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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1939년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 김다인작사 김송규작곡 김해송취입
他面-타면- 박영호작사 김송규작곡 김장미 <쌍쌍타령>을 실었습니다
상투깎고 十年工夫-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발톱깎고 十年工夫-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네까짓게 버팅기면 나는 너를 홀타갈까 그런데로 나만 따르면 족도리나 씌어주지
관세음보살 관샤음보살 십년공부 나무아니타불
좁쌀먹고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도라지먹고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되잖은게 된척하면
허리굽힐 난줄아나 그런데로 나만 쫗으면 가마라도 태워주지 관샤음보살 관샤음보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하늘천 따지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가갸거겨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지지리도 못생긴게
분바르면 고와질까 그런데로 나만 믿으면 고기라도 먹어보지 관샤음보살 관샤음보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상기가요 <나무 아미타불>은 절절한 사랑노래입니다
1939년으로부터 10여년전 어느여인은 세상사랑에 傷處-상처-를입어 削髮-삭발-하고 깊은 산사로 입산했습니다
중생 속세에 덩그러니 남은 사람은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 노래속 화자입니다
이노래를 작곡하고 노래까지한 김해송이 이들둘의 사랑을 대변하는데 절간으로간 여인이 속세로 돌아온다면 결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족두리를 씌여주지” “가마를태워주지” “고기를 먹여주지” 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그녀를향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곡을 작사한 김다인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박영호 조명암이 번갈아가며 사용한 예명입니다
이노래는 보는시각에따라 견해를 달리할수 있을법도한데 사실은 至高至純-지고지순-한 사랑노래로 볼수도있읍니다
노래내용은 절절한데 가락은 이외로 輕快-경쾌-합니다
짠짜짜라라 짠짠~를 반복합니다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은 불타 아미타불에 歸依-귀의-한다는 의미인데 이노래에서는 俗世-속세-를 등진다는 의미를 적시하지만 끝내는
還俗-환속-할것이라 읇조립니다
阿彌陀佛은 無量壽佛-무량수불- 또는無量光佛-무량광불-로서 西方淨土-서방정토-에 살며 인간의구제에 전력하는 불타로 묘사됩니다
淨土宗-정토종-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을 진심으로 念-염-하면 極樂世界-극락세계-에 往生-왕생-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六字名號-육자명호-라고 하며 중생의 信心-신심-을 표현한것이나 아미타불의 慈悲心-자비심-도 담겨있어 機法一體-기법일체-사상을 담고있습니다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은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救濟-구제-하고 極樂往生-극락왕생-의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인데 이노래의 끝소절 관샤음보살은
사랑하는 여인이 수도생활을접고 속세의 자기집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念-염-하는 기원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光世音-광세음-.觀世音-관세음-. 觀自在-관자재-. 觀世自在-관세자재-.觀世音自在-관세음자재- 등으로 불리는데
줄여서 觀音-관음-이라합니다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고 관자재는 이세상의 모든 것을 觀照-관조-해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김해송은 육이오공간 강제납치되 북으로 끌려가다 폭격으로 사망했는데 많은기록서 자진월북으로 기록하고있습니다
이는 오기입니다 이사실은 여러 번 설명한바 있습니다
조명암 김해송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대한제국을 强制倂合-강제병합-한 時期-시기-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祖國-조국- 大韓帝國-대한제국-의 實體-실체-를 얼마나 認識-인식-했을까요
371—感激時代-감격시대-
1939년ok-record 발매 sp음반 流行歌-유행가-姜海人 作詞-강해인 작사- 朴是春 作曲-박시춘 작곡- 南仁樹 吹入-남인수 취입-
他面-타면- 金用浩 作詞-김용호 작사- 嚴載權 作曲-엄재권 작곡- 李蘭影-이난영- 노래 <달없는 航路-항로->를 같이 실었습니다
거리는 부른다 歡喜-환희-에 밫나는 숨쉬는거리다 微風-미풍-은 속삭인다
불타는 눈동자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거리의 사랑아 휘파람불며 가자
來日-내일-의 靑春-청춘-아
바다는 부른다 情熱-정열-이 넘치는 靑春-청춘-의 바다여 깃발은 펄렁펄렁 바람세
좋구나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바다의 사랑아 希望峯-희망봉- 멀지않다
幸運-행운-의 뱃길아
잔디는 부른다 봄香氣-향기-감도는 希望-희망-의 大地-대지-여 새파란 地坪千里-지평천리-
白馬-백마-야 달려라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갈거나 잔디의 사랑아 저언덕 넘아가자
꽃피는 마을로
이노래를 두고 김정희의수묵화 歲寒圖-새한도-와 感性的-감성적-인 대칭을 이룬다 는 主將-주장-이보입니다
새한도는 大巧若拙-대교약절-의 傑作-걸작-이니깐요
큰意味-의미-를품은 작품은 상대적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拙劣-졸렬-해 보인다는 말입니다
상기노래는 表面-표면-상 노랫말로는 感激-감격-을 豊盛-풍성-하게 읊었지만 時代的-시대적-으로 서글픈 現實-현실-을 넘어 希望-희망-의
未來-미래-를 꿈꾸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歲寒圖-세한도-는 추사선생이 중국에서귀한책을 구해서 짊어지고 濟州島-제주도-까지 찾아와 마주앉았던 弟子-제자- 中國語 通譯官-중국어 통역관-
을지낸 이상직에게 師弟支干-사제지간-의 정을 人間關係-인간관계-의푯대로 암시해 그려준 그림입니다
그때 추사는 제주도에서 歸養-귀양-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때는1844년 붓글씨를 쓰다가 남은 먹물몇방울로 그린듯한 그림. 草家-초가 오두막집 두칸 집좌우로 소나무와 잣나무 각각 두그루가 을 이루고 서있읍니다
그림은 추운 겨울속이라 스산하지만 솔잎과 잣나무잎은 꿋꿋하게 느겨집니다
1939년경 강해인이 散文-산문-으로 作詞-작사-한 感激時代-감격시대-는 노랫말이 눈에보일 듯 展開-전개-됩니다
이 直說-직설-序詞-서사-가 훗날 親日抵抗性-친일저항성-口舌-구설-에 휘말린다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1995년 解放 五十周年-해방 50주년-행사에 울려퍼진 演奏-연주-가 論難-논란-의 씨앗입니다
大衆演藝評論家-대중연예평론가-겸 作曲家-작곡가- 황문평씨등의 이의제의가 발단이었습니다
御用親日歌謠-어용찬일가요-를 어찌 光復 紀念式場-광복기념식장-에서 연주할수있느냐는 것이 話頭-화두-였습니다
<感激時代-감격시대->의 中間ment-중간멘트-도 강열합니다 臺詞-대사-를 말합니다
---感激時代-감격시대-다 오! 감격시대 靑春-청춘-의거리 歡喜-환희-의거리 十層-십층- 二十層-이십층- mammoth building-맘모스빌딩-
가는사람 오는사람 정다운인사 地下道-지하도-로 陸橋-육교-애도 활짝핀웃음 하늘에는 helicopter-헬리곱터- 부릉부릉 江邊一路-강변일로-
Highway-하이웨이- 달리는 sedan-세단- 噴水臺-분수대-의꽃무지개 하늘로 솟네 감격시대다 오!감격시대----------
노랫말과 中間臺詞-중간대사-는 어디론지 感性-감성-을 휘몰아가는듯 합니다
---當時-당시-時代相況-시대상황-과 植民地 民草-식민지 민초-의 숨가쁜 삶속에서 渴求-갈구-하는 해방을향한 희망이라고 恥部-치부-하는 時期的-시기적-으로
무리다--- 라는 주장이존재합니다
하지만 딱히 親日志向的-친일지향적-이라고 딱히 꼬집을 대목도 마땅치않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무렵 발표된 <대지의항구> <복지만리>와 連結-연결- 지어보면 개운치않기도하다---고합니다
허나 노래 發表時期-발표시기-만으로 親日-친일-을 論-논-하는건 無理數-무리수-를 둘 可能性-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노래 노랫말은 歡喜-환희-의거리, 靑春-청춘-의바다, 希望-희망-의 大地-대지-, 幸運-행운-의뱃길이 1~2절로 이어집니다
3절은 언덕너머에 있는 꽃피는 마을을 묘사했습니다
언덕만 넘어가면 꽃피는 마을이 기다리고 있으니 힘들어도 함께 넘어가자고 提案-제안-하는듯 합니다
이 句節-구절-이 觀點-관점-의 差異-차이-를 誘發-유발-합니다
우리민족이 갈망하던 해방인가 일제가 꿈꾸던 大陸進出-대륙진출-의 妄想-망상-인가??
1939년 ok-record서 발표된 이노래는 李花子 의 <어머님전상백> 김정구의<世上-세상-은 瑤池鏡-요지경->등이고 다른 音盤社-음반사-노래는
박향림의<幕間-막간-아가씨> 김영춘의<홍도야 우지마라> 황금심의<외로운 街路燈-가로등->등이 있으나 딱히 親日論難-친일논란-의 對蹠點-대척점-
에 있는곡은 없다 했으나 섣부른 判斷-판단-입니다
372—南行列車-남행열차-
1939년 조명암 作詞-작사- 박시춘 作曲-작곡- 이난영 吹入-취입-
他面-타면-에는 流行歌-유행가- 趙鳴岩 作詞-조명암 작사- 朴是春 作曲-박시춘 작곡- 李寅權-이인권-노래<悲戀-비련-의 出發-출발->을 실었습니다
끝없이 흔들리는 南行列車-남행열차-에 홍침을베고누워 눈물집니다 사랑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까닭에 떠나를가며 가없다 내 靑春-청춘-을 누구를 주나
세상이 다모르는 내가슴속에 눈물을 가득싣고 떠나가건만 사랑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까닭에 버린내사랑 야속한 追憶-추억-만이 괴롭습니다
노래속 화자는 남정네를 南大門驛-남대문역-에 남겨두고 남으로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필시열차는1.3.5.7-----홀수열차 였을것입니다 그시절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국열차번호를 모방해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는 짝수 地方-지방-를 가는
열차는 홀수번호를 부여했습니다
이번호체계는 육이오전쟁이 休戰-휴전-된 1950년대까지도 이어졌습니다
1954년 남인수가 부른 離別-이별-의 釜山停車場-부산정거장- 2절”서울가는 12열차에 기대앉은 젊은나그네”가 徵表-징표-입니다
곡을 創作-창작- 한 박시춘은 <언제나 봄날이라는 藝名-예명->을 사용하고 本名-본명-은 박순동씨 입니다
1913년경 慶南 密陽-경남 밀양-서 태어나 1996년 세상을 떠나 韓國最高人氣 作曲家-한국최고인기 작곡가-입니다
그는大衆文化藝術-대중문화예술-의 萬能-만능- entertainer-엔터테이너-임을 不定-부정-못합니다
대표작은 너무많습니다 哀愁-애수-의 小夜曲-소야곡-. 가거라 三八線-삼팔선-. 비내리는 姑母領-고모령-. 新羅-신라-의달밤. 娘娘 十八歲-낭낭18세-. 굳세어라금순아.
