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목요일, 목요걷기로 찾아간 곳은 파주에 있는 공순영릉, 이른바 파주삼릉과 근처 중남미 문화유적을 30여 년이나 수집 전시한 중남미문화원 내 중남미박물관이었습니다. 파주삼릉에는 새로 1.9km의 산책길이 조성, 궁금한 차에 찾아갔고, 길이 워낙 짧아 가까운 거리의 중남미박물관을 추가한 것입니다. 원래 벽제에 있는 필리핀참전기념비에서 성령대군묘-최영장군묘-고양향교-중남미박물관-벽제관지-선유량길(중국사신의 길)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뜨거운 날 햇볕에 노출된 곳이 많아 걷기에 불편한 곳, 카풀을 이용 파주삼릉과 중남미박물관만 사전답사 형식으로 먼저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공,순,영릉이 있는 모인 이곳을 편의상 파주삼릉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은 서오릉, 서삼릉, 파주장릉까지 합치면 무려 12기의 왕릉이 모인 곳, 서울 동북쪽 9개의 왕릉이 모여있는 동구릉을 압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파주삼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 세조와 인수대비 한씨, 그리고 세조의 핵심측근으로 압구정을 지은 한명회를 알아야 합니다. 서오릉과 파주삼릉만 잘 이해해도 조선전기 역사의 씨줄 날줄이 다 엮여져 나옵니다.
새로 열린 파주삼릉 산책길 1.9km. 이 길이 궁금해서 갔는데 봄 가을에 가면 환상이네요~~
낙화가 자주 찾는 봉산-서오릉 구간의 다른 이름은 ‘궁중여인잔혹사의 현장을 찾아서’입니다. 서오릉에는 인현왕후, 장희빈,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 등 조선 역사와 관련 논란이 많은 여성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인수대비 한씨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세종 사후 문종이 즉위하고 2년만에 죽고 나이어린 단종이 즉위, 수양대군(세조)은 왕권강화를 빌미로 2년만에 계유정난을 일으킵니다. 세조의 계유정난의 핵심은 며느리 인수대비 한씨와 칠삭둥이 한명회입니다. 계유정난을 통해 왕권을 잡은 세조, 큰아들은 세자가 되고 인수대비 한씨는 세자빈이 되어 조선의 국모를 꿈꾸지만 세조의 큰아들은 2남1녀를 남기고 스무살에 죽어 서오릉의 시작, 경릉(敬陵)에 묻힙니다. 아버지와 남편의 연이은 사망으로 기약없는 미래, 시동생인 예종의 즉위로 모든 것을 잃고 고립무원의 처지인데 계유정난의 주역인 한명회와 밀약을 맺고 자신의 둘째아들을 성종으로 만들고 본인은 왕비를 거치지 않은 인수대비에 오르는 오뚜기 인생을 보여줍니다.
시동생인 예종(1450-1469, 재위 1468-1469)은 한명회 셋째딸과 결혼했지만 정순왕후는 16살 어린나이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통으로 사망합니다. 만약 왕자를 생산(?)한 정순왕후가 오래 살았다면 인수대비 한씨와 한명회 간 밀약은 성립할 수 없었겠고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재미난 사실은 정순왕후가 16살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통으로 죽었을 때 예종의 나이는 12살, 생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가능한 나이인지 궁금합니다. 그래서인지 예종은 신체건강한 19살, 재위 13개월만에 급사합니다. 급사를 두고 말이 많았죠. 색을 밝히다가 죽었다는 얘기는 호사가들의 말, 아무래도 인수대비 한씨와 한명회 간 동맹과 밀약에 따라 끈 떨어진 예종보다 인수대비 한씨의 둘째아들 질산군(자을신군)을 성종으로 즉위시키기 위한 음모라는 것이 정설이고, 인수대비 한씨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한명회의 딸을 며느리도 들이고, 성종의 원비로 한명회의 넷째딸이 공혜왕후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공혜왕후 또한 후사없이 19살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공혜왕후 사후 한명회는 사위인 성종의 눈 밖에 나고, 호화스러운 압구정 문제로 한명회는 권력을 잃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지만, 연산군이 폐비윤씨의 일을 알고 죽은 한명회를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의 명을 내립니다.
* 한재림 감독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2013년 개봉)은 관상쟁이를 통해 세조의 계유정난과 한명회의 역할을 그린 영화, 영화의 모티브는 한명회가 만년에 몰락하고 부관참시 당할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능 입구 홍살문에서 참도, 정자각, 왕릉은 일직선이 되어야 하는데 참도가 꺽여 조성된 공릉,
인터넷에선 공릉이 참도가 꺽인 유일한 곳이라고 하는데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 영월 단종을 모신 장릉도 참도가 꺽여 있음.
