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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답사 스크랩 교자만두와 당락궁 쇼
김창집 추천 0 조회 126 11.09.08 19: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중국의 천년고도 시안 답사기 (9)

 

 * 우리가 교자만두를 먹었던 '미식장랑'으로 올라가는 일행 


♧ 시안의 명물 - 교자 만두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보다 보니, 은근히 시장기가 느껴진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답사 코스에 서태후가 즐겼다는 교자만두를 먹는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실크로드의 기점 도시인 시안(西安)은 서역(西域)의 음식이 접목된 독특한 음식이 많다. 그 중 시안을 대표하는 음식은 자오쯔(餃子)라 불리는 만두로 새, 꽃, 물고기 등 다양한 모양이 있어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번화가인 둥다제(東大街)와 제팡루(解放路)에 음식점이 대거 몰려 있으며, 시안의 중심에 자리한 둥신제(東新街)에는 저렴한 음식을 파는 야시장이 선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시안에는 이슬람 전통의 영향을 받아선지 몰라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은 전통에 따라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 요리가 많으며, 청진대사 주변에 형성된 이슬람 지구에 음식점이 몰려 있다.

 

 우리 일행은 중러우(鐘樓)가 환히 내다보이는 미식장랑(美食長廊) 2층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조금 늦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만두를 먹느라 북적대고 있었다. 중국 음식점이 거의 그렇듯이 10명이 둘러앉는 회전 식탁에 배치되었다. 헛헛한 마음에 그저 나오는 대로 다 먹어치울 기분이다. 자오쯔라는 교자만두에 들어가는 재료는 돼지고기나 쇠고기, 야채 외에도 해삼이나 호두 등 여러 가지라 한다.

 

 드디어 만두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 그릇에 10개씩 담아 나오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하나씩이다. 처음에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작고 예쁜 만두를 날름날름 집어 삼킨다. 그 모양도 재료만큼이나 다양하여 다음엔 어떤 것이 나올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한 사람씩 식량이 차서 옆 사람에게 양보하기 시작했을 즈음 눈을 돌려 사방을 둘러본다. 그때서야 조그만 무대에서 거문고로 연주하고 있는 우리 가요가 귀에 들린다. 

  

 

 * 우리가 먹었던 교자만두, 맛 있는 것이 나왔을 때는 마파람에 게는 감추듯

 

♧ 만두(饅頭)와 교자만두 

 

 만두라면 보통은 밀가루나 메밀가루 반죽으로 껍질을 만들어 고기, 두부, 김치 등으로 버무린 소를 넣고 찌거나 튀긴 음식을 말한다. 원래 만두는 중국 남만인(南蠻人)들의 음식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소 즉 속에 내용물을 넣지 않고 찐 떡을 만두라고 부르며, 소를 넣은 것을 교자(餃子)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를 넣은 것을 그냥 만두라고 부른다.

 

 제갈량(諸葛亮)이 멀리 남만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자 종자(從者)가 만풍(蠻風)에 따라 사람의 머리 49개를 수신(水神)에게 제사지내야 한다고 진언하여, 제갈 량은 살인을 할 수는 없으니 만인의 머리 모양을 밀가루로 빚어 제사하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풍랑이 가라앉았다는 고사(古事)가 있는데, 이것이 만두의 시초라고 한다.

 

 만두는 찌거나 삶거나 튀기거나 탕으로 내는 등 그 방식이 여러 가지인데 흔히 일본이나 한국에서 만두를 칭하는 교자(餃子)는 중국에서는 물에 삶은 만두를 뜻한다. 이외에 빠오즈(包子)는 발효된 만두피에 소를 넣고 증기로 쪄내는 일종의 찐만두를 뜻하는데 특히 천진의 꺼부리(狗不理) 빠오즈가 유명하다. 서태후가 먹어보고 그 맛을 칭찬 한 후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 중국에 많은 가맹점을 가졌다 한다.

