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노협>주간노동정세동향 76호(7/20)
□ 노동소식:1)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2)금속노조 타임오프 전면전 8월로 넘겨
□ 노동관련법 : 유령집회신고 제동 걸려
□ 노동시론 : 소통과 단결은 조금 손해본다는 생각을 전제해야
○ 붙임자료 : '건강보험 하나로' 출범은 '진보의 권위 찾기 정치운동'
□ 노동소식 :1)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17일 공식 출범했다. 기존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운동’과는 달리, 시민회의는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한 건강보험의 획기적인 보장성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건강보험료로 1인당 월평균 1만 1천원(가구당 2만 8천원)을 더 내면 6조 2천억 원이 조성되고, 여기에 기업주가 내는 3조 6천억 원과 국고지원금 지원금 2조 7천억 원이 포함되면, 12조 5천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마련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12조 5천억 원의 재원이 확보되면 건강보험의 보장률(2008년 기준 62.2%)이 OECD 국가 평균 수준인 90% 이상으로 강화되고, 입원과 외래를 합친 본인부담금이 연간 100만원을 넘지 않으며, 환자 간병과 노인 틀니 등 국민의 요구가 높은 의료서비스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는 등 ‘병원비 걱정 없는 세상’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금속노조 타임오프 전면전 8월로 넘겨
금속노조는 18일 “오는 21일 10만 규모의 전국총파업을 벌이려던 계획을 수정한다”며 “7월말까지 노동기본권 단체협약 조항 현행유지 수용 사용자가 1백 여 명을 훌쩍 뛰어넘고 있음을 감안해 21일 파업 실시 여부를 전술상 지부쟁의대책위원회로 위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투쟁은 올 여름 휴가가 끝나는 시점에 전면화 될 공산이 크다. 기아차 지부도 사실상 8월 투쟁을 염두에 두고 숨고르기에 들어 간데다 7월 첫 급여일인 8월 10일 쯤이 사용자들의 노조탄압이 현실로 본격 드러나는 시점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는 “재벌사 및 일부사용자들이 노사관계 파탄을 실제 주도할 경우 금속노조는 10만 규모 전국총파업을 8월에 실제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18일 현재 올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갱신 노사협상을 진행 중인 사업장 170곳 중 타결사업장의 90%가 타임오프를 무력화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18일까지 합의에 이른 사업장 101개중 91개 사업장이 금속노조 노동기본권 6대 요구를 원안대로 합의했거나 단체협약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금속노조는 7월 중에 120곳으로 확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91개 사업장 외에 6개 지회(5.9%)는 ‘추후 재협의’라는 문구를 넣어 단체협약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으며, 4개 지회(4%)는 별도 수당 등으로 합의했거나 사실상 이면합의 했다. 금속노조가 이렇게 공세적으로 타임오프를 무력화한 합의 노조수를 공개한 이유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에 법과 행정부의 관여자체가 원천 불가능하다는 점을 입증시켜 나가 위한 것이다. 금속노조는 “시종일관 똑같은 타결방침으로 노동기본권을 각 단위별로 지킬 계획”이라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101개 사업장이 합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현대기아차와 그 계열사, 재벌사 등은 합의 도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금속노조는 “현대기아차 등으로 대표되는 재벌사와 그 계열사들이 새 노조법과 타임오프제도를 빌미로 벌이는 노조탄압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며 “특히 이미 노사자율로 단체협약을 갱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의 협박에 굴복해 합의를 지킬 수 없다고 공문을 보내는 일부 사용자들도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세상)
