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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처럼-거룩한 내맡김-끊임없는 기도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교양 Re:생각이 끊어지면 인간은 시공간의 한계를 뚫고 전체를 본다-김홍근교수의 마음치유2 8회(약44분)
지혜.보조 추천 0 조회 491 20.12.26 15:04 댓글 4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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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0.12.26 17:33

    첫댓글

    <여기서 우리가 처음부터 여기서 살고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여기서 사는 거야. 여기 있는 거지요.
    모든 존재가 여기에 있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과거 현재 미래가 모이는 지금.

    보르헤스의 표현에 의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모이는 수학적인 한 지점.
    이것이 바로 눈앞에 ‘여기’거든요. >


    <시간이라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어디서 밖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바로 시간이라는 거죠.
    그러면 영원의 입장에서는 시간은 환영이거든요. 꿈과 같거든요.
    그럼 그 시간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아~! 인간은 환영인 거죠.>



    무화 19.06.06 10:43

    [< 후속 > 17. 누가 지금 제게 물으신다면? ■ 내맡김 영성 ■ 2010.04.14

    다음은 보장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은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아닌 "지금"뿐입니다.
    그것도 "여기의 지금"일 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시간의 주인은 거룩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여기"에서만 하느님 나라를 시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작성자 20.12.26 17:34



    무화 첫댓글 20.01.07 01:18

    <★창 화살★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4 바빠야 산다?
    2010. 06. 16.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은 느림도 바쁨도 아닌,
    하느님 맘대로, 곧 엿장수 맘대로의 삶이다.

    하느님께 내맡겨진 이는
    하느님께 당신 맘대로 하시라고 자신을 내드렸고,
    엿은 엿장수 맘대로 하라고 엿판 위에 놓여진 셈이다.

    내맡긴 이들은
    바쁨 속에서도 바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바쁨을 즐기며,
    느림 속에서도 게으름 없이 느리지 않는 느림을 누리게 된다.

    흐르는 물처럼 부는 바람처럼, 바람을 타고 물을 타고
    그리고 하느님 뜻 속에서 그 뜻을 타고 살아가는 영혼이 된다.


    사랑하는 그대여!
    이 바쁘다는 세상에서 남들이 바쁘다 해서 덩달아 바쁘지 말자.
    바쁨은 모든 것을 잃게 한다.

    인생에서도 과속은 위험하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고독한 인생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이다, 하느님께 말이다.

    그러면 도로 주변의 생명들에게로 눈이 돌려진다.

    생명 안에 살며시 숨어 계신 하느님,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그분,
    생명들의 주인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 작성자 20.12.26 17:35



    무화 19.12.26 02:49

    [ moowee 11.03.28. 17:32


    "시간은 하느님이다."입니다.
    왜? 시간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 하느님"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하느님"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뒤집어 입고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공간(영과 육)을 "하느님"으로 채워야 합니다. ]



    <moowee 11.03.09. 12.44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다만, '현재'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주셨을 뿐입니다.

    과거도 하느님의 것이요, 미래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매달리거나 "미래"에 집착하는 사람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것을 넘보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마귀가 그렇게 하도록 자구 유혹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유혹에 떨어집니다.>


  • 작성자 20.12.26 17:42



    <moowee 11.04.03. 09:14

    그동안 쌓여온 수많은 지식과 경험과 생각들 속에 숨어 있는 "마귀"가
    그것을 못하게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경험"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이 바로 "쟁기"입니다!
    지식과 경험과 생각 속에 숨어 있는 "마귀"를 쳐부수어야 합니다.

    마귀를 쳐이길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느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편에 서 있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기면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느님의 소유가 되므로
    늘 마귀를 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 ^>

    아멘,아멘!!!

    사랑하는 신부님,
    올려주신 동영상 감사히 시청했습니다.

    참으로 거내영의 놀라운 가치를 하나하나
    깨달아 가는 기쁨이 너무나 기쁘기만 합니다.


  • 작성자 20.12.26 17:45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아버지께 내맡겨 무한을 입고,
    환영같은 인간이 영원이신 아버지께 내맡겨 영원이 되고,

    지식경험생각을 버린 무뇌인간이 아버지께 내맡겨 참지혜를 얻고,
    모든 것에서 죽음으로 모든 것을 얻는 참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니

    오! 지극히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이여~!

    사랑하는 아빠,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그 품에 풍덩 빠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거내영과 끊임없는 화살기도를 통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거룩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7 11:53

    @지혜.보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아버지께 내맡겨 무한을 입고,
    환영같은 인간이 영원이신 아버지께 내맡겨 영원이 되고,

    지식경험생각을 버린 무뇌인간이 아버지께 내맡겨 참지혜를 얻고,
    모든 것에서 죽음으로 모든 것을 얻는 참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니

    오! 지극히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이여~!