앞서 역사의 가정이 없다지만, 세조의 계유정난이 없었다면, 인수대비 한씨의 야망도, 칠삭둥이로 개성 경덕궁 궁지기였던 한명회의 권력욕도 없었을 것입니다. 계유정난으로 단종과 김종서, 사육신 등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희생시킨 그 죄가 인수대비의 남편과 한명회의 두 딸에 미친 것이라는 얘기는 조선 전반기 내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래서인지 파주삼릉 양지바른 곳에 있는 공릉과 순릉은 아무 말이 없지만 16살, 19살 꽃다운 나이에 죽은 그들의 능은 언제 보아도 쓸쓸합니다.
또 다른 능인 영릉(永陵)은 영조의 큰아들로 10살에 죽어 추존왕인 진종과 추존왕비인 효순왕후를 모신 쌍릉입니다. 이곳도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윽한 곳, 영조는 무수리 출신 어머니 숙빈 최씨로 신분상의 콤플렉스가 있었죠. 큰아들은 10살에 죽어 영빈이씨 몸에서 난 둘째 사도세자에게 기대를 걸었는데, 아버지 콤플렉스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정조의 혈통이 문제, 일찍 죽은 큰아들의 양자로 신분을 세탁, 왕위를 잇게 하고 사도세자를 건너뛰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정조는 죽은 진종의 아들로 왕위에 오르고 이 때문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는 왕비도 대비도 되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 되는 것이죠.
언제 와도 쓸쓸한 곳, 파주삼릉을 나와 근처 중남미박물관으로 갑니다.
==> 2부에서
이곳은 2018년 6월 18일 구일신님 진행으로 파주삼릉과 파주 장릉(인조의 능)을 묶어서 다여 온 곳. 이번에는 산책로가 있어서...
능 입구에서 간식을... 사는동안님은 햄버거를~~
파주삼릉 재실은 규모도 크고 보전도 잘 되어 있는데 사실 97년 전 까지 바로 옆 하니랜드(공릉유원지)에서 재실 앞을 통과, 통일로로 이어지는 관통도로가 있었는데 왕릉 보호차원에서 관통도로가 폐쇄됐죠.
낙화는 파주삼릉을 찾을때면 예전 이 길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때는 문화재 보호의식이 거의 없던 때라...
재실 툇마루에서... 곰이네님 수화님 랄라님
쓸쓸한 왕릉에 비해 재실은 규모도 크고 보전도 잘 된 곳
왕비의 후예들?
공릉의 참도가 왜 꺽여져 있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공릉(한명회 세째 딸) 조성 이후 몇 년 안돼 순릉(한명회 네째 딸)이 조성됐는데, 이 때도 바로 잡을 수 있었건만... 권력은 부녀지간도 외면 하는 것...
무슨 재미난 얘기들을 나누시는지...
2019년 새로 개방된 산책길
공릉 옆으로 새로 난 산책길, 하니랜드 방향으로 가다가 정상(?)에서 다시 내려오는 1.9km 숲길
넓직한 임도, 걷기 편안한 길.,.
전생의 인연을 찾은 길....
한명회의 넷째딸 공혜왕후를 모신 순릉. 홍살문과 참도, 정자각, 능이 일직선이지만 굉장히 초라하고 급히 만들었다는 인상이...
영릉입니다. 참도만 봐도 왕이나 왕비 아닌 왕세자의 형식... 영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일찍 죽고 사도세자의 비극 후 어린 정조의 양아버지가 되어 정조가 등극 후 추존 왕이 된 후 대한제국 시기 황제로 추존 된 기구한 운명의 효장세자
왕세자의 묘에서 왕으로, 황제로 신분이 두 번이나 바뀌어 형식도 기괴하게 변한 영릉
영릉의 변천을 알려주는 설명문
갑자기 오리(?)가 나와서 당황. 오리나무 설명문입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양향교입니다. 중남미박물관과 붙어 있습니다. 1부 끝.
첫댓글 신호대기중 ㅋㅋ
있다 다시 올게요
면허증 갱신하고 잠시 앉아서 후기 보고 있어요ㅡ
수많은 왕들과 왕비 얽힌 스토리
어융 들어도 들어도 항개도 모르겠다
대단하신 낙화님의 해설은 늘 굶주린 제 두뇌에 영양을 팍팍 넣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고즈넉한 파주삼릉 산책길을 우리만 걷게 해주시려고 능을 몽땅 전세까지 내시다니요!
낙화님 배포와 배려에 감탄과 감사를 드립니다~~ ^^*
들어도 들어도 헷갈리고 헷갈리지만 넘 재밌어요. 고향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기억 나는거 몇가지는 막 써 먹었답니다. 참도 정자각등 용어 설명 수준이었지만 넘 신이 나 있대나 어쩐대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