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위하여”(신 10장 13절) 주일설교 221030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L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탈무드 – 행복에 관한 우화
강아지가 마당에서 자기 꼬리 잡으려고 뱅글뱅글 도는 것을 보고 어미 개가 “너는 왜 그렇게 네 꼬리 잡으려고 해?” 강아지 “엄마, 나는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알았어요. 행복은 내 꼬리에 있어 꼬리를 붙잡으려고 해요. 꼬리를 붙잡는 날, 난 정말 행복할 거예요.”
이에 어미 개는 “나도 너만 할 때 그런 고민 했었지. 행복은 좋고, 그것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해서 꼬리를 잡으려고 노력하나 나이 들며 깨달은 것은 자기 일에 열중할 때 꼬리는 자연스레 나를 따라오기 때문에 그것을 잡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단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행복을 갈망 최고의 목적으로 추구한다. 행복을 원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다. 영 철학자 데이비드 흄 “사람이 하는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의 달성이다. 행복을 위해 기술을 발명하고, 학문을 육성하고, 법을 만들고, 사회를 형성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행복을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나 행복이 뭔가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 어떤 이는 행복을 부나 명예 혹 권력에서 찾고, 어떤 이는 행복을 건강과 장수에서, 혹자는 학문적 탐구와 이론적 관조에서 찾으나 행복은 행운도, 욕망 충족도 아니다. 행복은 인간 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오래 지속되는 어떤 종류의 만족감이다.
행복이 뭘까? 1938년 시작 지금까지 계속되는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는 ‘행복의 공식들’을 찾는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간 행복의 조건은 뭔가?”를 밝혀 보려는 데 있다. 그 결과 몇 가지 행복 공식들을 삶에서 실천하면 행복에 훨씬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최종 결론 조금 더 연구해야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물로 여러 권의 저서를 출판했고, 주옥같은 행복의 지침들을 내놓아 많은 사람의 삶에 유익을 주고 있습니다.
예 : 성숙한 방어기제(인생의 고통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가)의 문제,
하버드대 “행복이란?” 강의 탈 벤 샤하르 교수 "내가 읽은 글, 조사, 관찰, 반성 그 어떤 비결 ‘행복으로 가는 5단계’는 없다." 과정으로서의 행복을 말하며 행복 공식 6가지 제안.
1. 인간적인 감정을 허락하라
두려움, 슬픔, 불안 등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극복하기 쉬워진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면 좌절과 불행으로 이어진다.
2.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직장과 가정에서 삶에 의미를 주면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행복촉진제’를 만들어 실천에 옮겨보라.
3. 행복은 사회적 지위나 통장 잔고가 아닌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잊지 말라
행복은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실패를 재앙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배움의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다.
4. 단순하게 살라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일은 점점 더 많이 하려고 욕심을 부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면 행복을 놓칠 수 있다.
5.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몸으로 하는 것 또는 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충분히 자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6.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현하라
우리는 종종 삶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람에서 음식까지, 자연에서 미소까지, 인생의 좋은 것들을 음미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우자.
행복의 공식들은 어느 정도 행복의 길을 알지만 G없는 행복은 뿌리 잘린 꽃 같이 꽃잎과 잎사귀만 연구해도 도움 되지만 사실 뿌리와 꽃을 함께 봐야 꽃을 정확히 알 수 있다.
파스칼의 말처럼 G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존재다. 모든 것을 가졌다고 행복할까? 그 이상이 필요하다. 해답은 위로부터 온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G,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G이 주신 행복의 공식은, 바로 성경이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L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3
G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인간 행복 지침서는 성경. 말씀을 따라 살 때 행복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책에서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 남이 대신 선택할 수 없고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야만 하고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때문에 선택에는 그의 가치관과 인격이 드러나고, 선택의 결과로 삶이 결정된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선택에는 3단계. 1단계 ‘심미적 단계’ 인간은 육체적 쾌락을 추구. 이들의 인생목적은 삶을 즐기는(enjoy) 것. 그러나 인간은 1단계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이 감각적 쾌락만 추구할 때 권태와 절망에 빠진다. 2단계 ‘윤리적 단계’ 쾌락만 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지킬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따라 가면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도덕적 인간’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완벽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 앞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3단계 ‘종교적 단계’다. 초월적 존재인 G과의 만남을 통해 죽음의 질서에 순종하는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감각적 인간에서 윤리적 인간으로, 종교적 인간으로 성장 저절로 안되고 ‘이런 사람이 되겠다’ ‘이런 삶을 살겠다’고 선택할 때 선택을 통해 인간은 높은 단계로 도약한다.
