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시조, 어떻게 써야 하나
현대시조는 우리의 전통시이자 오늘의 시이다.
현대시조를 말할 때 우리는 시조라는 장르의 전통이 우리 문학에 무엇을 말해 주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마주치게 된다.
흔히 전통이란
독창성이 없는 것, 이미 지나버린 것, 보수적이거나 과거 지향적인 것
이런 식으로 치부해버리기 일쑤지만 실은 오늘에 되살려야 할 ① 가치 있는 것, ②
새로운 창조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전통은 그저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갖기 원하거든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T S 엘리어트의 지적과 같이 전통을 오늘 우리의 삶을 영위해가는 힘으로, 그리고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과거의 답습과 고수가 아니라 새로운 미학(美學)의 추구를 위한 연구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
서정주(徐廷柱)의 "국화 옆에서"나 조지훈(趙芝薰)의 "승무"와 같은 자유시에 시조의 운율이 나타나고 있음은 시조의 전통이 현대시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중에 시조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현대시조가 우리의 전통시로 그 몫을 다하고 "오늘의 시"로서 작품성을 제고해 나가기 위해서는 작시(作詩) 태도와 방법상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서정주 선생의 "국화 옆에서"를 보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 작품의 첫째 연과 둘째 연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나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토로한 대목은 이른바 양장시조(2장시조)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다음은 조지훈 선생의 "승무(僧舞)"를 보자.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 1ㆍ2ㆍ3연은 완벽한 평시조 한 수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즉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했는데, 빗금 하나(/)는 구(句)의 구분으로, 빗금 둘(//)은 장(章)의 구분으로 읽으면 똑 떨어진 한 수의 시조작품으로 읽히는 것이다.
흰달빛
자하문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보살
바람소리
솔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흔흔히
젖는데
흰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
위에 인용한 작품은 박목월 선생의 시 "불국사"다. 후렴처럼 반복 효과를 노린 일곱째 연과 여덟째 연(흰달빛/ 자하문// 바람소리/ 물소리)을 접어 두고 읽으면 이 작품 역시 깔끔한 단형시조로 다가온다. 다음은 박재삼 선생의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을 보기로 하자.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인용한 작품의 둘째 연을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라고 진술한 대목은 완벽한 2장시조(양장시조)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음은 신석정 선생의 "서정소곡"을 보기로 하자.
삼월보다 따스한
네 손을 달라.
백목련보다 하이얀
네 가슴을 달라.
불보다 불보다 뜨거운
네 심장을 달라.
(이하 생략)
"서정소곡" 역시 한 편의 훌륭한 평시조다.
위에 인용한 여러 작품들은 외형상 자유시같고, 또 그렇게 분류되고 있지만 사실은 시조의 율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나 조지훈의 "승무"를 자유시로 읽으면 현대적 의미가 살아나고, 반대로 시조로 읽으면 고전미가 우러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박목월의 "불국사"나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신석정의 "서정소곡"을 자유시로 읽건, 시조로 읽건 그 의미와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들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와 정서적 충격이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 새로운 美學 추구
시조의 새로운 미학(美學) 추구를 위해서는
① 주제의식의 확대이다.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이나 영탄적 정서를 지양하고 실존의 의미와 현실적 삶의 정서를 풀어내야 한다. 현실 인식(역사의식)과 현대적 감각이 없는 시조란 현대시조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고향 땅은 야전장이 되어 갔다
서울발 꽃상여 하나, 한길 덮은 만장 행렬
치열한 오월의 밤이
운암동을 흔들었다.
가파른 망월 길의 징 소리도 멀어지고
검게 탄 노점 언저리 두 노인의 긴 그림자…
고뿔 든 아침 태양이
빈 폐허를 쓸었다.
언덕 위 하늘집이 안개 속에 잠긴 주일
대낮에도 촛불 켠 채 아, 얼룩진 말씀이여
목 붉은 통성 기도를
파도 타고 흐른다.
- 송선영의 "귀성록(歸省錄)"
송선영의 "귀성록"은 역사의식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현실적 삶의 정서나 역사의식을 담아내는 작품이 드문 시조문학 풍토에서 송선영의 "귀성록"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5·18 민주화운동을 바로 맞대놓고 토로한 "작자의 용기"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서울발 꽃상여> <치열한 오월의 밤> <가파른 망월 길의 징 소리> <고뿔 든 아침 태양> <목 붉은 통성 기도> 등 몇가지 주제어만 들추어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이 주정(主情)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시조시단에 던지는 메시지는 실로 엄청난 것이고 그 파장 또한 크다고 할 것이다.
이 작품이 큰 파장을 몰고 오는 이유는 바로 주제의식의 확대가 아닌가 싶다.
"주제의식의 확대"란 명제를 두고 윤금초의 장편시조 "청맹과니 노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청맹과니 노래" 중 "지노귀새남 - 우리네 鎭魂巫歌"를 보자.
살강 밑에 씻긴 밥풀 움 돋거든 오마던가.
