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익산시(益山市) 연혁(沿革)
지금의 익산시(益山市)는 옛 익산군(益山郡), 여산도호부(礪山都護府), 용안현(龍安縣), 함열현(咸悅縣)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옛 익산군 지역은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위만의 세력을 피해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이 되어 금마저(金馬渚)로 불렸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668년(문무왕 8)에 이곳에 보덕국(報德國)을 세우고 고구려의 종실(宗室)인 안승(安勝)을 왕으로 봉했다가, 683년(신문왕 3)에 보덕국을 폐지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금마군(金馬郡)으로 개칭하고 옥야현(沃野縣, 옛 이리시 일대)·우주현(紆州縣, 삼례 및 춘포면 일대)·야산현(野山縣, 낭산면 일대)을 영현(領縣, 속현을 거느리는 일반 군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전주의 속현(屬縣)으로 병합되었다가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익주(益州)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익산군(益山郡)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익산의 별호는 마주(馬州)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익산군, 1896년에 전라북도 익산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전주의 비입지인 동일면·북일면·남일면·남이면·서일면과 두입지인 우북면이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용안군·함열군·여산군이 익산에 합병되어 익산군은 면적이 더욱 확대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익산군 북일면은 그대로, 남일면·동일면이 익산면으로, 서일면·남이면이 오산면으로, 두촌면·춘포면이 춘포면으로, 율촌면·기제면·구문천면이 삼기면으로, 두천면·지석면이 팔봉면으로, 미륵면·군내면이 금마면으로, 우북면·제석면이 왕궁면으로 통합되었다.
용안군은 5개면이 용안면으로, 함열군은 10개 면이 함라면·황등면·웅포면·성당면·함열면으로, 여산군은 11개 면이 여산면·낭산면·황화면·망성면으로 통합되어 익산군에 합속됨으로써 48개 면으로 구성된 큰 군이 되었다.
1931년에 익산면이 익산읍이 되었다가 곧 이리읍으로 개칭되고, 1947년에 이리읍이 부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에 시로 개칭되었다. 1963년에 황화면이 충청남도 논산군으로 이관되어 연무읍이 되고, 1974년에는 북일면이 이리시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에 함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팔봉면은 1983년에 이리시로 편입되었으며, 1986년에 용안면 용동 출장소가 용동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익산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 통합시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