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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며
26개 검사에 대한 평상시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과 숫자들의 의미에 대해
전문의들의 지식과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퍼즐을 풀어보고 있습니다.
아니~~~~
검사를 했으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든가 해야지
아는 자는 보고, 모르는 자는 숫자려니 하고 넘어가라는 듯 하기에
매우 불친절하다 합니당 ㅜㅜ
까막눈시러운 자 입장에선 아주 못마땅합니다.
"툴툴 거리더만
갑자기 왜 촐싹거리는데~~ 100살까지 산다고 혀?"
긍께~~~
올해는 상태가 안 좋은 때에 받았더랬죠.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있었던 시기가 아닌
계속 몸이 피곤해 했었고
사정 또한 있어서 전날 잠을 3시간 정도만 자고 갔던 등 그랬어요.
예전 같았으면 검진센터에서 집까지 운동삼아 걸어 왔을 겁니다.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로 계속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을만한데요.
올해는 그러지 않았어요.
정황상 결과치들이 좋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에
더 마이~~궁금했었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의 신체 상태는 어떠한가하는 궁금증 ^^
흩어져 있는 수치 등을 요케요케 저케저케 맞춰보니
그간은 일방적인 주장이었으나
검사나 진단기술이 발전을 바탕으로
그렇다고 느끼던 부분들에 대해 증거할 수 있는 수치가
보인다 ~~하는 중입니다.
왜 올 봄에 미니뇌졸증이라 불리는 현상 등이
나타났었던가에 대하여 알 것 같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에 뭔가 이상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거든요.
물론 자기 신념 강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엔 서로 상반되는 여러 정황이나 자료들이 있는데
그 중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취합하여
자신의 믿음을 계속 강화시켜가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펴봤습니다.
예를 들자면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어떤 변화를 보였으며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의 증감이 어떠한가 등등
마귀는 아둔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아실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등
아직은 세상의 끝 날이 오지 않았기에 희안시런 존재이기도 한데요.
공격해올 때는 무작위로 마구 랜덤하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나름 근거를 가지고 약한 부분 등을 공략하겠죠.
유전자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등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마귀는 확실히 영악스럽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바로 그 영역을 공략하려 했던 것 같다는 흔적을 봤습니다.
그러면 대개 이리 되지 않겠는지요?
' 거그가 원래부텀 취약하여쓰. 그리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지 뭐~~~'
물론 안좋다고 하여 다 마귀의 탓이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자신이 관리하지 못했던 등 자기 책임의 부분도 있고 그러니까요.
다만 어떤 형태로 공격하려 드는지에 대해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는데
그것 외에는 수치들이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보이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 ing 상태인가,
빠져나가는 중인가를 살펴보려 해도
그럴만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후자란 결론을 얻은 중입니다.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를 따져보았어요.
비타민c 메가도스 등을 했다는 것 외엔 별로 한 것이 없으나
그러나 주님을 놓치지 않고 따르려고 했었죠.
목사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가급적 심방을 따라다니면서
교우님들과의 교제를 하려고도 했었고요.
이를 통해서라도
오로지 주님이셔야만 한다는,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주님에 대한 절실함을 망각하지 않을 이유애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
오히려 기쁘다는 생각 또한 듭니다.
"아이고~ 당신이 의사여~~~?
좋아지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게~~"
저요?
에....
국가 공인 ~~~~~~~~~~~아줌마인디요.
가족관계 증명서 등 공적 장부에 아줌마라고 되어 있슴다. ㅎ
전에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 적이 있어요.
암이 의심됨~~이라고.
40대 초반이었을 때인데요. 아직 애들도 어린데~하면서
놀라서리 국내에서 젤 유명하다는 분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죠.
결과는 양성 낭종~ 주기적 관찰만 요함.
낭종은 저절로 없어졌고 석회화 흔적 형태로만 남아 있어요.
이후 검진결과를 보고 크게 겁을 먹거나 하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목사님이 기도에 대해 계속 설명을 해주시고 계신데요.
미혹되거나 잘못된 기도를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적해주시듯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한다고
상대가 변화되어지고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도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을 휘어잡고 있는
악한 영으로부터의 공격을 초래시키기도 하고,
또한 악한 영이 발작하는 듯한 현상과도 직면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이 발작할 때
그 현상을 육의 눈으로만 보고 따라가면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여반장이겠다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말씀에 대한 순종이 우위에 있는 것이지
기도가 말씀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씀보다 자신의 기도
즉 자신의 의를 더 앞세우는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주변의 다른 형제들까지 무너뜨리려 들기 쉬운 듯요.
자신의 의지에 부합하는 기도를 요구하거나
'너는 사랑이 없어~' 식으로요.
