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孫子兵法) 9篇 <행군편(行軍篇)>
손자병법(孫子兵法) 9篇 <행군편(行軍篇)> <적의 내정을 확인하라> ‘행군’이란 군대의 행진이나 전투에 있어서의 행진,주둔,정찰,작전과 통솔 등 모든 것을 널리 포함하고 있다. 손자는 지형과 전투 배치를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산악지대, 하천지대, 저습지대, 평지에 따라 전투배치는 각각 달라야 한다고 하였다. 이 행군편은 전투에 임하는 최후의 주의 사항인 것이다. (1) 산지에서는 높은 곳에 진을 쳐라. 孫子曰(손자왈) 손자가 말하기를, 凡處軍相敵(범처군상적) 絶山依谷(절산의곡) 무릇 군을 배치하고 적을 상대할 때, 산을 넘어 골짜기에 의지하고, 視生處高(시생처고) 초목이 무성하면 높은 곳으로 행군해야 하며, 戰隆無登(전륭무등) 높은 데서 싸울 때는 올라가지 말라. 此處山之軍也(차처산지군야) 이것이 산에 배치하는 군사이다. 아군을 배치하고 동원 하려면 언제나 적과의 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나, 그것을 여러모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선 산에 있어서의 군사 배치이다. 산등성이를 넘어서 저지를 내려와 골짜기를 앞으로 하되, 분산하지 않도록 평행되게 진을 쳐야 한다. 배후는 산을 요해(要害)로 골짜기를 자연의 해자(垓字: 성주위를 깊게 파서 물이 괴게 한 곳)로 삼을수 있을 뿐만아니라, 물이나 말먹이로서의 풀도 자유로이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급적이면 초목이 무성한 곳을 잡아야 하지만 적보다는 반드시 높은 곳 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까닭은 앞에서도 수차 설명한 바와같이 고지에 있는 적을 향하여 기어올라가 싸우는 것은 절대 금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산지로 군사를 움직였을 때의 주의점이다. 행군편은 군의 배치에 관한 것으로, 이 조항은 산지전(山地戰)이다. 대단히 설전적인 구체론으로 여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무리한 억지를 부릴 수 밖에 없겠다. 그것은 쓸데없는 헛수고일뿐 아니라 자칫하면 어림도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되므로, 오직 깨달아야 할것은 언제나 자연환경과 싸우는 자의 인간으로서의 조건, 즉 생리적, 심리적인 것이 충분히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2) 물을 건너면 반드시 물에서 멀리하라 絶水必遠水(절수필원수) 물을 건너면 반드시 물에서 멀리하라. 客絶水而來(객절수이래) 勿迎之於水內(물영지어수내) 객이 물을 건너 올 때는, 절대로 물속에서 맞이하지 말라. 令半濟而擊之利 (영반제이격지리) 반쯤 건너게 한 다음 치면 이롭다. 欲戰者(욕전자) 無附於水而迎客 (무부어수이영객) 싸우려고 하는 자는, 물에 붙어서 객을 맞이하지 말라. 視生處高(시생처고) 삶을 보고 높은 곳에 처하라. 無迎水流(무영수류) 물의 흐름을 맞이하지 말라. 此處水上之軍也 (차처수상지군야) 이것이 물 위에 처하는 군사이다. 이미 강을 건넜다면 우물쭈물 하지 말고, 곧 멀리 물러서야 한다. 후속 부대가 건너 오는 것을 방해할 뿐 아니라, 배수(背水)라는 것은 결사전을 시도하는 최 후의 수단이므로, 후퇴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러 있는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편이 강을 건너 밀려올때 전원이 물속에 있을때라면 손을 써서 는 안 된다. 일부가 건너오고. 일부가 아직 물속에 남아 있는 어중간한 상태에 서 이미 상륙한 일부의 부대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었을때 습격하면 후속 부대는 물속에 있으므로 구원도 뜻대로 신속하게 할수 없기 때문에 올라 오는 적을 조금씩 쓸어 없앨 수가 있다. 한군데 집결되어 있지 않은 적은 약하다는 원칙에서 이점은 당연하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적과싸우려면 절대로 물가에 버티고 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상대는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 무리하게 강을 건너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걸음 물러나 숨어있다가 앞에서 말한대로 반쯤 건넜을 때 물가에 나타나 급습해야 한다. 이 때도 또한 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무나 풀이 나있는 조금 높은 곳에서 상대의 동정을 자세하게 내려다 보면서 기회를 잡아 쳐내려 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적의 하류에 진을 치고 상류에서 몰려오는 적을맞아 치는태세라면 손해이다. 