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천주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2005년을 시작하면서 이런 물음을 화두로 삼아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차동엽 신부를 만났다. 2003년 교리서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1, 2」로 교회 안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차 신부는 지난해에는 그 후속 보완편인 「여기에 물이 있다」를 펴내 또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물이 있다」는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현재 평화방송 텔레비전(케이블 TV 33, 위성TV 163)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
차동엽 신부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로 무엇보다 먼저 다원종교사회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교의 상대화를 들었다. "다원종교사회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의 상대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느님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빼고 하느님을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차 신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화에 나선다면서 그리스도를 빼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하면서 종교다원주의가 만들어 놓은 이런 '시대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교회 사명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선포한다고 해서 식민지 시대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차 신부는 강조했다.
"그때는 예수님 이름만 가지고 갔습니다. 이 시대에는 예수님의 삶, 행업,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희년 선포(루가 4,18-19)를 고백하고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양식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종교간 대화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차 신부는 심상태(한국 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신부가 제시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명백히 고백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공동선과 공존을 위해 대화하고 연대하는 일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직접 보여주신 그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대화할 수 있고 신앙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신부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두번째 문제로 각종 통계지표 상에 적신호가 나타나는 현상을 들었다. 신자 증가율 둔화 쉬는신자 증가 등 전반적으로 저조할 뿐 아니라 고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 사목자들의 체감온도는 훨씬 심각합니다. 특히 청소년사목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총체적 위기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40~50대 이상에서는 아직도 가톨릭이 매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전통과 권위를 거부하는 탈현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에 젖어 있는 30대 이하 젊은이들에게 가톨릭교회 매력은 개신교나 불교에 훨씬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 교구가 나서서 신앙 대물림 운동(자녀 신앙 챙기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가정교리 프로그램을 새롭게 개발하고,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나아가 젊은이들을 위해서는 대학가를 파고드는 획기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학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다른 종교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컨대 불교계에서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최대 장점으로 여겨져온 연령회 활동을 벤치마킹해 자기 것으로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가톨릭 교회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외적 통계지표들이 시사하고 있는 변화 현상, 즉 사람들의 종교심 또는 종교적 욕구의 변화를 올바로 포착해서 적절히 대응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차 신부는 강조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내세의 영원한 생명보다는 지금 삶에서 안정과 행복, 평화를 더 추구합니다. 이것은 스트레스나 대인관계, 건강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고독 에서 헤매는 현대인들은 참다운 만남을 가져다 줄 진정한 공동체를 바라고 있습니다."
차 신부는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교회이지만 현대인들의 이런 욕구에도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교회는 이에 부합하는 보물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어떻게 찾아내서 제대로 전해주느냐가 관건이다.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하는데 평화는 사실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사입니다. 용서와 화해, 회개의 요구는 모두 평화를 위한 것입니다. 강론을 비롯해 다양한 교육기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평화의 주님을 전하고 또 만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차 신부는 고독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리스도교는 고독을 해결하는 측면에서 탁월한 종교"라고 말했다. "고독은 참다운 만남, 친교의 공동체를 갈망한다는 것인데 삼위일체 자체가 친교의 관계이고 친교의 공동체입니다. 나아가 공동체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존재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공동체로 불렀고, 공동체로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관련, 차 신부는 교회 교리교육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는 십자가, 회개를 강조하는데 이는 복음을 체험한 사람에게서 오는 삶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사이에 십자가의 삶이 복음을 체험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십자가와 복음을 바꾸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차 신부는 교회의 신자교육은 교리 중심에서 성서 중심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앙에는 지성적 차원과 정서적 차원, 의지적 차원이 있습니다. 교리서는 지성적 차원과 의지적 차원에는 성공적입니다. 그러나 정서적 차원에는 맞지 않습니다. 복음을 가슴으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교재가 아니라 성서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교리서는 부교재입니다."
차 신부는 성서를 생활화하는 곳에는 활력에 넘친다는 것이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교회에 청년들이 없고 있어도 활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서모임을 거친 청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가 읽히는 본당들은 활력이 넘칩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차 신부는 소공동체 운동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회가 대형화하면서 인격적 만남이 이뤄지지 않아 그 대안으로 소공동체 운동이 시작됐고, 이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현재 소공동체 모임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인격적 만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화해와 용서, 사랑이 소공동체 안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수님 방식이 모델이 돼야 합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언어화해서 생활로 이어지도록 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차 신부는 "예수님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예수님이 커지기 시작할 때 교회에 희망이 있다"면서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상의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성사 중심에서 성서 중심, 복음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사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복음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눈으로 성사를 바라보도록 도와줍니다. 그럴 때 성사에 들어 있는 은총의 보고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changhl@pbc.co.kr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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