離別-이별-의 釜山停車場-부산정거장 등등 不朽-불후-의 名品曲-명품곡-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는 流行歌作曲家-유행가작곡가- 기타. 트럼펫. 바이올린. 섹스폰연주자 영화배우. 감독 제작자 연출가로도 활동했습니다
보통사람이면 일생동안 한가지도 벅찬일인데 말입니다
어릴 때 密陽邑內-밀양읍내- 劇場-극장-의 呼客-호객-을위해 거리를 누비던 廣告-광고-깃발 旗手-기수-였읍니다
나중에는 북을치는 꼬마악대 역할도했습니다 그時節-시절- 일본인이 경영하는 카페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日本流行歌-일본유행가-에 魅了-매료-되
流行歌-유행가-를 더듣기위해 그집 심부름꾼 이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10대초반 유성기음악을 들려주던 일본인부부가 이사를한 순천으로 家出-가출-해 따라나섭니다
그시절 普通-보통- 어린이로선 행하기 쉬운일이 결코아닙니다
그곳에서 公演團體-공연단체-나 映畵巡廻公演團-영화순회공연단-에서 북을치는 樂士-악사-로 變身-변신-하기도 합니다
滿洲地方巡廻公演-만주지방순회공연-을 떠날 때 그의나이 14살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이 그의 作曲生活-작곡생활-에 營養分-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합니다
또 日本本土 巡廻公演-일본본토 순회공연-때는 映寫技士-영사기사-가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이그의 作曲人生-작곡인생-의 序幕-서막-입니다
藝名 是春-예명 시춘-은 아리랑 歌舞團-가무단- 멤버가 되었을 때 演出家-연출가- 홍개명이 붙여준 것입니다
그는후일 映畵監督-영화감독-이 되나 六二五戰爭中-육이오전쟁중- 拉北-납북-되고맙니다
1996년 세상을등진 그는 반야월 이난영과 더불어 大衆歌謠界-대중가요계- 三寶-삼보-로 불린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日本製國主義-일본 제국주의- 軍國歌謠-군국가요-는 1931년 滿洲事變-만주사변-때부터 登場-등장-합니다
그리고 太平洋戰爭-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때인 1941년~1943년 집중 발표됩니다
이시기 남인수 이난영 백년설 진방남 박향림등 一流歌手-일류가수- 박시춘 김해송 손목인등도 포함됩니다
以後-이후- ----------同名異曲-동명이곡-으로 김수희씨 노래가 히트 하기도했습니다
374—戀愛便衣隊-연애편의대-
1939년 崔茶人 作詞-최다인 작사- 孫牧人 作曲-손목인 작곡- 南仁樹 張世貞-남인수 장세정- 듀엣 吹入-취입-
他面-타면- 조명암작사 송희선작곡 남인수 <눈물의 메리켕>이 같이 실려있습니다
歌皇-가황-이라 불린 남인수씨는 여러여가수들과 듀엣곡을 취입한바 이곡도 그런곡에 포함되나 회사에서 기대한것만큼 호응이이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아 偶然-우연-히 거리에서 얽한사랑이 가슴에 스며들어 밤마다 꿈속에서 만나는
그대모습 에헤야 에헤야 잊으랴 잊지못할 우리 두마음 아 좋지 情熱-정열-의
연애 편의댜 얼시구 그렇지
아 만나던 00마다 00가찾아서우니 수집은 저아가씨 치마끈 입에물고 얼굴 붉히면서
에헤야 잊을랴 잊지못할 우리 두마음 아`좋지좋아 情熱-정열-의 연애 편의대 얼씨구나
그렇지
아~이마음 가져가신 당신의모습 버젓이 말을해요 가슴이 두근두근 어쩌면 좋을까요 에헤야
잊을랴 잊지못할 우리 두마음 아~ 좋지 정열의 편의대 얼씨구나 그렇지
상기가요는 가슴속에 內密-내밀-한 사랑의 싹을띄어 小桶-소통-하고 공감하는 蜜月-밀월-을 소재로한 노래인데 짠짠~ 짜자라 짠짠
선율이 전주와 간주에 짜랑거립니다~
便衣隊-편의대-는 軍事用語-군사용어-인데 이노래에서는 敵軍-적군-의 活動-활동이 아니고 눈이맞은 남녀간의 가슴속을 오가는 마음의 편의대를 말합니다
노래제목을 붙인 사연은 中日戰爭-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타오르던 1939년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으리라
편의대는 중국에서 나온말 武將-무장-을 하지않고 적지에 잠입해서 後方攪亂-후방교란-을 主要任務-주요임무-로 하던 非正規軍-비정규군-부대를 말합니다
平常服-평상복-을 着用-착용-하고 각종 모략. 선전. 파괴. 납치. 습격-등의 guerrilla 戰法揭-게릴라전법-으로 정규군 작전을돕는 부대입니다
여기서 <guerrilla 戰法-게릴라전법->은 一定-일정-한 陣地-진지-없이 不規則的-불규칙적-으로 벌이는 유격전 또는 그런 戰法-전법-을 뜻합니다
他面曲-타면곡-<눈물의메리켄>을 소개합니다 모처럼 宋熙善-송희선-씨가 創作-창작-을했습니다
0000잔을들고 눈물000 千里他官-천리타관- 그리움속에 더도는 身世-신세-
名色-명색-없는 사나이의 피눈물이여 0000떠나가는 汽笛-기적-이 운다
00에 홀로앉자 生角-생각-을하면 pipe-파이프-에 흩어지는 사나이 눈물
피자말자 시들어진 옛사랑이여 오늘밤도 他鄕-타향-에는00000
Album-앨범-속에 남아있는 故鄕-고향-아가씨 限平生-한평생-을 盟誓-맹세-
하던 사랑000
날개없이 날아가는 눈물의 純情-순정- 저하늘0 떠나가면 언제나오나
곡을 創作-청작-한 송희선은 1930~40년대 ok-record 直屬-직속-의 c.m.c-band 서 saxophone奏者-섹스폰주자-로활동했습니다
그당시 大韓帝國-대한제국-의 jazz-band-재즈밴드-중에서 最高-최고-로 이름이 높았던 악단으로 c.m.c는 chosun musical club-조선뮤지컬클럽-의 略稱-약칭-
입니다
1938년 當時-당시- 구성원은 색스폰에 윤학구,엄재근. 트럼펫에 현경섭. 지방렬. 트럼본에 이유섭.김용호.바이얼린에 강삼준.기타에 박시춘. 김흥산 베이스에 유연
드럼에 이봉룡 피아노 손목인 이었습니다
거의가 餘技-여기-로 여러종류의 악기를 다룰줄 알았고 김용호는가사와 넌센스도 썼습니다
1939년 12월26일부터 3일간 도쿄에서 조선악극단 제2회 일본공연이 도쿄극장에서 제18곡으로 아리랄보이즈의 <나니와부시아리랑>을 공연시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375—잘있거라 斷髮嶺-단발령-
1940년 ok-record 발매 sp음반 조명암 作詞-작사- 김해송 作曲-작곡- 장세정 吹入-취입-
他面-타면- 조명암작사 박시춘작곡 남인수노래 <눈오는 네온가>를 실었습니다
恨-한-많은 斷髮嶺-단발령-에 검은머리 풀어쥐고 한없이 울고간다 한없이 울고간다
아~정든님아 잘있거라
두눈에 피가흘러 시들어진 진달래 한많게 붉었구나 한많게 붉었구나 아~
정든님아 잘있거라
단발령 참나무에 붉은댕기 풀어걸고 마지막 울고간다 마지막 울고간다 아~
정든님아 잘있거라
上記曲-상기곡-의 誕生年歲-탄생년세-는 2020년으로 여든살입니다 우리 歷史-역사-로 反芻-반추-해보면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제2차 世界大戰-세계대전-이 한창이던때 입니다
1938년들어서 日本製國主義는 朝鮮語使用-조선어사용-을 禁止-금지-하고 조선인 陸軍徵集令-육군징집령-를 내립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侵攻-침공-해 제이차 世界大戰-세계대전- 銃聲-총성-을울리고 일본은 진주만 奇襲攻擊-기습공격-을 준비하던때이기도 합니다
일본제국주의의 忘靈-망령-불꽃이 타오를 때 植民治下-식민치하-에있던 우리국민의 삶이 疲弊-피폐-의 극에 달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작사가 조명암이 新羅-신라-敗亡-패망-의 哀歡-애환-을 담은 斷髮嶺-단발령-을 소재로 노랫말을 엮었습니다
이가사에 melody-멜로디-를 입힌사람은 k.p.k 樂團-악단-단장이던 김해송입니다
노래는 당시 십대이던 장세정의 목청에 태워집니다
이노래는 목마른시대의 불씨에 大衆藝術-대중예술-의 揮發油-휘발유-를 뿌린격이 었습니다
千年新羅-천년신라-가 패망하던 시기를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시대, 民族文化 抹殺狀況-민족문화 말살 상황-을 대중가요로 견줘 서사한 감성불꽃입니다
노래속 核心語彙-핵심어휘-는 붉은댕기 입니다
댕기는 머리를 裝飾-장식-하기위해 사용하는 자줏빛 또는 검은빛 헝겊을이은 띠 를 말함인데 노래속 붉은댕기는 시집을안간 처녀가 주로 사용했습니다
女性-여성-이 댕기를 풀때는 뭔가 決然-결연-한 상황일때입니다
댕기머리 習俗-습속-은 唐書-당서- 東夷傳-동이전- 신라조에 “여자는 머리에 아름다운 띠를 둘러 구슬과 빛깔좋은 緋緞-비단-으로 장식한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쪽댕기. 큰댕기. 앞댕기. 도투락댕기. 말뚝댕기. 제비부리기댕기 로 구분했읍니다
이중에서 제비 부리기댕기는 未婚者-미혼자-가 사용하던 댕기로 처녀는 빨강 총각은 검은색을 사용했읍니다
노랫속 붉은댕기를 풀어서 단발령 나뭇가지에 걸었으니 아마도 그뒤의행동은 막다름으로 이어졌을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斷髮嶺-단발령-은해발 833m 북한 강원도 금강군 신원리와 창도군 장현리의 境界-경계-에 있습니다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와이 高麗-고려-에 항복을 결정했을 때 麻衣太子-마의태자-로 후일 불리는 왕자는 아버지를 下直-하직-하고 이능선에서 머리를 자르고