어떤 선택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성패가 좌우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알고 기준을 가지고 중요한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뭘 선택해야 할까요?
은총을 선택하라.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잠 22:1
먼저 재물. 대부분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어떤 방법을 쓰든 돈을 많이 벌어 편히 살려고 한다. 재물이 최고의 가치이며 목적이기에 옳고 그름은 잘 따지지 않으나 재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선택하면 값싼 인생, 재물은 G이 언제 가져가실 수 있다.
재물보다 더 나은 선택은 명예다. 명예란? 사람들의 박수갈채 받을까? 많은 사람이 대표나 장관, 박사가 명예로 생각하나 ‘좋은 이름’ 이름답게 됨. ‘예수 믿는 사람다운’이 명예다.
돈이 중요하나 부자 됨이 목적은 아니다.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는 ‘재물 때문에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 ‘돈 때문에 너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의미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자기의 자기 됨을 잃으면서 돈을 추구하지 말라’ 그래야 사람답고,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명예보다 귀한 것 ‘은총’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랑’ G 은총 갈망 사모 은총을 선택해라.
A의 선택 : 창 13장 A과 조카 롯의 소와 양이 많아 함께 거할 수 없어 이방인 앞에 싸워면 안 되겠기에 롯에게 “우리 헤어지는데 네가 먼저 택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난 좌하리라.” 롯이 소돔과 고모라 쪽이 넓고 비옥해 자기 식솔과 양 떼를 데리고 그곳으로 떠난다.
A은 자식도 없고 사랑하는 조카도 떠나고 좋은 땅도 주었다. 마음이 허전할 때 G이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4-16).
G은 A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다. G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자 선택했을 때 A은 은총을 받았다.
로렌스 형제의 선택 : 배운 것도 별로 없고, 전쟁터에서 부상 입어 다리가 불편한 남자. 그는 G을 사랑하고 섬기고 싶은 마음에 수도사가 되려고 했다. 여러 번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지다가 48세에 겨우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도원에서 그에게 주방보조 일을 맡겼다.
그는 너무나 실망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온 내게 기껏 밥하고 설거지나 하라니!’ 주방 일은 너무나 단조롭고 고달팠다. 아무도 그를 알아주거나 환영하지 않았으나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주님을 섬기고 사랑한다면 어떤 일도 괜찮다. 난 밥하고 설거지 할 때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맘으로 하겠다.’ 수도사는 주님 위해 일했다. 주방 일 잘하도록 시작 기도하고, 잘 마치게 해 주심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는 매사에 정성을 다해 기쁨으로 주어진 일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일하는 순간순간이 주님과 교통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그가 식당에서 그릇 닦는 모습을 본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 형제가 그릇을 닦고 있는 모습에서 마치 신부님이 성찬식 준비하는 엄숙함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그가 부엌일 마치고 거기서 기도하는 모습은, J이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그가 누리는 기쁨과 평화에 대해 질문했다. “당신의 얼굴은 언제나 밝게 빛나고, 늘 기쁨에 차 있다. 그 비결이 뭡니까?” “난 언제나 주님과 대화하며, G의 임재를 느끼며 일한다.” 심지어 종교지도자들도 수도원에 와 그에게 조언을 구할 때마다 자기 체험을 이야기했다. 그의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G의 임재를 느끼며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수도사는 로렌스 형제(Br. Lawrence)다. G과 대화한 내용,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기록한 책이 《G의 임재연습》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도 G이내게 맡겨 주셨고, G 섬기는 마음으로 G과 교통하며 감당하는 그 일은 아름답고 위대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G의 임재를 누릴 수 있다. 위대한 일과 평범한 일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으로 감당할 때 위대한 일이다.
행복, 의미가 있어야 한다(하버드는 학생들에게 행복을 가르친다 중)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마약중독자의 황홀한 경험과 진정한 행복의 경험 차이를 구별하는 사고실험을 보여줬다.