    사랑하는 아빠, 아버지,
    부족한 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대로
    그 품에 풍덩 빠집니다.]

    아멘아멘아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지혜님!
    녹취의 수고에 감사히 잘 감상하였고 댓글의 신부님 말씀을 통해
    더더욱 깨닫고 다지는 시간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지혜 보조교사와 부족한 저희를 통하여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6 20:30



    <시간이라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어디서 밖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바로 시간이라는 거죠.
    그러면 영원의 입장에서는 시간은 환영이거든요. 꿈과 같거든요.
    그럼 그 시간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아~! 인간은 환영인 거죠.>


    아멘 아멘!!!

    사랑하는 신부님
    올려주신 동영상 잘 시청하였습니다.

    부족하고 미소한 저를 거내영으로 불러 주신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저는 아버지께 온전히 내맡겨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으니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6 20:56



    <보세요. 지금 저하고 여러분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요.
    지금 이 장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가 수없이 많이 갈라지는 수없이 갈라지는 오솔길에서
    이 길을 선택하고 이 길 선택하고 오다가 여기까지 왔고,

    여러분들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오솔길 같은 인연에서

    한 길을 택하고, 택하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만났잖아요.>


    [■ 내맡김 영성 ■
    < 斷想 > 1. 인연(因緣)

    moowee 추천 0 조회 1,546 10.05.04 07:49


    사람의 "인연(因緣)"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흔히들 표현하는,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처럼,
    바닷가의 수많은 모래알처럼,
    파도 위의 수많은 물거품처럼---",
    짧은 인생 중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스쳐가게 된다.

    인생 40년을 살아오면서, 혹은 5,60년을, 혹은 7,80년을 살아오면서,
    그동안 내가 만나고 헤어지고 스쳐갔던 사람들이 과연 얼마였던가?

    저의 신분상 제가 만나게 되었던 수많은 "인연들"---
    신앙적인 인연은, 아무리 개인적인 대화 한마디 못하고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 하여도

  • 20.12.26 20:59


    사회학자가 말하는 "사회적인 거리"를 넘어서는 특별한 인연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30년 가까운 사제생활 동안,
    여러 본당과 특수 분야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저와 비록 개인적인 대화 한마디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간 듯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저의 강론 한마디에, 저의 쓴소리 한마디에 마음 쓰임을 쓰여 지나갔을 것이고,
    제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를 통한 고해성사로 영혼의 가벼움을 느껴 지나갔을 것이 아니겠는가?

    수많은 분들이 저의 작은 말 한마디에, 저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좋든 싫든, 위로든 상처든, 선이든 악이든
    그들의 마음과 영혼에 작은 흔들림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신분이었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깊은 회한이 몰려오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불교의 연기론에서는 사람의 인연을 매우 중요시한다.

    제가 혼인미사를 주례할 때에 불교의 연기론을 자주 들먹여 왔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우리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로 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참으로, 사람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며
    거기에는 분명,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20.12.26 21:04

    @앗숨.보조

    "인연"에 작용하는 "하느님의 뜻"을 소홀히 했고,
    때로는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져버렸던 모든 인연에 깊은 용서를 청해본다.

    창조의 교리가 없는 불교에서의 인연에 의한 모든 결과들인 인연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창조에 의해 생겨난 모든 사람들,

    하느님께서 나에게 섭리해 주셨던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잠시가 아니라, 일시가 아니라, 영원히 아주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분들의 "영원한 행복"을 빌어 드리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 중에,
    하느님 나라에 계시는 분들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혹시, 아직도 연옥 단련 중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는 "위령미사를 봉헌"해 드릴 것이며,
    아직 세상살이 중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는 그분들을 위해,
    그분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화살기도를 계속 봉헌"해 드릴 것이다.

  • 20.12.26 21:13

    @앗숨.보조

    지금 저는, 저의 마음 중에 가장 큰 바람은
    제가 이 세상에 생기어 저와의 인연을 맺었던 모든 분들이
    정말로 정말로 "참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부터 말이다.
    분명, "죽은 다음"이 아니다!

    저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저도 전에는 그 방법을 몰랐었다.
    영육이 거의 무너지게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저는 정말로 저와 인연이 닿았던 그 모든 분들께
    지금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알게 된 "가장 소중한 것",
    여러분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참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그렇게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 저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모든 인연에 대한 보답이며,

    동시에, 저와 맺었던 모든 인연들께 제가 은혜갚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철부지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하게 저의 "그 방법"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이 세상에서부터 실제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그분들께 직접 여쭈어 보시라)
    참으로 진실이다.