皆骨山-개골산-으로 入山-입산-해버립니다 개골신은 金剛山-금강산-의 딴이름입니다
이후 붙여진 고개이름이 단발령입니다
이노래는 1895년 고종32년에 내려진 斷髮令-단발령-을 빗대어 創作-창작-되고 부른노래라는 說-설-존재합니다
당기 김홍집 내각은 乙未事變-을미사변-이후 朝鮮開國-조선개국-이후 조선개국 504년 建陽-건양 원년을기해 太陽曆-태양력-을 사용하는 동시에
日本-일본-의强要-강요-에의해 전국에 단발령을내립니다
일본강요로 고종이먼저 西洋式-서양식-으로 머리를깎였으며 관리들로하여금 가위를들고 거리에서 강제로 백성들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부분은 후일 박정희 유신시절 되풀이됩니다 소위 長髮團束-장발단속-이란 美名-미명-아래서---
우리 近代史-근대사- 빛바래가는 서글픈 구김살이라 아니할수없습니다 民族屈辱-민족굴욕-의 傷處-상처-입니다
이노래는 후일l.k.l-record 서10인치음반-백년설과 장세정힛트송-으로 제목으로 再吹入時-재취입시- <한많은 秋風嶺-추풍령->
으로개제 개사 됩니다
이음반에는 <連絡船-연락선-은 떠난다> <울어라은방울> <驛馬車-역마차->등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후 유행에맞춰 lp음반으로 발매되기도합니다
376—마지막 글월
1940년ok-record 발매 sp음반 조명암작사 박시춘작곡 이화자취입
他面-타면-강해인작사 박시춘작곡 이화자<얼시구당기>을 실었습니다
상기가요는 노래를 취입한 이화자의 自書曲-자서곡-과 다름없는 가요이다 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1년전 발표한<어머님전상백>의 꼬리를 물고있는 自己自身-자기자신-의 出生출생-과 妓生-기생-의삶에 얽힌 사연을 글로그린 水彩畵-수채화-
같은 노래입니다
이 曲調-곡조-는 花柳界-화류계-아낙네의 哀歡-애환-을 담은 자기자신 부른 <花柳春夢-화류춘몽-> <花柳愛情-화류애정->등과 軌-궤-를 같이합니다
前奏-전주-도 울리기전 숨가쁘게 나오는 opening-오프닝-臺詞-대사-가 可憐-가련-한 花柳女人-화류여인-의 日常-일상-을 떠올립니다
臺詞-대사------마지막 글월이 날러온밤에 마지막 글을써보내는 軟粉紅-연분홍-얼굴 이러한 여자라고 사랑이 없으란 법은 아니련만
당치않은 幸福-행복-을 어찌 가슴속애 안을 수가 있으랴
새벽달 窓門-창문-아래 鏡臺-경대-를 바라본다 이것이 내얼굴이냐 연지찍은 이얼굴이 내것이냐-----
글자마다 눈물젖은 하소연 便紙-편지- 새벽달 창문아래 읽었나이다 사랑두자 千金-천금-같은 말씀이고나
伽倻琴-가야금-에 얽힌몸은 사랑사자도 당치를 않사옵니다
글구마다 多情-다정-하신 하소연 편지 밤늦게 들어와서 읽었나이다 이안해도 목이메는 事緣-사연-이고나
술물젖은 다홍치마 사랑사자도 받을길이 없사옵니다
글줄마다 간절하신 하소연편지 鏡臺-경대-를 앞에놓고 읽었나이다
純潔-순결-하신 피눈물의 글월이고나 연지찍는 이얼굴에 사랑사자도 황송무지로소이다
이노래를 說明-설명-하는 것은 畵蛇添足-화사첨족-에 불과합니다
뱀을그리는데 발까지 덧붙여 그리는 것은 오히려 그림을 망친다는 말입니다
蛇足-사족-의 由來-유래-는 楚-초-나라의 祭官-제관-이 머슴들에게 술을 내렸는데 여럿이 마시기엔 부족해 당에 뱀을먼저 그리는 사람이
마시기로 했습니다
뱀을먼저 그린사람이 술병을잡고서 “나는 발까지 그릴수있다” 하며 발을그리니 다음으로 그린사람이 “뱀에게 무슨 발이있느냐”나며 술을 빼앗아 마시더라는 이야기입니다
魏-위-나라를 정벌하려는 昭陽-소양-에게 濟-제-의 使者-사자- 陳軫-진진-이 한말입니다
여기서 他面曲-타면곡-이화자의<얼시구당기>를 소개합니다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럼마 얼싸 당기당 둥 빈대란놈 빨기를 잘하니
阿偏-아편-쟁이로 돌리고 벼룩이란 놈은뛰기를 잘하니 사냥꾼으로 돌리고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럼마 얼싸 둥둥 당기당 둥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럼마 얼싸 당기당 둥 앵무란 놈은 말을잘하니 채상꾼으로
돌리고 황새란놈은 다리가 기니 郵便配達-우편배달-로 돌리고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럼마 얼싸 둥둥 당기당 둥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렴마 얼싸 당기당 둥 제비란놈은 맵씨가좋으니 妓生-기생-
아씨로 돌리고 소파리란 놈은 물기를잘하니 뚜쟁이로 돌리고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럼마 얼싸 둥둥 당기당 둥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렴마 얼싸 당기당 둥 까마귀란놈은 지지리 까무니 굴뚝쟁이로
돌리고 까치란놈은 나무집 잘지니 木手-목수-쟁이로 돌리고 당기당 둥둥 당기당 둥둥
어럼마 얼싸 둥둥 당기당
377—南江-남강-의 追憶-추억-
1940년 태평레코드발매 sp음반 무적인작사 이재호작곡 고운봉취입
他面-타면-무적인작사 이재호작곡 나성려 <님두고썩는몸>을 실었습니다
江-강-은 물이 흐르는길입니다 비가 바다로 흘러가는 經路-경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固有語-고유어-로는 가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길을타고 흐르는물이 강물입니다
강은 靜的-정적-이고 강물은 動的-동적-이라 할수있습니다
그래서 特定時点-특정시점-을 품고흘러가는 영원의 물결은 감성물결입니다
상기곡은 그런 감성, 고향에 임을두고 他鄕-타향-살이 십여년을 지낸 화자의 서글픈 서정입니다
물소리 구슬프다 안개나린 南江-남강-에서 너를안고 너를안고 아~ 울려주던 그날밤이
울려주던 그날밤이 음~ 파고드는 옛노래여
矗石樓-촉석루- 옛城攄-성터-엔 가을달만 외로히 落葉-낙엽-소리 落葉-낙엽-소리 아~
凄凉-처량-쿠나 그날밤이 너를안고 울었소 음~다시못올 꿈이여
故鄕-고향-에 님을두고 他鄕-타향-살이 十餘年-십여년-에 굼이라도 굼이라도 아~ 잊을소냐
그대모습 정들자 헤어진몸 음~ 불러라 望鄕歌-망향가-를
우리 大衆歌謠 百年史-대중가요 백년사-에 사랑과 이별의 서정을 품은 강은 한강. 낙동강. 영산강---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상기노랫속 晋州-진주-의 南江-남강-도 그런 강중의 하나입니다
1927년 團成社-단성사-에서 上演-상연-한 無聲映畵-무성영화- 복혜숙주연의 落花流水-낙화유수-의 主題歌-주제가-에 서사된 강남달의
강도 진주남강이라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이노래는 우리 韓國人-한국인-에의해 創作-창작-된 歌謠一 號-가요일호- 입니다
最初-최초-의 流行歌-유행가-에 敍詞-서사-된- 남강은 알고있습니다
壬辰倭亂 當時-임진왜란 당시- 倭軍-왜군-이 晋州城-진주성-에서 휘두른 칼날에 숨져간 우리의 鮮血-선혈-들의 피를—
노래를 吹入한 歌手-가수- 고운봉은 本名-본명-이 고명득입니다
1929년 忠淸南道-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1937년 예산공립고등학교를 卒業-졸업-하고 서울로 上京-상경- 태평레코드의 專屬歌手-전속가수-가돼
Ok-record 산하 朝鮮樂劇團-조선악극단-에서 活動-활동-했습니다
당시 그의나이 십대중반 父母-부모-님 장롱을 뒤져 훔친돈이 서울로가는 차비의 全部-전부-였습니다
고명득이 찾아간곳은 태평레코드였습니다
專屬作曲家-전속작곡가- 이재호와 文藝部長-문예부장- 박영호는 고명득을 試驗-시험-하고 곧바로 巡廻公演團-순회공연단-에 合流-합류-시켜
藝名-예명-을 운봉으로 붙여줍니다 그가 고운봉이된 事緣-사연-입니다
그는 作詞者-작사자-인 고명기씨 친동생이기도 합니다
자진越北-월북-한 조명암이 고명기로 알려진 것은 우리 現代史-현대사-의 桎梏-질곡-의 그늘입니다
3개월간의 태평레코드 공연에서 복귀한후 그는 1939년 日本所在-일본소재- 레코드에서 <國境-국경-의 埠頭-부두->로 데뷔했고 1941년경 비내리는
埠頭의 離別-이별-의 情恨-정한-을 담은 不後-불후-의名曲-명곡- 船倉-선창-으로 人氣班列-인기반열-에오릅니다
그가 남긴 대표곡은 <紅燈夜曲-홍등야곡-> <明洞-명동-블루스><아들의하소> <白馬-백마-야가자>등이있습니다
이중 <明洞 blues-명동블루스>는 원창이 김용만으로 해방후 일본서활동후 귀국해 고운봉이 Remake 했습니다
그는 1950년대 世紀-세기-의사랑으로 화제를뿌리던 女俳優-여배우- 윤인자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淸純可憐形-청순가련형-배우로 남정네들의 가슴을 설레게했던 그녀와의 결혼은 그러나 1970년대 離婚-이혼-으로 결말이났고 2001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인자씨는 본명이 윤인순이고 배우이자 비구니였고 이혼후 승복을 입었다는 기록이있습니다
여기서 南江-남강-은 낙동강 제1지류로 길이 189km입니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 남덕유산 계곡에서 발원해서 안의. 유림. 금서. 진주를 지나 경남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경계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듭니다