배곯아 젖배 곯아 털복숭이 어린것의 혀 빼물고 죽은 귀신,
누더기 몸뚱어리 태산 같은 병을 실어 시집 장가 못 가본 채 무명밭 다래처럼 허리 꺾인 몽달 귀신,
동네방네 내돌리다 이 빠진 사발처럼 이놈 저놈 오금 밑에 썩은 새로 녹아 내린 벌거숭이 각시 귀신,
피붙이 살붙이 없는 흉흉한 홍진 세상 와석종신 못한 귀신,
붙일 데 얹힐 데 없이 어눌한 검불 꼴로 지게 밑에 치여 죽은 머슴살이 난발 귀신,
천연두 돌림병에 비루먹은 푸성귀 모양 약 못쓰고 죽은 귀신,
살도 뼈도 추심 못한 산등성이 풍장으로 갈가마귀 부리 끝에 찢기운 고기잡이 늙다리 귀신,
스무 사흘 가뭄처럼 제사 한번 못 얻어먹는 비렁뱅이 꼽추 귀신,
까발긴 역사마냥 무덤 자리 성치 못한 뗏장 밑에 웅크린 저 외톨박이 떠돌이 귀신,
궁하고 비천한 넋들 얼싸절싸 다 나오라.
파당 파쟁 아수라장 등 터져서 죽은 귀신,
풀뿌리 나무 줄기 야금야금 갉아먹는 진딧물 모적( 賊)처럼 간에 붙어 쓸개에 붙어 단물 쓴물 말아먹고 나자빠져 죽은 귀신,
배동한 보리밭 이랑 돌개바람 휩쓸 듯이 앰한 사람 해꼬지로 정을 맞아 죽은 귀신,
너구리 비상 먹듯 녹봉을 잘라먹고 똥구멍이 빠진 귀신,
개가죽 북장구로 허랑방탕 농치다가 급살맞은 난봉 귀신,
魂은 데치고 魄은 삶아 등신들아 다 나오라.
눈치 코치 미처 몰라 함성의 와중에도 화살 피해 은신타가 철퇴 맞아 죽은 귀신,
아전한테 들볶여서 두엄 속에 피신하다 객사 죽음 선비 귀신,
쥐도 새도 모르게 물에 빠진 생쥐 모양 알지 못할 시궁창에 모로 누워 뒈진 귀신,
밭고랑 후미진 골짝 속 깊은 응어리에 뼈마디 어혈 들어 깜부기로 시든 귀신,
앵돌아진 조가비 속 율법전서 미궁 속에 영영 갇혀 죽은 귀신,
항쇄족쇄 칼을 쓰고 살갗 옹이 박힌 귀신,
초례청 굿청 마당 날것 먹고 구워 먹다 낙형당해 죽은 귀신,
고대광실 주문설주 돌쩌귀 들이받고 피 칠갑을 입은 귀신,
뜬소문에 나불대다 혀를 빼어 도리깨 치듯 치도곤을 맞은 귀신,
볼기 터진 나으리 등쌀에 부은 감창 갈앉히고 방정 떨다 주리 틀린 男絶陽 고자 귀신,
소쩍새 귀뚜리에 한을 팔고 죽은 귀신, 하릴없이 죽은 귀신, 까닭 없이 죽은 귀신… 이적도 잠 못 들어 항간을 헤매는데,
그 누가 아픈 혼백 다 거두어 수렴할꼬, 거두어 수렴할꼬.
② 소재의 확충이다.
산수 경물(山水 景物)만이 시조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사물·현상 외에도 사이버 세계, 그리고 디지털시대의 각종 현상들이 다 시조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체험적 사실(요소)이 시조의 소재로 선택됨으로써 좀더 구체적이고 이미지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사실성을 획득할 수 있고, 현장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순하 선생의 사설시조 "장택고씨부인전(長澤高氏夫人傳)"을 보자.
長澤高氏夫人, 이는 이름 한 자 없는 우리 할머니의 장황한 호칭.
호적을 들추면 고씨 가문에가 아니라 흥성장씨의 호구에 자리하여 구십 춘추. 진실로 한 생의 수운(數運)이란 제 뜻 아닌 고작 몇 글자의 붓끝으로 까불림을 뼈로 보노니, 개국에 나서 서력으로 가시는 동안 숱하게 굽이친 물결, 도도히 흘러간 핏빛 물결은 흰옷 자락을 점점이 물들이고 덩시렇던 노적 터에 길길이 억새만 가꾸었다.
목소리 담 넘을세라, 조신한 이 땅의 아낙으로 시원히 한 가락 뽑안들 보았으랴만, 어버이와 지아비와 그 아들의 잎 그늘 사이로만 날아 온 잿빛 산비둘기, 이제 마지막 한 줄 "사유(事由)"를 보태고 더 큰 가지에 날개를 접도록에 한마디 구구 소리도 없었건만, 탯줄에 주저리 열린 일곱 남매, 그 중 앞서 비인 한 칸에
흥건히 고여 있고녀! 단 하나 당신의 뜻.
다음은 홍성운의 "섬억새 겨울나기"를 보자.
화산도의 겨울은 억새가 먼저 안다
비릿한 근성으로 아무 데나 눈발 치네
유배지 어진 달빛이
잎새마다 배어나는
대물림에 살아간다 그리움은 습성이다
먼 바다 바라보는 연북정 그 수평선
분분한 떼울음 앞에
순백으로 직립한다
또 한 차례 하늬바람 연착된 하늬바람
과분한 귤나무를 벌채하는 이 땅에
그래도 밑동 따스한
기다리는 뜻이 있다
뉘 한 번 흔들어보라 내 또한 흔들리마
오일장 좌판 같은 한 푼어치 손짓이여
섬 하나 외고집으로
갈 데까진 내가 간다
- 홍성운의 "섬억새 겨울나기"
제주도 땅에 귀양살이 온 선비들이 연북정(戀北亭)에 모여 (임금을 우러러) 나라가 잘 되기를 빌었던 심정을 오늘의 관점에서 토로한 시조다. 이처럼 현대시조는 그 소재 영역을 무한대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③ 시조 형식에 대한 철저한 이해이다.