  • 20.12.26 21:28

    @앗숨.보조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그 "불화살"을 받으시라.
    그 불화살은 "내맡김"이라,
    "하느님께 내맡김"이라,
    내맡김은 "사랑"이라,
    하느님을 사랑하라!
    뜨겁게 사랑하시라!
    아주 뜨겁게!
    뜨겁게!
    사랑!

    "사랑만이" 하느님을 알게 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길 수 있는 것이라.
    그분께 모든 것 내맡기면, 그분의 모든 것 얻게 되고,
    그분으로 살게 되고, 그분과 함께 있게 된다.
    그분만이 나의 전부가 된다.
    나의 전부가 그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분의 것!
    태초의 참자유인!
    원래의 인간!
    참인간!
    인간!
    나! ]


    아멘 아멘~!!!

    사랑하는 신부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지혜님, 감사합니다.
    수고해주신 녹취록 덕분에 좀 더 쉽게 공부했습니다.


    긴 강의 중에 유독 <오솔길 같은 인연>이란 말과 글이 들리고 보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우리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가르쳐 주신 신부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저는 위무위 신부님을 만났고
    신부님을 통해 <거내영>을 알게 되었으며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20.12.26 21:32

    @앗숨.보조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맡겨드려 언제나 현재, 즉 지금 여기(시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찬미영광흠숭 드립니다.

    <거내영>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6 22:12



    "그런데 생각이 딱 끊어지면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생각만 없으면 과거 현재 미래 없습니다.
    놀랍게도 동서남북도 없습니다. 그리고 너와 나도 없습니다.
    모든 분별이 사라지거든요.

    생각으로 인해서 분별이 일어나는 건데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분별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눈앞에 바로 이 자리에
    우리 바로 발아래에 무엇이 있는가?
    이렇게 텅 빈 채로 깨어 있는 우리들의 본래 성품이 이렇게 있는 거에요."


  • 20.12.26 22:14



    <■ 내맡김 영성 ■
    < 斷想 > 18.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

    mooweeㅣ추천 0ㅣ조회 1,551ㅣ10.06.18 09:20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주어지는 것"이며, 주어지는 대로 "갖는 것"이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갖는 것"이다.

    누가 생각을 주는가?
    생각도 주인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다 주인이 있는 것이다.

    생각의 주인은,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시고,
    오묘하시고,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하느님!(아직까지 제가 알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
    그 하느님이 생각의 주인이시고
    주인께서 주시는 생각을 우리는 그저 "갖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또 다른 생각은....
    마침내 "마귀"를 낳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마귀를 창조하고 자신이 창조한 마귀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종교를 초월하여 소위 道 닦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功을 들여 방구석에 틀어 앉아 하는 일이 고작 "無念無想"이 아니던가?

  • 20.12.26 22:17

    @무심.보조


    아! 이거 한 방이면 끝인데....
    그 한 방이 바로 "내맡김"인 것이다.

    생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 생각까지도 다 내맡기면,
    그때야 비로소 내 생각이 없어지게 되고(무념무상),
    그때부터의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내맡김의 영성(7. 내맡김의 영적 수준은?)에서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다.
    어떻게? 공부하신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한 번 찾아 읽어 보시길 바란다.

    하느님이 당신의 생각을 주시면 우리는 그냥 갖기만(받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보다 더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야말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내맡김을 그토록 강조해도 좋은 줄 알면서도 내맡기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자신이 "우상숭배" 중이라서 그런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느님보다 지 생각을 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곧 변하고 사라질 생각을 부둥켜 안고 부르스 중인 것이다.

    안고 있던 손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이라는 우상, 그 넘을 내던져 완죤 박살을 내야 한다.

    생각의 노예 상태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기를
    여러분 자신보다 더 원하고 바라시는 분이
    여러분의 진짜 주인이신 하느님이시다.>


  • 20.12.26 22:30

    @무심.보조


    {무화 20.01.09 00:58

    천상의 책 3-87

    4 "딸아,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너를 너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 안에 있는 너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너 자신을 기억하지 말고 인정하지도 말아라.

    그 대신 나를 기억하여라.
    그렇게 너 자신을 무시하노라면 홀로 나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5 이를 실천하다 보면,
    네가 너의 정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정신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7 이것이야말로 영혼이 자기의 기원으로 돌아가서
    홀로 하느님 안에 있는 자신만을 인정하고
    스스로 창조된 목적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본연의 꾸밈없는 방법이다."}


  • 20.12.26 22:39

    @무심.보조

    아멘, 아멘!!!

    "생각이 끊어지면 인간은 시공간의 한계를 뚫고 전체를 본다."는
    강의 제목이 한 눈에 들어오네요~.