이곡은 후일 최갑석목소리 실어서 臺詞-대사-버전으로 재발매됩니다
종황무진가요사 763을 가보면 확인됩니다
378—남포불 歷史-역사-
1940년 태평레코드발매 sp음반 불사조작사 김교성작곡 백년설취입
他面-타면-김영일작사 김교성작곡 진방남노래 <울고간 黃昏-황혼->을 같이 실었습니다
구름 같은 世上-세상- 煙氣-연기-같은임 이구절에서 가슴이 턱막힙니다
이곡의 魅力-매력-이고 魔力-마력-입니다 이노래는 이처럼 어두침침한 바람벽 방안에서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絶唱-절창-입니다
1940년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30년 일본의 無條件-무조건-降伏-항복- 5년전의 서정입니다
그時節-시절- 대한제국 全國-전국- 坊坊曲曲-방방곡곡- 大部分-대부분-은 호롱불로 어둠을 가시었습니다
아니 燈盞-등잔-불이라고 함이 저 正確-정확-한 이야기 일것입니다
호롱불은 도자기용기 뚜껑에 심지를꽂아서 불을붙인것이고 등잔은 접시에 옆으로 심지를뉘여서 그끝에 불을붙여서 어둠을 밝히던 조명수단 입니다
그시절에는 남포불은 호사였습니다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 생존의 최종목표이기도 했을 그시절에 호사한 노래 <남포불역사> 를 읊조려보자
남포불에 타고남은 娘子-낭자-머리 옛사랑을 깊은가을 門風紙-문풍자-에 실어서 보냈는데
술잔에 방울방울 눈물은 왠일이요 내어찌 당신을 잊고서 살겠소
구름 같은 세상에서 연기 같은 님을믿고 唐椒紙-당초지- 두루마지 肝臟-간장-을 적십니다
써서는 발기발기 찢어본 외짝便紙-편지- 강물에 던지니 달빛만 외롭소
소리쳐서 부른다고 옛사랑이 올리있소 허물어짐 象牙塔-상아탑-에 풀벌레 느껴우오 아득히
흘러가는 구름은 속절없고 碧梧桐-벽오동- 北窓-북창-에 족자가 설구려
1939년 流浪劇團-유랑극단-이란 전혀 豫想-예상-치못한 노래의 大爆發대폭발-로 졸지에 가수로 데뷔하게된 백년설이 부른곡입니다
이무렵 그가부른 노래는 <番地-번지-없는酒幕-주막-> <山八字-산팔자물 八字-팔자->등이고 이노래는 작사자가 월북자라 越北者作品-월북자 작품-이란 눈총을
피하기위해 후일 추미림이 개사해서 재취입합니다 오아시스발매 lp음반-백년설-에 보입니다
남포불에 쓰고짓는 더벅머리 풋사랑을 깊은가을 하늘아래 소리쳐 읊어보는
그사랑 사연 사연 눈물은 왠일이요 차라리 강물에 흘려서 보내겠소
소리쳐서 외친다고 늙은꿈이 젊어지랴 허물어진 성벽아래 풀벌레 느겨우는
아득히 사라져간 그이름 그사랑을 강물에 던지니 달빛만 외롭구려
이노래의 key-키-는 남포불. 낭자머리. 문풍지. 당초지. 두루마지, 외짝편지. 상아탑. 벽오동 등입니다
여기서 남포불은 石油-석유-를 燃料-연료-로하는 동그란통에 심지를 꽂고 심지둘래에 동그란모양의 투명유리를 싀우고 갓머리를 덮은 照明燈-조명등-을 말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불꽃이 보호되는 근현대의 램프입니다
이 남포불의 형이 oil lamp-호롱- 또는 등잔입니다
이러한 照明手段-조명수단-은 최초기록을 정확히 알기어렵지만 가장 오래된 조명램프는 1940년 라스코동굴에서 발견된 만~만오천년전 것으로 추증합니다
娘子-낭자-머리는 조선시대부터 부녀자가 禮裝-예장-할 때 땋은 머리스타일이고 쪽진머리뒤에 비녀를 꽂았습니다
남포불역사 속 화자는 결혼한 부부가 서로 떨어져있는 상태이고 낭자머리를 틀어올리고 비녀를꽂은 것이 그증거입니다
문풍지는 窓戶紙-창호지- 문틀사이에 바람이 통하는 것을 막기위해 덧붙여놓은 한지입니다
당초지는 한지에 여러가지 무늬를 넣은것으로 인동. 국화. 보상화. 당초등이 있습니다
두루마지는 두루마리의 평안도 方言-방언-이고 외짝편지는 멀리떨어져서 혼자있는 사람이 덜어져있는 상대방에게 보낸편지를 말합니다
노래속 이러한 어휘는 어두운밤 호롱불을 밝힌 방안과 연결되고 그안에 홀로앉아서 먼곳의 임을그리워하는 유랑객의 고독과 연결됩니다
1940년대 우리아버지의, 아버지 세대들의 초상입니다
379—항구의 붉은소매
1940년 조명암 作詞-작사- 손목인 作曲-작곡- 이난영 吹入-취입-
他面-타면-김용호작사 손목인작곡 이인권의<눈물의 戀歌-연가->를 실었습니다
그누가 버리고간 한송이 붉은 薔薇-장미- 해저문 港口-항구- 비나리는 asphalt-아스팔트-
꽃잎을 밟고가는 요꼬하마 아가씨는 아 나르리 나르리 나르레겐 그누구를 찾아가나
안타까운 샛빨간 꽃잎하나
그누가 불러주는 애달픈 selenade-세레나드- 離別-이별-의 港口-항구- 네온사인 처마밑에
나막신 끌고가는 요꼬하마 아가씨는 아 나르리 나르리 나르레겐 그누구를 思慕-사모-하나
안타까운 눈초리 검은눈썹
그누구가 흘리고간 한장의 코라발트 情念-정념-의항구 술마시는 폐부두에 술잔에 눈물짓는
요꼬하마 아가씨는 아 나르리 나르리 나르리레겐 그누구를 이별했나 안타까운 입술엔 연지냄새
<港口-항구-의붉은소매>의 항구는 일본 요꼬하마 港口-항구-입니다
조명암이 歌詞-가사-를 지을당시 요꼬하마 항구에 실제로 거주했는지 알수없습니다
작곡가 손목인의 最大長技-최대장기- 인輕快-경쾌-한 jazz style-재즈풍-으로 만들어진 이노래를 당시 부른 이난영의 律動-율동-은
어떠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노래는 몸을 흔들지않고는 목청이 rhythm-리듬-을 따라갈수 없을만큼 낭낭거립니다
곡을 창작한 손목인은 慶南-경남-晋州胎生-진주태생-으로 歌皇-가황- 남인수 자타<한국의 슈베르트> 이재호도 동향입니다
본명이 손득렬 藝名-예명-이 作曲時-작곡시- 양상포 노래를 부를시 손안드레. 임원를 사용합니다
누가뭐라해도 손목인이 아난영에게 준곡중 最高曲-최고곡-은 <木浦-목포-의눈물>입니다
그외도 국경. 호이타령. 아지랑이눈물. 아침의출발. 흐르는세월. 봄처녀등이 있습니다
노랫속의 話者-화자-는 요코하마 港口-항구-의 酌婦-작부-입니다
요코하마시는 일본혼슈에있는 항구로1859년 美日 修好通商條約-미일 수호통상조약-에따라 開港-개항-했고 1872년 도쿄와 鐵道-철도-가 부설돼
대형항만으로 發展-발전-했습니다
이곡의 觀光地-관광지-는 야마시타 臨海公園-임해공원-입니다 요코하마 베이브리지, 일본서 가장높은 랜드마크타워가 있습니다
Chinatown-차이나타운-도 觀光名所-관광명소-인데 1923년 關東大地震-관동대지진-때 옛날시가지와 항만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중이던 1945년 5월 미공군의 폭격으로 시가지 42%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니1940년 <항구의붉은소매>의 노래가 창작될당시의 술집, 안타까운 꽃잎같던 기생들이 살던흔적은 없습니다
他面曲-타면곡-은 손목인작곡으로 咸鏡道함경도-의 저돌적인 사내 이인권이 가창한<눈물의 戀歌-연가->입니다
미나꽃 흩어지는 카바레에서 붉은술cup-컵-들고 얼킨 두사람 아~離別-이별-에 울던
비나리던 부두 그리운사람아 잊지못할 港口-항구-야
쓸쓸이 흩어지는 항구밤거리 mahura-마후라-거머쥐고 痛哭-통곡-하던 그사람 아~
조각달마저 울어주던밤 그리운 사람아 잊지못할 항구야
뱃머리 부딪치는 푸른물우에 不夜城-불야성- 등에지고 닻을감던 그날밤이 아~
두줄기 눈물뿌리던 그대 그리운 사람아 잊지못할 항구야
380—鴨綠江-압록강-뗏목노래
1940년 태평레코드발매 sp음반 新民謠-신민요- 劉道順 作詞-유도순 작사- 全基 玹 作曲-전기현 작곡- 鮮于一扇-선우일선-吹入-취입-
他面-타면- 流行歌-유행가- 曺景煥 作詞-조경환 작사- 金敎聲-김교성- 作曲-작곡- 鮮于一扇-선우일선- <別淚紗窓-별루사창->을 실었습니다
뗏목에 몸을실은 어야데야 鴨綠江-압록강- 물길 어야데야 키잡고 가는데는 新義州-신의주-라오
물새와 벗을삼은 외로운 身世-신세- 어야데야 강녘에 뗏목대고 밤을보내오 어야데야
강가서 뛰어노는 어야데야 아이를보니 어야데야 달넘는 집消息-소식-이 그리워지오
서글픈 하소노래 혼자부르니 어야데야 어야 제김에 목이메어 눈물흐르오 어야데야
눈속에 伐木-벌목-하는 어야데야 冬至-동지-섣달 어야데야 띄어라 압록강에 얼음 풀렸소
올해도 한행보에 뗏목을타고 어야데야 어야 압록강 二千理-이천리-에 물에서사오 어야데야
Polydor-record 서 활동중 많은 신민요를 힛트시켜 <新民謠 王國-신민요 왕국->을 구축했던 그녀가 태평으로 전격 스카우트되어서 <낙랑공주> <주릿대치마>
를 취입후 이곡을 발표했습니다
鴨綠江-압록강-의 四季節-사계절-중 落葉-낙엽-지고 강물이 얼어붙는 겨울철에 伐木-벌목-을하고 강물이 녹으면 뗏목을 띄우는 북녘 國境地代-국경지대- 民草-민초-
들의 삶을 읊조린 曲節-곡절-인 것입니다
이곡의 가사를쓴 유도순은 故鄕-고향-이 平安北道 新義州-평안북도 신의주-입니다
그러니 그는 더욱더 실감나게 고향의 노래를 창작할수 있었을것입니다
흘러간 유행가속에 實證的-실증적-인 收奪歷史-수탈역사-를 읽어낼수있지만 그저 이노래를 흥겨게 들을뿐 그기까지 生角-생각-이 미치는 愛聽者-애청자-는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있습니다
日本製國主義 植民地時代일본제국주의 식민지시대- 오쿠라 기하치로 가 설립한 오쿠라미 라는 會社-회사-를 記憶-기억-하는 이들은 歷史學者-역사학자-나
그곳에 끌려가 고된 勞動-노동-을 해야했던 勞動者-노동자-들 뿐이겠지만 이회사는 1903년 德壽宮 石造殿-덕수궁 석조전-을 준공했고 경성농공은행.
