을 더이상 갖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눈밭에 뿌려진 씨앗들인 이 두 남자아이에게서 대가 끊기는구나.
물에 빠져 죽지도 않을 테고 평균수명이 일흔다섯 살, 아니 그 이상으로 증가추세인 이 아이들에게서 말이다.
물이 장성한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평균수명이 매년 감소추세에 있는 기슭에 살고 있는 나조차 아무 깨달음 없이 죽어가고 있다.
휴양지에서 카누를 타는 이 불쌍하고 혜택받지 못한 아이들이 뭘 바랄 수 있을까?
일흔다섯이나 여든다섯에, 그들은 태어났을 때만큼 멍청한 채로 죽어갈 것이다.
내가 손자들이 죽기를 바라느냐고?
너는 바로 이 순간, 혐오스러워하며 이 편지를 던져버리고 있니?
미친 할망 같으니라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 니?
그애들은 내 손자가 아니다. 그애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 자식이 되기에는 너무 멀다.
나는 많은 가족을 뒤에 남기지 않는다. 딸 하나. 배우자와 그의 개.
내가 그애들에게 죽음이 닥치길 바라는 건 결코 아니다.
여하튼, 내 삶을 잠시 스치고 지나갔던 두 아이는 이미 죽고 없다.
그래, 나는 네 아이들이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네가 그애들의 몸에 붙여준 날개가 그애들에게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거다.
삶이란 발가락 사이의 먼지다. 삶이란 이빨 사이의 먼지다.
삶이란 먼지를 입에 무는 일이다.
혹은, 삶이란 물에 빠져 죽는 일이다.
물속으로 바닥까지 떨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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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사로운 일까지도 도움에 의지해야 할 때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이 슬픈 이야기를 끝내야 할 때다.
퍼케일이 나를 도와주리라는 걸 의심한다는 말이 아니다.
마지막 일들에 관해서는, 여하튼 나는 그를 더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나를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신뢰할 수 없는 마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넘어지자 그가 나를 붙잡아줬다.
지금에야 이해했는데, 그가 처음 왔을 때, 그는 내 보호하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내가 그의 보호하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보호하에 들어간 거였다.
그때 이래로 우리는 우리의 상호적인 선택의 곡예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한 거였다.
==
나는 자다가 추워서 깼다. 배, 심장, 그리고 뼛속까지 추웠다.
발코니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었다. 커튼이 바람에 펄럭였다.
퍼케일은 발코니에 서서, 바스락거리는 수많은 잎들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팔과 솟은 어깨와 앙상한 등뼈에 손을 댔다.
나는 이를 덜덜 떨며 말했다. "뭘 보고 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우리 밑에 있는 그림자들의 바다. 어둠 위로 물고기 비늘처럼 움직이며 바스락거리는 잎들의 장막.
"시간이 됐나요?" 내가 말했다.
나는 침대 속으로, 차가운 시트 사이의 터널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커튼이 갈라졌다. 그가 내 곁으로 들어왔다.
처음으로, 나는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다.
그는 나를 품에 들이고 굉장한 힘으로 끌어안았다.
그래서 숨이 내게서 훅 빠져나갔다.
그 포옹에는 아무런 온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