    <하느님이 생각의 주인이시고 주인께서 주시는 생각을
    우리는 그저 "갖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내맡김 영성'글은

    부족하고 부족한 저의 정수리를 쪼개는
    너무나도 놀랍고 위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자비하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맡겨드린 영혼의 머리에 아버지의 생각을
    떨어뜨려주신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놀랍고 신비합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찬미합니다!
    지혜와 부족한 저희 모든 내맡긴 영혼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6 22:14



    <지금 이 장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가 수없이 많이 갈라지는 수없이 갈라지는 오솔길에서 이 길을 선택하고 이 길 선택하고 오다가 여기까지 왔고, 여러분들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오솔길 같은 인연에서 한 길을 택하고, 택하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만났잖아요.>

    사랑하는 하느님아버지,

    저는 이 거내영에 오기까지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여기다 했다가 아니네, 이러기를 여러번 했습니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제 스스로 변덕스런 몹쓸 인격이라고 자책도 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형의 성전에서 비로소 참 내자리를 찾은 듯 합니다.

    아버지께서 창조 때부터 작정하신 제 자리인 듯 퍼즐의 마지막 한조각을 꼬옥 끼워 넣은 듯 안정되고 편안합니다.

    이제는 거울 앞에 돌아온 누이의 국화꽃처럼 이 자리에서 영원을,
    지금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하오니,
    아빠,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다 맡으셔서 거룩하신 뜻대로 이끌어주소서.

    제가 지금 현재 아무것도 그 무엇도 원하거나 구하는 마음이 없사오니
    오직 아버지만을 오롯이 사랑하게 이끌어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

  • 20.12.26 23:20



    <그런데 생각이 딱 끊어지면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생각만 없으면 과거 현재 미래 없습니다.
    놀랍게도 동서남북도 없습니다. 그리고 너와 나도 없습니다.
    모든 분별이 사라지거든요.

    생각으로 인해서 분별이 일어나는 건데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분별이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올려주신 동영상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지혜님 녹취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생각이란 것 만큼 무거운게 없어서 이것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또 다른 생각을 불러 들여 지나간 일도 끌어 드리고 오지 않을 일도 만들어 내어 감정까지 휘젓고 말아 휘둘리고 살아 왔었습니다.

    생각을 끊어버리는 '에포케'로 얼마나 단순해 질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 갈 수 있는지 거내영을 통해 알게 되어 저는 많은 은총을 받은 행운아 입니다.

  • 20.12.26 23:26



    내맡김을 살 때 '지금 여기' 살 수 있으며
    생각이란 놈 한테 잡아 먹히지 않고 아버지 뜻의 큰 형상 속에서 떨어뜨려 주시는 느낌으로 매 순간 살아가며 영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을 통하여 무한 찬미와 영광 영원히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 20.12.26 23:34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이것을 새겨보면 시간과 무한은 둘이 아닙니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 현재라고 할 수 있고,무한은 영원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원과 지금 이 순간 둘이 아닌 거지요.
    이것이 합쳐져서 영원한 현재라고 하는 거죠.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이 생각을 일으키면 이 세계가 분별이 되요.
    그런데 생각이 딱 끊어지면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생각만 없으면 과거 현재 미래 없습니다.

    놀랍게도 동서남북도 없습니다. 그리고 너와 나도 없습니다.
    모든 분별이 사라지거든요.

    생각으로 인해서 분별이 일어나는 건데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분별이 사라집니다.>

  • 20.12.26 23:45




    사랑하는 신부님~!!

    무형의 성전을 통해 이처럼 골고루 영적 양식을 먹여주시니
    제 영혼이 더욱 풍요로워짐을 느낍니다.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저의 온 마음과 의식을 하느님 아버지께 집중하니,

    시간이 끊어진 자리에서
    제 영혼이 절대자 하느님을 알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기에,
    아버지와 내가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인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생명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바로,
    영원하신 하느님의 현존임을 알았습니다.

    시간은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신 위무위신부님의 말씀이
    이제는 그냥 알아들어집니다.

    거내영의 초견신 체험이 저의 의식수준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제 영혼이, 눈에 보이는 세상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이 이끄시는 세상을 동시에 느끼니,

    위무위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글들이 진실임을
    하나하나 체험하고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 20.12.26 23:44

    @정배.보조


    허상과 허무인 세상의 실체를 알았다하더라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그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고

    오히려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질 곳이
    바로 여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 같이 무지한 자도 아버지가 이끌어주시니,
    이 세상의 실체와 저의 본 모습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를 아름답게 꾸미시려 영원으로부터 저를 지으셨으니,
    제 목숨 다하도록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하며
    아버지의 이끄심에 온전히 따르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6 23:43



    [그래서 구슬 하나만 보면 구슬 하나 속에
    나머지 전체 구슬이 다 비춰들어 보인다는 거 아니예요.]