“위대한 시를 쓰거나,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과 같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계가 있다고 상상. 그 기계에 연결되면, 예 : 실제로 사랑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지금 그 기계에 플러그로 연결됐다고 가정 실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고 믿는 것. 노직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평생 그 기계에 플러그를 꽂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기계나 마약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은 거짓된 삶을 사는 것과 같다. 기계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뤘다고 느끼는 강력한 감정과 실제로 어떤 사람을 도와주고 느끼는 덜 강력한 감정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후자를 택할 것이다.
현재 느끼는 감정 이상을 원함. 어떤 감정을 느끼는 원인에 의미를 둔다.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느끼지 말고 실제 영향 주기 바란다.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
감정에 관한 한, 사람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침팬지 같은 일부 고등동물은 사람과 거의 유사한 감정 뇌가 있다.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다른 동물과 비슷하나 중대한 차이는 중 하나가 어떤 감정의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감정, 생각, 행동 숙고 능력이 있다.
영성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영성을 ‘어떤 의미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다. 동물은 영적인 삶을 살 수 없어서 자기 행동에 즐거움 고통 이상의 의미부여 못한다.
대학에서 우등생이 되거나 좋은 직장이나 돈 벌고 큰 집에서 살아도 여전히 공허하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사회의 기준과 기대에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기쁨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목적의식이 소명. 사람마다 의미 있는 일이 다르다. 창업,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 아이들을 키우거나, 의료계에 종사하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그 밖의 어떤 일에서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기 보다 자기 가치와 정열에 부합하는 목적을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투자은행가는 어쩌다가 실수로 수도승이 된 사람보다 더 영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일에 대한 관점
17C 영 위대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은 화재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재건축. 어느 날 건설현장을 방문,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일하는 사람분들에게 뭘 하느냐? 한 분이 “돈 벌지요. 일당 5실링 2펜스다.” 한 사람은 “보면 몰라요? 바위를 자르는 중.” 마지막은 “난 G의 영광을 위해 크리스토퍼 렌을 돕고 있다.” 같은 일도, 일하는 자세는 달랐다.
일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자(하버드는 학생들에게 행복을 가르친다 중)
히 ‘일Avoda’는 ‘노예Eved’와 어원이 같다. 대부분 생계를 위해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어도 천성적으로 일 해야만 한다. 행복해지기 원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심리학자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와 동료들 연구에 일을 노역, 출세, 소명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노역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아실현보다 경제적 보상에 초점을 맞추고 직장을 지루한 일 해야 하는 곳으로 인식한다. 출근 이유는 회사에 가고 싶은게 아니라 가야 해서다. 월급 받는 것 말고 직장에 기대하는 것이 없으며 주말이나 휴가만 기다린다.
자신이 하는 일을 출세로 생각하는 사람은 주로 돈과 성공, 힘과 지위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움직인다. 전임 강사는 교수로, 평교사는 교장으로, 부사장은 사장으로, 편집자는 편집장으로 승진과 승격하기를 기다린다.
자기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일 자체가 목적. 보수도, 출세도, 그가 일하는 이유는 스스로 원해서다. 내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스스로 일에 만족한다. 그의 목표는 자기 일치적. 열심히 일하고 일에서 자아실현 한다. 일할 의무보다 특권으이다.
열정과 장점을 활용할 적절한 일 발견하기 쉽지 않다. 3가지 기본적 질문에 답으로 시작.
"무엇이 내게 의미Meaning를 주나?" "무엇이 내게 즐거움Pleasure을 주는가?"
"내게 어떤 장점Strengths이 있나?" 답을 찾아보면 뭐가 가장 행복한지 판단에 도움 됨.
자족, 감사, 나눔(황명환 목사 설교 중)
미 유명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에피소드. 등장인물 중 바트 심슨이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기도를 부탁받고 “G! 우리는 이 음식을 위해서 값을 다 지불해서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감사합니다.” 내가 내 돈을 내고 먹는데, 뭘 감사하느냐는 말입니다.
행복은 위로부터 온다. G의 은총을 의식할 때 감사하다. 감사하면 행복하다.
탈무드에 도를 넘으면 안 되는 것 8가지.
첫째 여행은 좋지만 너무 다니면 조용히 집에 머물기 어려워진다.
둘째 친구는 좋지만 친구를 마구 사귀고 교제하면 좋지 않다.
셋째 일. 일은 좋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
넷째 술이 과하면 안 된다. 다섯째 잠은 피로회복에 좋지만 너무 많이 자면 점점 약해진다.
