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한민족 정치 문화의 거울이다" | |||
사람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민족의 삶은 더욱 힘들었다. 높은 놈들 때문이었다. 더 잘나고 힘 센 자들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건은, 자기들 목구멍밖에 모르느냐, 아니면 민초들의 안녕에 상당한 노력을 하느냐이다. 이 논란은 민초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지난 100년 간 그러한 논란은 “민주주의냐, 아니냐?”라는 논란에 의하여 뒤로 밀렸다. 미국이 걸핏하면 중국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 중국의 ‘집단독재체제’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로 선출된 미국의 정치지도자들과, 콩나물 키우듯이 자체 내에서 양성한 인재들 사이에서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중국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과연 어느 쪽이 민초들의 안녕에 더욱 열심이고 성공적이었느냐로 질문을 바꾸면 중국이 30 대 1 정도로 이긴다.
중국정부는 집단독재적 체제에 도전을 하지 않는 한 국민들을 볶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둔다. 중국정부가 전 세계의 중국인들을 상대로 현 독재체제와 미국식 민주주의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고 물으면 100대 1 내지 1,000 대 1 정도로 현 독재체제가 이긴다. 믿어지지 않으면 중국본토건 미국이건 가서 직접 물어보기 바란다. 이는 진실이다. (다만 홍콩은 예외적 존재다.)
중국인들은,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잘사는 것밖에 모른다. 잘사는 데에는 미국 식 민주주의는 쥐약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십여 억 인구를 가진 농경문화의 중국에게는 그렇다고 믿는다. 눈부신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빚으로 살림을 메워가는 미국의 현실이 중국인들의 만장일치적 판단을 뒷받침한다.
상기 질문에 이어, 민주주의로 선출된 필리핀 정치지도자들과, 가부장적 독재의 싱가포르 리콴유 부자 사이에서 과연 어느 쪽이 민초들의 안녕에 더욱 열심이고 성공적이냐 물으면, 싱가포르가 10,000 대 1로 이긴다.
반면, 민주주의로 선출된 유럽국가 정치지도자들과, 이집트, 리비아 등의 독재적 중동 국가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민초들의 안녕에 더욱 열심이고 성공적이었느냐로 질문을 바꾸면 유럽 국가들이 1,000 대 1 정도로 이긴다.
즉, 민초 입장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선도 아니고 자동적으로 악도 아니다. 한민족 민초들이 가난 속에서 살았던 이유는, 정치체제를 떠나서, 윗대갈이에 앉은 자들의 소양이 엄청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서, 로마제국은 독재적 체제를 가졌지만 자국의 시민들뿐 아니라 정복한 지역의 민초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엄청 노력을 하였다. 즉 그 지도자들은 통이 크고 양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민족이나 인종에 대하여 고찰할 때, 민주적이냐 독재적이냐 등은 전혀 묻지 않는다. 가장 관건이 되는 질문은, 윗대갈이들이 군자들이냐 아니냐이다. 이 답만 얻으면 대부분 이해되고 설명된다.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코끼리들은 무리를 지어 사는데, 그 지도자들은 진정으로 군자들이다. 자신들의 큰 덩치를 오용하여 주위 동물들로부터 인심을 잃거나 심지어 미움을 받는 짓거리들을 일체 엄단한다. 이는 과학적 연구로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독재적인 면은 여실하다. 여성이 다 커서 처녀가 되어 짝을 맺는 경우, 어른들이 독재적으로 짝을 결정한다. 첫날 밤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코끼리 처녀도 있다. 중국, 한국 등에서도 100년 전에는 그런 식이었고, 첫날 밤 가슴 속의 님을 생각하고 남 몰래 눈물을 흘리는 신부들이 있었는데, 코끼리는 지금도 그러한 독재를 실시하고 있다. 삶이 고달프므로 강한 남성을 선호하는 본능이 초래하는 독재다. 코끼리들은 물을 찾아 행군을 할 때 30% 이상이 죽는 경우도 있다. 낭만도 좋고 사랑도 좋지만, 그 강행군을 이겨내지 못하면 죽는다. 그 것이 그 코끼리 지도자들의 입장이다. ‘정치의 도’에서 가장 발달된 곳이 로마제국과 중국이었다. 나는 밥 벌어 먹기 위하여 이공계를 택했지, 가슴은 항상 이런 이슈에 꽂혀있다. 그러므로 대학교 시절에도 여름방학이면 방학 내내 동숭동 문리대 도서관에서 로마 철인들과 중국성현들의 글을 읽었다. 그들의 사고와 말들은 참으로 위대하다. 수천 년 전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꿰고 있었고 집대성했다. 특히 중국 성현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엄청 울었다. 민초들에 대한 그들의 지극한 사랑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
중국 성현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러나 이는 말이 쉽지 실행이 쉽지 않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참사랑 만나기가 힘들 듯이, 권력이 많은 사람은 군자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권력에 회를 치는 정도에서 소인배들이 군자들보다 천 배 만 배 더 적극적이고 이양을 떨고 꼬리를 치고 온통 지랄발광을 하며 덤벼들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러하다. 아연실색할 수준이다.
