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라 보엠은 토스카와 나비부인과 더불어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우리에게 가장 잘알려진 푸치니의 대표작인 라 보엠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대의 찬손위에와 내 이름은 미미의 선율을 기억하신분들도 적지 않을것이다.
Inessa Galante
철의 장막에 숨겨져 있던 영롱한 진주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
라트비아의 소프라노 가수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그녀는 구 소련 라트비아(Latvia) 공화국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콜로라투라 음성을 지닌 여인이었고, 아버지는 극적인 베이스 가수였다. 부모가 모두 노래를 잘했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 그녀의 재능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따라서 그녀의 진로는 자연스럽게 가수로 결정되었다. 1977년에 고향 리가에서 음악원에 입학했고, 학생 때부터 가수 경력을 쌓게 되었던 그녀는 곧 리가 오페라 하우스나 교회, 또는 동부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에서 자주 활동을 했던 그녀는 성 페테르스부르그의 키로프 오페라에 정규 가수로 발탁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뛰어난 재능은 보다 화려한 무대가 있는 서방세계로는 진출할 수 없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안타까워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비운의 현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연히 갈란테는 라트비아 앙상블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에 공식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서구인들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녀가 누리는 오늘의 영광은 그때의 우연한 외유가 초석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갈란테의 노래를 예사롭지 않게 들었던 사람은 많았다.
특히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지휘자인 예후디 메뉴힌 (Yehudi Menuhin)과 3대 테너의 지휘자로 널리 알려진 주빈 메타(Zubin Mehta)는 그녀의 빼어난 재능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녀를 당장 서방 세계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즉각 성취되지 않았다. 그 때의 상황에 대해 갈란테는 이렇게 술회한다. "그 당시 두 진영의 벽은 너무 높았어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현실, 어디 갈란테한테만 일어났었는가! 어쨌든 당시 정치적 상황은 그녀의 화려한 데뷔를 늦추는 데 일조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폭발적인 반향 '데뷔'
그러나 1991년 이후에 숨겨진 진주는 붕괴된 철의 장막을 걷어내고 힘차게 밖으로 나왔다. 원래 그녀의 라트비아 이름은 이네세 갈란데 (Inese Galante) 였는데, 독일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유럽무대에서의 활약을 기대했던 그녀는 경력을 쌓는데 보다 친숙하고 유리할 것 같아 첫 이름을 이네사(Inessa)로 바꿨다. 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여가수 중의 한사람으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갈란테란 이름이 최초로 서양 음악계에 뚜렷하게 각인된 것은 데뷔(Debut) 라는 음반 때문이었다.
글자 뜻 그대로 그녀의 첫 음반이었던 데뷔는 캠피온(Campion) 이라는 영국 레코드사에서 출반한 것으로 인기 잇는 오페라 아리아와 참신한 성악 레퍼토리를 섞어 구성한 독집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재킷을 입고 나온 이 음반이 서방 음악계에 갑자기 돌풍을 일으켰다. 그 돌풍은 영국,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극동지방에까지 세차게 몰아쳤다. 예기치 못한 갈란테의 높은 인기는 세계 각국의 음반 판매고를 통해 바로 입증되었다. 1996년 4월 타워 레코드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던 명가수들의 막강한 레퍼토리들, 즉 바리톨리의 초상, 마리아 칼라스의 라 디비나, 제니퍼 라모어의 어디로 날아갈까 등을 제치고 갈란테의 데뷔 음반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라트비아 돌풍이 이렇게 강력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데뷔는 1999년 네덜란드에서도 10만장 이상이 팔리면서 마침내 음반 상 최고의 영예인 플래티넘 디스크 (Platinum Disc) 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음반의 인기와 함께 비평가들의 찬사도 쇄도했다. 팡파르 지의 헨리 포겔은 그녀의 첫 음반을 듣고 느낀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이 음반을 듣고 느낀 흥분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독집음반을 명함으로 내밀며,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소개해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 또 이런 찬사도 당도했다. "1990년대 후반! 세상은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는 소프라노가 없어서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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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Inessa Galante - Si, Mi Chiamano Mimi (Puccini - La Bo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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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유념 하시구 고운 저녁시간 되세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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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을 울리는 푸치니 와 함께 대작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전율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