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이 26년만에 만났다.편지 한 장없이 보낸 세월.한명은 유명 연예인이 됐고 다른 한명은 구두닦이를 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중증 장애인 신세였다.
완전히 다른 두사람의 삶.하지만 둘은 재회와 함께 곧 옛 우정의 씨앗에 새싹을 틔웠다.그리고 이제 다시 만난지 6개월째.우정의 싹은 여름 화원의 꽃처럼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1월 22일 KBS의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만나 재회의 순간부터 화제가 됐던 두 사람.인기 가수 유열씨(39·소망교회)와 서경주씨(45)는 한껏 만남을 즐기고 있다.지금 둘 사이는 서씨의 부탁으로 유씨가 자선공연을 준비할 정도.유씨는 5일 공연을 갖고 수입금전액을 서울 갈현동 박애재가노인복지원에 전액 기탁하기로 했다.
새로운 만남 6개월도 기념하고 그동안 서씨에게 도움을 줬던 곳에 친구로서 조그만 보답이 될듯해 공연을 하게 됐다는게 출연의 변.과연 초등학교 한 때 같은 반이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유열의 음악앨범'`노래하는 우체국' 등 빽빽한 방송스케줄에도 불구,그럴 수 있을까.분명 둘만의 이유가 있다.
“처음 만나 막연히 반가왔습니다.하지만 그동안 서로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의 삶속에 정말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하나의 공통점.유씨는 그것을 신앙이라고 했다.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면서 한번씩의 고비를 통해 신앙 성숙의 계기를 갖게됐고 그 신앙이 26년전 뿌린 우정의 씨앗을 꽃피우는 비료가 됐다는 것이다.
67년 서울 갈현초등학교에 입학,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둘은 단지 호감을 가지고 여러가지 일이 기억에 남는 친구였을 뿐이었다.서씨는 유씨보다 여섯살이나 위였다.고아인 탓에 입학이 늦었다.또 곱사등이었다.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씨는 명랑했다.서씨는 놀리는 친구를 가만 두지않는 주먹대장이었다.유씨는 어려운 친구들을 돕는 조숙한 서씨를 잘 따랐다.
서씨도 마찬가지였다.유씨는 당시 부친이 은행원인 비교적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다른 친구들과 달리 가난한 서씨를 따돌리지 않았다.오히려 다정한 웃음으로 친근감을 보여주는 유씨였다.둘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같은 반으로 점차 친해졌다.
하지만 둘은 4학년에 올라가 다른 반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가끔씩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둘은 함께 어울릴 틈이 없었다.진학을 포기한 서씨는 이곳 저곳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72년 졸업.둘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서씨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고아원을 나왔다.이제 독립을 할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어린 나이의 서씨는 그 뒤 지하철내 생필품 판매부터 구두닦이까지 안 해본 일 없이 하게 됐다.그 중 가장 오래 한 일이 구두닦이였다.
처음 서씨는 남대문 새로나백화점 인근에서 구두닦이일을 하기 시작했다.나이 어린 그가 자리를 잡자 여기 저기서 깡패들이 못살게 굴었다.며칠씩 주먹질만 해야하는 날도 있었다.서씨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사귀기 시작했고 자주 술을 먹게 됐다.외로움때문이기도 했다.하루 벌어들인 돈을 모두 술값으로 탕진했다
어린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던 서씨였지만 결정적으로 성숙된 신앙을 갖게 된 것은 96년이었다.술과 막일로 건강을 잃은 서씨는 그 해 4월19일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돈도 없고 갈곳도 없던 서씨는 다시 고아원을 찾아야 했다.
유씨가 올 1월 방송을 통해 서씨를 찾았을 때 그는 고아원 선배들의 도움으로 강남 신사동에 조그만 방을 얻었을 때였다.
유씨는 86년 대학가요제에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라는 노래로 대상을 받은 뒤 10여년 이상을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역시 비슷하게 신앙성숙의 계기가 있었다.91년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고 급한 마음에 병원을 오가던 유씨가 하루는 병원을 나서 귀가길에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당시 유씨의 차에 치인 50대 초반의 남자가 사망하고 유씨는 구속됐다.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교도소에서 유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중학교 시절부터 신앙을 가졌던 유씨였지만 이때만큼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없었다.
다행 유씨의 부친은 유씨가 출소한 이틀만에 소천했다.유씨는 이 때부터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게됐다.교회는 매주 못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보상이라도 하듯 틈나는대로 자선공연을 가졌다.지난해에는 서울과 경기 인근도시 여덟군데를 돌며 공연을 벌였다.
“자선공연을 하게되면서 장애인 프로를 자주 맡게 됐습니다.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생각났는데 마침 방송국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유씨는 다시 만난 서씨와 이제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고 있다.이해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교류를 나누는 우정을 둘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공연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둘이 여의도공원을 찾았다.유씨는 휠체어를 밀며 공연준비에 대한 긴장을 풀고 이런 저런 옛이야기에 빠졌다.“열아,너 짝이었던 여자애 알지.걔 이름이 뭔지 아니” “아니.그런데 왜 네가 기억하냐.너 응큼하구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듯 두 사람은 밝게 웃었다.전날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온 때문일까.공원의 풀잎과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에는 푸른 향기가 그득했다.
〈취재수첩〉
유열씨와 서경주씨가 5일 오후 마련한 콘서트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내용이 알차다는게 특징이다.
`유열의 나눔 콘서트'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서울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오후4시와 7시30분 두차례 마련된다.콘서트에서 유씨는 `화려한 날은 가고'와 자신의 히트곡은 물론 `몬타냐' `망망대해' `넌 알고 있나' 등 이번에 새롭게 발표된 신곡도 부를 예정이다.특히 신효범 변진섭 박정운 권진원 등 쟁쟁한 인기 가수들이 나눔게스트로 출연해 각자의 히트곡을 부른다.
또한 이번 공연은 불우노인들을 위한 사랑나눔 콘서트로 수입금 전액은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생활지원금으로 지급된다.
유씨는 “이번 공연에는 많은 인기 가수들은 물론 조명 및 음향을 담당하는 분들도 자원봉사식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모두의 정성으로 가슴 속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정말 따뜻한 노래들로 여러분과 함께 하는 최고 콘서트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애재가노인복지원이 주최하고 은평구청 등이 후원하는 이번 공연은 이날 하루뿐.입장료는 1만5천원이고 서울은행 제일은행 은평구내 세븐일레븐 각 지점에서 구할 수 있다(02-382-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