□노동관련법:유령집회신고 제동걸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달 19일 새벽 4시 30분 용인경찰서를 찾았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지난 2005년 7월 숨진 황민웅 씨의 기일을 맞아 공장 앞에서 피해 노동자의 산재인정 촉구 및 규탄대회를 진행하기 위해서다. 경찰 측은 사전에 반올림 측에 새벽 5시부터 집회 신고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막상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삼성전자 측의 집회 신고가 접수되어 있었다. 집시법에 따르면 같은 장소에서 목적이 상반되는 집회 신고가 여러 개 접수되면 가장 먼저 접수된 신고를 허가하도록 돼 있다. 반올림과 민주노총 등은 삼성이 이런 점을 이용해 삼성 본관이나 계열사, 공장 등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집회를 여는 시도를 방해해 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열리지 않는 집회를 미리 신고해 하루씩 연장하는 방식으로 1년 내내 집회 신고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15일 수원지방법원은 용인경찰서의 집회 금지 통고처분에 대해 "반올림과 삼성전자 측의 집회는 집시법에 규정하고 있는 시간·장소가 중복되고 집회목적이 상반되는 경우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집행정지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경찰은) 반올림과 삼성전자 측의 집회신고 내역을 구체적으로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집회 금지 처분을 정지하지 않으면 예정된 기일에 집회를 개최하지 못해 헌법상 보장된 집회 자유를 침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반올림은 19일 기흥공장 앞 규탄대회를 시작으로 5일 동안 삼성 반도체 공장 주변에서 반도체 피해 노동자의 상황을 알리는 선전전과 촛불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2010년 공동행동'을 진행하고 있다.(프레시앙)
□ 노동시론(時論) :소통과 단결은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을 전제해야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에게 맨 처음 묻는 말. 노동조합을 왜 하려고 하십니까? 바로 대답이 나오고 그 이유가 매우 구체적이다. 관리자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금을 올리고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잘리지 않고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서 등. 한마디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노동조합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기 이전에 노조에 가입하겠다는 이유가 다르더라도 그것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하지막 막상 노동조합의 깃발을 제대로 세우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상담자의 반수 이상이 시작하지도 못한다. 시작했다 하더라도 탄압과 회유를 통과해서 과반수 이상 조직하는 경우는 반이나 될까 말까다. 어떤 경우에는 앞에서 총대를 맨 사람가지도 흔들려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잘 알지 못해서 그럴까.
경험을 몇 년씩 하고 있는 조합원에게 묻는다. 노동조합을 왜 하십니까? 답변은 여러 가지다. 사업장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 노조가 있어야 편하니까, 고용안정을 위해서 등. 누구나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심지어 노조원이 극소수인 사업장의 비조합원들도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노조간부를 선임하려면 매우 어렵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닌 중소영세사업장은 더욱 그렇다. 조직력이 강한 사업장에서도 그런 현상이 많아지고 있고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군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또한 회사가 정리해고를 발표했을 때 조합원의 태도는 꼭 노조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교육이 덜 되어서일까.
앞장 선 동지들은 또 다른 모습이다. 집행부를 했던 사람은 다른 조합원보다 경험이 많으니 더 많이 활동해야 한다. 앞에 나서겠다고 경선을 했으면 떨어진 것과 상관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서는 단체나 정당에 따라 조금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무슨 무슨 파다, 성향이다 해서 대립하는 경우가 맣다. 같은 모임 구성원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소속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는다. 선거는 경쟁에서 반목의 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많이 알아서 그럴까.
진실은 간단하다. 노조가 필요하면 앞장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조가 있으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하고 노조간부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꿈꾼다면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저러한 한두 마디 '좋은 말'처럼 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희생, 자기의 손해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의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노조를 지켜내고 승리할 수 있는가?