수원농림학교. 관청. 학교. 병원. 銀行-은행- 같은 公共建物-공공건물-과 軍用施設-군용시설- 鐵道建設-철도건설-도 관여했습니다
압록강유역의 목재를 대규모로 벌채한것도 바로 이곳 오쿠라 기하치로의 所行-소행-입니다
조선총독부 청사건립당시 지반공사에 사용된 말뚝도 그가 공급한 목재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압록강은 알고있습니다 강물 이천리를 뗏목에 몸을실었던 사공들의 영혼은 알고있습니다
그들은 물새와 벗해 어야데야를 읊조리면서 강기슭에 뗏목을대고 밤을지새웠을것입니다
그런날이 한달여 집을 그리워 했을것입니다
상기곡 소재 <뗏목>을 노래한 곡으로 이노래 못지않게 有名유명-한 歌謠-가요-로 상기곡같은 유도순이 가사를쓰고 손목인이 작곡한 이해연의
<뗏목 二千里이천리->가 있습니다
눈녹인 골재기에 진달래피고 강가에 버들피리 노래부르리 어이야 어허야 어야디야
鴨綠江 二千理-압록강 이천리-에 뗏목이 뜬다
물줄기 구비구비 끝없이 머니 낯서른 물새들도 벗이 되었네 어이야 어허아 어야디야
鴨綠江 二千理-압록강 이천리-에 뗏목이 쉰다
그리워 못잊는 新義州-신의주-오니 인조견 치마감에 가슴뛰노나 어이야 어허아 어야디야
鴨綠江 二千理-압록강 이천리-에 뗏목 다엇네
381—火輪船-화륜선-아 가거라
1940년 ok-record 발매 sp음반 流行歌-유행가-조명암작사 김해송작곡 이화자취입
他面-타면- 유행가 조명암 作詞-작사- 김해송 作曲-작곡- 이화자노래 <花柳春夢-화류춘몽->을 같이 실었습니다
鐵石肝腸-철석간장-녹여주고 가는곳을 물어보자 피눈물 목이멜제 汽笛-기적-이 뚜우
虛風扇-허풍선-이 사랑속에 속아서 맺은정이로나 오냐 오냐 잘가거라
千金-천금-같은 내靑春-청춘-에 離別-이별-이란 웬말이냐 떠나는 火輪船-화륜선-에
물결이 출렁 내품에 울던님아 마음이 변해 怨讐-원수-로구나 오냐 오냐 잘가거라
火輪船-화륜선-아 잘가거라 萬頃蒼波-만경창파- 잘가거라 몸부림치며 을 波羅-바라-가 떙떙
花柳身世-화류신세- 계집애도 사랑이있어 병이로구나 오냐 오냐 잘가거라
이노래를 부른 李花子이화자-의 實體-실체-는 正確-정확-치못합니다 妓生-기생-이었는지 아님 料亭-요정-이나 요릿집에 연상되는 女子-여자-보담
酌婦-작부-였을까?? 김용환 회고처럼 부평 어느술집 의 작부출신 일까?-
어쩄던 이화자의 노래 才能-재능-은 기시절 대중의 가슴을 후벼팔 정도였습니다 남겨진 음반으로도 확인됩니다
그녀의 실체가 작부이건 기생이건 그녀의 삶이 다르게 뭐있겠습니까
노래속 話者-화자-는화륜선과 이별하는게 아니라 화륜선 마도로스와 헤어지는 것입니다
화물선 선원들이 항구에 물량을 하역하고 다시 선적하는 동안 그들은 港口周邊-항구주변-에 머뭅니다
하지만 주막이건 요정이건 그녀들의 가슴팍도 멍들고 생체기가 납니다
그래서 사랑의 熱病-열병-을앓습니다 그래서 이노래는 그쪽계통에 몸담고있는 主人公-주인공-들이 더많이 불렀습니다
노랫속 “떙떙우는바라”는는 배가 港口-항구-를 빠져나가는 信號-신호-입니다
징소리를 내거나 바라를 울렸고 요즈음은 고동을 울립니다
<바라>는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자바라. 제금. 발. 발자. 동반 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자바라>라는 中東地方-중동지방-chalpara-찰파라-의 漢字表記-한자표기-를 우리식 발음으로 읽은것입니다
이노래속에 떠나가는 임은 마음이변해 떠나가는 깊은 연정이 쌓인 戀人-연인-의 離別-이별-이 아니라 日常的-일상적-인 스쳐감입니다
하지만 작사한 조명암은 港口-항구-의 酒幕-주막-집 작부들의 습생을 대중의삶으로 轉移-전이-시킵니다
이화자의목청은 妖艶-요염-과 嬌態-교태-의 代名詞-대명사-였습니다
淸雅-청아-하면서도 朗唱-낭창-거려서 듣는이의 가슴을 파헤쳤고 同病相憐-동병상련-의 주막촌 아낙들의 젓가락 장단에 올라탔습니다
같은 음반에 실린 花柳春夢-화류춘몽-과 상기곡을 들은 기생중 이노래를 부르며 自殺騷動-자살소동-을 벌인 사례도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이화자의 실체는 모호하기만 합니다
만선일보 1940년 7월31일자에는 그녀가 仁川出身-인천출신-이라 기록했습니다
그전인 1936년, 5월호 사해공론 에는 그녀를 인천권번 소속으로 기록했습니다
生沒紀錄-생몰기록-도 분분합니다 1918~1950년설, 1915~1946년설등등
부천 주막집출신설, 평양기생출신설,이 존재합니다
1929년경 歌謠界代父-가요계대부- 김용환씨가 구렁텅에서 건져올려 새로운삶을 시작했고 여러레코드사를 거쳐 ok-recor 서 김해송의곡을 받으면서
眞情-진정-한 新民謠女王-신민요여왕-으로 등극합니다
人氣인기-가 上昇 -상승-하면 할수록 藝術家-예술가- 私生活-사생활-은 隱密-은밀-해지든지 거칠어지든지 하기쉬운바 그녀는 술.담배.아편으로 사생활이
無節制-무절제-해졌을뿐 아니라 男子關係-남자관계-도 복잡해졌습니다
아예 禮儀凡節-예의범절-과 담을쌓고 살아온 그녀이기에 악마의 구렁텅이서 건저올려준 삶의은인 김용환앞에서 뻑뻑 담배를 피우는 것은 물론 이런행동을
나무라는 그에게 빡빡대들기까지 했습니다
인기상승과 비례해 수입도 늘어갔지만 無計劃的-무계획적-으로 삶을유지했고 주거할곳조차 마련치않고 여관을 전전하면서 여러남자를 만났고 부산 모극장 운영자와는
동거를했으나 곧 헤아지기도합니다
이러한 그녀의 일탈된 삶의과정이 그女自身녀자신-의 出生-출생-에대한 自壞感-자괴감-때문은 아니였을까 추증될뿐입니다
382—解放-해방-의노래
Rivera-rcord-리베라 레코드발매 sp음반 박이지작사 김순남작곡 장비 취입
他面-타면 -獨立-독립-의 노래
높이들어라 自由-자유-의깃발 크게불러러 解放-해방-의노래 朝鮮의 大衆-대중-들아
들어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날을 示威者-시위자-가울리는 발굽소리와
未來-미래-를 고하는 아우성소리 勞動者-노동자-와 農民-농민-들은 힘을다하여
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 정의의 손으로 奪還-탈환-하여라 제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1980년대후반 청주의어느 고물상서 발견된 음원입니다
주흥빛으로인쇄된 수탉한마리가 지구를딛고서 홰를치며 새벽을 아리고있는 재킷 리베라본사 발매로 되있습니다
가사내용으로 짐작컨데 해방이 임박한시기 발표된것으로 추증됩니다
이발견자가 관찰해보니 레코드회사는 도쿄 정교 호총정 이고 이탈리아 말처럼 여겨지는 komer ca marko라는 글귀가 쓰여있었습니다
발견된 음반은 2장 4곡이 실려있었고 작곡자는 전부 김순남입니다
상기곡외 <농민가>는 박이지작사. 장비노래 <독립의아침>은 이주흥작사, 진예훈노래 <우리의노래>는 이동규작사, 진예훈노래입니다
곡에 표기된 김순남, 박이지, 이동규등은 해방직후 朝鮮文學家 同盟-조선문학가동맹-서 활동하다가 越北-월북-을 택했습니다
이중 이주흥은 向坡-향파-라는 아호를 사용하면서 해방후 부산에서 아동문학분야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장비는가수 김정구씨가 뉴코리아레코드사에 입사후 일본에 錄音出場-녹음출장-을 갔을 때 한발먼저 일본에 와있던 성악공부를하던 누이 김안라를 만났을 때 테너
김대건과함게 같은학생으로 소개를받고 이규남이 1935년, 7월1일`2일 양일간 朝鮮日報社 主催-조선일보사 주최-로열린 <故土-고토-방문음악회>에 김영길,
김안라등과 함께 出演-출연-했다 는 紀錄-기록-이 보입니다
이음원을 들으면서 日本製國主義者-일본 제국주의 자-들의 漫行-만행-에 저항했던 우리선조들의 決起-결기-어린 목청을 들을수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사 暗黑암흑기-는 여러번 되풀이됩니다
그첫번째가 1940년대 초반서 1947년 해방직후까지입니다 아니 그런주장이 있습니다
어쩌면 일본은 이러한 過去-과거-의 歷史資料-역사자료-를 意圖的-의도적-으로 隱匿-은닉-하고싶어 할것입니다
노래한곡에 1절이상을 일본어로 부르게한 것 이라든지 親日歌謠-친일가요-를 취입하도록 脅迫 懷柔-협박 회유-한 사실등 2차세계대전, 태평양전쟁시
그들의 壓制-압제-와 滅倫的-멸륜적-인 만행을 유행가가 含意-함의-하고 있을것이 明若觀火-명약관화-하니깐요
그런면에서 해방의노래와 같은 노래의 史料的-사료적-價値-가치-는 無限大-무한대-입니다 다만 그것을 알려고 하지않을뿐---
이노랫말에 나오는 “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정의 의 손으로 탈환하여라”를 살펴보면
우리민족의 토지와 공장을 빼앗아간 物理的 實體-물리적실체-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1908년 설립했던 東洋拓植會社-동양척식주식회사- 입니다
朝鮮統監府-조선총독부-가 强要-강요-한 절차였습니다