여섯째 약은 좋지만 너무 먹으면 독이다.
일곱째 향은 지나치면 구역질 난다. 여덟째 돈은 좋지만 신앙과 인격에 맞아야지 그것을 넘어서면 독이다.
행복한 나눔과 섬김-최인철(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장)
심리학자들은 행복이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나’와 ‘행복’은 뗄 수 없는 관계 행복을 얻기 위한 가장 방법 ‘나를 위함’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파생될 수밖에 없다.
역설 행복 연구에 행복은 날 위한 행동보다 타인 위한 행동으로 더 강하게 경험된다. ‘너를 위한 행동’을 통해 ‘나를 위한 행복’이 경험된다.
2008년 「사이언스」지에 심리학자들, 자신을 위한 지출과 타인을 위한 지출 중 남 위해 더 지출함이 더 행복하다. 서구에 ‘친절 베풀기 운동’의 근거다. 무거운 수레 끌고 가는 할머니 수레를 끌어줌, 길에 넘어진 사람 서류들 주워줌, 자동응답전화 한 통화로 불우이웃 돕기 등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절이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노력인 셈.
사람들을 실험실에 초청 후 행복 측정 후 각 사람에게 봉투를 주고, 5~20달러 다양한 액수. 실험 참여자들 절반은 “이 돈을 전부 자신을 위해 쓰게”했고, 절반은 “이 돈을 남 위해 쓰시오” 돈을 다 쓴 후에 실험실로 돌아왔다. 실험실에 온 이들의 행복을 측정했다.
남 위해 5달러 든 20달러 행복감이 증가. 베풀면 자신에게 행복으로 되돌아옴을 증명한다.
성경 역시 동일한 가르침. 딤전 6:18~19의 말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
사 58:7~8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선행이 사람에게 치유와 건강이 돌아온다고 가르친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누어 주며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L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선행이 자신을 위함 성경의 가르침은 행복 심리학은 행복의 조건과 일치. 불교도 ‘보시’를 가르친다. 재물을 통한 보시는 현대적 의미의 기부, 지식을 통한 보시는 현대의 재능기부 자원봉사에 해당.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비히라”고 반복적 가르친다. 힌두 금언 “너의 행복은 다른 이를 행복하게 만들주는데 있다”고
나를 위한 행복이 분명한데 역설적 남을 행복하게, 행복 심리학과 성경은 동일하다.
도움을 준 후에 느끼는 행복감(Helper’s High)
자원봉사에 참여자들이 신체적 고통 덜 경험한다. 뿐만아니라 누군가 돕는 일은 심장병을 예방하는 아스피린보다 더 큰 효과로 건강에 도움 준다.
만 55세 이상의 성인들 중 두 곳 이상의 단체에서 자원봉사 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장수함 연구 결과 일주일에 4번 규칙적 운동보다 강한 효과. 남을 돕는 일이 건강위해 금연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나눔과 베풂은 우울가 심리적 극복에 큰 도움. 마라토너들이 경험하는 평온하면서도 기분 좋은 상태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도움 주는 행동에도 ‘헬퍼스 하이’온다.
남 돕고 난 후 자기 몸의 에너지를 느끼며,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자신감이 증가하고, 더 평온해지며, 우울감 감소하고 남 돕는 행동이 뇌에서 엔돌핀 분비 연구 결과들도 있다.
남을 돕는 행동 후에 뇌 활동 찍어보면,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뇌의 보상 센터(reward center)작동. 뇌는 남을 도울 때 즐겁다. 현대인들 남과 경쟁 이용하는 풍조, 신의 형상은 남을 도울 때 즐거움을 경험. 이는 체적 건강과 신적 건강을 경험하게 해준다.
효과적인 나눔과 섬김의 법칙
나눔과 섬김 삶은 자명하나 좀 더 효과적 나눔과 섬김의 노하우를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1. 나눔과 섬김의 날을 정하라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6주 동안 매주 친절한 행동을 5가지씩 하라. 그중 절반은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5가지 행동을 몰아 하도록, 다른 절반은 일주일 동안 나눠 하도록 지시했다.
6주 후 이들의 행복을 비교한 결과, 전자의 집단에게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왜? 일상에서 베푸는 나눔과 섬김은 사소한 것들. 부모님 안마, 할머니 짐 들어드림, 눈에 띄지 않음. 행동ㅇ은 다른 일상속에 묻혀 매일 사소하지만 남을 돕는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친구를 돕거나, 상사에게 커피 대접 평소의 행동이 의도적 섬김과 구분 안 될 수 있다.
