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국군 간부와 미군 간부의 차이에 대해 수상한 글이 있어서
이런 글도 올려 봅니다. 실제 한미 합동근무처인 오산에서 병으로 근무 하셨던 분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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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계급사회이고 그렇다보니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병사'와 '간부' 크게 나누어 진다. 물론 간부 역시 '하사관(지금은 부사관)',
'준사관', '위관급 장교', '영관급 장교', '장군'으로 구분할 수는 있지만 사병들에게 크게 와 닿는 것은 역시 '간부'와
'병사' 일 것이다.
우리부대 역시 간부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외자의 비중이 높았다. 정보교육을 받다가 일병때 전입오는
경우도 흔했으므로, 간부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보직에서는 '육군'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담당 선임하사가 육군은 쓸만하면 제대한다면서 하루라도 복무기간이 긴 해공군을 보내 줄것을 요청했었다. 부대의 특성상
24시간 항상 근무를 해야 하므로 지휘관의 입장에서도 무시하기에 어려운 내용이기도 했다.
우리부대 간부를 논하자면 그야말로 나는 '군대복이 터진 인간'이라고 밖에는 더는 할 말이 없다. 휴가를 나와서도 제대를
해서도 다른 부대와 가장 큰 차이를 논한다면 역시 '너무나도 좋은 간부들 밑에서 근무했다'라는 것이었다. 간부역시 육,해,공,
해병대로 구성되었었고 그래서인지 간부들과도 더욱 재미있게 생활했던 것 같다. 간부들 역시 사병들을 계급과 짠밥으로 억누르기 보다는
같이 즐겁게 생활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었다.
장XX 중령님은 내가 전입갔을때 지휘관이셨다. 공사출신이셨고 쾌활한 성격에 운동도 잘하시고 권총사격도 아주 잘하시고 게다가
노래도 잘 하셨다. 사병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 위해 항상 신곡을 연마하셨고 미군과 파티를 했을 때 노래를 청하자 '최근 2년
이내의 노래 이외에는 안불러 !'라며 호기있게 마이크를 잡으셨던 분이었다. 장사병을 막론하고 존경하지 않는 부대원이 없을
정도였다.
하AA 준위께서는 지원부서(행정, 수송, 보급 등)를 총괄하시는 분이었다. 위의 부대장님과 아주 호흡이 잘 맞는 분으로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신곡을 틀어놓고 연습하셨다. 날카로운 인상과 칼칼한 목소리에 위엄이 대단하셔서 처음보는 사람들은
계급을 막론하고 주눅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벽한 살림꾼이셨기에 보급에 그 누구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부대는 인원에 비해 고참 부사관이 좀 많았다. 원사만 세분 계셨는데 한분은 해군원사, 두분은 공군원사셨다.
해군원사님과 고참 공군원사님('보안관'이라는 직책을 가지셨었다)은 동기로 (해군원사님께서 한 일주일 빠르시단다) 모두 거구에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 두 분은 아주 무섭기로도 소문이나서 부대내 부사관이하 군기를 담당하기도 하셨다. 특히
공군원사님(보안관님)은 거구에도 불구하고 운동신경이 대단했는데 군입대전 태권도 선수셨단다. 실미도 부대 생존 기간병 동기라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실미도사건에 대해서 보다 일찍 정확하게 일찍 알 수 있었다 - 나중에 TV에서 보니 그분의 말씀과 100
% 일치했었다 -.
주임원사님은 내가 자대에 갔을 때 상사셨는데 얼마 후 원사로 진급하셨다. 우리부대 원사님들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체격이
좋으셨는데 이분 역시 골격자체가 아주 강골이셨다. 유머감각이 좋으시고 서글서글하신 성격을 지녀 사병들이 아주 잘 따르곤했다.
그야말로 사병들은 자식처럼 아껴주는 전형적인 그런 분이셨다.