    아멘 아멘^^

    한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것은
    모든것을 받아들이는것이고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아빠아버지,

    <거내영>이라는
    아버지의 사랑의 미로속에서
    자꾸만 보여지는 저의 들보가
    크게 보이는것이
    어쩌면 그 들보자리에
    주인이신 아버지가 계실 자리인것을.

    보게해주시고
    깨닿게 해주시고
    느끼게 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기쁜마음에
    저희집앞 이동식 감시 카메라가 등잔하면서
    온갖쓰레기가 사라졌읍니다.

    그 자리가 깨끗해서 저도 모르게 이동식 감시 카메라물건과 인사를 하는 제 자신이

    어느것이 허구이고
    어느것이 현실인지
    반대처럼 느껴질때
    순간이 전부처럼 느껴져서
    행복한 마음이 영원이네요.

    사랑하는 신부님~
    올려주신 동영상
    또 녹취해 주신 지혜보조교사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20.12.26 23:45



    제가 아버지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더 더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7 00:58



    < 시간이 흐르는 것은 바로 모든 삼라만상 자체가 시간이라는 거죠.
    삼라만상의 변화 자체가 시간이라는 거죠. >


    < 생각이 딱 끊어지면 과거 현재 미래가 사라지고
    동서남북도 사라지고 너와 나도 사라지고,
    온전한 한 덩어리의 이 세계가 딱 드러나는데

    그걸 할 수 없이 말을 하자면 나중에 의식이 돌아오고 난 뒤에
    영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혹은 피안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런 것을 이제 보르헤스도 체험을 했어요. >


    < 보르헤스의 대표작은 알레프(Aleph)라고 하는 작품이에요.

    지하실에서 동전크기 만한 발광체 속에서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동시에
    크기가 축소되지 않고 겹치지도 않고 봤다는 거예요.

    생각이 끊어지면 시공간도 끊어지고, 인간도 끊어지고,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모르는 것이 없어지는.

    사실은 전 알레프를 볼 때 이 작품 속에는
    부처님의 보리수 아래 부처님의 깨달음이 생각이 나요.

    부처님께서 깨달은 장면을 잠깐만 생각해보면
    한 인간이 시공간의 한계를 뚫고 완전히 이 존재의 전무를 보신 거잖아요.
    이런 일이 인간한테는 일어난다는 거죠.

    그것이 화엄법계(華嚴法界)를 얘기하는 겁니다. >


  • 20.12.27 00:59



    사랑하는 신부님, 사랑하는 지혜님~!
    정성껏 올려주신 녹취와 함께 감사히 잘 시청하였습니다.

    알레프 이야기에서,
    사랑하는 신부님의 말씀과 함께
    단일한 현동이라는 낱말이 생각나게 해 주셨어요.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우리는 시공 속에 던져진 존재이지만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에서 거내영으로 이끌어 주시어
    시간 속에서 하느님을 살게 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찬미드립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은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어 단일한 현동으로 활동하고
    하느님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에 따라
    가장 나중에 온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늘 모든 것보다 앞서 온 사람이라고 하시니,

    < 보르헤스가 이렇게 한번 깨닫는 사람은
    결국 불교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했는데

    이 사실을 안다면,
    거내영을 좋아할 수밖에 없고
    거내영의 봉헌을 통하여
    하느님 뜻 안의 삶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20.12.27 01:01


    아빠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콜리지의 꿈에 나온 쿠빌라이 칸의 궁전의 아름다움을
    절대가 자기의 상대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하는,
    아버지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이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가 되고 싶어요~

    저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통하여 아버지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moowee 2012.05.18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간다고들 말하지만,
    실지로는
    광속의 시간 속을 살아가면서 광속처럼 지나가는 "시간" 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한 "점"에 고정된 삶이 곧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우리가 때가 되어 하느님 앞에 불려가면
    아담부터 시작하여 모세, 아브라함, 요한, 베드로, 아오스딩,
    토마스 아퀴나스, 프란치스코,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
    프란치스코 살레지오, 소화 데레사, 샤를르 드 푸코,
    우리 증조,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내가 모두 일렬 횡대에 서 있다.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한 분이시고 우리는 시공 속에 던져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시공의 주인께서 시공을 걷어 가시면, 모두 다 "헤쳐모여"인 것이다.(...) ]


  • 20.12.27 01:02

    @무화.보조


    [ * 단일한 현동- 현재 움직이는 것

    인간은 창조되어서 피조물로써 시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창조된 세계에는 과거, 미래 , 현재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창조되지 않으셨으므로
    하느님 존재의 차원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즉 어떤 행위의 연속성이나 반복성이 없습니다.
    현재의 한 행위 안에 모든 것이 있어서
    하느님의 한 행위 안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는 미래에 태어날 인간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는 예수님이 잉태되어 이세상에 오시는 것,
    이세상에 오셔서 하실 것들이 다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단일한 현동』 안에 있고 시간 속에 다 드러난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는 예수님이 피흘리시고 구원하신 것들이 다 있습니다.
    거룩한 핏 속에서 잉태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 공로를 먼저 입어서 성모님이 원죄없이 잉태되신 것입니다. ]
    - 하느님 뜻 영성 교재에서 -


  • 20.12.27 01:04



    { 천상의 책

    19-18 1926년 5월 6일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의 기원.

