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 일정은 창덕궁 - 후원 - 인사동 - 보신각 - 청계천 - 광장시장입니다.
창덕궁
1392년 건국된 조선 왕조는, 새로 지은 경복궁에서 왕자들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자 개경으로 도읍을 옮겼다가, 1405년(태종 5) 한양으로 다시 천도한다. 이때 태종은 무악 아래 새 도성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한양으로 재천도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태종은 정궁인 경복궁을 비워두고 경복궁 동쪽 향교동에 궁궐을 하나 새로 지어 '창덕궁'이라고 이름지었다.
현재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宣政殿)을 중심으로 한 치조(治朝) 영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동쪽의 낙선재(樂善齋) 영역, 그리고 북쪽 구릉 너머 후원(後苑)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궐의 중요 건물은 유교 예법에 맞게 중심축을 형성하며 도형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야 하지만,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등은 중심축 선상에 배치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창덕궁이 정궁인 경복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으로,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한 데서 생긴 결과이다. 평지에 세워진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북쪽 응봉에서 흘러나온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궁궐을 이루는 건물들은 일정한 체계 없이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얼른 보아 무질서해 보이는 건물 배치는 주변 구릉의 높낮이뿐 아니라 그 곡선과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종로3가에서 돈화문 가는 길
돈화문
창덕궁 입구의 회화나무
권내각사
내각 : 권내각사 입구
규장각
금서청
창덕궁내 수로
억석루
영조와 태조 어진
양지당
인정전
인전전 내부
선정문
지붕이 청기와인 선정전
자동차가 진입 가능한 희정당 입구
희정당
비원
창덕궁 뒤쪽에는 135,200여 평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왕실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비원(秘苑)이라고도 불리는 창덕궁 후원은 일반 백성들은 접근할 수 없는 조선 왕실의 금원(禁苑)이었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는 상림(上林)이라 표현되어 있는데, 이곳은 왕이 수학(受學)하고 수신(修身)하며 소요(逍遙)하던 곳이다. 때로는 사냥도 하고 무술도 연마하였으며, 제단(祭壇)도 설치해 제사도 올리고 종종 연회도 베풀며 정사의 속박에서 벗어나 무욕허심(無欲虛心)의 경지에서 자족하고 사색하도록 건물과 정원을 조영한 곳이다.
창덕궁 후원 중에서도 부용지(芙蓉池) 일곽의 모습은 가장 두드러진다. 부용지 일곽에 있는 모든 건물은 정원의 일부이고, 정원은 바로 자연 그 자체이다. 건물과 정원과 자연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일체되어 있다.
부용지 서쪽으로는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이 있고, 남쪽으로는 부용정(芙蓉亭)이 물 위에 반쯤 떠 있다. 부용정 건너 북쪽 산등성이 마루턱 넓은 터에는 다락집인 주합루가 남쪽을 향해 우뚝 서 있고, 그 앞 경사지는 꽃을 심은 여러 단의 화계로 조성되었다. 이곳으로 오르는 첫 단에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이 있는데, 이 문을 지나 사방으로 난간을 두른 주합루에 서면 부용정과 연못은 물론, 주위 경관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정조(正祖)는 실학(實學)으로 팽배한 유능한 신하들을 위하여 주합루 아래층을 규장각이라 하여 수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보존하는 서고로 꾸몄다. 주합루는 우주의 모든 이치를 합하여 한자리에 모이게 한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합루 남쪽 아래에 있는, 사방이 네모난 못인 부용지 속에는 둥글게 생긴 작은 섬 위로 잘생긴 늙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천원지방을 나타낸다.
후원의 제2영역은 애련정(愛蓮亭) 일대로, П자 모양의 불로문(不老門)을 통하여 드나들게 되어 있다. 불로문은 이 문을 드나들며 늙지 않기를 기원하였다고 하는 문이다. 이곳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 후일 익종, 1809∼1830)의 개인 서실(書室)이었던 기오헌(寄傲軒)이 자리한 정숙한 지역이다.
애련정 서쪽으로는 연경당(演慶堂)이 있다. 연경당은 원래 왕과 왕비가 사대부(士大夫) 생활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효명세자가 1828년에 사대부의 가옥과 유사한 형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효명세자가 지은 연경당은 동궐도에 묘사되어 있는데,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의 연경당은 1846년(헌종12) 다시 지은 것이다.
후원의 제3영역은 부채꼴 모양의 특이한 평면 형태를 지닌 관람정(觀纜亭)과 지붕이 두 겹으로 된 존덕정(尊德亭)이 각각 연못을 끼고 자리해 있다. 존덕정은 육모정자인데, 정조(正祖)가 절대군주의 의지를 수많은 개울물에 비친 밝은 달에 자신을 비유하여 표현한 '萬川明月主人翁自序(만천명월주인옹자서)'란 기문이 북쪽 창방에 걸려 있다.
비원 입구
주합루
영화당
부용정
수어문
금마문
불로문
부용지 연꽃
연경당 입구 장락문
연경당
연경당
연경당내 고목
연경당
승재정
승재전 천장 꽃무늬
관람정
인정문
금천교
이준열사 집터
인사동
인사동
인사동
일월오봉도
보신각
청계천
정조능행차반차도
광장시장
창덕궁은 몇번 둘러 보았지만 비원은 관람하기 쉽지 않은 곳인데, 이렇게 초록이 무성한 것은 서울시내라 하기 힘든, 자연이 아주 잘 보존된 것이 향후에도 잘 보존되기를...
더운 날씨에 오늘도 15,000보정도 걸으면 광장시장에서 맛있는 점심까지 완성한 경복궁, 비원 궁능성시 투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