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의 자랑거리)
1.금오산 마애보살입상
종 목 보물 제490호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24-1
시 대 고려시대
절벽의 바위면을 깎아 만든 높이 5.5m의 고려시대 보살상으로, 보살상이 암벽의 모서리 부분을 중심으로 양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를 보여준다.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고 부피감도 있지만, 가는 눈과 작은 입에서 신라시대의 보살상과는 다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어깨나 팔의 부드러운 굴곡은 얼굴에 어울리는 형태미를 묘사하고 있어서 상당한 수준의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오른손이나 지나치게 큰 왼손, 둔중하게 묘사된 두 발, 경직된 U자형의 옷주름 등에서 신라시대보다 둔화되고 위축된 고려시대 조각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불상이 딛고 서 있는 반원형의 연꽃 대좌(臺座)와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서도 나타난다.
이 보살상은 얼굴·신체·옷주름·광배 등에서 신라시대 보살상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고려시대의 마애보살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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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오산성
종 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67호
지 정 일 1986.12.11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33외 6필
시 대 고려시대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만든 산성이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되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나 된다.
금오산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성터로, 고려 말에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성을 지켰으며,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 두었던 군창을 두었다. 조선 태종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성을 크게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선조 28년(1596)에 다시 고쳐 쌓았다. 인조 17년(1639)에 외성을 쌓는 확장공사가 실시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고종 5년(1868)에 새로 고쳐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 안에 1개의 계곡과 여러 개의 연못·우물이 있었으며, 대혜창과 내성창이라는 창고, 군기고, 진남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외성의 문터, 적이 알 수 없게 만든 작은 성문인 암문의 형체, 건물터들이 남아있다. 한편 성 안에는 고종 5년(1868) 무렵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산성 중수송공비가 성을 쓸쓸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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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해운사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金烏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고, 1925년 중창하여 해운암이라 하였으며, 1956년 3월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고로 조성한 관세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칠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만든 석조나한상이 있는데, 이를 석조수행대사입상이라고도 부른다.
또, 합장하고 있는 석불좌상이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의 오른쪽에는 명금폭포가 있고, 뒤쪽 산에는 도선굴이 있다. 도선굴은 도선국사가 머물렀고, 길재가 세속을 피하여 은거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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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채미정
종 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
지 정 일 1985.10.15
소 재 지 경북 구미시 남통동 249
시 대 조선시대
채미정은 야은 길재(1353∼1419)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채미정이란 명칭은 중국의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으로, 길재 선생이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한데서 유래하였다. 길재 선생이 세종 1년(1419)에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선생과 함께 고려의 삼은이라 일컫게 되었다.
채미정은 벽체가 없이 기둥만 16개이다. 앞면과 옆면 모두 3칸씩으로, 중앙에 방을 만들고 사방을 마루로 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숙종(1674∼1720)이 직접 써서 선생의 충절을 읊은 오언시를 경모각에서 보존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유적이 있으나 오랜 세월에 황폐화 되어 1977년 정부에서 보수하였고, 현재는 잘 정돈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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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혜폭포
경북 구미의 대혜폭포는 금오산 중턱인 400m지점에 있는 높이 28m의 큰 폭포이다.대해폭포는 명금폭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명금이라는 이름은 금오산을 울린다는뜻이다.그만큼 폭포소리가 우창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혜라는 이름도 이폭포수가 구미로 글러들어 구미 사람들에게 풍부한 수량을 제공하는 큰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라고한다.
이 대혜폭포는 폭포 자체도 웅장하지만 폭포 주변의 절벽이 에워싸고 있어 주변 경치 또한 아름답다.
여름이면 이 폭포에서 물맞이를 하는 사람이 있고,겨울이면 폭포가 얼어붙어 빙벽등반을 사람들이 있다.
금오산 입구인 관리사무소에서 대혜폭포까지는 약 2km의 거리로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금오산을 소금강이라 하는 것도 폭포 주변의 경관이 크게 한 몫을 차지했으리라. 주변의 기암괴석의 천애 벼랑이 병풍처럼 에워싼 유곡에 짚동같이 쏟아지는 물소리며, 물보라에 7색 무지개가 하늘높이 솟아오르곤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여기가 바로 신선계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곳이다.
1935년인가 경상북도 도지사인 일본사람이 이 곳을 찾아 주변 경관과 물소리에 그만 매료되어 한참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얼마만일까 옷 속에 스미는 한기에 정신이 간신히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눈앞이 막막하여 사물은 보이지 않고 그저 쾅쾅 울리는 소리만 있어 “하하 금오산을 울리는 소리” 라고 탄복을 하고 자기의 시상 같은 것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석수를 불러 명금 폭이라 새기고는 신비의 극치인 이 곳 대자연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가노라고 기쁜 마음으로 취기에 흥얼거리며 하산했으리라.
그 후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글자를 보고 읽어 내려온 것이 오늘날 예사로 본 이름인 냥 부르고 있다. 또한 삼복더위 때 폭포 물을 맞으면 땀띠가 싹 가신다고 하고 견비통이나 요통이 있으면 물을 맞아 치유했으니 요사이 성행하는 물리요법의 극치라, 그래서 30~40년 전에는 부녀자들의 물리치료장이 되어 남정네는 감히 범접을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겨우내 대혜골에서 흐르던 물이 절벽에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는데 초봄까지 병풍 같은 벼랑에는 옥색 수정 발을 친 듯 신비롭고 웅장한 천상 궁궐을 연상케 하는 또 하나의 신비의 극치를 이룬다. 웅장한 신비의 대자연 속에서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연과 일체되어 그저 조물주의 조화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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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특징)
높이는 977m이다. 주봉인 현월봉과 약사봉, 영남8경 중의 하나인 보봉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으며, 시생대와 원생대에 속하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산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1970년 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운사·약사암·금강사·법성사·대원사 등의 고찰과 고려 말기의 충신 야은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채미정,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수도하던 도선굴을 비롯해 명금폭포·세류폭포 등이 있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490), 선봉사 대각국사비(보물 251), 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등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다.
첫댓글 아~~네!
자세한 자료 좋으네요. 금오산의 정기에 대해서 세뇌 받았었는데~~ㅋ씨잘데없이~~길재샘 지하에서 우시겠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