創立委員-창립위원- 116명중 일본인 83명 한국인 33명이었습니다 설림위원장은 일본인이었고
그들은 우리땅과 재산을 압탈해 일본인들을 대한제국으로 이주시켜서 나눠줍니다
그때 우리나리로온 일본인 대다수가 하청민과 부랑아 사무라이 졸개등 이었습니다
같은 음반에 실린 독립의노래 를 소개합니다
奸惡-간악-한 채쭉밑에 울던 사십년 얼어진 이강산 새봄이왔네 남녘의 모진0도 얽혔던0이
平和-평화-의 새꽃송이 웃으며핀다 높이들어라 自由-자유-의깃발 크게불러라 해방의노래
내살림 내것으로사는 이세상 햇빛도 더욱밝다 조국의아침 세계의 활개솟을 우리 大朝鮮-대조선-
이로써 단결하야 굳게세우자 높이들어라 자유의깃발 크게 불러라 해방의노래
383—靑春海岸-청춘해안-
1941년 태평레코드발매 sp음반 歌謠曲-가요곡- 처녀림 作詞-작사- 이재호 作曲-작곡- 백년설 吹入-취입-
他面-타면- 歌謠曲 –가요곡-處女林 作詞-처녀림 작사- 李在鎬 作曲-이재호 작곡- 백년설 취입 <石油燈-석유등-길손>이 실렸습니다
靑沙紅松-청사홍송- 선을두른 靑春海岸-청춘해안-은 부른다 불러 갈매기 날개위에 날아드는
수박냄새 꽃냄새 가자구나 젊은이여 바다는 손짓한다 우리들의 夢金浦-몽금포-몽금포-
밀벙거지 天幕-천막-거리 박쥐 陽傘-양산-은 부른다 불러 파나마 太陽-태양-아래 날아드는
백분가루 꽃가루 가자구나 젊은이야 구름은 손짓한다 구름은 손짓한다 우리들의 松濤園-송도원-
松濤園-송도원-에
천리바다 점을찍은 鬱陵島-울릉도-에다 뱃머리대라 잣나무 그늘속에 날아드는 故鄕消息-고향소식-
님소식 가자누나 젊은이여 저섬은 손짓한다 저섬은 손짓한다 우리들의 鬱陵島-울릉도- 울릉도
<流浪劇團-유랑극단->이란 예기치못한 가수데뷔한지 2년차 백년설이 吹入-취입-한 노래입니다
1939년~1941년까지 ok-record 로 巨金-거금-을받고 전속을 옮기기전 <杜鵑花-두견화-사랑><matross-마도로스-手記-수기-><一字一縷-일자일루-><나그네설음>
<番地-번지없는 酒幕-주막->을 힛츠시키고 <故鄕-고향-길 父母-부모-길> <matross 朴-마도로스박->에 뒤이은 곡입니다
이곡의 原唱 背景地-원창 배경지-는 夢金浦-몽금포-. 松濤園-송도원-. 鬱陵島-울릉도-인데 반야월이 改詞時-개사시- 萬里浦-만리포- 迎日灣-영일만-을 추가해서 읊었읍니다
靑沙紅松-청사홍송- 선을두른 靑春海岸-청춘해안-은 부른다 갈매기날개위에 날아드는 수박냄새 꽃냄새
가자누나 젊은이야 저섬은 손짓한다 저섬은 손짓한다 우리들의 萬里浦-만리포- 우리들의 萬里浦-만리포-
밀벙거지 遮陽-차양-모에 박쥐양산은 부른다 불러 panama-파나마- 太陽-태양-아래 날아드는 백분가루
꽃가루 가자누나 젊은이야 젊은이야 바다는 손짓한다 구름은 손짓한다 우리들의 松濤園-송도원
松濤園-송도원-
千里-천리-바다 점을찍은 鬱陵島-울릉도-에다 뱃머리를대라 사랑의 욧트위에 부서지는 진주구슬 은구슬
가자누나 구름은 손짓한다 구름은 손짓한다 우리들의 迎日灣-영일만- 迎日灣-영일만-으로
이음원은 아세아레코드발매 lp음반-흘러간 옛노래 no1 에 실린 진방남씨의 <靑春海岸-청춘해안-입니다
靑春男女-청춘남녀-가 海邊-해변-가로 vacance-바캉스-를가는 浪漫-낭만-유행가입니다
夢金浦-몽금포-는 白沙亭 –백사정-으로도 불리는 黃海道-황해도- 용연군 몽금포리에있는 浦口-포구-로 長山串-장산곶- 동북부 해안가에 있습니다
朝鮮時代-조선시대-에는 阿郞浦營-아랑포영-과 助泥浦鎭-조니포진-이 있었으며 水軍萬戶-수군만호-가 배치되던 國防要地-국방요지-였습니다
조선시대 長淵縣-장연현-에 속했으며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개편때 장연군 해안면에 편성했습니다
夢金-몽금-은 海岸-해안-에 發見-발견-되는 구미. 물굽이. 굽이. 돌아가는곳 串-곶-에 해당되는데 그表現-표현-은 한자로 仇味 久味 九美 등으로 씁니다
鬱陵島-울릉도-慶尙北道-경상북도- 鬱陵郡-울릉군-에 속하는 섬으로 죽변에서 동쪽으로 140km, 포항에서 217km, 임원에서 137km지점에 있으며
獨島-독도-와는 92km 떨어져있습니다 신생대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종상화산으로 조면암, 안산암, 현무암으로 구성되있습니다
섬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해안은 대부분 절벽을 이루며 특히 서남과 동남해안은 90m 높이의 절벽으로 천연의 양향발달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暴風日數-폭풍일수-가장많은 곳입니다
近海-근해-에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수역으로 오징어, 꽁치. 명태 등이 어획되며 특히 오징어는 그품질이 우수하여 동남아시아로 수출되고있고
이씨스터즈의 노래 <鬱陵島 twist-울릉도 트위스트-> 정광태의<獨島-독도-는 우리땅>등에서 언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예로부터 武陵-무릉- 羽陵-우릉- 于山國-우산국-등으로 알려졌고 지증왕13년인 512년에 신라에 귀속되었습니다
고려때부터 空島政策-공도정책-이 시행되다가 숙종20년 1694년부터 울릉도에대한 순찰이 강화되고 1884년에 울릉도개척령이 공초되어 이민이
장려도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울릉도를 鬱島-울도-로고치고 江原道-강원도-에 부속시켰다가 1906년 慶尙北道-경상북도-에 편입하였습니다
1915년 島制實施-도제실시-에 따라 鬱陵島-울릉도-로 개칭했습니다
384—織女星-직녀성-
1941년 김영일작사 김교성작곡 白蘭兒 吹入-백난아 취입-
他面-타면- 歌謠曲-가요곡- 박영호작사, 이재호작곡 진방남노래 <故鄕萬里-고향만리- 사랑 萬里-만리->가 실려있습니다
歌謠 concours-가요콩클-서 그녀를 選擇-선택-해준 萬年-만년-스승 김교성이 創作-창작-해준 歌謠-가요-입니다
落葉-낙엽이 定處-정처-없이 떠나는밤에 꿈으로 아로새긴 情恨十年基-정한십년기- 伽倻琴-가야금-열두줄에
시름을 걸어놓고 당신을 소리쳐서 불러본 글발이여
烏鵲橋-오작교- 허물어진 두쪽하늘에 節槪-절개-로 얽혀놓은 牽牛織女星-겨우직녀성- 기러기 便紙-편지-주어
소식을 주마기에 열밤을 낮삼아 써놓은 글발이여
시름은 천가지나 曲折-곡절-은하나 잘못주어 헝클은꿈아 달한쪽 걸어놓은 北方북방-길 아득한데 냉수를기름삼아
빗어본 참빗이여
이노래속 화자는 사랑하는 임을 애마르게 그리워합니다
1941년에 十年歲月-십년세월-을 기다렸으니 1931년쯤에 離別-이별-한 임으로 봐야합니다
그해는 日本製國 主義者들-일본 제국주의자-이 滿洲-만주-를 攻擊-공격-한 해입니다
烏鵲橋-오작교-가 허물어진 두쪽난 하늘을 바라보며 기러기에게 便紙-편지-를주어 소식을 전하겠다는던 임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烏鵲橋-오작교-가 허물어졌다>고 表現-표현-했습니다
이러한 같은내용의 노래가 存在-존재-해 興味 흥미-롭습니다
歌皇-가황- 南仁樹-남인수-씨가 취입한 <무너진 烏鵲橋-오작교->가 바로 그노래입니다
조명암작사 손목인작곡으로 ok-record 서 1940년 12월 發賣-발매-된곡입니다
무너진 烏鵲橋-오작교-엔 銀河水-은하수-가 굽이치고 무너진 니가슴엔 피눈물이
솓아졌다 사나이 一天肝腸- 일천간장- 차라리 썰어다오 모질게 잠아끄는 한오리사랑
한오리사랑
무너진 오작교는 다시 놓을수있다마는 무너진 내 純情-순정-은 千歲 萬歲-천세만세-
그만이다 한줄기 생목숨을 차라리 끊어다오 모질게 풀어헤친 천오리탄식
천오리 歎息-탄식-
다낡은 썩은다리 盟誓-맹세-는 남았어도 사랑은 깨어지고 원한은 깊어라
그 생각 흩어지고 산산이 깨어지니 가슴은 애달파라 저녁 가을비 저녁가을비---일본어 번안---
상기가요 <織女星-직녀성->서 牽牛-견우-와 織女-직녀-는 1년에 한번정도는 만나지만 이여인은 십년의 離別-이별-입니다
열밤을 낮삼아서 글을썼지만 부치지못했습니다 이러한 事緣-사연-의 歌謠-가요-를 진방남의 노래와함께 sp음반에 실었습니다
노랫속 話者-화자-는 천가지 시름을 안고 지내는데 기시름의 곡절은 단한가지”정하나 잘못주어 헝클은 꿈”입니다
오작교에서 만날때는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아주는데 話者의 郎君-낭군-은 기러기에게 소식을 전하려했습니다
여인은 냉수을 기름처럼 머리에 바르고 참빗으로 빗질을합니다
아마도 모르긴해도 가르마는 5대5가르마를 탔을것입니다 한마디로 精神-정신-을반듯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참빗은 女人-여인-들이 머릿결을 다듬는 여성용 머리 손질도구입니다
참빗은 재료형태, 크기, 빗살조밀도 정도에따라 9가지로 구분하는데 대나무를 베어서 참빗을 완성하기까지 대략 35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고급이라 할수있습니다