중보기도의 은사가 있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은사로서 기도를 하는 것이라 때로는 위기 도고 형태로서
자신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인데
(관련한 설교가 이미 있습니다. )
아무리 그러한 은사를 주셨다고 하여도
주님은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개인의 자유의지 또한 작용하지 않겠나 합니다.
위기 도고 등의 경우,
갑자기 아프리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을 위한 기도가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주변의 누군가인 것일텐데요.
예컨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는지 알 때와
무엇인지 감조차도 잡고 있지 못할 때는
분명 차이가 있기 쉬울 것입니다.
이 부분을 생각해보다가 '걱정도 팔자셔' 했다는 ㅋㅋ
위기도고 등의 기도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기도의 주인이 누군가~~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뭔지도 모르는 상태여서.....라는 것이 참으로 글터만요.
기도를 많이 양으로라도 밀어부치면 들어주시는 줄 알고는
나름 기도에 대해 열심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계속 저에 대한 기도로 돌아가는 은혜를 주셨더랬어요.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까먹는 것은 순식간이더만요.
여러 죄가 있었을 것인데 중심적인 죄는 연민이었어요.
계속 연민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었는데
바로 그 부분이 저의 틈이고 약점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연민죄는 선함으로 포장되기 쉬운 고약한 죄입니다.
마음 가운데 사랑이란 것이 있으니까 저지르는 죄이거든요.
미움과 증오가 있다면 연민이란 것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사랑에 대해 안다고들 여기지만
주님 안에서의 사랑이어야 하기에
역시도 어려운 영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랑이 쉽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사랑이 뭔지 모르를 가능성을 봐야겠죠.
주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내 혈육이 나를 불태워죽이려 한다면
저는 일단 가족을 피해 도망을 가려 들 것입니다.
검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니가 죽든 내가 죽든이 되는 것이기에
자칫 난리 가운데 주님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서요.
또한 그럼에도 핍박하는 이들을 사랑하기에
싸우는 것이 아닌 도망을 가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윗이 밧세바를 취했을 때를 보면
어느 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을 죽였을 때와
마귀에 속한 사람을 죽였을 때라는 차이를
모르겠다~하지는 못하죠.
그러니모든 것의 중심 잣대가 '나' 가 기준이 아닌
'주님'이 기준이 되어야 하기에
사랑에 대해서도 깨닫고 알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란 것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만
그 사랑 안에는 공의가 들어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그러면 남들도 다 그런 줄 알더라~~~"
넵~~~~~
걍 이리 살게 내버려 두세욥
여전히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서두
지식적으로 이해를 헸다와
실행을 한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과
연민을 앞세우면 사랑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무진장 걸렸어요 ㅎㅎ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연 하겠죠. 사랑에 대해 모르는데
어캐 주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겠어요.
모름으로 인해 자신의 의와 사랑을 혼동하여 버리기 때문에
이 상태가 계속 되어지면 주님을 거부하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르겠는지요.
또한 주님에게 순종하지 않은 채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되겠죠.
분명 주님이 그러셨죠. 주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라고요.
그러나 우리는 연약함이나 무지로 계명들을 다 지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한들 주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에
불가항력 등의 이유로 마음은 있으되 지키지 못하는 것과
죄에서 피해나갈 수 있음에도 육적인 이유로 죄를 짓으면서도
연약함으로 핑계를 대는 것과는 다르겠죠.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세상적으로는 의당 그래야 하는 것으로 간주 받으나
실상은 주님의 왕되심을 부인하는 죄여서 불신의 죄이다 합니다.
어제 올려주신 목사님 설교 중 고양이 예화가 나와서리
동물에게도 악한 영이 들어감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돼지 떼를 몰살시킨 것을 보면 동물을 죽이는 등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들 수 있을 것인 등등.
저처럼 개만 보면 좋아하는 사람은
자칫 개로 인해서도 영향을 받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나 아닐 것 같습니다.
개의 주인으로서 통제가 가능해질터이니
악한 영을 쫓아내면 되는 것 같은데요.
요즘엔 사랑이란 개념이 많이 무너지고 혼란해져서
심지어는 개가 주인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던데요.
개가 사람을 자기 아래 서열로 인식하면
주인이라도 말을 잘 안듣기에
개보다 낮은~이 되어뿐지면 잘 안되겠다 합니다만 ㅋ
최근에 젠더가 많이 파고든 것을 봅니다.
돈이 많거나 많아 보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엔 일부에 한정되어 있었고 쉬쉬~했었으나
그와 같은 가증함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접하곤 합니다.
윤리규범이 무너지면서 일반적인 사랑이란 개념마저도
혼탁해진 탓이겠죠.
범죄사건의 보도 등을 보아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더 챙기는 듯할 때가 있음을 접합니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악을 감싸고 도는 것은
그만큼 판단의 기준이 무너지면서
악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다 합니다.
