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상작품 [금상] 수필,수기,꽁트부문 김도윤 선상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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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장날

 김 도 윤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초여름,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천막과 파라솔 밑으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린다. 복개 천 다리를 지나자 트럭에 가득 실린 신발들이 어느 화려한 신발가게의 진열장보다도 더 알토란 같이 진열되어 있다. 목이 긴 검은 장화 옆에 하얀 고무신이 백옥 같은 새색시의 피부만큼이나 곱다. 장화가 농사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농사꾼의 뚝심 같다면 하얀 고무신은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가난한 선비의 고결한 지조 같다. 어쩌면 저 고무신에 담길지도 모를 피라미 한 마리를 상상해 본다.

 할머니들이 밭에서 재배한 나물들을 신문지 위에다 올려놓고 지나가는 손님들을 부른다. 금방 밭에서 솎아낸 열무와 상추의 어린잎들이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을 연초록으로 물들인다. 생성과 소멸이 만나는 자리, 막 움트는 어린잎을 만지는 쭈글쭈글한 손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생명의 순환을 믿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못 먹던 시절 입 하나 덜기 위해 어린 손녀를 입양보내기 전날 밤, 가마솥에 끊인 뜨거운 물에 손녀의 묵은 때를 벗기는 심정일까. 한 잎 한 잎 정성껏 다듬고 있다.

 도넛츠 튀기는 냄새가 지나는 사람들의 허기를 몰고 온다. 주인 남자는 마치 마술사의 손처럼 리드미컬하게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끓는 기름 솥에 넣으면 고리모양과 둥근 모양의 도넛츠와 고르께가 만들어져 나온다.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든 아낙네가 손가락 끝에 묻은 설탕을 입술로 핥으며 도넛츠를 먹고 있다.

 자두가 소쿠리에 수북이 담겨있다. 처녀의 도톰한 엉덩이처럼 물이 차올라 탐스럽게 익었다. 드러난 알몸이 부끄럽기 때문일까. 온몸이 붉다. 잘 익은 자두 하나를 골라 한 입 깨물어 본다. 달콤한 액즙이 입안에 감돈다.

 생선 장수가 윙윙대는 파리를 쫒아보지만 역부족이다. 간 고등어 두 마리가 떨어질 수 없는 연인처럼 죽어서도 몸을 포개고 있다. 물을 한 바가지 퍼 뿌리자 기름처럼 번들거린다. 갈치들이 은빛 날개를 달고 북태평양을 횡단 할 꿈을 잃고 거무스레한 좌판에 올려져 새벽 인력시장에 나와 팔려가기만을 바라는 막일꾼처럼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닭장 속에는 크고 작은 닭들이 철장 사이로 목을 빼고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린다. 닭장수와 이가 빠져 볼이 움푹 들어간 할머니가 오골계 한 마리를 놓고 가격 흥정으로 실랑이를 벌인다. 할머니는 흥정에 만족한 듯 웃는 얼굴로 닭 한 마리 끌고 간다.

 큰 양철 자배기에는 순대가 모락모락 하얀 김을 내고 있다. 풍채가 넉넉한 아주머니가 자배기에서 굵고 긴 순대를 꺼내 숭덩숭덩 썰어 한 접시 내 놓는다. 젊은 새댁이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애벌레를 물어주듯이 어린 딸 입에 순대를 소금에 찍어 넣어준다. 앞니 빠진 조그만 입이 오물오물 거리며 움직인다. 그 옆에는 하얀 털을 가진 애완견이 바닥에 떨어진 순대를 덥석 문다. 

 야채장수가 둥글고 길쭉한 애호박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옆에는 무공해 청정식품이라는 인큐베이트 애호박들이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하고 두꺼운 비닐에 씌워져 보관되어있다. 시장에 나와서도 갑갑한 비닐을 벗지 못하는 신세가 결코 호강스럽지만은 않다는 듯 두꺼운 비닐 속에서 푸른 숨을 죽이고 있다. 

 구수한 손 두부가 먹음직스럽다. 도토리묵과 청포묵이 서로 다른 색깔을 띠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삼십대 주부가 어린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와서 도토리묵을 얌체같이 시식하고 간다. 주인여자는 청포묵 같은 결 고운 웃음을 보인다.