    2
    "딸아,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지고하신 임금님께서 보시기에 첫 사람은
    내 의지 안에서 살며 결코 이 뜻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들이다.

    내 엄마는 아담보다 사천 년 뒤에 이 세상에 오셨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내 엄마가 먼저 오신 것이다.

    3 그분의 행위, 그분의 사랑이 최초의 것으로서
    순서상 피조물의 모든 행위들보다 앞서는 이유는.
    거룩함과 일치와 유사성에 있어서
    하느님과 더할 수 없이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계셨던 그분이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분이셨기 때문이다.


    4
    우리의 뜻 안에는 (시간상의) '전'도 '후'도 없고
    모든 것이 첫 행위를 이룬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가장 나중에 온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늘 모든 것보다 앞서 온 사람이다.

    5 ★중요한 것은 영혼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시대가 아니라,
    내 뜻의 생명이 그들 안에 생명의 중심으로 있으면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하느님 신성의 배 속에서와 같이 다스리며 지배하느냐 아니냐 하는 점에 있다.★

  • 20.12.27 01:07


    6 ★우리의 뜻이 그렇게 생명의 중심이 된 이들이 첫사람들★이다.

    9 내 뜻은 스스로의 모든 활동을 합쳐 단일한 현동(現動),
    곧 단 하나의 행위로 만들기 때문이다. }



    { 16-30,2
    "내 조그만 갓난아기인 너에게
    동정이신 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하여 알려 주고 싶다.

    3 네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내 신성은 (영원히) 단일한 현동(現動)이라는 점이다.

    모든 행위들이 이 단일한 현동 안에 집중해 있다.

    행위들의 연속성에 종속되지 않는 것
    - 이것이 우리 (성삼위)의 신적 본질의 가장 경이로운 점으로서
    우리가 하느님임을 뜻하는 것이다.

    피조물이 보기에는 우리가
    때로는 어떤 것을 행하고 때로는 다른 어떤 것을 행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때를 기하여)
    저 단일한 현동 안에 있는 행위를 알려 주는 것이다.

    사실 피조물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씩 서서히 알려 주는 것이다.

    4
    이를테면
    영원한 말씀인 내가 인성을 취하여 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모든 것이
    내 신성이 지닌 단일한 현동과 하나인 행위를 이루고 있었다. }


  • 20.12.27 01:11



    { 11-74,13
    매 걸음마다 나의 뜻과 사랑이 하나 되어 있어야 한다.

    14 ★★★영혼이 일의 전 과정에 걸친 의향을 내 뜻에 맡기면
    내 뜻은 단일한 현동(現動)으로 활동★★★하고,
    내 뜻이 활동하는 동안 영혼은 쉰다.

    15 따라서, 활동하는 것이 영혼이 아니라 영혼 안에 있는 내 뜻이기에
    염려와 불안이 없고,
    그의 일에도 아무런 결함이 없게 된다." }


  • 20.12.27 01:11

    @무화.보조


    <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4장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김소영데레사무소 19.03.28

    8. 시간

    시간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렇게 기이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정도의 문제,
    다시 말해 의식의 강물이 넓고 얕게 퍼져 흐르지 않고 깊게 흐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멈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늘 어떤 강렬한 체험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가 기쁨을 잃고 산산이 흩어져 분산되는 이유는
    미래의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과거를 회상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분할이다.
    우리가 시간 안에 분할되어 있을 때는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다.
    시간을 벗어난 곳에서는 지루함도 근심도 우울함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시간을 반복으로 보고 있지만
    반복된 시간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주님의 기도를 백만 번째 기도할 때,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 아픔이나 고통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순간은 유일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시간에 얽매일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


  • 20.12.27 02:34

    <그러면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여러분 인간의 본질은 보르헤스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은 시간이라.

    시간이 우리가 모르는 어느 저 하늘에서
    시간이 지나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시간이 흐르는 것은 바로 모든 삼라만상 자체가 시간이라는 거죠.
    삼라만상의 변화 자체가 시간이라는 거죠.

