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이색 명소 / '만리재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상젤리제
묵묵히 세월을 버텨낸 깊이 있는 골목
독특한 노천카페가 즐비한 ‘핫 플레이스’
‘만리재로’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역부터 중구 서울역 서부까지 이어지는 길이 2.2km의 왕복 6차선 도로명이다.
‘만리재로’ 이름의 유래는 조선 세종 때의 문신 최만리(崔萬里)라는 학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서 ‘만리’라로 불렸다고 한다.
만리재로는 오랫동안 참으로 고요한 골목이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할 때가 많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품은 이발소, 서울의 유일한 영화 세트장이었다가 재래시장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만리시장 등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공간이 이곳을 지켜내고 있다.
만리재로는 서울로7017과 함께 핫 플레이스로 거듭난 곳이다.
서울로7017이 생기면서 걷고 싶은 보행길로 재탄생한 것이다.
만리재로의 매력은 옛 모습을 간직한 가게와 트렌디한 가게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만리동을 지켜온 맛집과 최근 오픈한 가게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좁은 도로를 사이로 한쪽은 맛집과 카페, 한쪽은 푸릇한 산책로가 있으며 실외 영업이 가능해
거의 대부분의 맛집이 가게 앞 테이블과 의자를 비치해두고 오가는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멋진 외관의 맛집과 카페,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손님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이곳의 풍경이다.
만리시장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세월의 흔적을 끌어안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시장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만리재로 부근에는 둘러볼 만한 곳도 많다.
옛 모습을 간직한 만리시장, 100년의 역사를 지닌 성우이용원, 약현성당, 염천교 수제화 거리부터 산책하기 좋은 손기정 체육공원까지 근처에 있다.
만리재로의 명물 ‘성우이용원’은 1927년경 개업해 3대째 가업을 이어 오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여전히 전통 방식의 이용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서민들의 민속생활사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높은 곳으로 판단하고,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같은 장소에서 86년 동안 운영된 이발소로 공덕동 일대의 시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보존 필요성을 밝히며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의 ‘성우 이용원’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곁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2019년에 태풍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서울미래유산의 멸실과 훼손을 막고자 서울시의 지원 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비록 예전 건물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없어졌지만
100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3대째 가업을 유지하면서 굳굳히 만리재로를 지키고 있다.
성우이용원이 있는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만리시장 또한 오래된 서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살기에 바빠서 잊고 지낸 학창시절 친구를 마주친 것처럼 정겨움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곳이다.
만리시장은 과거, 영화 세트장이 있던 자리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신상옥 감독이 안양에 새로운 세트장을 짓기 전까지 서울의 유일한 세트장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잘 나갔던 배우들이 만리재로를 수없이 오고 갔다고 한다.
만리재로의 또 다른 역사가 될 새로운 가게도 빼놓을 수가 없다.
다부진 석조건물이 눈에 띄는 베리 스트리트 키친(VERY STREET KITCHEN)이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100년 전에는 병원이었고, 한 때는 출판사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 또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만리재로 근처 명소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수제화 전문 매장이 즐비한데, 간판에서부터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고집스럽게 한길로만 걸어온 상인들의 외길 정신이 녹아나는 곳이다.
서울역 탄생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한 염천교 구두거리는 1970~1980년대 제화산업을 중심으로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가 최근 레트로 붐을 타고 전성기 못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복고풍 간판이 이어지는 거리에는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조용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약현성당과 손기정 체육공원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딕식 성당 건물로 성당 근처를 산책하면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손기정 체육공원 또한 운동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분위기와 반대로 공원의 산책로는 호젓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 좋다.
만리재로의 끝은 자연스레 서울로7017과 연결된다.
서울로7017은 만리재로와 퇴계로를 연결하는 고가도로였는데 이제 사람이 걷는 길이 됐다.
1970년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차가 이 고가도로 위를 지났는데 만리동, 서계동 일대의 봉제 공장에서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길이다.