원사님들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해서인지 상사님들과 고참 중사님들도 여럿계시건만 크게 튀거나 하는 분은 안계셨다. 다만 3군의
간부가 계시다보니 짠밥과 계급이 꼬이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장ZZ 중사님은 아주 고참 해군중사셨다. 육군이나 공군 같으면 벌써
상사를 달아도 옛날에 달았을 것이다. 난 이분이 욕하는 것도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로 순박한 분이셨다. 하지만 부대에서도 가장
몸이 빠르고 좋기도 유명하신 분이었다. 해병대의 김CD 중사님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미혼이셨다. 요즘이야 그정도 나이를
노총각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당시에는 노총각에 속했고 그래서인지 고참간부들한테 결혼 때문에 갈굼(?)을 종종 당하셨다. 성격이 매우
쾌활하시고 사병들에게도 잘 해주시고 그래서 좋아하는 사병들이 많았다.
내가 제대말년에 육군상사분이 전입오셨다. 지금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30대 후반의 시설(공병)특기셨다. 부대 막사가
오래되어서 화장실 소변기가 종종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병들이 뚫다가 실패한 것을 이 분이 뚫어버리고 말았다. 한번은
간부중에서 한분이 세탁기를 바꾸느라 전에 사용하던 세탁기를 기증하셨는데 이 세탁기를 배수까지 완벽하게 설치를 하셨다. 더욱 나를
맛가게 한 사건은 보일러가 종종 맛이가자 전공을 살려 완벽하게 살려 놓으셨는데 문제는 청소까지 하고 계셨다. 결국 내가 보다못해
내무반장을 불러서 게거품을 물자 내무반장 왈, 사병들을 보냈는데 '어차피 하던 일이니 그냥 내가 할게' 하시면서 돌려보내셨단다.
박GH 중위, 박YC 중위는 공군학사장교 동기셨고, 비슷한 기수의 해군학사장교이신 권SC 중위가 있었다. 세분의 공통점은
유머감각이 매우 훌륭했으며 엘리트였고 사병들과도 아주 잘 지내신 분들이라는 점이다. 사병들도 나이가 많았지만 위관급 장교분들 역시
나이가 많았다. 공군중위 두 분은 경북대 출신으로 대학원을 모두 나오셨고, 권 중위님은 건국대 출신이셨다. 모두 산이나 바다에서
한번 근무를 하시고 두번째로 전입온 부대였으며, 공군중위분들은 우리부대에서 전역을 하셨고 권중위님은 대위로 진급을 하셨다. 물론
그 뒤로도 육, 공군의 초급장교분들이 많이 오셨지만 이분들의 위상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작전실에서 보급은 내가 있는 부서에서 담당을 했고 미군의 것을 받아와야 했다. 처음오는 간부들도 항상 우리한테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없으면 없다, 있으면 있다고 그냥 현실을 말해주곤 했다. 하지만 권대위님이 말을 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우리보직
최고참이 되었을 때 내 후임들에게 '더욱 잘 할것'을 지시했고, 초급장교들이 왔다가 허탕을 치고 간 후 2시간후에 권대위님이
'혹시 이런것 없니 ? 신입장교들 좀 줘야겠는데 ?'하는 말씀을 하시자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고 나는 후임들에게 '미군을
죽이든 살리든 빨아주던 무조건 만들어와라 !'고 했었다. 물론 내 후임들은 내가 왜 그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한시간도 안되어 요청한 내용 이상의 수준의 보급품을 정성스럽게 전달해 드렸었다.
위에 언급한 분들 이외에도 여러 간부분들이 계셨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시한번 생각을 해도 '참 좋은 분들'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사병들의 숨 막힐 듯한 내무생활속에서 간부들과의 관계로 좋지 않아면 군생활이 몇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힘없는 사병들 편에 서서 우리들을 대변해 주셨던 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군생활이 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원천 : http://cafe.daum.net/tooth8020/hog/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