3·4조나 4·4조로 글자수를 맞춤으로써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시조란 4음보의 음보율에 따라 의미(시상)가 전개되는 율격의 시이기 때문이다. 시조가 율격(4음보율)시임을 이해함으로써 넓고 다양한 의미를 자유롭게 표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돌엔들 귀 없으랴 천 년을 우는 파도소리, 소리…. 어질머리로다, 어질머리로다, 내 잠 머리맡의 물살을 뉘 보낸 것이냐.
천 년을 유수라한들 동해 가득히 풀어놓은 내 꿈은 阡의 용의 비늘로 떠 있도다.
나는 金을 벗었노라, 머리와 팔과 허리에서 新羅 文武王 그 榮華 아닌 束縛, 安存 아닌 苦痛의 이름을 벗고 한 마리 돌거북으로 귀 닫고 눈멀어 여기 동해 바다에 잠들었노라.
천 년의 잠을 깨기는 저 天馬塚 炤知王陵의 부름이었거니 아아 살이 허물어지고 피가 허물어져 불타는 저 新羅 어린 계집애 碧花의 울음소리, 사랑의 외마디 동해에 몰려와 내 귀를 열어,
大王巖 이 골짜기에 나는 잠 못 드는 한 마리 돌거북.
- 이근배의 "동해 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이근배의 사설시조 "동해 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을 면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설시조의 차원을 뛰어 넘어 앞으로 우리 시조가 개척해 나가야 할 진로를 넌지시 귀띔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면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④ 상상력의 확대다.
시조는 전통적으로 감성적 상상력에 의존해왔다. 그러므로 사상(철학)의 단순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고 사물, 또는 생명의 본질적 의미를 형상화해 가기 위해서는 논리적 감성과 상상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마른풀도 키를 낮춘 우금치란 언덕빼기
뼈와 살 함성마저 바람으로 누워 있다
일백 년 잡초의 사발통문 깨지 않는 깊은 잠.
역사란 승자의 몫 죽은 자는 죄도 죽고
후대의 가슴에 남아 울음 우는 그날의 말
절통한 이 땅의 쑥물 대접으로 들이킨다.
송장배미 저수지 위 눈보라가 달려가며
내뱉는 그 육성을 심장으로 엿듣고 있다
죽창에 쇠스랑을 든 수만 거친 숨소리….
그날 동학에 합류한 나의 증조 할아버지
평생을 쫓기는 삶 쉬쉬하다 숨을 거두신
봉분에 큰절 올리지만 아무 말씀 없으시다.
- 이상범의 "역사 見聞錄·1"
칭 칭 감긴 포위망의
王政을 대지르는.
벗을 것 다 벗어버린
가비야운 그 헐벗음
죽음의 인질로 나선
칼레의 시민들아.
손에 손을 깍지 낀
묵시의 언어였나.
끈적한 점액질 사랑.
연대의 여섯 使徒
맨발의 청동 조각이
다시 살아 숨쉰다.
- 윤금초의 "對峙와 현상학 - 로댕의 칼레의 시민"
이상범의 "역사 견문록"이나 윤금초의 "대치와 현상학"은 상상력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검토의 대상이 될 것이다.
"역사 견문록"은 <그날 동학에 합류한 나의 증조 할아버지>라는 진술이 말해주듯이 동학혁명(東學革命)을 다룬 작품이다. 당시 동학군이 주둔했던 우금치를 무대로 펼쳐지는 "역사 견문록"은 100년 전 잡초 속에 묻혀 있던 사발통문을 매개로 하여 그날의 역사 현장을 오늘에 되살려 놓고 있는 것이다.
"대치와 현상학"은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청동 조각 "칼레의 시민"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잘 알다시피 칼레는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다. (이 항구도시는 한때 영국군 통치에 있었다) 칼레를 점령한 영국군은 전쟁을 선포하고, 마구잡이로 양민을 학살하는 공포의 고삐를 조여온다. 이에 맞서 목숨을 내던진 여섯 사도(使徒). 위기상황에 놓인 칼레의 무고한 양민들을 구하기 위해 시민대표 여섯명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고 총살형을 자청하여 나섰다. 아내와 딸,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모든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참히 처형당하는 "여섯 사도"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이다. 그러므로 "대치와 현상학"은 프랑스 조각가 로댕과 "영적 교감"을 나눈 끝에 이룩해낸 상상력의 소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⑤ 다양한 표현방법의 시도다.
직서적(直敍的)·직정적(直情的) 진술을 피하고 함축적이며 개성적인 표현법에 따라 감각적인 언어로 시상을 펼쳐 보일 때 신선감을 줄 수 있다.
평시조 유일사상의 울타리에 갇혀 허덕이지 말고 엇시조, 사설시조, 옴니버스시조(혼합 연형시조), 동시조 등 다양한 형식실험을 모색할 일이다.
