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치원생 오빠
배정순 7
1. 서울 아들 집에 올라왔다. 오랫만에 병환중인 세째 오빠집에 문병 겸 들렀다. 잠자리를 안내받아 들어간 방에 짧은 편지며 그림, 조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에 없던 풍경이다. 동화 나라에 온 기분이 되어 얼른 든 생각이 손주들 작품이구나 싶었다.
2. 가까이 가 보니 단문의 편지글이 낯익은 필체였다. “여보 고맙소. 당신을 사랑하오!” 그때에야 감이 왔다. 이 방안 전시물의 주인은 노치원생 오빠라는 걸. 콧날이 시큰했다. 분명 마음이 가라앉을 상황인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 인생은 이렇게 아기가 되어 이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아기가 되어 제 자리로,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순간의 내 마음이 그랬다.
3. 올케의 남편 돌보는 손길이 갓난아기 돌보는 엄마의 마음 같았다. 오빠가 언제 저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내가 오빠와 언니의 사는 모습에서 인생행로의 귀의歸意라고 느낀 건 사는 모습이 따듯한 봄날 같아서이다. 올케의 병든 남편 돌보는 손길이 엄마의 그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오빠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올케의 말이 빈말로 드리지 않았다.
4. 우리 가족의 아픈 과거사가 되살아난다. 큰오라버니는 시골에서 살다가 자식들이라도 잘 키워볼 요량으로 전답을 팔아 서울에 올라왔다. 둘째 오빠가 일찍이 서울 큰 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운좋게 대기업에 스카우트 되어 해외지사에 진출했으니 믿을만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형제들은 듯을모아 사업체를 만들었다. 한데 믿었던 사업체는 몇 년 안 가 불황에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무모한 도전이었음을 깨달은 건 사업이 기울고 난 후였다.
6. 산 사람 코도 베간다는 서울, 엉성한 사업은 엄혹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사업하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다면 누군들 못할까. 부표 잃은 배가 순항할 순 없지 않은가. 형제들은 빈 털털이로 바닥에 떨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7. 그때 아마도 식구가 단출한 셋째 오빠 지분이 가장 적었던 것 같다. 오빠는 기술도 있고 아직 젊으니 취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낮아진 마음으로 욕심 없이 세탁업을 선택했다. 옷과 연관된 일이고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니,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으리라 믿었던 게다.
8. 노력한 만큼 보상은 돌아온다는 말 대로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한 목적으로 일하니 시나브로 재산이 늘어났다. 집 사고 아들딸도 말썽 없이 잘 자라주었다. 아들은 큰 제약 회사의 지점장, 딸은 외국계 회사에서 자리를 잡았다. 나이가 있고 생활의 여유도 생겨 세탁일을 접었다. 자식들도 분가하고 이제부터는 부부중심의 삶을 살고 싶어 올케는 올케대로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오빠는 오빠 대로 서예 학원에 등록했다.
9. 목표 지향적인 오라버니의 성향 탓일까. 모처럼 주어진 노년의 시간이 너무 아까웠을까? 취미생활도 일하듯 서예에 매료되어 온종일 서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화선지에 한 획한 획 글을 완성해 가는 게 너무 즐겁다고 했다. 그무렵에 오라버니의 목소리에는 윤이 흘렀다.
어느 날 전시회를 한다고 했다. 개인전이 아닌 합동 전시회인데도 좋은 글을 선보이기 위해 서실에서 산다고 했다. 그게 무리였을까? 전시회에 낼 글 준비하다가 서실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 그 후유증으로 언어도 어눌해졌다. 더불어 그 좋아하던 서실도 갈 수 없게 되었다.
10. 평생 일만 하던 오라버니가 뒤늦게 찾은 행복은 펼쳐보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다. 그 후 삶은 보지 않아도 보였다. 우울했으리라. 불행은 꼬리를 물고 온다고 했던가. 얼마 안 있어 같은 병명으로 다시 쓰러지는 치명타를 입었다. 병원에 달려갔지만, 그때는 이미 치료 적기를 넘긴 후였다. 그 후의 삶은 우울함이 일상이었다. 마음의 병이 깊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애석하게도 혈관성 치매라는 달갑잖은 진단을 내렸다.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부터 살만하다 싶었는데 우리 오라버니 인생 억울해서 어쩌나!
11. 우여곡절 끝에 평정심을 찾았지만 오빠는 올케에게 아이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올케의 눈물겨운 병간호가 시작되었다. 규칙적인 운동, 옷 입고 벗기기, 치매에 좋은 음식을 챙기기, 매사 부실하지 않도록 언니 손길이 따라다녔다. 집에서만 간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가 노치원의 소재를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 유치원 보내듯 남편을 노치원에 등록했다.
12. 다행히 오라버니가 순한 치매여서 노치원에 적응을 잘한다고 했다. 웃음이 많아졌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셨다. 치매 증상의 한 부류라고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올케도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남편이 없으니 숨 쉴 틈이 생겼다며 그 삶에 적응해 살고 있다.
올케는 노치원 설립자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다들 전직 대통령을 정치 못했다고 원망하지만 치매 환자를 위한 시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해준 대통령이어서 고맙다고. 가끔 노치원 오빠 수업 영상을 보내오기도 한다. 언니는 오빠가 이리 가무에 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 모습이 평화롭다. 아마 드러내지 않아 그렇지 그 속에는 고단한 삶의 여정을 품고 있으리라.
14. 주위에서 보면 가족이 조금만 치매기를 보이면 자식들까지 나서서 요양원에 보내버리는 게 보편적인 추세다. 한데 우리 오라버니는 치매인데도 아내의 정성스런 돌봄을 받아 포실하게 살고 있다. 자식들도 지극 정성이다. 성공은 부나 명예가 아닌 살아낸 과정이라고 볼 때, 오라버니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정이 흐르는 화목한 가정을 가꾸지 않았는가. 가족의 따뜻한 간병 받으며 살다 가는 거니 오라버니 인생, 그리 억울할 건 없을 것 같다.
첫댓글 12차시인데
7번째 작품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음 차시로 넘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