더구나 소인배들은 각기 홀로 서는 대신 무리를 만들어 군자들을 하나씩 밀어낸다. 그렇게 뭉쳐서 사익을 위하여 지랄을 하는 소양과 재주가 없는 군자들은 고로 소인배들에게 밀려난다. 정치에서는 거의 항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한국 정치판만 보아도 이 것이 증명된다.
그러므로, 군자들이 정치사회의 주도권을 쥐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래서 서양이건 동양이건 민초들은 흔히 폭정에 시달렸다. 특히, 중국 성현들의 이론을 수입하여 실행한 조선왕조의 경우, 위에 열거한 바들, 즉,
1. 질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조화로운 질서를 형성하여 단합한다. 중에서 1항만 강조하였고, 2항 3항은 말로만 공염불이었고, 4항은 전혀 가르치지 않았고 언급조차 금했다.
부언하자면, 그 이론의 본산인 중국에서는 그 가르침은 위에서 민초 풀 뿌리까지 침투하여 생활문화로 정착되었다. 내가 중국 사람들을 너무 칭찬한다고 독자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은 확실히 다르다. 현재 중국 지도자들의 행태가 그 것을 증명한다. 물론 해먹는 놈들도 있고 협잡하는 놈들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지도자들은 인민들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 것이 중국의 위대함이며, 중국의 현재의 상승세는 전혀 우연이 아니다.
반면, 조선왕조에서는 태생적 몽고기질이 중국 성현들의 가르침을 100 대 1로 이겼다.
무슨 역사적 연유인지 아니면 혈통문제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한민족은 몽고족과 아주 유사하다. 남의 민족 헐뜯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문헌에 널리 인정된 바로서, 몽고족은 극히 이상한 민족이었다. 극히 폭력적이고 분당적이고 비생산적이었다.
이는 칭기즈칸이 부상한 원인을 고찰하면 특히 분명해진다. 그가 부상하기 전에는, 몽고족은 ‘이리떼’ 식으로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들을 습격하여 재물을 강탈하는 것이 근본적 생활방식이었다. 참으로 비생산적인 제로섬 게임이었고 폭력적이었다. 특히 그 약탈의 형식은 무질서하였다. 누구건 먼저 손을 대고 집으면 자기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기들 사이에서도 완전 난장판이었고 깽판이었다. 칭기즈칸은 스스로 지도자로 부상하기 위하여 일종의 ‘대선공약’을 내걸었다. “약탈을 하지 말고 모두가 생산에 집중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아이들도 제대로 공부를 시켜 군자답게 키우고, 철학과 문학과 예술 등도 발전시켜 나라와 민족의 정신문화적 근간을 튼튼히 하고, 그리하여 백년대계가 튼튼한 나라를 만들자!” 뭐 그렇게 고상틱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제안한 것은 간단했다: “약탈의 경우 먼저 손 대는 것이 자기 것인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약탈을 하되 약탈한 것을 모두 모아 공정하고 공평하게 나누자!”
그 제안이 크게 호응을 받아 그는 가장 큰 무리를 거느리게 되었다. 몽고 기병들의 전투력은 당시 세계적으로 금메달 감이었고 그래서 결국 유럽까지 정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철학적, 문화적 뼈대가 없는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상황의 몽고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본래의 초라함으로 돌아왔다. 관건은 결국 ‘문화’이다.
그러한 이리떼 식 횡포성과 유교가 합쳐진 것이 조선왕조의 문화였다. 즉, 삶의 형태는 몽고족의 경우와 동일하되, 다만 말 타고 창 들고 싸우는 대신 정치적 음모로써 싸우는 형태였다.
그러므로 조선왕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이 생존경쟁의 기본 룰로서 채택되었다:
1. 몽고 식의 이리떼 무리를 구성한다.
이러한 몽고 식의 야만적 비생산적 생존방식이 근간이었고, 다만 조선왕조에서는 중국의 유교를 그 허울로 씌웠고 대한민국에서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그 허울로 씌웠다.
그러므로, 싸우는 양태는 피상적으로 중국의 가르침 혹은 미국의 가르침을 두고 누가 그 대국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더 성실히 실행하는지를 두고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르침들은 싸움의 도구일 뿐이고, 그 속내는 결국 위의 5항으로 요약되는 몽고 식 난투이다.
“아니, 이 양반은 제목으로는 ‘춘향전으로 풀어본 한민족의 정치와 문화’ 부제 ‘춘향전은 한민족 정치 문화의 거울이다’로 걸어놓고 뭔 개똥철학이 이렇게 긴 거여! 오락가락 하는 것이 한 물 간 모양 아녀?” 하실 독자 분들이 있겠지만, 이제 춘향전 이야기를 할 준비가 다 되었으니 인내하시기 바란다.
“어머님 나 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입던 비단 장옷 봉장 안에 들었으니 그 옷 내어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 곱게 도포 짓고 백방사주 긴 치마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관, 망, 신발 사드리고 절병, 천은비녀,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었으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不肖)찮게 하여 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 두어 무엇할까. 용장, 봉장, 빼닫이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별찬 진지 대접하오. 나 죽은 후에라도 나 없다 말으시고 날 본 듯이 섬기소서.”