숨차게 오르던 산길 문득 벼랑 되고
그 너머 형님 같은 道峰이 앉았구나
생각의 여울 펼치면 길은 또 있겠지만
그렇다, 끊긴 길이라도 어디든 있게 마련
허나, 가슴 속 천만 갈래 수없이 주고 닿았던 緣과 緣, 이미 모질게 끊어버린 그 무수한 실타래 같은 길은 다시 이을 수는 없겠지
오 벼랑, 아득하구나 삶의 푸른 현기증
- 박시교의 "어떤 산행"
내 예서 십년은 절어 살아도
서울은 아직도 아직도 멀고 가파른 데다.
일곱살쩍 여덟살쩍 그런 시절,
배꼽 털이 유독 굵던 개 건너 황 뭐시나 목청 크던 아무개가
괭이 걸음으로 슬금슬금 몰래 뒤로 다가와서는
느닷없이 싸잡아 번쩍 쳐들던 아픈 귀랑,
그 알불알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
<보이늬?>하고 늘어지게 묻는 말에, 얼른 <뵈유!> 해도
한참을 뜸들여 찡하니 내려주던 그 <서울귀경>은
그만큼 귓등 얼얼하고 콧마루 시큼한 눈물 속에서도
빙긋이 와 물리는 웃음 같은 게 밑가슴에 은근슬쩍 고소하더니
이날, 내 아예 여기, 처자식 몰고 와서
솥 걸고 머리 뉘는 세월 뒤로는
그러리라고, 정작 입이 아프도록 줄창 웃어보아도
웬 일로 웬 일로 노상 얼얼한 속은
그 내력 모를 혼돈과 함께 떠나질 않고,
정말로 해가 뜨고 진 건지, 거짓말 같은 나날
하루하루가 그저 뻐근하게 고달프고 황황스럽다.
서울은, 남헌티 귀 잽힌 채루나
잠깐 슬쩍 그짓말루 볼 때만 찬란헌 덴가부ㅕ
- 김상묵의 "서울 귀경"
으능잎 노란 입 오무려 볼우물 부풀리는 거리
어깨 늘어진 그림자, 예 와서 엷어지고 엷어진다.
慣行만 늦가을처럼 꽃물 드는 시월에.
하루치 날빛 또한 다 그므는 그 언저리
가로수 잎새마다 기쁨조 손뼉 친다 손뼉 친다. 한 닢 동전이 게워내는, 만물상
자판기 낯선 사내 정액인가 질질 질 녹물 흘린다. 위벽은 헐고 헐고 정강이뼈
허옇게 드러낸 도시의 소름 돋도록 차가운 우리네 헛헛한 시간, 어둠을 패대기치며
게걸음 걷는 열구름이거나
저마다 제 길 굴려 가는 무심한 저 별이거나.
부나비띠 여인 두엇 골목 어귀 서성이고
허섭쓰레기 날린 바람결 쉰 목소리 음유시인
탐욕의 허리띠 끄른 목소리 쉰 음유시인.
자본의 논리로야 벗길 수 있는, 벗길 수 있는
견고한 자존의 붕대, 정조대여 이데아여.
수챗구멍 흘러나온 몇 줄기 이마 푸른 불빛
제왕을 꿈꾸는 들고양이 허파꽈리 미어지도록 춤추는 밤의 카리스마!
창틀에 어린 물방울 청맹과니 울음 운다.
시름도 때론 힘이 되는 피돌기 세월인가.
저문 강 잠든 물결 화들짝 깨어나고
맨발의 불꽃 粒子가 물 미끄럼 타고 있다.
- 윤금초의 "춤추는 도시·1"
어젯밤 도란도란 상추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 텃밭에는 파란 싹이 돋아났네
언제쯤 예쁜 속잎이 나비만큼 자랄까.
엄마손 돌아간 데 어디 아니 물 오르랴
우물가 향나무도 장독대 밑 꽃밭에도
우리 집 장닭 꼬리도 윤이 잘잘 흐른다.
하룻밤 자고 나면 하루만큼 봄이 오고
아버지는 밭갈이에 맨발 벗고 나섰는데
이 봄에 나는 뭘 할까 캘린더도 환하다.
- 정완영의 "봄 생각"
박시교의 "어떤 산행"이나 김상묵의 "서울 귀경", 그리고 윤금초의 "춤추는 도시·1"은 지금까지 보아온 평시조의 잣대를 놓고 대입하면 좀 생소하고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산행"은 평시조+사설시조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서울 귀경"은 입심 좋고 유머러스하게 꾸며진 사설시조다. "춤추는 도시·1"은 평시조+사설시조+평시조+2장시조+엇시조+평시조로 이루어진, 이른바 옴니버스시조다. 그리고 "봄 생각"은 요즘 한창 유행을 타고 있는 동시조다.
이처럼 평시조 유일사상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뛰어 넘을 때 우리 시조문학의 새로운 지평이, 더 나아가 밝은 미래가 열릴 것으로 사료된다.
이상의 사항들은 말은 쉽지만 실전(實戰)에 들어가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개척(체화·體化)해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숙제다.
그러므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시조시인들의 "실전" 체험담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 돌의 창작 동기와 의도 / 김제현
나는 불이었다. 그리움이었다.
구름에 싸여 어둠을 떠돌다가
바람을 만나 예까지 와
한 조각 돌이 되었다.
천둥 비 바람에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아얏,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견뎌야 할 목숨이
남아 있음이라.
사람들이 와 "절망을 말하면 절망"이 되고
"소망을 말하면 또 소망"이 되지만
억년을 엎드려도 깨칠 수 없는
하늘 소리.