전에는 저라도 목소리를 높이면
사람들에겐 이성이 있기에 바꿀 수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되는 존재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목사님이 기도 시리즈를 통해 연일 설명해주시는 내용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당사자가 변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이의 기도로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반복을 하여 이야기를 해주셔도
알아듣는 이에 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여깁니다.
자신은 알아들었다고 여기지만 못 알아듣습니다.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한 기도를 계속 하고
그러다보면 타인의 상황 등을 변화시켜주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들이 더 강할걸요.
그런 모습들을 접하면 자유의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한 성당 앞을 지나다니곤 하는데
아침 미사가 끝나는 시간 즈음일 겁니다.
성경책을 보이게 가슴에 안고 다니는 이들이 많던데요.
궁금하더라고요. 보이도록 들고 다니지만
실제 말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라는
그들은 모른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닌, 궁금증요.
자유의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간섭, 조종, 판단, 정죄, 비판 등의 여러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심지어는 기도로서 하나님까지 조종하려 듭니다.
하나님을 조종하려한다는 것은 교만의 최상급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대등하거나 더 높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합니다.
개를 키울 때 개가 주인 행세를 했다면
당장 저한테 디빵~~맞았을 겁니다만,
새끼 때부터 순딩해서 말을 알아들으면서 복종을 했었어요.
그러니 어떻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지요.
제가 하나님의 주인 행세를 하려 든다면
단지 개 패듯~(?) 맞기만 하는 선에서 끝나겠는지요.
악인을 향한 도고 기도를 계속 하면
하나님과 맞서는 죄가 되어지기에 이내 믿음이 무너져 내리고요.
미혹 등의 문이 열립니다.
목사님이 설명해주시는 그대로 마귀가 주는 생각에 잡히고
소리를 듣게 되고 보여지는 것이 생기면서
혼자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멸망의 길로 끌고가려 합니다.
생각해보면 신사도에 빠져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합니다.
자신에게 계시 등을 달라고 기도하면 되야요~
그런 사람 옆에 달라 붙어 있거나.
미혹의 영이 침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판단이 어려워지고
왜곡 등이 빠르게 일어나고요.
미혹의 영이 침입했다는 것을 알면 싸울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요.
그런 이들과 충돌해본 적이 있는데
저더러 더러븐~마귀라고 하면서 도망을 칩디요.
그리고는 숨어서 계속 이간 하는 것을 봤죠.
이간을 하는 사람이나
이간을 당하는 사람 모두 죄없다 하시지 않겠죠.
그레서 미혹이 강할수록 이간하는 힘 또한 세고,
이간은 미움, 정죄, 판단, 헤아림 등과 짝을 지으며
왜곡 거짓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태로 결합한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악은 죄와 비례를 하는지라
죄가 있으면 악으로 인해 넘어집니다.
죄를 범하는 가운데 있으면서도 "주님이 가장 강하시다~"라고 외친들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기 쉽습니다.
그런 상황에 있으면 주님이 강하신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님 노릇을 하려고 들 가능성이 더 높겠죠.
죄 가운데 거하면서도 죄와 싸우려들지 않으면
마귀가 그 사람의 주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늘 있습니다.
있는 사람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은 것마저도 빼았기게 된다고 하신지라.
내가 더 많이 가지는 자에 속할 것인지
빼았기는 자에 속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데
듣는 귀가 없으면 이마저도 알 수가 없거든요.
음해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며
고통이나 고난이 오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만,
평안하기만 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믿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평안하면 자신이 왕의 자리로 올라가버리기 쉬울걸요.
사람들은 부유해지길 원합니다.
저도 그러하나,
그러나 "그래서 그게 뭔데?"라는 물음이 생깁니다.
빈곤 상태가 아니기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하지만 부요함으로 복음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 마음에서 절박함이란 것이 사라집니다.
마음의 절박함이 생길 때 절대자이신 분을 찾는 것이지
몸과 마음이 부요한 가운데에서는 아쉬운 것이 별로 없겠죠.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많이 아픈데요.
안타까운 것은 미혹이 심한데도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잘못된 길에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고 해도
가족까지 다 버릴 각오가 아니면 그 상황서 되돌이켜
빠져나오기란 어렵습니다.
하여 그 상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끝까지 미혹에 대해 깨닫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만.
만일 제 의지를 앞세워 그를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면
저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되어질까요?
승산없는 싸움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발을 뻗으려고 해도 뻗을 수 있는 자리를 살펴야 하거늘
주님과 싸우는 자리에 서는 것이라.
헤헤~~~
주님을 아는 지식이 여전히 일천한지라(부끄러바서~~)
적는 횟수를 다소 줄이려 하니까대신 내용이 길어지는 경향으로 웃었어요.