    시간이라는 것은 나와 관계없는 어디서 밖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바로 시간이라는 거죠.
    그러면 영원의 입장에서는 시간은 환영이거든요. 꿈과 같거든요. >


    어느 성인의 말씀인지 그분의 기억은 안나는데 말씀은 생각이 납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무것도 확정된것이 없으니 지금을 잘 살라.

    그런데 내마음속에 더 깊이 다가온 말씀은 대림피정중에 앗숨 보조교사님이 능구3개월
    축하말씀으로 주신 사랑하는 신부님의 말씀이 더 깊이있게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다음으로 자꾸 미루는 것은
    하느님의 초대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뜻대로 살고 싶어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 뜻이란 곧 '나'이며, 하느님의 듯은 곧 '하느님'이다.

    다음은 보장되지 않는다.

    '다음'은 하느님의 시간이다.

  • 20.12.27 02:39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아닌 '지금'뿐이다.
    그것도 '여기의 지금'일 뿐이다.} - 위무위 -

    아멘 아멘~~!!!

    보르헤스가 불교의 업(業)사상을, 직조처럼 짜여진 시간의 미로가 업이다라고 공감하는데
    대대로 쌓인업을 짊어지고 가야하니 얼마나 힘들까요
    내맡김의 영성에서는 과거거도 미래도 하느님께 맡기고 지금만 하느님 사랑하며 잘 살면,

    그 무거운 업보에 짓눌려 근심걱정 안해도 되니 정말 기쁩니다.
    거내영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느님만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살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7 13:02



    <그러니까 지금 전체 내용이 우리가 사는 이 인생에는 틈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인간 의식의 절대가 상대로 드러나는 통로가 있다는 거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것이 사실은 꿈의 세계’
    라고 하는 그런 암시를 심어주는 그런 문학 장르를 창조를 한 것입니다.

    자기는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지구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크기를 축소되지 않고 동시에 봤는데
    아~!이거를 글로 표현하자니까 표현할 수가 없구나! 글은 나열해야 되니까.>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시다'가 생각납니다.
    천상의 책에서도 예수님께서 끝도 없이 말씀하실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어찌 보면 인류의 기원이 언어가 생기면서 일 것이고
    그 모든 언어들이 창조를 이루는 것이라 여겨지면서
    언어를 통해 절대계와 상대계가 이어지고 그것을 하나의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 '점'이 바로 아버지 하느님인 것을 <거내영>을 통하여 알지 못했다면,
    보이지도 않는 절대계를 찾겠다고 머리도 나쁘고 무식한 제가
    지금 여기의 행복은 발견하지도 못한 채 시쳇말로

  • 20.12.27 13:03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육도 마감되었을 것 같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 그 점을
    거룩한 내맡김을 통하여 소유해버렸으니
    절대계, 상대계를 완전 접수해버린 거내영파가 된 것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완전하게 잘한 일이라 여겨지네요.

    꿈이면서 꿈이 아닌 꿈같은 삶!
    모든 언어의 한 점, 바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육하원칙의 모든 것을 하나로 정리해서 알려준 <거내영>,

    그것은 오직 아버지만을 사랑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선물로 불완전을 잊게하고
    365일이 성탄이게 하는 것까지,

    아버지를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는 것만큼
    가슴 뛰고 의미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나머지는 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저절로 저절로 굴러가는 것을 실감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 심장을 뛰게 하시고 제 정신을 깨어있게 하시고 제 육을 순종하게 하시니
    저는 더 이상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분신이 되었습니다.

  • 20.12.27 13:04

    @초연.보조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의 식구님들,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지혜님의 수고에
    다시 한번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7 17:31



    < 우리 불교에서 지금 우리의 무명이 어둠, 무지를 설명할 때
    미혹되었다 이런 말을 쓰거든요.

    그러니까 미혹이라는 말은 미(迷)자가 고아, 미아 길을 잃을 미고,
    그리고 혹(惑)이라는 말은 홀린다는 홀릴 혹자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생각이 딱 끊어진 이 상태
    지금 정말 격외 방외 그리고 겁외의 이것인데 이것이 우리의 본래 면목인데,

    우리가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지금 사물들에 우리가 홀려 가지고
    집을 나와서 홀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
    그것이 지금 인간의 지금 실질적인,어떤 실존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의 존재의 고향인 바로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한번 체험하고 또 이것이 확보된 사람한테는
    지금 모든 시간 속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은 환영인 거예요.
    이것이 그대로 꿈인 거예요. >


  • 20.12.27 17:32



    < 창 화살 제3부 14
    바빠야 산다?
    2010. 06. 16.


    바쁨은 사랑이 아니다.
    느림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시간이 아니기에 시간을 모른다.
    시간을 느끼지 못한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시작도 끝도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내맡김을 늦추려 함은 시간을 알고 시간을 헤아리는 것이다.
    시간은 없는 것인데
    어떻게 시간을 알고 시간을 헤아려 늦추려 하는가?