땅의 소리.
- "돌"
산길을 오르다가 돌부리에 채인 적이 있다. 몹시 아팠다. 그래서 그 돌을 뽑아 집으
로 가져 왔다. 그 돌과의 인연도 10여 년을 헤아리는 동안 깊어졌다. 그러나 그 돌
은 내 집에 있을 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돌은 사람을 차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있을 따름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돌에 채였다고 한다. 그것은 "나" 본위로 생각한 억
지이며 인간들의 오만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모든 물상과
생명체들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미와 가치를 인간과 동등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
문이다.
돌을 제자리에 갖다 두니, 문득 이 돌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
겨났다. 그래서 그 돌에게 묻게 된 것이 이 시의 작시 동기이다.
"돌"은 시조로 씌어진 것이다. 시조가 과거의 구태의연한 창작품이지 않고, 또한 고
식적이고 갑갑한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전통적인 시조의
면면함이 생동감 있게 되살아나기를 항상 희망하면서 작품 창작에 임한 것이
곧 "돌"이다.
돌은 길가이든지 강변이든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하
나의 돌이 다져지고 그런 상태로 우리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세월의 연륜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삶의 궁극적인 연륜이 없이는 결코 돌로 성숙될 수 없다는 데서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돌은 죽은 것이 아니
라 나와 끊임없는 교감을 갖고 생명의 소리를 자아내는 생명체인 셈이다.
"돌"은 3연으로 된 연시조의 형식으로 써 봤다. 제1연은 다음과 같다.
나는 불이었다. 그리움이었다.
구름에 싸여 어둠을 떠돌다가
바람을 만나 예까지 와
한 조각 돌이 되었다.
제1연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심상은 생명의 근원성이다. 시적 자아를 먼저 열정이 넘
치고 그리움의 정서가 듬뿍 배어 있는 생명체로 그리면서 돌을 의인화했다. 하나의
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리고자 했다. 무릇 최초의 상태는 혼돈과 뜨거움이 자
리잡기 마련이다. 천지창조의 순간에도 그러했거니와, 하나의 생명이 잉태될 때에도
반드시 혼돈과 창조의 뒤섞임이 자리잡게 마련이니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
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 창조의 근본적 물질로서 사대(四大)라는 용어가 있으니
사대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이다. 이러한 구성 요소가 돌로 엉겨붙는 과
정을 말하고자 했다.
제2연은 다음과 같다.
천둥 비 바람에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아얏,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견뎌야 할 목숨이
남아 있음이라.
제2연은 돌 자체가 견디고 있는 현재적인 삶의 현상을 말하고자 했다. 하나의 돌로
삶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농밀하게 형상화되었다. 돌을 돌이게끔 하는 돌 자체의 내
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진정성과 고초를 주는 간고성에 있
다. 하나의 돌에 깃들어 있는 하늘의 천둥과 비바람의 자취가 결국 단단한 하나의 돌
을 굳세게 만든다. 그러한 외부적 질곡에도 불구하고 돌은 의연하게 자신의 현재적
삶을 인내하며 기다린다.
제3연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와 "절망을 말하면 절망"이 되고
"소망을 말하면 또 소망"이 되지만
억년을 엎드려도 깨칠 수 없는
하늘 소리.
땅의 소리.
제3연은 돌이 갖고 있는 구도적 자세와 생명에의 자세를 노래하고자 했다. 절망에
서 소망까지, 그리고 하늘에서 땅까지 몸 속에 옹송그려 담고자 하는 돌의 생명에 대
한 구도적 자세를 작품에 밀도 높게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수만 억겁의 세월 속에
서 삶의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는 돌의 구도적 자세는 인간 자신들이 외경스럽게 생각
해야 한다고 보았다.
"돌"은 돌이 가지는 생명의 근원성, 돌이 견디고 있는 현재적 삶의 현장성, 돌이 본
연적으로 갖추고 있는 생명의 구도적 자세 등을 차례대로 노래한 작품이다. 돌은 이
제 우리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돌과 사람이 서로 상호 교감을 일으키면서 끊임
없이 내밀한 삶의 연속성을 보장한다고 하겠다.
"돌"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약동성을 그리면서도 시조를 택해서 노래한 까닭은 시조
에서 노래한 돌의 전통을 이어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돌을 노래하면서 돌을 현재적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 완결의 미학을 추구한다 / 박기섭
강은 세속도시의 종말 처리장을 휘감아 돌고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가는 먼 길이
길게 휜, 수로를 따라
다급하게 풀린다
용케 추슬러 낸 몇 소절 노래도 삭아
더는 흐르지 못할 끈적한 욕망의 진창
또 어떤 격렬함으로 강은 저리 부푸는가
잡풀들의 아랫도리가 툭, 툭 부러지면서
익명의 새떼들만 취수탑 근처를 날고
마침내 뻘물 아래 가득히
혓바닥을 묻는, 강
- "그리운, 강"
시조는 맺고 푸는 시가 형식이다. 맺되 옹이를 지우고, 풀되 굽이치는 여울을 둔다.
