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기골?안기역마?안기동(安奇洞)
안기동은 원래 안동부 부내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에 안기역(安奇驛)이 있었다고 하여 안기역마 혹은 안기골이라 하였다. 1964년 3월 20일 동기구 개편에 따라 안기동이 되었다.
▶ 서당골?감나무골?서당곡(書堂谷)
조선시대에 서당이 있어서 불리어진 이름이며 한편 옛날에 감나무가 많이 있어서 감나무골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영남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으며 입구에는 안기동사무소가 있다.
▶ 석수암(石水庵)
이 마을은 영주방면으로 가는 국도변의 화백산 기슭에 있다. 마을에 돌이 많았으며 목욕할 수 있는 맑은 물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또 이 마을에 석수암이라는 절이 있어서 붙인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소백당곡(小白堂谷):소백당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가 눈 위에 옷을 벗고 누워 있는 아기가 있어 그 아기를 업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 골에 다다 르자 그 업힌 아기가 내려 달라고 하기에 내려 주니 그 아이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 다. 그리하여 여기에 당을 짓고 소백당이라 하면서 그 아이를 가신(家神)으로 모셨다 한다.
▶ 새절골?새작골
옛날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새절골이라 하였다. 서악사에서 새절골까지 절이 많이 있어서 비오는 날도 처마 밑으로 가면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칠성동(七姓洞)
마을 명칭이 생긴지는 20여 년 미만이다. 이 골에 처음 4가구가 살았는데 세 들어 사는 집까지 합하여 7가구가 살았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성씨(姓氏)가 각기이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 회나무골?횟골
마을에 큰 회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이 마을은 목골과 칠성동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 가골?가학곡(駕鶴谷)
마을 뒷산이 가학(駕鶴)의 모양이라는 데서 연유되었으며 현재 안기동의 중심 부분이고 소백당골과 접해 있다.
▶ 마지락골?마지막골
골짜기 맨 끝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서 마지락골 또는 마지막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돌트밋골
목골 뒤쪽에 있는 마을로 돌더미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 목골?못골
1939년 경 골짜기 입구에 못을 막아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에는 격전장이었고 1951년에 못이 터져 지금은 못둑만 남아 있다.
◇ 두트바웃골:큰 바위가 있어 유래되었다고 하며 목골 건너편에 위치한다.
◇ 아래기골?아래골:마지락골 북쪽 목골 아래쪽에 길게 위치한 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 관거리?간척골
안기동과 운안동 경계지점으로 공민왕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 감옥이 있어 관청 사람이 많이 왕래하였다고 붙여진 명칭이다.
▶ 새골?샛골?봉곡(鳳谷)
관거리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부터 경치가 아름답고 새가 많은 곳으로 이름이 나서 붙여진 명칭이다. 또 여기에 찰방(察訪)의 관사도 있었다고 한다.
▶ 분지골?빗집골?짓골
새골과 인접하며 골짜기 입구에 효자각(孝子閣)이 있었는데 이것을 빗집이라 부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분지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분지라고도 부른다.
▶ 마무골?마모골?마고동(麻姑洞)
옛날 마고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에 유래되어 마모골이라 한다. 운안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 마고동천(麻姑洞天):운안동 마을 뒤 산기슭 언덕에 높다란 절벽이 있으며 30~40년 전만 해도 그 일대에는 솔숲이 울창하고 골짜기를 흘러 내린 맑은 냇물이 폭포를 이루었으며 아 름다운 천석(泉石)이 절경을 이루었다 한다. 옛날에 마고선녀(麻姑仙女)가 내려와 이곳 폭 포 아래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 무덤렛골?무덤티골
이 마을은 열리재 서쪽 골짜기에 있다. 마을에 장군의 무덤티가 있었다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 스피절?신피사(神皮寺)
이 마을에 신피사(神皮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분지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 응달골?음달골?음지골
빗집골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골짜기 마을이다. 이 골짜기는 하루 종일 그늘진 마을이기 때문에 응달골 혹은 음지골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