주변엔 늘 미혹된 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 직전엔
지겨워서 경찰에 신고하려 했던 적까지 있었을 정도로
특히 새나라(신~~)는 집요했었죠.
처음엔 여호~쪽인 줄 알고 상대를 안했는데 그쪽이었고
그들 간에도 구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저희 동은 새나라가 잡고 있었고
옆 동은 여호~쪽이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주민들이 경비 아저씨에게
출입을 통제시켜달라고 항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해당 동의 주민인 경우에는 통제가 어렵다고 하던데요.
사단이도 분업 체계를 이루고 있구나 ~~했었죠.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이 저 때문이었다고는 하지 않으나
(몇명을 파선시켜왔는가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악인에게 부어지는 것을
시간의 흐름 가운데 봤습니다.
진노하심이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보니, 무서웠습니다.
악인을 위해 기도하면 그 악인이 깨어나기보다는
내가 어리석어지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에 불과하며
악인에게는 악을 더 더해주는 것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결과 악인에게 진노의 잔이 빨리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셈이 되고
동시에 내게까지도 그 잔을 나눠주사~~가 되어지겠죠.
"그라면 정은이를 위해 기도하면 되겠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가앙산~"
그런 기도를 하시겠다는 분은 굳이 말리지 않습니다만,
저는 안해요. n.e.v.e.r~~~
국가공인 ~~~대표 바보도 아닌데 말이죠.
열마 전에 일본 어드메에서 나온 북한 정보를 접했는데
한민족이니 하는 것이 부끄러바요~~~얼굴을 차마 못들겠어요 ㅜㅜ
동시에 그러한 악이 내게도 있을 수 있었겠구나 합니다.
사상이란 것은 미혹이고 사이비 종교입니다.
사상은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것이기에 그리 여깁니다.
사상에 찌들은 자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거짓을 행하고 악을 행하여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면 됩니다.
그러니 사상에 매몰되어지면 악인이 될 수 밖에 없을걸요.
좌우 개념 역시도 사상에 기반하는데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우~쪽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oblesse oblige 와 양심을 강조하기에
악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이겠죠.
결국 악인들이 이리저리 디글디글 하다는 것이기에
중보기도의 미혹이 강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 때문에 넘어진다던데
자식이 악인이 아니라고 해도
그러나 자신이 자식의 왕 자리에 서 있기에 그러는 것이겠죠.
그간 상주와 상제의 자리에서 상을 치러봤었죠.
매장에서도 삶의 덧 없음에 대해 느끼게 돠는데요
화장한 후 한줌의 재에 불과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더라고요.
주님을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슬프다 ~합니다.
자신의 영조차도 깨우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잠들지 않도록 지키는 것 또한 쉽지 않은데
자신의 영조차도 지키기 어려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 누구를 어떻게 지키겠나 합니다.
어느 분이 그랍니다.
주님이 2~3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계신다 하셨는데
자신은 혼자여서 힘들다고요.
사도바울의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
주님이 왜 오로지 사도바울과만 만나주셨을까요?
정족수 미달인데요.
제 집에서 믿는 이가 아직까지는 저 혼자입니다.
그라믄 저는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아등바등 거린들
주님을 만날 수가 없겠네요. 계속 그리 믿는다면
자신이 지켜야 할 자신의 믿음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로 전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기도로 전도가 가능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저는 당장 식음을 전폐하고라도 기도만 할 겁니다.
진자로 그럴 경우 그 모습에 감화받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아니라 당장 저를 입원 시킬걸요~
주님을 믿는다 하더니,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가텨~ 함시롱요.
단지 기도가 아닌 나의 모습과 행동
즉 삶에서 주님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죠.
대부분의 경우에선 복음을 직접 전해줘야 하는 것이고요.
이를 맨 투 맨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합니다.
제게 복음의 씨앗을 뿌려준 이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교회의 목사님입니다.
어렸을 때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데
그 분이 주기도문을 외우도록 했었어요.
칭찬과 함께 바둑판 모양의 국어 노트 한권을 상으로 받으려고 외웠죠.
주기도문을 이용한 미혹이 많다지만
저는 주기도문을 통해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도문을 외웠던 당시가 아닌 고딩 때.
실재하심에 대해 앎과 모름의 차이가 크겠죠.
천 마디의 말보다 나를 통해 주님의 실재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겠죠. 그렇지 않은지요?
기도에 미혹이 있는 경우는
양 극단으로도 흐르기가 쉽지 않겟나 합니다.
양으로 밀어부치면 결국 하나님이 감복하사
백기를 드실 것이란 생각과
몇번 정도 해보고는 안된다고 쉽사리 판단하는 등의
전혀 다른 것 같은나 자세히 보면 같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생각에 불과합니디만,
모두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올라가 있는 양상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사단이는 이런 양상의 기도를
얼마나 많이 부추기겠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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