노조법이나 노사교섭 기술 등 실무적인 것에 앞서 스스로 돌아보고 판단해서 주체로 서도록 하는 훈련, 그런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집단, 사회이며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이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대화와 소통이다. 열린 대화는 생각과 입장을 열어놓고 교류하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만지는 부위에 따라 코끼리에 대해서 얘기하니 진짜 코끼리는 모르면서 코끼리에 대해서 우긴다는 것이다. 자기가 만진 것이 가장 옳다는 독단과 독선으로 고집 피우기 때문에 코끼리를 재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는 사실로부터 출발하지만 사실 그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장님들끼리 서로를 믿고 진실로 토론하고 공유했더라면 비록 앞은 보이지 앟는 사람들이라도 코끼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상대도 옳을 수 있다는 가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에 대해 알고 모르고, 교육이 많고 적음은 어쩌면 부차적이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관으로 알고 있다. 단결하고 또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단결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소통,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자세이지 않을까.(전국일반노조협의회 최만정)
○ 붙임자료
'건강보험 하나로' 출범은 '진보의 권위 찾기 정치운동'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건강보험 하나로)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함춘회관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의료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지식인과 활동가가 참가한 이 모임의 취지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개인이 내는 건강보험료를 평균 1만1000원 올리고, 그걸 지렛대로 삼아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자는 것, 그래서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대폭 높이자는 것이다. 큰 병에 걸려도 한 해 치료비가 100만 원 이하가 되게끔 하는 게 목표다.
"우리가 내야 할 돈을 줄여 달라"라고 요구하는 운동은 쉽다. 그런데 '건강보험 하나로'의 요구는 반대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이런 모습 뒤에 있는 것은 절박함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부딪힌 위기에서 비롯된 절박함 말이다.
국민건강보험, 독재가 낳고 민주가 키웠다
이걸 이해하려면, 현행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의료보험) 제도는 박정희 정권이 처음 도입했다. 우파 정권이 복지 확대 정책을 취한 사례다. 이후 꾸준히 개선돼 온 이 제도는,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며 변곡점을 맞는다. 그 결과,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에서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한 첫 사례다. 새로운 변곡점 역시 '정치적 민주화'와 맞물려 있다.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김대중 정부는 2000년 7월 오랜 숙제였던 의료보험 통합 작업을 마무리했다. 모든 국민이 공평한 혜택을 누리는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완성된 것이다.
이후 7년 동안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꾸준히 확대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지난 2007년, 건강보험 보장성은 64.6퍼센트를 기록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부문 의료비 가운데 64.6퍼센트를 건강보험 공단이 지급하고, 나머지 35.4퍼센트를 환자가 낸다는 뜻이다. 보장성 수준이 90퍼센트에 가까운 다른 OECD 국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문'이 광범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자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이기는 아직 무리다. 그러나 복지의 불모지대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현실에선 상당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회복지 영역과 비교하면, 의료 분야는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올해로 33주년, 위기가 눈 앞에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은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변화의 계기였다. 계속 오르기만 하던 건강보험 보장성이 아래로 꺾였다. 지금은 62퍼센트대다. 고작 2퍼센트 줄어든 게 그리 대수냐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
한번 아래로 꺾인 그래프를 다시 꺾어 올리기란 쉽지 않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 만성질환자 증가, 약값 상승 등을 고려하면, 보장성 수준이 50퍼센트대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 등 민간보험사가 건강보험공단의 자리를 메울 가능성이 크다. 1977년 이후 꾸준히 개선돼 온 건강보험 제도가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게다.
이런 위기감이 '건강보험 하나로'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보건의료와는 동떨어진 분야의 지식인과 활동가들까지 대거 이 모임에 참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획재정부, 삼성…국민건강보험이 못마땅한 그들
그러나 '건강보험 하나로'가 풀어야 할 숙제 역시 만만치 않다. 우선 보수 진영, 그리고 상당수 의사들의 반발을 뛰어넘어야 한다. 건강보험 제도는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정작 '박정희 부활'을 꿈꾸는 이들은 이 제도에 적대적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문에서 높은 소득을 거두는 의사들 역시 현행 건강보험 제도를 못마땅해 한다. 그러니 건강보험을 확대·강화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에 대한 시각 역시 고울 리가 없다.
기획재정부는 더 강력한 반대 세력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5:5:2'(봉급생활자의 경우, 본인이 건강보험료로 5000원을 내면 회사가 5000원을 내고 정부가 2000원을 낸다는 뜻) 방식으로 마련된다.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대로 직장인이 내는 보험료를 높이게 되면, 정부가 내야 할 몫 역시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 그런데 현 정부는 4대 강 사업 등으로 재정을 대폭 지출한 상태다. 여기에 '부자 감세' 정책이 겹치면서, 재정 적자 폭이 커졌다. 그리고 이런 적자 폭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입장에선,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이 반가울 리 없다. 오히려 영리병원을 도입해서 기존 건강보험마저 규모를 줄이겠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속내다.