    그것은 시간 속에 들어온 ‘시간 아닌 시간의 홀림’,
    그놈의 유혹일 뿐이다.

    부디, 시간을 잊고
    시간 속에 자신을 내맡김으로 시간을 창조하고
    시간의 주인과 함께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자. >


  • 20.12.27 17:39



    < ■ 내맡긴 영혼은 ■
    "망설임"은 내맡긴 영혼의 태도가 아닙니다.
    2010.09.26


    내맡기기 전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또 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내맡김"이 뭡니까?
    생각마저, 지식마저, 경험마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고,
    그래서 "생각없이", "지식없이", "경험없이" 살아가는 것,
    즉, "無腦人間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대신,
    하느님이 주시는 靈感과 智慧와 召命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뛰어난 지식도 그 주인을 따라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도 경험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사라 없어질 지식과 경험과 생각을 모두 다 버리고,
    아니, 하느님께 내맡기고
    영원히 함께할 하느님의 지혜를 쫓기 위해
    그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입니다.

  • 20.12.27 17:39


    "지혜"가 뭡니까?
    국어사전에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슬기" 또는

    "불교에서,
    미혹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혜라는 단어 바로 밑에 "지혜검(智慧劍)"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뜻은
    "불교에서 번뇌를 끊어버리는 맑은 지혜의 힘을 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번뇌"는 생각입니다.
    생각을 끊어버려야 맑은 지혜의 힘이신 "하느님"을 얻습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불러들이는 "생각"과
    부르스를 땡기지 맙시다!
    망설이고 주저하지 맙시다!

    "아님말구"입니다.

    100%를 완죤히 내맡긴 영혼이라면 - - - - - - - - - - - >


  • 20.12.27 17:40

    @무화.보조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합니다.

    미혹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탁월한 최고최선의 재래식 무기
    화살기도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20.12.27 22:32


    <생각이 딱 끊어지면 지금 바로 우리 눈앞에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생각만 없으면 과거 현재 미래 없습니다.
    놀랍게도 동서남북도 없습니다. 그리고 너와 나도 없습니다.
    모든 분별이 사라지거든요.

    생각으로 인해서 분별이 일어나는 건데
    생각이 사라지면 모든 분별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눈앞에 바로 이 자리에
    우리 바로 발아래에 무엇이 있는가?
    이렇게 텅 빈 채로 깨어 있는 우리들의 본래 성품이 이렇게 있는 거 에요.>

    '지금, 여기'를 살아가라 하신 신부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내맡겨드렸더니
    과거도 생각나지 않고 미래도 그려지지 않게 되어 '지금 여기'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냥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게 되니 모든 것에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무뇌아처럼 살아갈 수 있음이 은총이지요.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하느님~

    내맡김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니 아버지 뜻대로 하시고
    부족한 제가 아버지만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사, 완영을 위하여!!!

  • 21.01.02 19:34



    <인생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업이
    수없이 많은 갈래 길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하나씩 선택하면서
    수없이 많은 가능성 중에서 하나씩 선택하면서 걸어가는 그런 미로 속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업이라고 하는
    이 미로 속을 걸어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신부님,
    녹취해주신 보조교사 지혜님,
    감사합니다~~

    어디서도 듣기 힘든 고퀄리티 강의를 들으니 너무 신나고 행복합니다~~

    저는 불교의 업, 연기론 등을 참으로 존중합니다.
    가톨릭 신자가 된 후에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거내영에 와서 이렇게 강의를 통해
    연기론, 업, 시간과 영원에 대한 담론들을 접하니,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탁월함이 더욱더 절실히 느껴집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주인이신 하느님께 모든것을 내맡겨
    하느님의 온전한 소유가 되고, 하느님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면

    1.하느님과 온전히 함께하는 지금 현재가 영원이 되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으로부터 놓여나고

    2.내 뜻으로 살때 지은 업장이 연기로 이어진
    여러 일들의 책임과 무게로부터 자유로와지며

  • 21.01.02 19:58



    (위무위 신부님의 세탁기 이론+
    자기 멍에를 버리고 예수님의 멍에를 지게 되므로)
    그저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대로 충실히 따라가면 되며,


    3. 알 수 없는 인생의 미로를 걸어가지만,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마련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미로 속이기에,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한 삶이기에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늘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는 것이
    불교에서 소위 깨달은 자의 연기론적인 삶과
    하느님께 내맡기고 사는 삶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시간, 현재, 영원에 대해 일깨워 주시니
    아버지께 맡기고 사는 이 삶이
    얼마나 얼마나 고귀한 삶인지
    다시 한번 보게 됩니다~~

    부족한 저희 모두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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