시조의 생명은 긴장과 탄력, 절제와 함축을 바탕으로 완결의 미학을 추구하는 데 있
다. 그러면서 그 가락의 운용은 자연스러움을 요체로 한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지
만, 나는 시조를 쓰면서 그것이 대상에 대한 설명이나 특정 사실의 묘사 또는 전달
에 그치는 일 따위를 무엇보다 경계한다. 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상 감정을 개개
인의 정서적 반응을 거쳐 표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시조가 정형시라고 해서 흔히 닫힌 장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
식의 오류는 시조의 정형을 자유시의 자유 개념에 상응하는 폐쇄 구조로 보는 데서
말미암는다. 자유시라고 해서 무한정의 자유를 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시를 포
함한 모든 예술 행위는 본질적으로 구속의 속성을 갖기 마련이니까. 궁극의 정형은
절대 자유와 통한다. 구속 속에서 추구하는 정신의 극점에서 한 형식이 완성된다. 그
렇다고 한다면 정형이야말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예술적, 정서적 차원에
서 가장 진화된 언술 형식이 아니겠는가.
하나의 정형에는 그 사회의 오랜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습속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따라서 시조의 형식 논리는 우리말과 우리 정서가 어우러져 빚어낸 사유의 총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조 3장의 유형화된 미의식에 절대적인 신뢰
를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시조 형식의 운용에 창조적 인식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낱 전통의 단순변조나 답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시조를 쓰
면서 살펴 헤아리는 바다.
안이한 발상으로는 의식의 심층에 닿기 어렵거니와, 단조로운 상의 전개는 자칫 시
의 무게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경험 사실과 상상력의 감각적 육화를 이루는 데서
우리는 시 쓰기의 미묘한 성취감을 맛본다. 시가 이미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면, 이 말은 곧 자연과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의 이치를 함의한다고 할 수 있
다.
"그리운, 강"을 쓸 무렵 나는 의식적으로 자연 파괴나 환경 오염이 주는 생태계 위
기 문제에 매달렸다. 까닭인즉 이 방면에 대한 시조단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희박한
데다, 또 그런 현실이 내게 어줍잖은 정서적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태주의적 세계인식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이 작품도 그런 인식
의 토대 위에서 씌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우선 이 작품의 제목이 "그리운 강"이 아니
고 "그리운, 강"인 데서 어떤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부러 쉼표를 찍은 것은 강 이미
지를 강조함과 동시에 그리움쪽의 의미를 강하게 부여잡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의미
의 집중과 울림을 고려한 포석인 셈이다.
세속도시의 하수며 오·폐수를 정화하는 "종말 처리장을 휘감아 도는 강"과 "사람
이 살지 않는 마을로 가는 먼 길"은 왜곡되고 변질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면에 드러나는 외면적 정황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의 무대는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본 여러 풍경들을 뭉뚱그려 제시한다. "길게
휜, 수로를 따라/ 다급하게 풀린다"는 구절은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속절없이
내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길게 휜 수로를 따라"의 "길게 휜"은 앞뒤에
놓인 "먼 길"과 "수로"의 의미를 견인하고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용케 추슬러 낸 몇 소절 노래"는 절박하게 밀어닥치는 오염 현실에 대한 질정의 의
지를 내포한다. 그러나 그 "몇 소절 노래"는 이내 삭아 "더는 흐르지 못할 끈적한 욕
망의 진창"에 갇히고 만다. 이것이 강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숨길 수 없는 실상이다.
"어떤 격렬함으로" 부푸는 강의 심상에는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기대감이나 희망같
은 게 묻혀 있다. 기실 이 구절은 시 문맥의 일관된 흐름에 변화를 주고, 그 틈새로
긴장의 입김을 강하게 불어넣기도 한다.
셋째 수에서는 첫째 수의 "종말처리장"에 상응하는 "취수탑 근처" 풍경이 배경을 이
룬다. "종말처리장"과 "취수탑", 정서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두 시설물이 함께 등장함
으로써 상·하수의 이미지가 뒤섞이는 중층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잡풀들의 아랫도
리가 툭, 툭 부러"진다는 것은 생태계 파괴의 단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로서,
여기에는 저항할 수 없는 낭패감이 내재해 있다. "취수탑 근처"를 나는 "익명의 세떼
들"은 지상에 내려앉지 못하고 부유하는, 다시 말해 오염 현실에 떠밀려 다니는 존재
들을 대변한다.
"마침내 뻘물 아래 아득히/ 혀바닥을 묻는, 강 -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은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민감한 부분의 하나인 "혓바닥"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심층 부분까지 훼
손된 치명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한다. "혓바닥을 묻는, 강"에 나오는 쉼
표는 제목인 "그리운. 강"과 의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명사형으로 끝나는 마지막 구
에 강조와 여운의 효과를 주기 위한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시는 내 정신의 재다. 나의 시 쓰기는 꺼질 줄 번연히 알면서도 연신 불을 지피고,
또 그 불씨를 끊임없이 쑤석대는 일인지도 모른다. 집착을 넘어서는 집착, 일탈을 끌
어안는 일탈 - 그런 부조화의 조화 속에 시조 창작의 좁고 가파른 길이 열려 있다.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시조의 실험성을 일깨우는 데 가진 힘을 소진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편편이 낯설고, 비딱하고, 그러면서 뜨거운 각성의 피가 흐르는 그런 시조
를 쓰고 싶다. 실험은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끊임없는 변주와 변용을 추구하는 것.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의식의 내해 그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고, 가늠할 수 없는 인식
의 고도를 줄달음쳐 오르고 싶다. 그리하여 형식과 내용의, 외연과 내포의, 자연과
인위의, 영원과 찰나의, 몸과 넋의 경계를 분주히 넘나들며 그 극점을 향해 나아가
고 싶다. 모든 경계에서 첨단의 길이 열린다. 나는 나의 시 쓰기가 그런 인식의 경계
에서 언어의 상감 세계를 온전히 구현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환원염의 불 그늘 속에
사위어 가는, 오오 저 소슬한 서정의 흙빛!
