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 금강산 건봉사
건봉사(乾鳳寺)는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건봉산 감로봉의 동남쪽 자락에 있어 흔히 '금강산 건봉사'라 부른다.
이 지역은 휴전선 인근이라 대한민국 영역 중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셈이다.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아도가 절을 짓고 원각사(圓覺寺)라 부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나 이 지역은 당시 고구려의 영토였기 때문에
삼국 시대에 건립된 대부분의 사찰에 얽힌 창건 설화처럼 전설로 생각되고 있다.
남북국 시대부터 중건되고 불교 행사가 열린 기록이 있으며 고려 초기에 고려 태조의 스승인 도선이 왕명으로 중수하고 원각사를 중수하고
절의 서쪽에 봉황 모양의 돌이 있다하여 서봉사(西鳳寺)라 불렀다.
고려 말기 공민왕 때인 1359년에 나옹이 중창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였다.
조선 세조때는 원당으로 지정되고 세조가 직접 행차하여 어실각을 건립하도록 한 뒤 조선 시대 내내 왕실의 원당으로 계속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는 본래 통보사에 있다가 임진왜란중 강탈당한 바 있었다.
이를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돌려받아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한국 4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큰 절이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북부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31본산의 하나로 신흥사와 백담사, 낙산사 등을 관할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전소되면서 조계종에서는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당시 폭격으로 수백 칸에 이르던 전각이 모두 타버려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현대에 새로 지은 건물만 단촐하게 서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에 포함된 위치 때문에 한국 전쟁 이후 오랫동안
민간인은 석가탄신일 하루만 특별히 드나들 수 있었으며 1989년에야 전면 출입이 허용되었다.
건봉사는 신라때 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워 극락에 오른다는 만일염불회를 개최한 이래
염불승을 많이 배출하였고, 한국의 대표적인 염불도량으로서 전통을 이어왔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머문 곳이라 호국불교의 본산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에 건립된 무지개다리인 능파교는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일제 강점기의 팔작지붕 사문인 불이문(不二門)은 한국 전쟁 때
이 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원도 문화재자료이다.
건봉사 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건봉사 일원의 홍교중에서 가장 외곽에 있는 석교 고성육정흥교(보물 1337호)
건봉사 계곡의 단풍을 배경으로
건봉사 입구의 노송
건봉사 주차장에 있는 약수터
불이문 옆의 금강산 건봉사 안내도
1920년대의 건봉사 전경 사진(당시 3,183칸의 거대 사찰)
극락전 지역의 사찰은 돌계단과 추춧돌의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건봉사 입구의 불이문(不二門)
사찰의 대문인 금강문 구실을 하는데 1920년 세워진 것으로 ‘두 가지 마음을 갖지 말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누각의 돌기둥 네 개에는 붉은색 칼 문양의 ‘금강저’가 새겨져 있다.
불교에서 ‘예리한 지혜의 칼’이란 뜻으로 사찰 수호를 상징한다.
19세기 후반 큰 불로 많은 건물이 소실됐고. 남은 수백 칸도 한국전쟁 당시 모두 잿더미가 된 것이다.
남은 것이라곤 불이문과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돌다리 ‘능파교’(천연기념물 1336호)뿐이었다.
불이문이라는 글씨는 조선의 마지막 왕세자 영친왕에게 서법응 가르쳤던 근대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 선생(1869-1933)이 쓴 것이다.
이 문의 특징은 기둥에 금강저를 새긴것이데 금강저는 견고함, 예리함, 밝음을 갗춘 지혜의 칼이다.
지혜의 예리한 칼로써 떨어지지 않는 번뇌를 사정없이 잘라내라는 뜻이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범종각이 보이고 한쪽에 석주가 서 있다.
'나무아미타불'과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글과 '불기 2955년 戊辰 여름'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1928년에 세웠다고 한다)
건봉사 범종각(과거에는 경내에 있었으나 현재는 건봉사 입구에 있다)
건봉사와 건봉사 계곡 전경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 종각 뒤로 넓은 공터가 나온다.
한국전쟁 전까지 극락전을 비롯해 열 채의 건물이 있던 자리다.
돌계단과 주춧돌 등의 흔적 위로는 이름 모를 야생화만이 피어 있을 뿐이다.
계단을 올라서면 연못이 나오는데 연못가에 십바라밀 석주가 두개 서 있다.
적멸보궁 가는 길의 두개의 연못
건봉사 독성각(탱화가 해인정사 탱화 제작하신 이진경씨 작품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그 자체가 불신(佛身)과 똑같이 여겨지므로 불상을 조성하지 않고 진신사리만 모시는데 이러한 사찰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이 적멸보궁 뒤쪽에는 석가모니 진신치아사리탑이 세워져 있는데
선조 38년(1605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아 온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경종 14년(1724년)에 건립되었다.
최근에 새로 지은 "적멸보궁" 뒤편 오른쪽 앞에 건립되어 있는 치아사리탑은 천고의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방현의 지대석에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구분한 팔각원당형의 부도이다.
기단부는 팔각형으로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을 완전히 구비하고 있는데 하대석에는 복련, 상대석에는 양련 등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탑신은 높이 53cm의 구형인데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옥개석은 팔각형으로 낙수면과 상면이 별도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한개의 돌로 조각된 상륜부는 연국문대, 편구형부재, 상단에 여의두문이 하단에 화문이 새겨진 부재가 있고 사리탑의 전체 높이는 1.6m이다.
지금의 적멸보궁은 1994년 5월 25일 준공하였다.
[적멸보궁 가는 길]
산신각
대웅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를 건너야 한다.
‘고해의 파도를 지난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30여 개의 돌이 반원을 이루고. 네모난 돌을 그 위에 수평으로 쌓은 석축 양식으로 1904년 세워졌다.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능파교를 건너면 바라밀 문양이 새겨진 두 개의 ‘10바라밀 석주’가 반긴다.
각 문양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등 열반에 들기 위한 10단계 수행을 의미하는데 건봉사의 일주문인 셈이다.
능파교를 지나면 바로 봉서루가 있고 그 전면에 십바라밀이 새겨진 석주가 서 있다.
이석의 높이는 160cm 정도로서 두개의 석주 각각 5개씩 도합 10개의 도형이 음각되어 있다.
봉서루 밑을 지나면 대웅전이 보인다.
금강산 건봉사 편액
대웅전 앞의 요사채로를 겸해 쓰이는 명부전
이곳에는 6.25전쟁 이후 이 지역에서 순직한 호국영령 1,238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봉사 감로수
부처님께 올리는 건봉사 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