매일 일선도 좋지만, 일주일 중 하루를 ‘섬김의 날’로 선행이 행복에 효과적일 수 있다.
2. 나눔과 섬김의 형태를 다양화하라
무슨 일에든지 다양성 같은 선행은 처음에 도움 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뎌질 수 있다. 선행도 창의성이 필요. 평소와 다른 선행을 계획 실천하라. 선행하는 이들의 방법을 따라하라. 재능 기부나 돈 기부와 시간 기부 병행은 나눔의 심리적 혜택을 극대화시켜 줄 것.
3. 지금 당장 나누라
베풂에 액수와 형편이 좋아지면 크게 나눔보다 작아도 지금 베풂이 행복을 위해 현명하다.
섬기고 베풂을 먼 미래의 경우 일의 의미를, 눈앞에 닥치면 그 일의 구체적인 절차를 본다.
습관적으로 형편이 나아지면 하겠다지만 나중에 의미를 놓친다. 나중에 하겠다지만, 착각. ‘지금 여기’(Here & Now)의 자세를 가져라.
“사랑 없이 줄 수 있지만, 주는 것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친절과 선행을 베풀지 않고 사랑의 실천은 불가능하다. 행복과 나눔도 “행복하지 않아도 베풀 수는 있지만, 베풀지 않고서 행복할 수는 없다.” 이것이 현대 행복학이 전하는 메시지자 J의 가르침이다.
성경적 행복에 대해
안경승 교수(아세아신학대학교)
기독교가 복과 행복에 대해 언급할 때, 일반적인 심리학적 행복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
첫째, 성경에서 복이 있다고 말할 때는(눅 1:45;요 20:29;행 20:35; 약1:12) 창조주 G으로부터 인간에게 부여되는 영적인 만족을 누리는 것을 우선적으로 의미로, 성경적 행복은 J C의 복음으로 구원 받고, 그 영이 G과 하나가 되었을 때 누릴 수 있다.
둘째, 산상 수훈의 팔복(마 5:1-12)의 행복은 심령이 가난함, 애통, 온유, 회개, 겸손, 의로움, 청결한 마음, 화평케 함, 원수사랑, 용서, 예수로 인한 핍박, 환난 가운데 인내함 등과 같은 성격적 특성과 삶을 강조한다. 세상적 기준에 비춰보면 보잘 것 없고 손해 보는 것이나, 이러한 성경적 역설적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숙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셋째, J이 말씀하시는 행복(마 5:1-12)이란 복음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G 나라의 질서에 근거를 두는데, 이 질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을 베푸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가 행복해지는 질서로써, G을 알기는 하나 여전히 옛 질서 가운데 속한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의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윤선 교수(한국성서대) - 다윗과 바울과 J의 행복관에 관한 비교
다윗은 구약적 관점의 행복관으로써, 율법을 행하고 지키는 것을 통한 행복을, 다윗의 행복이란 율법 묵상과 실천, 그 결과 좋은 열매 맺고 형통한 복된 삶(시 1편) 사는 것을 의미.
바울은 구속사적 죄 사함을 통한 행복과 믿음으로 의롭게 됨(롬4:5-8;4:25-5:2)을 가장 귀히 여겼는데, 바울은 JC를 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 세상 것을 배설물로 여김.
J은 마 5:1-12 심령의 문제, 행복의 근원은 외부적이 아닌 마음의 문제로, 심령, 즉 마음의 변화에 행복의 근원 강조. 성경적 행복이란 율법과 복음과 성령의 조화가 이뤄짐으로써, 참 행복 J C안에 있을 때 가능, 세상 행복이 물질적, 현세적 미래적, 인격적, 영적인 것.
