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자에게 험비(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 HMMWV)는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다.
국군 군용차 레토나와는 차원이 다른 담대한 풍채가 넘볼 수 없는 강인한 존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 군용차는 저런 맛이 있어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한 번이라도 타보고 싶다는 열망이 자연스레 마음 속 깊숙이 끓어오른다.
그중에는 마초적인 남성상을 꿈꾸며 소유욕을 품는 이도 있기 마련. 그러나 군용차는 어디까지나 군용차.
소유 자체가 불가능하고 우여곡절 끝에 명의를 이전했다고 해도 번호판을 달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하는 차선책이 바로 민수용 험비인 허머(HUMMER)를 구입하는 것.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람한 차체로 도로 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표출한다.
제아무리 크다고 우기는 대형 SUV도 숨죽이며 고개를 떨어뜨릴 정도…….
강한 존재를 우러러보는 남자의 로망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그 어떤 차로도 대체될 수 없는 기세등등함이 차 곳곳에
서려 있다.
지난 1992년 H1(1992~2006년)을 시작으로 역사를 써 내려간 허머는 2002년 H2(2002~2009년),
2005년 H3(2005~2010년)를 차례로 내놓으며 SUV계의 강자로 군림했다.
2010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지만 특유의 매력으로 현재까지도 시장을 형성 중이다.
이 중 험비를 베이스로 제작된 H1은 오리지널 디자인과 이제는 몇 대 남지 않은 희소성으로 1억원이 넘는 값에 판매돼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 상태.
따라서 상대적으로 물량이 많고 가격도 저렴한 H2, H3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허머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으며,
주행거리와 연식에 따라 H2가 3,000만~8,000만원, H3가 2,000만~4,000만원대의 가격을 형성 중이다.
이번 시승도 비교적 구하기 쉬운 H2와 H3로 진행됐으며 두 대 모두 허머라이프를 체험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세월을 거스른 디자인 험비 스타일을 최대한 유지한 채 군용차의 색깔을 뺀 H2는 각진 차체를 부드럽게 다듬고 크롬 도금된 소재를 구석구석
가미해 ‘HUMMER=H2’란 공식을 완성한다. 직각에 가까운 윈드실드 글라스와 박스형 차체,
그리고 극단적으로 짧은 프론트 오버행 속에서 같으면서도 다른 험비와 허머가 공존한다.
H2를 디자인한 클레이 딘(Clay Dean)은 “오래도록 변치 않는 디자인이 때로는 미래지향적인 것보다 더 보기 좋을 때가
있다”며 “1984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험비만의 독특한 생김새는 H2를 통해 도로 위 그 어떤 차보다 강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말했다.
허머만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H2 앞면
1 각진 차체 2 밝게 빛나는 17인치 크롬 휠에 쿠퍼 디스커버리 A/T3 타이어가 조합됐다
3 크롬 퓨얼 도어 4 큼직한 스페어 타이어가 트렁크 도어에 부착돼 있다
H2의 동생 격인 H3에서도 이런 디자인적 특성은 여전하다.
대중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크기를 줄이고 스포티한 스타일을 가져갔지만 특유의 인상과 단단한 차체 디자인을 통해
허머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리한다.
브랜드가 가진 특징은 살리면서 현대적인 조형미를 더했다는 것이 H3 디자인에 참여한 칼 지펠(Carl Zipfel)의 설명.
오늘 시승에 나선 H3는 데저트 오렌지 메탈릭 컬러를 입은 스페셜 에디션 H3X.
2007년 세마(SEMA, Speciality Equipment Market Association)쇼에서 공개된 H3 스트리트 컨셉트를 바탕으로 일반형보다
세련된 스타일을 뽐내는 것이 특징이다. 크롬 튜브 스텝, 크롬 퓨얼 도어, 크롬 브러시 가드, 크롬 18인치 휠, 보디 컬러
스페어 타이어 커버 등이 추가로 적용된 모델이다.
H3X 전용 부품인 크롬 브러시 가드
1 로고가 시선을 잡아끈다 2 전용 18인치 크롬 휠 3 전용 크롬 퓨얼 도어 4 H3X에만 적용된 보디 컬러 스페어 타이어 커버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H2의 실내는 심심하지만 모나지 않은 스티어링 휠과 값비싼 보트에서나 볼 법한 특별한 기어노브로
대표된다.
이 중 P-R-N-D-M-2-1을 옮겨 다닐 때마다 기어노브를 위나 혹은 아래로 당겨야 하는 방식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
출시된 지 10년이 다 돼가는 차에서 이런 새로운 느낌을 받을 줄이야…….
센터페시아 구성은 요즘 나온 차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잘 정돈돼 있고 알루미늄 스타일 마감재와 두 송풍구
한 가운데 자리한 아날로그 시계로 고급스러운 감성을 자아낸다. 길이×너비×높이 5,169×2,062×2,007mm,
휠베이스 3,119mm는 널찍한 공간을 제공하는데 1열, 2열 어디에서도 답답한 감이 없다.
1. 심심하지만 모난 곳 없는 스티어링 휠 2.값비싼 보트에서나 볼 법한 기어노브 3. 널찍한 1열 4 서장훈이 타도 넉넉할 2열
60:40 비율로 접히는 뒷좌석 활용시 더 넓은 적재공간을 누릴 수 있다 이에 반해 H3는 다소 좁은 느낌. 물론 특대형 SUV인 H2와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지 타 브랜드 SUV와 견주어보면 넉넉한 편이다. H3의 길이×너비×높이 4,778×1,897×1,859mm, 휠베이스 2,842mm는 메르세데스 벤츠 플래그십 SUV G클래스과 비슷하거나 약간 크다.
단조로운 인테리어는 외관에 비하면 너무 평범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별다른 특색이 없는데 스티어링 휠과 기어노브를
타공 가죽으로 감싸 스포티한 느낌을 곁들이기는 했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시트 구성은 H2와 마찬가지로 1열 2명, 2열 3명이고, 2열의 경우 60:40 비율로 접혀 적재용량 확장을 돕는다.
1. 타공 가죽으로 스포티한 느낌을 살린 스티어링 휠 2. 스티어링 휠과 마찬가지로 타공 가죽이 덮여있다 3. H2에 비해 다소 비좁은 감이 있다 4. 브라운 시트가 고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