만리재로를 걷는다는 건 세월이 만들어낸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 같다.
만리재로는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들과 현대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깊고 진한 멋을 풍기는 만리재로를 걸으며 잊고 지냈던 우리의 ‘역사’와 ‘추억’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런지?
만리재로 부근 가볼만한 곳
만리시장
서울 용산구 만리고개에 위치한 3층 건물의 종합상가식 시장이다. 1968년 개장한 50년 역사의 전통시장이다.
1970년대 초기에는 노점상이 많았으나 차츰 상가 형태를 만들어 가면서 오늘날의 시장 형태를 갖추었다.
당시 만리동 시장은 규모가 꽤 커서 타 지역 사람들도 자주 찾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현재는 시간이 멈춘 듯한 옛 재래시장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2016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위치 : 서울 용산구 서계동 260-1
손기정 체육공원
옛 양정 중·고등학교를 이전 후 1987년에 만들었다.
양정 중·고등학교는 손기정 선수의 출신학교이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와
그때 금메달과 함께 받아온 월계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위치 : 서울 중구 손기정로 101
약현성당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고딕 성당으로 1892년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가 설계·감독했다.
길이 약 32m, 너비 12m의 십자형 평면 구조이며 비교적 소규모의 성당이다.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로 된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되었다.
1891년 박해가 끝나고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세웠다.
천주교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다는 장소의 역사성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건물은 1998년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복원 공사를 거쳐 완성된 것이다.
*위치 : 서울 중구 청파로 447-1
마포 전골목
만리재로 끝 공덕역 부근에 위치한 마포 전골목이다.
만리재로 끝, 공덕역 부근 공덕시장에는 전집들이 나란히 위치해있는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전과 튀김 종류가 다양하다.
많은 전집 중 어디를 들어가도 맛있는 전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위치 : 서울 마포구 만리재로 19 공덕시장
베리스트릿키친
만리재로를 걷다 보면 예쁜 벽돌 건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전 세계 길거리 음식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판매하는 카페다.
1910년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내부 인테리어만 리모델링해 옛 정취와 모던한 감성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위치 : 서울 중구 만리재로 205
‘만리재로’ 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상젤리제라고도 불리운다.
*방문일 : 2023년 9월27일(수)
첫댓글 용타기님글을 주욱읽다보니
만리재로길을 갖다온 느낌듭니다.
시장에서파는 음식중.전은 맛있죠.바로부쳐서주잖아요.푸짐하게.
이용원도 삼대째라니.
내부도 많이달라지지않았을까.생각해봅니다.
요즘.사람들
원하는게 달라지다보니. .
안양에도 비슷한길있답니다.
안양.중앙시장과.그옆골목이요.순댓국.전집. .
공덕시장 전 골목은 낮시간에 방문했는데 추석 연휴 전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만리재로,
서울에 들릴 기회가 있으면
함 방문해 보세요.
^_^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언제 날 잡아서 번개 함 하지요. 마치고나서 서울역 뒤쪽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맥주 한 잔! ㅎ
^_^
만리재가 조선시대 초기 학자 최만리에서 유래되었군요.
최만리.
그의 학식은 뛰어났으나
한문을 숭배하고
우리 한글을 아주 경멸하고 업수이 여긴 것으로 유명하죠.
최만리 같은 학자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지금 우리 한글은 빛을 보지 못했겠죠.
국어학에서는 최만리를 아주 적대시하죠.
훈민정음 반포를 목숨 걸고 반대한 한자숭배자였으니까요.
그의 이름을 딴 거린
지난 날의 모습을 참 많이 지니고 있군요.
저곳을 거닐며
과거와 현재를 함께 느끼고 싶 어요.
용타기방장님.
오늘도 훌륭한 답사기.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왜 최만리의 이름을 딴 지명이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ㅎ
제 포스팅에 언제나 좋은 평가주심에 감사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