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이는 바람 소리/정임표
비가 더 많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는 태풍 "타파"가 몰고 오는 비를 보며 하릴없이 아파트에서 시간을 죽이던 나에게 기어코 고향으로 차를 몰게 하였다.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생기가 돌지 않는다. 그 냉한 기운이 싫어서 틈만 나면 달려가서 청소도 하고 풀도 뽑았지만 썰렁하기는 매 한가지다. 지난 해 세상을 뜨신 어머니 방에는 저벅 저벅 걸어 다닌 내 발자국이 먼지 위에 뚜렷한데, 비가 얼마나 왔던지 아버님 방의 벽지는 천장에서부터 푹 젖어 내리고 있었다. 창고에 가서 사다리를 가져와 담 벽에다 기대어 놓고 흔들어 본다. 초보 일꾼이 하는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사다리는 내 의욕보다 한 걸음 정도가 짧았다. 지붕에 올라간다고 달리 수리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배수구에 낙엽 같은 찌꺼기가 막혀있다면 그거라도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산을 쓴 채 양동이까지 들고 올라갔다. 퍼붓는 빗속에서 사다리가 위태롭게 뒤뚱거린다.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지붕을 완전히 덮는 삿갓공사를 해야 할 듯하다. 내려가려고 보니 올라올 때보다 사다리가 조금 더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한 칸만 잘 딛고 서면 그 다음 칸에서는 훌쩍 뛰어 내려도 되겠다. 우산도 양동이도 죄다 밑으로 던져버리고 양손으로 옥상 난간을 붙잡았다. 오른 발을 사다리에 올리고 지그시 힘을 싣는 순간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땅바닥 아래로 곤두박질쳐졌다.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짧은 순간이었다. 그대로 화강석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집은 빈집이었다. 고통 중에서도 이대로 비 맞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의식이 들어왔다. 거실로 기어들어갔다. 거실바닥에 엎드려서 또 한 참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당신 나이가 몇인 줄 아느냐? 아직도 청년인줄 아느냐? 몸을 아끼지 않더니 잘했다 잘했어!’
아내의 지청구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에 묻어오는 환청이 몽롱한 해져가는 내 의식을 일깨워서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하였다. 두 팔로 마룻바닥을 짚고 무릎걸음으로 허리를 펴 보는데 허리께가 시큰 거린다. 일어서서 바지를 추스르는 데 넓적한 통가죽벨트가 끊어졌다. 벨트가 나를 살린 것이다. 양팔을 흔들어 본다. 다행이 팔은 멀쩡하다. 빗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갔지만 집은 여전히 빈집이었다. 운전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급실로 갈까하다가 입원하면 아버지를 한참동안 못 뵐듯하여 요양병원으로 갔다. 하루에 한번 아들이 면회 오는 것만을 낙으로 삼다가 한동안 출입이 끊어지면 자식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금년 정월에 입원한 아버님은 물만 삼켜도 폐로 흘러들어가니 ‘콧줄’을 꼽고 생활하신다. 침대에 반쯤 누워서 ‘콧줄’을 통해서 캔으로 된 미음을 드시고 종일 잠만 주무시다가 내가 큰소리로 “아부지예!”하고 부르면 의식이 돌아와서 작은 소리지만 “와?”하면서 대답을 한다. 나는 매일 그렇게 아버지와 내가 함께 있음을 확인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내 몰골을 본 간호사들이 빨리 큰 병원으로 가지 않고 왜 이리로 왔느냐고 성화다. 겉이 멀쩡한 환자들은 응급실에 가 봐도 관심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 목욕탕으로 차를 몬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뭉쳐진 어혈이 풀릴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밤이 되니 다리도 붓고 멀쩡하던 왼 쪽 발뒤꿈치까지 아프다. 하루정도 쉬면 괜찮아지겠지 여기며 소염제를 바르고 누웠다. 아침이 되니 다리가 뒤꿈치서부터 종아리를 거쳐 허벅지까지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종일 누워 있다가 월요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가서 MRI와 CT 촬영을 하니 허리에 금이 갔다고 한다. 두 달 동안 꼼짝 말고 누워 있어야 된다고 한다. 지붕에서 떨어진 뒤 5일차 되는 날 ‘운명 예감’의 전갈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서 있는 게 무리가 되어 아버지 휠체어에 내가 앉았다. “아부지예!”하고 큰 소리로 부르니 눈을 감은 채로 내 손을 힘주어 꼭 잡는다. 침대 곁에서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손만 움켜잡고 있다가 돌아 왔다. 이틀 뒤 “음력 구월 초하룻날” 그날 아침에 아버지는 평생 짊어지고 왔던 4남 1녀를 향한 그 무거웠던 등짐을 내려놓았다. 정신없이 달려가서 손을 잡고 “아부지예!” 하며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초혼(招魂)하던 내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당상부모천년수(堂上父母千年壽)를 기원하며 내 손으로 지어드린 고향집에서 아버지는 딱 스무 해를 살다가셨다. “한 동안 아버지 뵈러 못 올지도 모른다.”는 내 마지막 인사가 가을비 서늘한 바람이 되어 휘몰아쳐 왔지만 내 손바닥 안에 남겨진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만은 앗아가질 못했다. “슬하자손만세영(膝下自孫萬世榮)”이라 쓴 깃발을 흔들며 아득히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였다. 나에게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를 부를 일이 없어졌다.
‘허리가 나으면 비새는 빈집을 다시 수리해야지.’
작가 약력 : 범몽(凡蒙). 수필가. 관세사. <문학예술>과 <에세이 21>로 등단. 수필집 『꼴찌로 달리기』 『생각 속에 갇힌 인간』. 현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한국관세사회 윤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