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사람이 보는 엑스포 유치 실패의 이유

[부산★또속아본다]

너무 일찍부터 꿀잠을 자는 바람에 좀 일찍 일어났지만

결과 보고도 피식, 그러고 되는 게 더 이상하다 이놈들아, 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산 사는 사람으로서 기대를 전혀 안 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 아이템이 구렸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엑스포 아이템을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는데,

아마 유치 운동이 본격화되기 전이라 정부 차원에서보다는 부산시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었겠죠.

그러나 박형준, 그 이전 서병수 시장은 엑스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해를 전혀 못했던 것 같고

인정엑스포인 대전이나 여수 엑스포에서 규모만 좀 키운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이 정부 들어서 정부 차원에서 홍보한답시고 아이템 얘기를 꺼냈는데

그게 무려 '성장 경험 공유'였죠. 새마을운동지도자협의회 같은 소리 하고 앉았던 겁니다.

그게 엑스포 전체의 컨셉이 될 수 있나요? 우리 파빌리온의 컨셉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선진국들이 다같이 성장 경험을 공유하는 장이 되고,

개발도상국들은 자기 파빌리온 차리기도 바쁜데 다같이 경험을 배워간다?

웃기지도 않죠. 누가 거기에 동의해줄까요.

이 컨셉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저는 '아, 이 사람들 유치할 생각이 별로 없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참고로 로마는 '역사의 재건'이었고 사우디는 '친환경 미래'였습니다.

어느 쪽이 당선될 만한 아이템이었는지 한 눈에 보이죠.

둘째, 홍보 방법이 구렸습니다.

연예계의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만, 연예계를 활용하는 방법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구렸습니다.

X4라는 언어유희를 이용한 팀을 하나 만들어놨으면 최소한 세계관 정립, 스토리텔링이 있어야죠.

연예인들 얼굴 내놓고 컨셉조차 제대로 못 만들어서 포스터로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거 보고 있자니

차라리 SM이나 하이브에 홍보를 일임시키는 게 나아 보였을 정도로 별 생각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 놓고 PT 연사는 왜 싸이이고 카리나일까요.  X4는 어디다 쓰려고?

그리고 무엇보다, 연예인이 이렇게나 많이 연사로 나서서 어떤 비전을 보일 수 있었을까요.

K-컬처의 유명세를 이용하고 싶었나 본데, 컨셉이 '성장 경험 공유'라면서요.

연예인들을 이렇게 전면에 내세울 거면 차라리 컨셉의 중심을 '문화'에 두든지.

그랬으면 조수미가 나온 것까지도 수긍이 될 수 있겠지마는.

파리 현지에선 한복 입은 외국인 사진을 홍보 디자인으로 쓴 것도 종종 보이던데

그게 개발 경험 공유라는 비전과 어울리는지는 둘째 치고,

아니 비전을 알릴 생각이 있었는지부터 궁금하지만(BUSAN IS READY가 뭐야) 둘째 칩시다.

한국 자체를 홍보하는 건지 부산 엑스포를 홍보하는 건지 목적조차 불분명한 홍보물이죠.

즉, 홍보에 일관된 컨셉이 없었습니다.

광고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은 아닙니다만, 지나가던 누가 봐도 효과적인 광고 방식은 아니었을 겁니다.

셋째, 밑바닥을 너무 많이 내보였습니다.

잼버리 세계대회를 충격적일 정도로 거하게 말아먹은 것도 물론 한국의 국제행사 경쟁력을 깎아먹었겠지만

BTS 콘서트를 바닷가로 잡았다가 부리나케 아시아드경기장으로 급히 옮겨서는

태풍에 듬성듬성 이 빠진 경기장을 그대로 콘서트장으로 노출한 것,

맨시티와 전북현대의 경기를 난데없이 시즌 중에 끌고와서 홈팀을 내쫓아버린 것,

그 와중에 정치권은 부산으로의 투자에 인색하고

이미 포화되어버린 기존 김해공항으로는 엑스포는커녕 아시안게임도 간당간당한데

그 공항 새로 짓는 것조차 줄다리기하는 모습들까지.

(아이치 엑스포 때, 나리타/하네다와 간사이 사이에서 샌드위치 될 게 뻔한 위치인데도

나고야 중부공항을 새로 지었던 걸 생각하면 그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죠)

엑스포 투표하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검색하려 들지 않아도 이 정도 뉴스는 조금만 부산에 관심 가져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거기에 '새로운 엑스포를 원해? 부산에 유치해' 따위의 밑도끝도없는 슬로건의 지속적인 노출로

시민의 피로도가 올라간 모습은 뭐... 말할 필요가 없고요.

이외에도 떨어진 이유를 찾으면 정말 많겠죠.

제가 여기 쓴 건 부산 안에서 보이는 것만 추린 겁니다.

뭐 사실, 정권의 언론탄압이나 부정적인 모습들은 거의 영향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 걸로 치면 리야드의 인권 이슈가 훨씬 컸겠지요.

다만 우리의 외교력이 처참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네요.

저렇게 드러난 밑바닥을 다른 무언가로 덮거나,

아니면 최소한 시선이라도 돌릴 만한 아이템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들이 얼마나 구린 아이템을 내놓고 구린 홍보를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럼 떨어지는 게 맞죠. 되는 게 이상한 겁니다.

수험생이 시험 범위도 모르고 일단 수학책만 펴면 성적이 오른답니까?

부산 시민으로서, 엑스포가 되어야 한다는 응원은 했습니다.

아이템이고 홍보고 뭐고, 일단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요.

이제 엑스포 물 건너갔으니, 부산으로 들어오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거의 올스톱이라고 봅니다.

이왕 특별법 만들었으니 공항이나 지어주려나, 그것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요.

중앙에서 바라보는 부산(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지방도시들)은 딱 그 정도 위치거든요.

뭔가 건수가 없으면 투자할 가치가 없는 동네.

부산시도 그 건수를 만들기 위해 엑스포를 물고 늘어진 거지, 엑스포가 뭐하는 행사인지도 제대로 몰라요.

알았으면 이따위 기획을 세계에 내놓지 않았을 겁니다.

결론은

일개 고등학교 선생 눈에도 빤히 보이는 결과를 놓고

50대 50이라면서 2차 투표 운운하길래 외교력은 좀 괜찮은 줄 알았던 게 허탈하고

국내 언론의 받아쓰기 실력에 온 국민이 속아넘어간 케이스라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Gunners]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수준이 너무 처참했네요 ...

[마운틴듀]

우리 정부 무능력도 크지만 애초에 사우디가 너무 유력했던판이었죠. 그냥 일년넘기 세금으로 해외여행 다닌거

[롭슨]

아까 최종 프레젠테이션보는데 참담했네요

[비건양디]

기대조차 안했습니다..ㅎㅎㅎ

[맨소래담]

부산 망했어요 ㅠ

[케빈대북라이너]

애초부터 기대 1도 안했습니다

[필리포 풍자기]

부산사람으로써 공항이나 북항개발 등 인프라때문이라도 내심 되길바랬는데...어쩔수 없죠 ㅋㅋ 어제 피티보고 안되겠다싶었습니다 ㅠ

[카리나 에스파]

부산사람으로서 기대 하나도 안함요 ㅋㅋ 뭘 홍보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만덕]

엑스포는 무슨 엑스포
공항이나 지어주지

[내일해야지]

솔직히 연예인들도 하기 싫었을 겁니다 부끄럽거든요 자기 얼굴에도 먹칠하는 수준의 준비를 해놨는데
저런 허접한 영상에 얼굴 올라가는 것도 소속사 입장에서 진짜 끔찍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