 

 꺼쯔(狗子)는 나이 16세 때 그 동안 모은 돈으로 부근에 만두집을 개업하였는데, 이내 소문이 나서 주변 수십 리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만두를 사러 왔다. 만두를 파느라 바빠진 꺼쯔는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를 두고 만두를 먹던 사람들이 ‘狗子賣包子不理人’(개자가 만두 파느라고 사람도 안쳐다 본다.)라고 중얼 거렸는데 이것에 이후에 꺼부리(狗不理)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 다른 팀들이 교자만두를 먹는 광경과 중국 고유악기로 우리 가요를 연주하는 사람들

 

♧ 당락궁의 민속 공연


 만두로 배를 채운 일행은 식후경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일부는 탕러궁(唐樂宮)으로 가서 당나라 민속 공연을 보고, 일부는 야시장을 구경하며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갈라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공연 관람은 선택 사항이기 때문에 요금이 비쌌고, 이미 본 사람도 있을뿐더러 그보다는 야시장 구경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둘 다 하고 싶었지만 현지 안내인이 공연을 인솔하였기 때문에 남아 거리 구경을 하기로 했다.       

 

 탕러궁(唐樂宮)은 낮 시간에는 뷔페로 차려진 중국 요리를 먹을 수 있고, 밤에는 화려한 공연하며 풀코스의 궁중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점이다. 매일 밤 검무(劍舞), 궁중무용, 전통 사극 등을 선보이며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공연을 즐기며 식사할 경우 1인당 420위안, 낮 시간의 뷔페는 200위안, 식사를 하지 않고 간단한 음료수나 맥주를 마시며 쇼를 관람할 때는 300위안 정도를 받는다.

 

 원래 중국 땅덩어리가 크고 모든 것의 규모가 크듯이 이 공연장도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 무대의상 또한 화려하고 내용도 다양해서 1시간 30분 정도의 공연시간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를 줄거리로 한 춤과 노래도 있고, 소림사의 무술을 극으로 꾸며 보여주는 등 복합적인 내용의 공연으로 여배우들의 요염한 춤동작이 볼만 했다는 평이다.

 

 당나라 때의 화려한 궁중의상이나 민속음악을 주로 하여 전체적으로 서장, 본장, 종장 3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10가지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화청궁(華淸宮)은 전통 악기 합주로 이루어지며, 제2장 백녕무(白寧舞), 구자무(龜玆舞)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 춘앵전(春鶯)과 배소(排簫),답가(踏歌) 등이다. 탕러궁(唐樂宮)은 장안로(長安路) 75호 씨안삔관(西安賓館) 길 건너편에 있다.


 

 * 환하게 불을 밝힌 종루와 쇼공연 장면

 

♧ 시안성과 주변 지역


 식당에서 나와 탕러궁(唐樂宮)으로 일행을 보낸 후 남은 사람들은 잠시 젊은이들의 쇼 공연을 보았다. 중국의 개혁 개방은 오래된 일이지만 젊은이들이 서양에서 들어온 현란한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중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 한중 수교 직전인 1992년 7월말이니까 꼭 15년이 흐르는 사이에 빨리도 변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고 멍하니 구경하노라니까 옆에서 빨리 시내 구경 가자고 조른다. 일행을 이끌고 시안성의 중러우(鐘樓)로 향했다. 어제와 오늘 오며가며 본 시안성(西安城)은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성벽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우수한 성으로 14세기, 명대(明代)에 당(唐)의 장안성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무려 6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높이 12m, 둘레 11.9km, 폭은 위가 12~14m, 아래가 15~18m의 규모로 성벽 위로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성벽은 전체적으로 동서로 조금 긴 직사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동서남북에 각각의 문이 있다. 그리고 4개의 본문 외에도 한 쪽에 2~3개씩의 문이 더 있어 예전에는 신분에 따라 드나드는 문이 달랐다. 또한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중요한 관문인 만큼 서역의 상인들이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었다 한다. 시안 도심의 상징인 중러우(鐘樓)는 시안성 중앙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한 3층의 누각이다. 겉모양은 3층이지만 내부는 2층으로 높이 8.6m, 둘레 35.5m의 벽돌로 된 제단 위에 세워졌다.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빛나는 중러우를 한 바퀴 돌고 올라가려니 입장료가 너무 비싸 올라가지 말자고 하기에 돌아서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중러우는 낮에 매시 정각마다 종을 쳐 시간을 알렸고, 밤에는 종루 북서쪽에 있는 구러우(鼓樓)에서 담당했다.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기둥으로만 만들어진 독특한 양식의 중러우가 지어진 때는 1384년, 청대에 재건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 화려한 색상의 고유 복장으로 공연하고 있는 탕러궁 쇼