● "해남에서 온 편지"와 "한국의 가을" / 이지엽
<1>
(중략) 학생들을 데리고 강진 곳곳을 들러 해남 송호리 해수욕장을 지나 우리 나라
에서는 노을이 가장 빼어나다는 사구미 해안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학과 학생 중
에 수녀가 있었는데 이 학생이 조심스레 다가와서 집이 이 근처인데 들러가면 어떻겠
냐는 것이었다. 지나는 길목이어서 그 수녀의 집을 들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정작 집
에 들어서고 보니 가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노모 한 분만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나
반갑게 맞이하는지…. 오래된 한옥 건물이었고 뜰에는 나무와 꽃들이 빼곡하게 마치
하나의 숲을 이루듯이 무성하였는데 푸릇한 기운과 화사한 형형의 색깔들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토방에 걸터앉아 넋을 잃고 할 말도 잊은 채 물끄러미 풍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밭으로 이어지는 곳에도 진달래와 철쭉꽃들
이 만발했고 그 길을 연하여 밭이 끝나는 구릉까지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그 길을
우리는 걸어가며 "오메메 이것 쪼간 봐바라" 서로 보라고 야단이며 모두가 들뜬 아이
들처럼 신이 나 웃음꽃을 피웠다. 밭이 끝나는 구릉에서 우리는 또 한번 그 절묘한
풍광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곳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는 쪽빛 그 자체였다. 시린
그 물살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출렁거렸다. 기어코 마다해도 쌀과 깨 등
속을 노모는 주렁주렁 담아 챙겨 주었고, 거기에다 아직 열매가 열지 않은 남천나무
몇 그루와 동백나무, 상사초를 싣고 우리는 일정 때문에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
지만 거기에서 보낸 시간들은 가슴 속에 한 동안 남아 있었다. 전해 들은 얘기로는
수녀의 아버지 되는 분이 꽃과 나무를 너무도 좋아해서 집 안팎에 그렇게 갖가지 식
물을 심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일만 해도 감, 사과, 귤은 물론 약간의 키위까지 재배
하고 있었다. 쪽빛 바다와 지천으로 널린 꽃들과 주글주글한 노모와의 만남…. 그 감
흥이 아물아물 잊혀져갈 무렵 집에 와 심은 상사초가 죽어간다 싶더니 어느 날 저녁
금빛 꽃대를 가늘하게 밀어 올리며 피어났다. 그 눈부심이라니. 나를 달뜨게 한 그것
도 잠시, 망각은 아주 빠른 것이어서 나는 다시 일상에 쫓기면서 잡지와 작품과 강의
에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다음 해 화창한 봄날이었다. 출근하여 연구실
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제 푸릇푸릇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교정을 유리창으
로 내려다보면서 어느 새 이렇게 환한 봄이 이렇게 곁에 와 있었구나 생각하고 있는
데 좀체 연구실에는 나타나지 않던 수녀가 밝게 미소 지으며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
러더니 컵에 포도즙을 한 잔 따라서는 내게 건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무이가요. 오늘 아침에 전화를 했는디, 꽃이 활짝 피어서 너무 보기 좋다고 안하
요…. 한번 댕겨 가라는 것 같은디…."
수녀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연구실 밖으로 이내 나가버렸다. 나는 한 동안 생각
이 정지된 듯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랴. 집안은 물론 텃밭까
지 피어있는 꽃들을 혼자 보고 있는 노모의 주름진 얼굴, 그 꽃들의 각양각색 아름다
운 모습을 딸에게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으면 전화를 걸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
자 싸늘한 전율과 안타까움이 머리를 관통하여 발끝까지 싸하니 훑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 결국 "해남에서 온 편지"를 쓰게 된
동인이 되었지만 정작 작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또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르
게 되었다. 수녀가 졸업을 하고 졸업식 날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노모와 기
념촬영을 하고 수녀가 서울의 어느 복지원으로 옮겨간 후 다음 해 봄날 나는 또 망연
히 창가에 서서 오는 봄날의 기운을 느끼면서 노모의 심정이 되어 딸에게 보내는 편
지 형식을 빌어 "해남에서 온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깐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
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
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
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란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
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
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해남에서 온 편지"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서사를 가미한 사실
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미성을 가미한 극적 반전이었다. 전자를 위해서 남도 사투리
의 질박한 부분과 사투리로써 정말 묘미 있는 표현들(그러냐 안, 전디다, 끈하다 등)
을 최대한 살려 쓰고자 노력했다. 후자는 구성면인데 시대상황의 재구성(IMF와 오래
비의 오지 않음, 종신서원의 비극적 상황)과 종장의 극적 묘미에 심사숙고하였다. 발
표되자 지우인 한양대 정민 교수는 붓글씨로 전문과 함께 그 애틋함을 보태어 적어
보내주었고, 서울대 장경렬 교수는 세미나에서 하이라이트로 이 작품을 올려 복사꽃
처럼 환한 봄날의 시조 시대가 오고 있음을 극찬해주었다. 어줍잖게 수상까지 하게
되었으니 나는 그 노모에게 미안하고 김활란 수녀에게도 빚을 진 셈이다. 수상식장에
서 홍성란 시인이 이 작품을 낮은 톤의 차분한 음성으로 낭송을
구성지게 하여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2>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초가을 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포스코 신문이