강연정 교수(고신대)
첫째, 성경적 행복은 X인의 삶의 목적이 G을 향해 있으며, G과의 바른 관계 정립될 때 누릴 수 있다. 소요리문답 제 1조에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G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선언, G과 관계성을 기초로 생의 최고 목적을 이뤄가는 삶이 X인에게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G과 만남을 경험한 X인들도 G에 대한 앎과 삶을 조화롭게 연결 총체적 의미의 성숙한 신앙의 삶을 살 때 참된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어거스틴은 “참된 행복은 다가올 미래의 삶에서 완성되겠지만, 이것은 G을 앎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 행복은 겸손하게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은혜에 복종함으로 얻을 수 있다. 종교심리학자 Thomas Oden은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X인의 정서를 관찰할 수 있으나, 회심을 통한 온전한 회복에 의한 행복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심리학과 과학적인 방법의 연구들이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행복이 G과의 관계성 안에 있음을 기억 할 것.
둘째, 성경적 행복은 X인의 삶의 내용이 외형적 물질적이 아니라, 내적, 더욱 본질적인 마음과 심령의 복을 지향할 때, 누린다. 산상수훈(마 5:1-12) J은“복이 있나니(blessed)”라는 표현을 9번 사용, ‘복이 있나니’란 ‘행복한(happy)’이란 뜻 헬 ‘마카리오스’에서 파생, 세상의 어떤 만족한 환경에 기초한 일반적 행복이 아니라 영혼이 즐거워하는 내적인 기쁨과 영적인 복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마 5장 3-11절 ‘복있는 사람’을 언급했던 심령이 가난한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등은 단순히 기분이 좋거나 만족스러운 상태를 누리는 자를 의미하지 않고, 고통스런 시련이나 장애에도 내적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산상수훈의 복의 개념은 현대 심리학,특히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의 개념과 다르다. X인들은 세상적 가치관이 아닌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물질적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기보다 하늘에 신령한 복을 추구할 때 세속화에 흔들리지 않고 G의 뜻대로 살게 될 것.
이 관점에서 볼 때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복의 의미는 오늘날 긍정심리학에서 행복의 개념과 그 내용과 차원에서 완전히 다르다. 성경적 복의 핵심은 G과의 관계가 친밀함이며, 기독교적 관점의 진정한 행복은 G이라는 절대 권위에 순종,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추구하며 살 때 누리게 된다.
셋째, 성경적 행복은 세속적 성공이나 평안이 아니라, 비록 고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G의 영광과 X의 복음을 위한 삶의 방법을 선택할 때 누리게 된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10) 성경은 고난 중에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G은 고난 중에 우리를 만나주시며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시고 항상 변함없으신 분이시기에, 고난은 기쁨으로 변화 되며 이 고난이 변하여 복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전 4:17)
고통과 고난이 우리를 덮을지라도 그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이 X 인들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당하기 위해서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신 J께 대한 감사의 봉사 가운데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X J께서 죄악과 고통 중 임재하셔서 초월적 능력을 보여주신 것처럼, X인들 고난과 고통으로 인한 자기 연민과 자긍심에서 벗어나 J께서 친히 고난받음으로 세상을 이기셨음을 세상에 증거하며 살 때 심리적 안녕과 참된 행복을 경험한다.
넷째, 성경적 행복은 X인의 삶의 결과가 이 땅에서가 아니라 G의 나라에서 평가되고 결론지어질 것에 대한 궁극적 소망이 있을 때다. 내세의 진정한 소망(고전 15:12-58;롬 8:18)을 가지고 사는 X인들은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다. 내세의 소망 가지고 있는 X인들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궁극적인 소망과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복 있는 사람은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해 비X인들보다 실제로 상황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더 감사하며, 더 낙관적이고, 더 만족하며 살아감을 통해 긍정적 감정을 더 많이 느끼며, 회심을 경험한 X인은 낙관적 사고와 신념으로 인해 외부적인 변화가 발생할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원리에 따라 지속적인 삶의 방향을 지키게 된다.
이웃과 사회를 향해 자신의 권리를 조금씩 포기하며 살더라도 성경적 참된 행복의 의미를 경험하며 누리게 되며, G의 기쁨을 발견하고 자신이 발견한 행복으로 인해 지금 여기에서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
G께서 행복하기를 원하심 가운데 행복할 수 있다. G의 뜻 가운데 G의 말씀대로 행하며, 그 은혜 안에 안식할 수 있기에 행복함을 깨달아야 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에서의 행복은‘지금 여기에서’의 경험, 즉 현세적 이상의 것이 아니며 일시적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만, 성경적 행복은 오래 지속되며 궁극적 천국에 대한 소망 있을 때 누리게 된다.
첫댓글 장편에 설교문을. 통해서 여러모로
유익이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