385--北支行 三等室-북지행 삼등실- <一名-일명- 길순아 잘있거라>
1941년 김영일 作詞-작사- 이재호 作曲-작곡- 진방남 吹入-취입-
他面-타면- 김상화작사 이재호작곡 묵해랑노래 <山脈-산맥-을 쓸어안고>를 실었습니다
북쪽으로 가는차에 몸이야 실었다만 離別-이별-에는 안울란다 사나이에 반쪽-가슴
정든하늘 정든안개 물길마다 수양버들 길순아 잘있거라 北地行 三等室-북지행 삼등실-
달려간다 北行列車-북행열차-豆滿江 十里鐵橋-두만강 십리철교- 유리창에 사무치는 他國-타국-
별이 안타깝다 풀어지는 연기속에 손수건을 흔들면서 길순아 잘있거라 北地行三等室-북지행 삼등실-
벌판위에 흔들리는 야귀비꽃가루는 새길찾는 사나이에 希望-희망-어린 깃발이냐 萬里長城-만리장성-
성머리에 새벽달을 손짓하며 길순아 잘있거라 北地行三等室-북지행 삼등실-
이노래는1960년대 원창가수 진방남 本人-본인-이 직접 改題,詞-개제.사-하여 발매했습니다
아세아레코드발매 lp음반 -진방남힛트앨범 no1-에 실려있습니다
아세아레코드에 실린 remake 에는 豆滿江十里鐵橋-두만강 십리철교-는 온데간데없고 京釜線-경부선-이 느닷없이 등장합니다
서울 行三等列車-행 삼등열차- 洛東江-낙동강-과 秋風嶺-추풍령-이대중의 감흥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결국 유행가는 이렇습니다 大衆-대중-은 歌謠創作者-가요창작자-들의 손끝에 따라서 歷史-역사-를 記憶-기억-하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북쪽으로가는 차에 몸이야 실었다만 이별에는 안울란다 사나이의 야속가슴
정든하늘 정든안개 물길마다 수양버들 길순아 잘있거라 서울행 三等室-삼등실-
달려간다 急行列車-금행열차- 洛東江 鐵橋-낙동강 철교-다리 유리창에 사무치는
他鄕-타향-별이 안타깝다 풀어지는 연기속에 손수건 흔들면서 길순아 잘있거라
서울行-행 三等室-삼등실-
들판위에 흔들리는 黃金-황금-빛 꽃가루는 새길잡는 사나이의 希望-희망-어린 깃발이냐
京釜線-경부선-아 秋風嶺-추풍령-아 다시보자 내고향아 길순아 잘있거라 서울행 삼등실
1941년 이노래가 發表-발표-될當時-당시- 부쪽으로가는 列車-열차-는 豆滿江鐵橋-두만강 철교-를 건너갔습니다
노랫속 話者-화자-는 vladivostok-블라디보스토크-나 滿洲-만주- 沿海州-연해주-로 떠나갑니다
萬里長城-만리장성- 성마루에 비치는 남의나라 하늘에 뜬별을 헤아리면서 길순이를 生角-생각-합니다
두만강철교가 보이는곳은 혼춘시 防川-방천-이라는 곳입니다 방천’一眼 望三國-일안망삼국’ 즉, “한눈에 세나라를 볼수있는곳” 아라는 뜻입니다
중국과 북한의 境界-경계-인 두만강 동쪽 琿春市-혼춘시- 방천. 이곳은 民間人-민간인-이 갈수있는 동쪽끝으로 展望臺 建物-전망대 건물-이 하나있습니다
러시아.중국. 북한 三國-삼국-을 바라보는 왼편이 러시아 오른편이 중국입니다
멀리보이는 두만강철교 오른쪽 陸地-육지-가 북한땅입니다
철교는 북한의 두만강시 홍이리와 러시아의 khasan-하산-을 연결하는데 북한의 나진. 선봉지구 開發-개발-과 맞물려있습니다
왼쪽 멀리보이는 이순신장군이 초임 군관시절 주둔했던 鹿屯島-녹둔도-라는 섬인데 두만강의 토적으로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녹둔도는 과거 우리땅이었는데 현재는 러시아 영토입니다
<녹둔도>는 사슴이 뛰어노는 언덕이라는 말입니다
地圖上-지도상-으로 咸鏡北道-함경북도- 선봉군 조산리에서 약 4km 거리에있는 섬입니다
386—四面楚歌-사면초가-
1942년 ok-rcord 발매 sp음반 조명암 作詞-작사- 박시춘 作曲-작곡- 최병호 吹入-취입-
他面-타면-조명암작사 박시춘작곡 이난영노래 <烈女-열녀-의魂-혼->을 같이 실었습니다
木通樹-목통수- 한곡조에 고향이 그리워 강동자제 八千軍士-팔천군사- 흩어졌느니
羽美人-우미인- 잘있거라 낸들 어이할쏘냐 力拔山-역발산- 項羽-항우-련들 응~ 내어이 할쏘냐
바람에 지는 洛花-낙화- 이마음을 아는가 돌아서는 말안장 갑옷이운다 우미인
잘있거라 낸들 어이할쏘냐 초패왕 하우련들 응` 내어히 할쏘냐
上記歌謠-상기가요-사면초가는 기원전 202년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마지막 戰鬪-전투-인 해하전투 를 motive-모티브-로해서 엮는 流行歌-유행가-입니다
여기서 垓下戰鬪-해하전투-는 중국 진나라 말기인 bc 202년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초패왕 항우가 벌인 最後-최후-의 전투를 말합니다
垓下-해하-는 안후이성 링비현 부근의 지명이고 항우의 고향과 인접한곳입니다
당시 항우의초나라 군사는 병력이 피폐하고 식량도 부족한데다 유방군사의 맹추격을 받습니다
설물처럼 밀리던 항우는 해하에 포진했으나 유방군사들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밤마다 사방에서 한나라 군사가 부르는 초나라노래 四面楚歌-사면초가-로
恐惶狀態-공황상태-에 빠집니다
마침내 양쯔강북쪽기슭 우장의 도선장까지 도망을가서 강건너편 故鄕-고향-언덕을 바라보며 자결해버립니다
固執不通-고집불통-이던 향우는 자결전에 최후의 만찬 같은 주연을열고 絶命詩-절명시- 垓下歌-해하가-를 남깁니다
戰爭攄-전쟁터- 초막에 데리고 다니던 사랑하는 女人-여인-우희는 이끝판을 알아차리고 항우앞에서 칼춤을추며 和項王歌-화항왕가-를 부르고
칼을물고 자결해버립니다
2000년만에 대중가요로 幻生-환생-한 中國-중국-의 楚漢志-초한지-에 묘사된 한나라 天下統一-천하통일- 노래를 吟遊-음유-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이 戰鬪-전투-로 유방은 한날의 皇帝-황제-가되어 52살까지 재위하다가 생을 마감했고 항우는 四面-사면-에서 들려오는 초나라의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하는 애인 우미인이 자결하는 모습을 참담하게 바라본후 스스로 칼을물고 30살의 생을 마감합니다
노래 첫소절의 木通樹-목통수-는 通脫木-통탈목-혹은 通草-통초-라고하는 쌍떡잎식물로 두릅나무과 상록관목인데 타이완과 중국남부에 자생하며
숲속의 습기가있는 그늘에서6~8m높이로 자랍니다
이나무는 해하전투 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데작사가 조명암이 포위된 항우의군사을 향해 한나라군사가 날라리. 꽹과리. 퉁소.피리등의 연주와 함께부른
초나라노래의 興趣-흥취-를 더하기위해 着想-착상-한기치로 여겨진다는 주장이있습니다
이곡을 취입한 가수 崔丙浩-최병호-는全南-전남-무안태생으로 <木浦-목포-의눈물>를 부른 전남 목포출신의 이난영과 동갑내기입니다
本名-본명-이 최재련인 그는 1940년, 5월 제1회 ok-record concours-콩쿠르-에서 全南光州 地域-전남 광주 지역- 예선을 통해 서울본선에 入賞-입상-했고
권명성. 박달자. 김선영. 손석봉. 성일. 심원. 봉일 등이 같이 입상한 新人歌手-신인가수-들이라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데뷔음반은 1940년, 8월에 發賣-발매-되었습니다
최병호는 1941년 <아주까리등불>을 발표한후 <황포돛대> <十年-십년-이 하룻밤> <떠나갈 海航-해항-> <月下-월하-의 선가> <실없는 冬柏-동백-꽃>
<有情故鄕-유정고향-> <湖南-호남-의 사나이>등을 불렀습니다
그는 데뷔當時-당시-부터 藝名-예명- 최병호를 사용했고 이난영의오빠 이봉룡과 親分-친분-이있었고 朝鮮樂劇團-조선악극단- ,약초가극단, k.p.k 악극단 국도악극단, 박시춘악극단, 무궁화악극단서 연이어 활동을헀습니다
그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을만큼 不動姿勢-부동자세-로 노래한 가수로 유명하고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제징용되었다가 미치광이 짓을해 무사히 귀국하기도 했습니다
Ok-record 先輩歌手-선배가수- 송달협씨의 여동생과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387—북청물장수
1942년 태평레코드발매 sp音盤 歌謠曲-가요곡- 처녀림작사 김교성작곡 백난아취입
他面-타면- 김영일작사 이재호작곡 백난아노래 <昭南島-소남도-달밤>을 실었습니다
나는야 물장수 북청이라 물장수 새벽별 넘쳐나는 물지게를 지고서 삐걱삐걱 삐걱 삐걱
아가씨 大門-대문-여소 복물을 받으소
고향은 북청이요 귀양살이 터에다 行色-행색-은 거벙해도 名門-명문-의 孫子-손자요- 삐걱삐걱
삐걱 삐걱 비걱 마나님 대문여소 그물을 받으소
조카는 大學生-대학생- 아들은 中學生-중학생- 물지게 긴팔에 박사가 수두룩 삐걱 삐걱 삐걱
삐걱 한바리 대령했소 그물을 받으소
<북청물장수>는 서울에서 물을 팔아서 먹고산 사람들의 代名詞-대명사-입니다
북청에서 서울로온 사람들은 누구 였을까요??