삼성 등 재벌 역시 반대 세력이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벤처 거품 붕괴 등을 거치며 한국 경제는 급격히 활기를 잃었다. 그래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신성장 동력 또는 수종사업이 보이지 않는다는 한탄이다. 이들에게 손쉬운 선택은 공공 서비스 부문에 민간이 투자할 길을 여는 것이다. 이런 선택이 수출 증대 또는 국민 경제 전체의 규모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안전한 수익이 보장된다는 점이 자본을 굴리는 재벌에게는 매력이다. 민간의료보험, 영리병원 등 의료 관련 서비스 부문은 특히 그렇다. 인구 고령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향후 의료 수요가 폭증하리라는 점이 이유다. 이들에게 국민건강보험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워야할 걸림돌이다. 그러니 국민건강보험을 오히려 강화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재정 적자로 골머리를 썩이는 기획재정부와 재벌은 이 대목에서 이해관계가 겹친다.
이처럼 정부와 재벌, 보수 진영과 의료계 주류는 저마다의 이유로 '건강보험 하나로'에 적대적이다. 이런 정서는 '건강보험 하나로' 준비위원회 발족 하루 전에 맞춰 나온 <조선일보> 기사에 잘 반영돼 있다. 지난달 8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꿈같은 복지' 내미는 진보 진영" 기사를 보면,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에 '포퓰리즘'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견고하기만 하다면, 이런 반발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숙제는 따로 있다. 진보 진영 안에서 나오는 비판이 그것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지난달 <프레시안>에 기고한 "왜 월급쟁이만 1년에 30만 원씩 더 내야 하는가?"라는 글이 이런 입장이다.
비판의 표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5:5:2'(봉급생활자의 경우, 본인이 건강보험료로 5000원을 내면 회사가 5000원을 내고 정부가 2000원을 낸다는 뜻)로 고정돼 있는 건강보험료 부담 비율이다. 봉급생활자가 내는 몫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정부의 몫을 높이자는 주장이 먼저 나와야 한다는 게 비판자들의 입장이다. 이런 주장이 빠진 채 진행되는 '건강보험 하나로' 활동은 봉급생활자에게 호소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는 규정 상 내도록 돼 있는 '2'의 몫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우석균 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4조8000억 원을 냈는데 이는 '2'의 몫인 5조2000억 원에서 4000억 원이 부족한 금액이다.) 또 정부는 4대강 사업 등에 막대한 재정을 쏟고 있다. 봉급생활자가 보험료를 더 내겠다고 하기 전에 엉뚱하게 낭비되는 정부 재정을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 쓰도록 요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왔다.
이런 비판에 대한 반박은 지난 12일과 13일 <프레시안>에 실린 오건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협력위원의 글에 잘 담겨 있다. 오 위원은 이 문제를 '건강보험 재정확충 방안의 진보성'에 관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였다. 요컨대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이 '기득권층 및 그들에게 치우친 정부'와 '사회적 약자' 사이에서 어느 쪽에게 더 유리한 것이냐 라는 문제제기로 이해한 것이다. 기득권층과 정부에게 불리한 게 아니다, 또는 유리하다(진보적이지 않다)라는 게 비판자들의 주장이라면, 그렇지 않다(진보적이다)는 게 오 위원의 입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누진성이다. 정부 지원은 결국 국고에서 돈이 나온다는 뜻인데, 국고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워진다. 그런데 세금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간접세다. 그리고 간접세는 누진성이 없다. 기득권층이라고 해서 더 내고,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덜 내는 세금이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건강보험료는 직접세 개념에 가깝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더 내고, 적은 사람은 덜 낸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이 비판자들의 주장보다 더 진보적일 수 있다. 이게 오 위원의 입장이다.