“서방님 내 말씀 들으시오. 내일이 본관 사또 생신이라. 취중에 주망 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형문 맞은 다리 장독(杖毒)이 났으니 수족인들 놀릴손가. 만수운환 흐트러진 머리 이렁저렁 걷어 얹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폐하여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寥寂)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수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방님 귀히 되어 청운에 오르거든 일시도 둘라 말고 육진장포 개렴하여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후에 북망산천 찾아갈 제 앞 남산 뒷 남산 다 버리고 한양성으로 올려다가 선산 발치에 묻어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여덟자만 새겨 주오.”
이 두 구절들은, 고등고시, 아니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금의환향하여 돌아올 것으로 믿었던 이 도령이 거지행색을 하고 찾아오니,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도 춘향이 자기 어머니 월매와 이 도령에게 각기 당부하는 말들이다. 춘향의 인격과 품위가 여실히 들어나는 구절들이다. 몽고 식 싸움질에 민초들은 문자 그대로 개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고, 민초 위에서 군림하던 정치지도자들은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처럼 재물을 긁어 모으는 재주만 발달하였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그 가난한 이집트에서 무바라크는 70조 원을 부정축재하여 해외로 빼돌렸다. 구멍가게 하나 내려도 무바라크 가족에게 비공식적 헌납을 하여야 했다. 지도자들은 수효가 적고 민초들은 많으므로 아무리 악독한 학정으로 가난하게 되어도 민초들을 쥐어짜면 기름이 나온다. 조선왕조 높은 놈들은 이집트 무바라크처럼, 이 기름 짜는 기술에서 도사 급들이었다.
“운봉이 반겨 듣고 붓과 벼루를 내어 주니, 좌중이 다 못하여 글 두 귀를 지었으되 민정을 생각하고 본관 정체(政體)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일반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한민족의 한 특성은 ‘질김’이다. 정말로 질기다. 포기라는 단어를 모른다: 어사또 거동 봐라. “어, 이리 하다가는 이 사람들 굿도 못 보이고 다 놓치겠다” 마루 앞에 썩 나서서 부채 피고 손을 치니, 그 때 조종들이 구경꾼에 섞여 섰다 어사또 거동보고 벌떼같이 달라 든다.
이 것이 한민족 특유의 ‘기다림의 철학’이다. 척박한 산골에서도 사람들은 춘향전 이야기를 골 백 번도 더 되풀이했고 이 어사출또 대목에서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가난함은 소월이 노래하던 ‘연민’을 민족의 대표적 정서로 만들었고, 춘향전의 어사출또 대목은 한민족에게 인고를 이겨낼 수 있는 ‘기다림’의 덕목을 심어주었다.
‘연민’과 ‘기다림’은 한민족의 혼이다. 그러므로 우리 어머니들은 찾아오는 과객들은 물론 걸인들까지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연민’과 ‘기다림’은 오늘 서로를 아끼고 내일을 기약하는 한민족 특유의 ‘민심’을 조성하였다. 윗대갈이 놈들이 포악할수록, 이기적일수록, 하늘의 별처럼 그 많은 민초들은 ‘연민’과 ‘기다림’으로 뭉쳐 조용한 항거를 수백 년 이어왔다.
그 민초들의 조용한 전쟁의 선봉에는 언제나 어머니들이 앞장 섰다. 남정네들이 몽고 식 떼 싸움에 미쳐 집을 비우고 노상 나도는 그 긴 인고의 나날들을 어머니들은 버티어내었다. 한민족의 어머니들이 아니라면 한민족은 이미 망해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한민족의 어머니들은 진정으로 위대하다.
한국의 나물이 그 증명이고 증거이다. 미국 백인 주부들에게 한국 나물반찬을 상에 올리라고 하면, 그런 고단하고 복잡한 나물반찬 만드느니 이혼하겠다고 할 것이다. 백인 여성들 중 그런 반찬 만들 용의 있는 경우 전혀 없다. 아예 그런 제안조차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물은 한국 어머니들의 사랑이고 어머니들의 훈장이다:
즉, 음식들은 그 어른들의 약한 건강상태를 보호함과 동시에, 가족 내 여성멤버들이 그 어른들에게 공경심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조리되었다. 그 결과, 그 음식들은 매우 복잡하여졌고 거의 비인간적으로 고단한 것이 되었다.
몽고 식 막가판 싸움질에 조선왕조 5백 년, 대한민국 반백 년, 예나 지금이나 대국이 씌워준 예절이네 민주주의네 들추며 네가 더 예절 잘 지키냐, 내가 더 민주주의 잘 하냐, 눈만 비- 뜨면 싸움질에 골몰하는 한민족 역사에서, 어머니들은 춘향을 벗 삼아 귀감 삼아 이 민족을 지켜왔다.
더 잘나고 힘 센 자들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건은, 자기들 목구멍밖에 모르느냐, 아니면 민초들의 안녕에 상당한 노력을 하느냐이다. 이 논란은 민초들에게 예전에도 가장 중요했고 지금도 가장 중요하다. 춘향이 이를 증언할 것이다. sheem_s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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