 

♧ 시안의 밤을 밝히는 야시장


 지하도를 건너 불이 환히 밝혀진 도심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인들의 특징의 하나인 만만디는 낮과 밤을 불문하고 어디서나 그 속성을 드러낸다. 가끔은 중국인들의 만만디가 행운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시안 곳곳에서 밤마다 볼 수 있는 야시장이 바로 그런 경우다. 오후 5시부터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는 야시장은 중국인들과 섞여 여유를 즐기며 흥겨운 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시안성 북쪽인 제팡루(解放路)와 교차하는 둥신제(東新街), 시안성을 중심으로 가로지르는 베이다제(北大街), 그리고 시안성 밖의 젠궈반점(建國飯店) 바로 옆인 진화난루(金花南路)에서 밤마다 정감 넘치는 야시장이 펼쳐진다. 야시장은 주로 중국 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으로 음식값이 놀라울 정도로 싸며, 진짜 그들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만두로 배가 부른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여 먹거리 시장 쪽으로 가기에 앞서 일행 중 중국  옷을 사고 싶어 하길래 옷 가게 몇 곳을 돌아보았다. 중국의 전통적인 민족의상은 17~20세기에 청왕조(淸王朝)로서 군림한 만주 민족의 고유한 복장에 약간의 한민족적 요소가 가미되어 성립된 옷을 가리킨다.

 

 흔히 치파오(旗袍)라는 중국의 전통의상은 원래 남녀 의상 모두를 이르는 말이지만, 보통 원피스 형태의 여성 의복을 지칭한다. 몸에 딱 맞는 형태의 옷이며, 치마에 옆트임을 주어 실용성과 여성미를 강조하였다. 옷깃은 흔히 차이니즈칼라라고 불리는 스탠드칼라이며, 치마와 소매의 길이도 다양하다. 면으로 만든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비단에 여러 가지 자수를 놓아 화려하게 만든 것까지 다양하다. 또한 어떤 체형에나 잘 어울린다.  

 

 

 * 불을 밝힌 중국 시안의 밤거리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滿洲族)의 기인(旗人)들이 입던 긴 옷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족(漢族)이 이를 치파오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청나라 순치제(順治帝) 원년에 수도를 베이징(北京)으로 옮기면서 치파오가 중원에 보급된 후 청나라 후기에 이르러 한족이 만주족의 옷차림을 모방하며 인기를 얻었다. 신해혁명을 거치며 서양식 의상의 영향을 받아 이전의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에서 간결한 디자인과 우아한 색깔로 변하였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에는 서양의 미니스커트의 영향으로 치파오의 치마와 소매 길이가 무릎과 팔꿈치까지 짧아졌다. 1930년대 중반에는 다시 치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반면 옆트임은 허벅지까지 올라갈 정도로 과감해졌고, 허리선 역시 더욱 강조되었다. 1940년대 들어와 실용성이 강조되면서 치파오의 길이가 다시 짧아져 종아리까지 올라갔다.

 

 또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1966년부터 10년 동안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다른 전통 문화와 마찬가지로 치파오 역시 쇠퇴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그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제패션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등 홍콩, 타이완, 화교 등을 중심으로 계속 발전하였다. 현재는 다양한 옷감과 디자인으로 중국의 예복으로 자리 잡았다. 몸이 너무 커서 옷이 너무 끼어 몇 곳을 돌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 약속장소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시안성과 시안성의 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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