그리고 오 위원은 정부가 국고지원 확대 요구보다 '건강보험 하나로' 방식에 더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고지원 확대 요구에 대해서는 "세금 더 낼 의향이 있느냐"며 정부가 맞받아칠 수 있지만, 국민이 스스로 돈을 더 내겠다면서 공공성 확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할 말이 없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과잉진료, 대책은?
비판자들이 겨냥하는 다른 표적은 의사들의 과잉진료다.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기업과 정부가 내는 몫도 같은 비율로 늘어나고, 그래서 건강보험 재정이 확대됐을 때, 그 결과가 반드시 보장성 확대로 이어지겠느냐는 질문과 맞물린 쟁점이다. 비판자들은 과잉진료가 통제되지 않는다면, 늘어난 재정 가운데 상당 부분이 병원의 매출로 옮겨갈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 확대에 비례해서 보장성이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비판자들은 의사와 제약회사 사이에서 오가는 리베이트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약제비 인하, 과잉진료를 조장하는 행위별 수가제 폐지 등이 더 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과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건강보험 하나로'의 취지도 살아날 수 없다는 게다.
'건강보험 하나로'를 지지하는 이들 역시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다. 따라서 행위별 수가제 폐지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쟁점이 생기는 걸까.
오건호 위원은 의료비 지출 총액을 줄이는데 '건강보험 하나로'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보험 하나로'는 건강보험 재정을 늘려서 비급여 부문을 급여 부문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과잉진료의 온상인 비급여 부문이 줄어든다.
급여 부문에 대해서는 의사가 진료내역서를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건강보험 하나로'가 성공한다면, 사실상 모든 진료비를 지불하는 입장에 서는 건강보험관리공단은 낭비적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재정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사평가 기능을 강화하게 되고, 급여 부문에서도 과잉 진료가 줄어든다. 이게 오 위원의 논리다.
열쇠는 국민의 관심
일각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이 확대되면 의사들의 보험수가 인상 요구도 더 거세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요구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의료계가 이미 알고 있다. 과거 의료계 주류는 이명박 정부에 거는 기대가 대단했다. 보험수가가 대폭 오르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뒤에도 보험수가 인상 폭은 의료계 주류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적어도 선거로 구성된 정부라면, 일방적으로 의료계의 편을 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건강보험 하나로'가 성공할 경우, 그 결과로 생겨날 건강보험 재정 증가분은 보장성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건강보험 하나로'가 성공한다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돈을 더 내겠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이렇게 뜨거운 관심이 쏠린 돈을 병원 금고에 쓸어 넣을 만큼 '간이 큰' 정부는 존재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하나로'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는 열쇠는, 결국 국민이 쥐고 있다. 국민 다수가 "보장성만 강화된다면 돈 더 내도 좋다"는 입장에 동의한다면, 아무리 정교한 비판도 힘을 잃는다. 특히 천 원짜리 한 장이 아쉬운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동의한다면, 진보 진영 내부의 논쟁은 한순간에 정리된다. 반대로 이런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건강보험 하나로'의 주장은 그저 탁상공론으로 끝나게 된다.
병원 안 가는 사람은 없다…"문제는 정치"
이는 '건강보험 하나로'의 성패가 결국 '정치'에 달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운동에 참가하는 이들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오건호 위원은 "'건강보험 하나로'는 병원비를 해결하는 보건의료운동이면서, 진보의 권위를 만들기 위한 정치운동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를 둘러싼 정치운동이 갖는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모든 국민이 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무상급식은 한국 정치의 판을 뒤흔들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 번 병원 신세를 진다. 병원 치료비 영역에서 진보적 대안이 나온다면, 그리고 이런 대안을 실현하는 데 드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면, 그 때 생겨날 변화는 무상급식과 비교할 수도 없다. 성공하기만 하면, 판이 뒤집히는, 묵직한 운동이 첫 발을 뗐다. (프레시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