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이정웅의 푸른나무 스크랩 한국 최초의 사과나무 2세목 고사(枯死)
이팝나무 추천 0 조회 89 18.06.16 12:1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동산의료원 설립자 존슨이 미국 미조리주에서 가져와 대구에 심은 사과나무 2세목 살아 있을 때의 모습

2018, 6월 고사된 상태의 2세목

고사목의 수관 온통 잎이 붉게 말랐다.

 

대구수목원의 장원도 계장이 2세목에서 삽수를 채취해 생산한 접목묘 즉 3세목

 

존슨 선교사의 부조

한국 최초의 사과나무 2세목 고사(枯死)

대구 동산의료원 자료(동산의료원 100년사 등)에 의하면 우리니라에 사과나무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9년(고종 36) 동산의료원 설립자 존슨과 계성학교 설립자 아담스 선교사라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구입처와 보급 방법은 서로 달라 전자는 미조리주에서 수입한 묘목을 신자들에게 그대로 나눠주었던 반면에 후자는 켄사스주에서 가져와 접(接)을 붙여 나눠주었다고 한다.

현재 두 선교사가 수입했던 사과나무는 대구의 어느 곳에서도 없다. 그 후 존슨이 살던 사택(舍宅)에서 당초 들여왔던 사과나무의 종자에서 발아된 2세목을 발견하여 1999년 개원 100주년이 되는 해에 아담스의 3남, 조지 아담스가 참석한 가운데 청라언덕의 의료선교박물관 옆에 옮겨 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과나무 100년”이라는 표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빗돌을 세웠다.

“여기에 뿌리를 내린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한국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목으로서 동산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 아니라, 대구를 사과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다. 초대 병원장인 존슨박사 Woodbridge O Jhonson 한국명 장인차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조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하여 이곳에 재배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다. ”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대구의 명산으로 지금도 외지인들은 대구하면 사과를 연상할 정도로 이미지가 굳어져 대구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대구시민들의 경제력 향상에 기여한 사과나무의 유전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했다.

현장을 나가 의료원 관계자를 만나보니 수령이 70년 정도라고 했고, 노쇠해 줄기의 수피(樹皮)가 상당 부분 썩어 있었다. 계속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시가 직접 관리에 나서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동의했다.

사실 그 때 실무자들은 반대했다. 100년 이상이 되어야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는 규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너무 쇠약해 지속적으로 관리해도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담당자로서는 응당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은 우리가 관리해야 한다고 강권하여 2000년 10월 19일 보호수로 지정했다.

그 후 대구수목원 장원도 계장에게 부탁하여 접목을 통해 후계목으로 양성하라고 했다. 2007년 3월에 착수하여 그동안 키워오던 나무 3세목을 2012년 5월 모수(母樹) 옆으로 옮겨 심었다. 이 때 김범일 시장도 참석했다.

그런데 18년 째 되는 올해 6월 12일 같은 모임 “나무를 찾아서 나를 찾아서”의 이석순 부회장이 잎이 바짝 말라 수관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한 2세목의 사진을 카톡에 올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후배들이 원망스러웠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관리 잘 못이 아니라, 주어진 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된 것 같았다.

어떻던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해보려는 뜻에서 중구청 공원녹지계장을 하다가 지금은 달성군에 근무하는 박대수 계장에게 사진을 보내 후임 중구청 계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했다. 며칠 후 현장을 찾았다. 충해(蟲害)나 병해(病害)가 아니라 그동안 섭씨 30도가 넘는 고온이 지속되었고 심을 때부터 쇠약한 상태였으니 명이 다해 고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새로 심은 3세목 3그루는 건강했다. 열매를 빽빽하게 달고 한여름 내려 쪼이는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영글고 있었다. 그 때 후계목을 양성해 놓지 않았다면 대구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던 사과나무의 흔적이 지구상에 사라질 뻔 했을 것을 감안하면 후계목 양성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옛 날 사람들은 논밭팔고,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내던 시절, 사과나무 한 그루로 대학생 한 사람을 공부시켰던 때도 있었다. 나무가 죽어 보호수대장에 “고사(枯死)”라고 한 줄 그으면 행정적인 처리는 끝나겠지만 이 나무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는 사라저서는 안된다. 유전자원의 보전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다음검색
댓글
  • 18.06.24 00:23

    첫댓글 3세목이 잘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 18.06.24 14:36

    3세목 육성을 정말 잘 하셨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