 건장한 체격의 건어물 장수가 커피 파는 아주머니를 불러 커피를 두 잔 시켜 한 잔은 떡 장수 할머니에게 권한다. 둘 다 오늘 벌이가 신통치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발목만 부었다고 위로한다. 

 카세트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하반신을 고무로 덮은 사내가 꿈틀꿈틀 바닥을 기며 빨간 바구니가 올려진 조그만 손수레를 밀고 온다. 바구니에는 제법 많은 동전과 천 원짜리 지폐 두장이 반으로 접혀 담겨있다. 젊은 여자가 지갑에서 천원짜리를 한 장 꺼내 바구니에 넣어준다. 그 옆에 남자가 멀쩡한 사람 같다고 미심쩍어 하자 여자가 멀쩡한 사람이면 어디 가서 노가다라도 하지 저러고 다니겠냐고 남자에게 면박을 준다. 서로가 아무 의심 없이 믿게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참 좋은 세상이겠다.

 붉은 색깔을 띤 싱싱한 멍게가 꼭 누르면 돌기 부분에서 시퍼런 바닷물이 뿜어져 나올 듯이 탱탱한 몸을 하고 소쿠리에 담겨있다. 입안에 사르르 침이 고인다. 옆에는 소라가 파도소리라도 들려주려는 듯 나팔관을 크게 벌리고 얼음에 들씌워져 있다. 사십대의 사내가 소라를 한 소쿠리 산다. 주인여자가 비닐봉지에 소라를 담자 사내는 크고 알찬 소라를 몇 개 더 골라 봉지에 집어넣는다. 주인여자는 “이것도 많이 주는 건데 자꾸 그러지 마요” 하면서도 제재하지는 않는다. 몸집이 큰 문어 한 마리가 박제된 표본처럼 상자에 담겨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놈의 민둥 대가리를 눌러본다. 다리 하나가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더 이상 생의 번뇌가 없는 위대한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는 수도승의 입적처럼 경이롭다. 조용히 문어의 열반을 지켜본다.

 복개천에는 연인끼리 혹은 삼삼오오 모여 멍게와 홍합 안주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취기가 오른 오십 초반의 사내가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하고, 같이 앉은 사내 들은 고개만 주억거린다. 반바지 차림을 한 젊은 두 남녀는 서로 마주보며 연신 싱글벙글거리다가 또한 무엇인가를 한참 쳐다보곤 한다.

 한 쪽 귀퉁이에는 노인들이 며느리나 혹은 자식이 준 용돈을 밑천삼아 내기장기를 두고, 훈수꾼들이 뒤에서 골똘히 장기판을 쳐다보고 있다. 그 옆에는 허름한 복색을 한 중늙은이 둘이 상기된 이마가 저녁놀에 번들거리며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신다. 어쩌면 그들은 오늘 밤 갈 곳이 없는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서 돌아갈 집은 지금 마시는 한 잔의 술보다도 의미 없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작로에는 도로까지 옷가지를 실은 트럭들이 점거하여 지나는 행인과 차들로 무척이나 번잡하다. 인도에는 생활용품이나 과일 또는 곡식과 채소를 파는 아웃사이드 사람들이 풀어 놓은 짐 보따리가 초라해 보인다. 그들은 오늘도 줄지 않은 물건들을 싸며 언젠 가는 시장 중심에 조그만 가게라도 차릴 꿈에 젖는다.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 그림자가 길게 장터의 열기를 식히면 서쪽 하늘너머로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려온다. 사람들은 한 두개 씩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만족한 얼굴로 돌아가고 천막이 하나 둘씩 걷히면 백 촉짜리 전구가 껴진 포장마차 안으로 장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오뎅을 안주삼아 오늘 하루를 떠 올리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한 남정네의 농지거리에 모두들 허리가 휘어질 만큼 낄낄거리며 웃고, 한 사내는 묵묵히 술잔 만 비운다.

 장날은 사람들의 삶을 옆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들은 심신의 일부를 사람들 속에 묻고 떠난다. 봉지를 들고 가는 사람도 물건을 파는 장꾼들도 모두 이 세상을 꾸려나가는 일에 몸 바치면서 진지하게 그들의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