이사람들을 motive –모비브-로한 流行歌-유행가-가 1942년 誕生-탄생-했습니다
日本製國主義 植民地下-식민지하-에서 갑자기 두둑처럼 찾아온 解放-해방-되기 3年前-년전-입니다
북청은 咸鏡南道-함경남도- 北東部 地域-북동부 지역-으로 북으로 이원 서로 덕원 남으로 신포 동으로 東海-동해-와 近接-근접-한 지역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濟州-제주-에서 9년간 유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2년간 유배를갔던 곳이 북청입니다
북청사람들중에 1800년경부터 한양으로와서 물장수를 한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한사람마다 10~30호씩 단골區域-구역-인 水座區域-수좌구역-을 정하고 서로가 商圈域-상권역-을 침범하지 않도록하는 不文律-불문율-을 정하고 자켰습니다
물지게의 삐걱거리는 소리에는 자식에게 고등교육의 상징이요 출세의 지름길인 四角帽-사각모-를 씌우고자하는 의지와 자부심이 담겨있습니다
當時-당시- 서울에 특별한 연고가업었던 그들은 故鄕出身-고향출신-끼리 생활했고 이로부터 1920년대까지 존속했던 물방이라는 무장수 합숙소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잠만자고 식사는 물을사는 사람의집에서 한끼씩 물값대신 먹었습니다
이들중에서 북청사람들이 가장많았으므로 북청물장수라는 말이생겼습니다
여기에서”북청사람들은 물을 팔아서라도 子息工夫-자식공부-는 시킨다”라는 말이 생겨났읍니다
그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말끔히 먹어치우는 행태를 <물장사 밥상>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른새벽 물ㅇㄹ 배달했고 단골에게는 일시불로 대금을 받았으며 처음에는 지게로 물항아리를 져서 날랐으나 나중에는 석유 양철통 두개를 봉막대기
양쪽끝에 매달고서 어깨에메고 배달했습니다
서울에 상수도시설이 들어온시기는 1908년인데 일본인 집단거주지역으로 설비가 됐다니 울화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그로부터 50여년이지난 1960년대까지도 물지게를 져다 먹은 산동네가 한두군데가 아니였습니다
북청에는 거두봉. 종산. 대덕산. 중태령. 독슬봉 등 산봉우리가 있고 남대천이 읍내를지나 동해로 흘러가면서 북청평야가 펄처져 있습니다
북청은 이항복이 1617년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하다가 11월에 削奪官職-삭탈관직-당하고 귀양을 갔던곳이기도 합니다
이때 그는 중풍이 재발해 반신불구가 되었습니다
당황한 광해군은 그의 유배지를 용강, 홍해, 창성, 경원, 살수로 옮기게합니다
그러던중 1618년 다시 북청으로 유배돼 세상을떠납니다
김동환의 <북청물장수> 題目-제목-의 시를 소개합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아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사라지는 북청물장수 물에젖은 꿈이 북청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소리치며
온자취도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물장수
388—統軍亭-통군정-노래
1942년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 유도순작사 한상기작곡 고운봉취입
他面-타면- 유도순작사 손목인작곡 이해연노래 <뗏목 二千里-이천리->를 실었습니다
白頭山 天地-백두산 천지- 꿈도 雪原 二千里설원 이천리- 뱃노래 九龍浦-구룡포-에 장한하구나
해동문 옆에끼고 백마산보면 義州-의주-라 統軍亭-통군정-은 우뚝이 섰네
聚勝堂-취승당- 그옛뜰에 杜鵑花-두견화-피고 아침과 지는해는 종이우는데 北天仰-북천앙- 작은절에
念佛-염불-성나니 의주라 統軍亭-통군정-은 情懷-정회-깊구나
九連城-구련성- 바라보며 첫눈 즉온지 鴨綠江-압록강- 건너서서 이긴싸움에 대동아 아침해가 떠올랐으니
義州-의주-라 統軍亭-통군정-은 莊嚴-장엄-도 하네
상기노래는 얼핏보아도 軍隊-군대-와 關聯-관련-한 曲調-곡조-입니다
軍隊-군대를 統率-통솔-하는정자 즉, 軍士指揮所-군사지휘소-에 관련한 노래임을 題目-제목-이 暗示-암시-하고있읍니다
1942년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東asia-동아시아- 戰爭-전쟁-에서 太平洋戰爭-태평양전쟁-으로 確戰-확전-해 2년차가 되던 時期-시기-이고
우리는 저들의 식민지 32년차이던 때였습니다
노래歌詞-가사-에 “鴨綠江-압록강- 건너서서 이긴싸움에 大東亞-대동아-아침해가 떠올랐으니 義州-의주-라 統軍亭-통군정-은 장엄도 하네”는
바로 일본의 戰勢-전세-와 의도를 추겨세우는 구절입니다
해서 이가요는 親日歌謠 嫌疑-친일가요 혐의-에서 결코 自由-자유-로울수 없습니다
통군정은 일본군의 지휘소가 아니라 우리 先祖-선조-들이 오래전부터 鴨綠江邊-압록강변-을 지키기위하여 지은 軍士將臺-군사장대-였습니다
노랫말로 표현된 백두산, 구룡포, 해동문, 백마산,최승당, 북천앙, 구련성 등은 통군정이있는 의주 압록강변의 처소들입니다
歌手-가수-고운봉은 태평레코드, 오케이레코드를 거처 1942년 Columbia-record 로 이적하여 상기곡 <統軍亭-통군정-의 노래>를 첫취입곡으로 발표합니다
歌手生活中-가수생활중- 純情-순정-의 歌手-가수- 고운봉 이라는 catch phrase-캐치프레이즈- 로 가수데뷔를 했으며 男子歌手中-남자가수중- best dress-베스트 드레스-
라는 別名-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노래속 統軍亭-통군정-은 平安北道-평안북도- 義州-의주-에있는 朝鮮時代 樓閣-조선시대 누각-으로 정면 4칸 측면4칸의 합각지붕 건물입니다
義州邑城-의주읍성-에서 가장높은 압록강기슭 三角山-삼각산-봉우리에있는 將臺-장대-입니다
통군정에 올라서면 압록강 푸른물 가운데 점점 더있는 섬들이 보입니다
서족으로는 멀리 신의주, 용암포가 바라보이고 남쪽으로는 義州金剛-의주금강-으로 불리며 노랫말속에도 등장하는 백마산이 보입니다
평양의 영광정 강계의 인풍루, 안주의 백상루와 함께 우리나라 누각건물을 대표하는 유적입니다
정확한 건립연대 는 알수없으나 조선초기까지 義州城-의주성-안에있던 봉수대이름이 통군정 이었다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統軍亭-통군정-이있는 義州郡-의주군- 동족으로는 삭주군. 구성군. 남쪽으로는 용천군. 철산군. 선천군. 북서쪽으로는 鴨綠江-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滿洲地方-만주지방-과 境界-경계-를이루고 있습니다
천마산에서 發源-발원-한 삼교천이 서남쪽으로 흘러 하류에와서는 용천군과 경계를이루며 압록강으로 유입합니다
백운산에서 발원한 당목천은 북쪽으로 흘러 압록강으로 유입합니다
북부의 國境-국경-지대를 흐르는 압록강은 삼교천과 당목천을 합해 서남쪽으로 흐르며 하류에는 충적에의한 위화도. 신도. 일도. 검동도
등의 하중도가 형성돼있습니다
이 위회도가 1388년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했다가 칼을 꺼구로들은----- 回軍-회군-한 압록강 섬입니다
389—新羅-신라-의 달밤
<신라의달밤>은 日帝末期-일제말기-朝鮮樂劇團-조선악극단-에서 소위 일본제국주의의 東南亞共榮圈-동남아공영권-을 자랑하는 show 舞臺-쇼무대-가 있었는데 이 舞臺-무대-에서
태국의 風物-풍물-을 소개하는 舞踊-무용-과 곁들여 當時 舞臺歌手-당시 무대가수-이던 계수남이<태국의꿈>이라는 곡명으로 부른 노래였습니다
해방후 일본인들이 철수한후 중앙극장을 조선악극단서 문예부장 대리인으로 일하며 황금심을 박시춘에게 소개하기도했고 조선악극단이 일본서공연시
책임자로 활동하기도한 김상진이 관리하게 되었고 그는 直接 希望樂劇團-직접 희망악극단-을 만들었습니다
이극단이 1946년. 1월25일부터 옛 명치좌인 국제극장서에서 악극 꾀꼬리음악회 을 상연한바 1부공연은 오영진작 뮤지컬<맹진사댁경사> 2부는
<꾀꼬리음악회>를 공연했습니다 이공연서 앞서 言及-언급-한 일제말기 조선악극단 쇼무대서 계수남이 부르던 <태국의꿈>을
<인도의밤>으로 개제해 부릅니다
<꾀꼬리음악회> 는 박시춘이 구성하고 작곡, 지휘한 쇼였습니다
이곡이 맘에들었던 박시춘은 따로 독립시켜 發表-발표-하고 싶어졌습니다
아 인도의 달이여 마드리스 교회종소리 울린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달빛어린 수평선 흘러가는 파도에 마음을 실어보자 방랑의 이설움
이곡가사는 조명암이 창작 했고 이곡이 신라의달밤 으로 개작된것에 크게분노했다는 기록이있습니다
그무렵 hlka 전속악단 지휘자를 맡고있던 박시춘은 같은방송 편성과에서 드라마집필에 열중이던 유호를 불쑥찾아갑니다
이미 kbc-record 서 취입한 옥두옥의<목장의노래> 콤비를 이루었던 그들은 ”유호씨 지금바빠요> 이제 해방도 되고했으니 한민족의 정서가담긴 노래한곡 만들어봅시다
이미 작곡을 하나 해뒀으니작사를 좀 해주시오 오늘 가수에게 연습시키려고 하니 급해요 급해 안되면 지금당장 1절만이라도 만들어주시요
노래제목은 <신라의달밤>입니다”
이렇게 부탁아닌 부탁을한 그는 휑하니 나가버렸습니다
사람좋은 유호씨는 박시춘이 흥얼대던 멜로디를 기억해내며 경북중학시절 수학여행으로 한번갔던 경주를 우선 기억해내고 新羅千年-신라천년- 사직 에 부서지던 신비로운 달빛조각을 떠올렸습니다
이러한 개작작업은 1948년 8월 조명암이 자진월북을 선택한후의 일로 추증됩니다
가사를 받아든 박시춘은 이노래를 소화시킬 가수가없어서 고심중 “마침 상하이에서 돌아온 가수가있는데 이곡을 잘소화할 것”이라며 데려온 청년을 만나게됩니다
그가바로 본명 현동주인 가수현인씨입니다
악보를주자 현인은 으으~~~음 하며 콧노래로 곡을 불러 본후”故鄕輕音樂團-고향경음악단-공연에 特別出演-특별출연-을 하는데 외국곡은 많은데 우리나라 노래가 없어서 망설이던중”이라며 기뻐했습니다
이런일이 있은후 이틀후 현인을 박시춘에게 紹介-소개-했던 친구가 헐떡이며 박시춘씨집으로 뛰어왔습니다
“시공관에서 신라의달밤을 제창, 3창을하고 야단입니다 어서 가봅시다” 無酌定-무작정- 그를 끌어냈습니다
이노래가 爆發的-폭발적-인 人氣인기-가 lucky-record 라는 음반회사를 탄생하게합니다
이무렵 明洞-명동-에서 日本飮食店-일본 음식점-을 운영하던 강운영이란 사람이 자본을 대겠으니 이노래를 취입하자고 박시춘을 찾아와 졸라댔습니다
이에 박시춘은ok-record 사장 이철의 매부인 김성흠을 찾아갑니다
그는 오케이레코드 時節-시절- 일본 데이치쿠레코드에서 음반제작 및 취입기술을 배웠고 해방후 부속품을 사모아 조립한 기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해서 이노래를 취입은 했으나 음반을 찍어낼 압축기와 재료가 없었습니다
해서 임시방편으로 압축기는 참기름짜는기계로 대용했고 재료는 낡은음반을 모아다가 숯불로 달군 철판에녹여서 찍어냈습니다
이노래를 살려는 시민들이 악기점마다 줄을섰으나 하루에 고작50~60장밖에 생산할수 없었습니다
1949년, 4월 10일자 東亞日報-동아일보-에 럭키레코드의 販賣開示-판매개시-광고가 실렸습니다
創立紀念新譜-창립기념신보- 8곡중 한곡으로 상기곡이 발매되었습니다
<新羅-신라-의달밤>은 그간 韓國大衆歌謠 主流-한국 대중가요 주류-였던 南仁樹style-남인수스타일-과 전혀다른 唱法-창법-,
異國的-이국적-인 멜로디와 慶尙道-경상도-사투리가 섞인 현인특유의 魅力-매력-으로 旋風的-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삽시간에 전국을 强打-강타-했습니다
이노래는 후일 midopa-record 발매 10인치음반-추억의옛노래-에remake 되어 실립니다
이무렵부터 현인특유의 하하 唱法-창법-으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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