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신문 2023년 10월 17일
454 – 관심과 무관심
“지혜로운 자는
그릇되게 행동하는 사람을 훈계하고, 충고해서
그가 잘못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명한 사람은 지혜로운 자를 공경하지만,
자기 사견에 갇혀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를 멀리 한다.”
- 법구경 #77
앞의 내용은 대인 관계를 통해 소중한 인연법을 설하고 있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어떤 방법이 최선의 길이라는 정의는 없다. 가족ㆍ학교ㆍ사회에서 우리는 늘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간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사람과의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뜻이다. 하여튼 앞의 <법구경> 내용을 두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는 남에게 관심 갖고 충고를 통해 좋은 길로 인도해준다.
둘째는 남의 충고에 감사히 여기고 충고해주는 사람을 공경하라.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전자[첫째]인 경우를 보자. 필자는 예전에 남에게 충고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솔직히 굳이 나와 관련되지 않으면, 피하는 편이었다고 보면 맞을 듯 하다. 종종 불교계 신문이나 원고에서 문제점이 보여도 굳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전 쯤이다. 어느 불교계 기자와 개인적으로 차를 마시며 대화하면서 ‘저 신문에 나온 원고가 교리상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굳이 그 분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때 그 기자가 내게 충고하였다. ‘스님께서는 공부를 한 학자인데, 당연히 지적해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그 기자의 말에 나의 이기적 성향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후부터는 행동을 바꾸었다. 학문적인 것이든 삶의 방향길이든 상대에게 충고를 해주는 것이 스님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상대에 대한 충고는 잠시 서로 불편할 뿐이요, 미래를 위해 좋은 업[業:행동]이라고 본다. 누구나 상대에 대한 관심은 인간으로서 당연함이요, 애정이다. 그러면 그 반대인 무관심은 어떨까?
‘사오관셴스[少關閑事]’라는 단어가 있는데,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관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의 관습적 문화로 중국인들의 좋지 않은 습관 가운데 하나이다. 곧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이며, 남이 어려움에 처해도 전혀 돌보지 않는 중국인들의 못된 버릇이다. 실제 어떤 할아버지가 길을 지나다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몇 시간 동안 수십여명이 길을 지나가면서도 쓰러진 사람을 거들 떠 보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는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고 말았다. ‘설마 그럴 리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러하고, 필자가 말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 이런 데는 역사와 관련된다. <아Q정전>의 저자인 루쉰(魯迅 1881∼1936)은 그의 산문집에서 중국인의 사오관센스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해 놓은 부분이 있다.
“ ‘자기 때문 앞 눈이나 치울 일이지, 남의 집 지붕 서리는 신경쓰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남의 위급함을 도와주려다 도리어 남에게 오해 사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관청 문이 아무리 활짝 열려 있어도 일리는 있되 돈이 없으면, 따지러 가지 말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관망만 한다. 짐승 같은 이들이 권력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백성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얼마 전에도(1930년) 사람이 병으로 길에 쓰러졌는데, 환자를 둘러싸 구경하거나 재미있어 하는 이들은 많아도 도움을 주는 사람은 극히 적다.”
루쉰은 당시[1930년대] 중국이 처해있던 현실을 비판하며, 문학으로 신문화운동을 이끌고자 했던 개혁자였다. 루쉰이 자국인들의 무관심을 그렇게 걱정했는데, 지금도 중국은 현실적으로 그러하다. 아마 중국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나, 어떤 사람이나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의 <법구경>과 똑같은 내용이 <숫타니파타>에도 있다.
“다른 사람이 충고해주면, 반성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라.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악한 마음을 품지 말고,
좋은 말을 많이 해주어라.
시기가 적절하지 않을 때는 말을 삼가고,
헐뜯으려는 마음을 품지 말라.”
근자에도 젊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말하면, 꼰대의 잔소리로 생각한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만 받아들이면, 영원히 발전할 수 없다. 몇 년전에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 들수록 어른이라는 중압감이 삶을 힘들게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지도 받고, 야단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 보호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학생 신분으로 있는 것은 인생에서 행복한 겁니다. 사회 나가면, 충고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각설하고, 글 첫머리로 돌아가자. 고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BC 6세기]에도 남에게 충고하거나 충고를 좋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어 부처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상대에게 충고를 할 때는 적절한 시기에 하고, 빈정대지 않으며, 진심을 담자. 상대에게 진심으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부메랑되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또 그 반대로 상대가 내게 충고할 때는 ‘내가 저 사람으로부터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증거구나. 내게 무관심하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을 텐데….’라고 받아들이자. 자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마음을 조금만 열고 살자.
첫댓글 친할수록 심한 말을 마음에 남는 나쁜말을 듣는 순간에도 자신의 심구의를 살펴
업장을 극복하는 자라야 실족하지 않는 삶 가까운 친구를 잃어 버리지 않는데
실천을 통하여 익혀야 한다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