었다. 원고청탁 전화인데 추석에 맞추어 나갈 시 한 편을 보내달라는 거였다. 조건
이 붙었는데 가급적이면 시는 여섯 줄 이내였으면 하고, 한가위에 어울리는 시면 좋
겠다는 거였다. 나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두 가지 조건이 까다로웠을 뿐만 아니라 그
만한 시로는 익히 "옛 마을 지나며"와 "추석 무렵"이라는 명편의 시가 있기 때문에
그만한 작품이 아니면 같은 소재로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
리 나라 최고의 원고료를 주는 곳인데 돈 욕심 반(?) 글 욕심 반으로 하는 데까지
해 보마고 반승락을 하고 말았다, 정말 이에 걸맞는 시 한편을 써 보리라 작정하고
시간을 틈틈이 쪼개어 한 줄씩이라도 써야겠다는 의무감에서 매일 출·퇴근길에 한
대목씩 생각하게 되었다. 맨 처음 가을과 연계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머니였고
좀 선이 굵지만 크게 생각하여 첫 구절을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라
고 잡았다. 이어 둘째 줄에는 추석의 보름달과 대표적 놀이인 강강술래를 연결하
여 "가응가응 수월래 보름달은 떠오르고"로 하였으며 셋째 줄은 "단풍든 마음들 따
라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로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보다는 시조가 적합하리라 생각
했고 근 스무날 가까이 지나 다음과 같이 두 수의 시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가응가응 수월래에 보름달은 떠오르고
단풍든 마음들 따라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
…니가 애썼다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랑들이 옹기종기 모닥불 쬡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 년, 소슬 바람이 지나갑니다.
둘째 수 초장 그러니까 넷째 행은 어머니가 객지의 아들에게 보내는 위로이고, "무
릎 꺾인 사랑"은 실직이나 실연 등 세상사의 고단함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고려해 넣
게 되었다. 마지막 줄은 꽤나 고심을 했는데 아주 작은 것을 통해 아주 큰 것을 보
는 이를테면 시적 관찰 - 거시적 상상력을 가져오는 수법을 활용해 보기로 작정하였
다. 사실 한 편의 시에 대한 감동은 미세하고 가늘한 것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떨림
이 기초가 된다. 추상과 관념은 공허한 것이며 어떠한 시적 감동도 가져오지 못한
다. 대표적 가을의 한 형태를 붉은 감 한 톨에서 우리는 충분히 담길 수도 있는 것이
리라. 제목은 사실적 정황이 밑그림을 그리고 있으므로 "한국의 가을"로 잡았다. 웬
만하다 싶어 그냥 보내버릴까 하다, 시 창작 시간에 이 작품을 칠판에 적고 그 동안
의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여간 신기해하는 게 아니었다. 교수가 자신의 작
품을 소개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더구나 처음의 구성 단계부터 한 문장 한 글자씩 고
쳐진 과정을 설명하니 피부적으로 와 닿았던 것이리라. 그러면서 표현상 문제가 되
는 부분을 지적해보라고 했더니 "모닥불 쬡니다"라는 부분이 시기상 추석과 맞지 않
느냐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강변을 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어 다시 초고
의 작품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시작하였다.
① 조금 더 탄력과 긴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② 연결을 좀더 자연스럽게 하도록 할 것.
이 두 가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위해 둘째 줄과 넷
째 줄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둘째 줄은 춤추는 동작과 달 떠오르는 장면을 따로따로
기술하는 형태인데 이의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응가응 수월래에"를 춤추는 동작
이 아닌 달뜨는 장면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서 보름달을 앞에 배치하
여 "보름달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로 하였다. 묘미는 더 살아났으나 걸음이
조금 불안전하여 "보름달은"을 "강물 끌고 달은"으로 고쳐놓고 보니 더 이미지가 선
명해지고 걸음도 더 안정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마음들 따라"도 "마음 하나 둘"로
바꾸고 "어머니"의 중복이 마음에 걸려 "단풍이 모이는 곳"인 동시에 고향을 찾아가
는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을 상징하는 단어를 찾아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를 "마당
귀로 쌓입니다"로 하였다. "모닥불 쬡니다"는 학생들의 지적도 지적이지만 결정적으
로 다음 행과의 연결도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어 앞, 뒤 각 행이 연결되도록 다시 말
해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과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몇 날을 고민한 끝에 "물소리에 귀 맑힙니다"로 고치게 되었다. 맑혀진 귀에 감
나무 가지 끝의 바람소리가 어우러지니 앞뒤의 조응이 일치를 본 듯하여 기분이 좋았
다. 감이 왜 "알"이 아니고 "톨"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공격도 있긴 했지만 이 점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톨"을 "알"로 바꾸어 놓고 율독해
보면 붉은 감 하나의 외로운 이미지나 느낌이 반감되어 버리므로 "톨"로 해야 할 마
땅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의견이다. 결국 여섯
줄의 이 시는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다음과 같이 완성되었다.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강물 끌고 달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
단풍 든 마음 하나 둘 마당귀로 쌓입니다
…아가 힘들지야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랑들이 물소리에 귀 맑힙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 년, 푸른 바람이 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