물은 당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므로, 이 공격행동의 고저문제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다. 그것과 수류가 흘러내리는 것을 적이쳐내려 오는 것과 같이 보고있기 때문에, 그 기세가 더해지는것 같은 시각적 심리작용이 거들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이 물가에서 싸우는 군사의 주의 사항이다. 이번에는 강이다. 여기서는 앞의 산의 경우에서 말한대로, 지리적인 자연조건에 따라 어떻게 군을 움직이느냐 하는 점에 대한 주의가 쓰여 있으므로, 문의(文意)만 알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이 있으면 사족을 붙이는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우리들에게 무의미 하고 무연한 것이란 뜻은 아니다. 실제 전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령 이므로, 진의만 알면 여러 곳에서 도움이될 사항이 내포되어 있다. 하기야 기본원리는 이제까지의 것을 총합하거나 분해하여 재편성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새로운 점은 없다. 두뇌를 위한 연습과제로서 이제까지 느껴지고 이해된것과 해석이 일치되는지 어떤지, 말하자면 검산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객이 물을 건너...’의 대목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새로운 제품에 대한 판매경쟁이 붙었을 때, 준비진행중에 맹공을 가하면 상대는 이쪽 태세를 보고 오기로라도 그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자 온갖노력과 연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신제품을 판매 경로에 과연 올려 놓을 것인가를 망설이는 지경에까지 왔을 때, 보다 좋은 품질과 판매 방법을 취하는 것이 득책이다. 이것은 빨라도 안되고 늦어서도 안 된다. 숨쉴 틈도 없게 해야 한다. 더욱이 이쪽 공격을 돌파하는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게 되면, 상대는 당연히 사력을 다하여 저항할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면 별수 없다. 이대로 죽느냐 사느냐, 오직 부딪치는 수밖에 없는 상태로 상대를 몰아 넣고 나서의 싸움은 편안하게 이길 수 있는데도 지고 말 우려가 있다. 반쯤 물러서 나왔을 때, 바로 그때가 공격할 시기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싸우려고 하는 자는...’의 대목도 마찬가지다. 공격태세를 뚜렷하게 갖춘 아군에 대하여 감연히 공격해 오는 적은 상당한 준비가 되어 있는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되므로, 이쪽도 고전을 하게된다. 따라서 물가에는 서지 말아야 한다. 물의 흐름을 맞이하지 말라는것에 대하여 앞서와 같은 보기를 들어보자. 만약 상대편의 제품이 우연히 매스컴을 타고 상당히 화제가 되어 있는 상태는 상류에 있는 적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 상태는 바로 물의 흐름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에 역행하는 것은 이쪽이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라고 할수 있다. 이것이 반대로 이쪽이 세상의 화제가되어 있을 때는 높은 데 있는 셈이 된다. [예화] 강을 건너는 적은 반쯤 상륙하였을 때 쳐라. 客絶水而來(객절수이래) 勿迎之於水內(물영지어수내) 객이 물을 건너 올 때는, 절대로 물속에서 맞이하지 말라. 令半濟而擊之利 (영반제이격지리) 반쯤 건너게 한 다음 치면 이롭다. 당 고조(唐高祖)의 무덕(武德) 연간에 설만균(薛萬均)은 나예(羅藝)와 함께 범양성(范陽城)에 의거하여 유연(幽燕)일대를 지키고 있었다. 반드시 충분한 병력도 아니었고 또한 견고한 성도 아니었는데, 두건덕(竇建德)이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범양성으로 진격해 왔다. 설만균은 나예와 의논하였다. "병력으로 말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지금 만약 성을나가서 정면으로 싸우면 아마도 백전백패할 것이니, 결국 계략으로 이기는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병약마(弱兵弱馬)로 하여금 강을 사이에 두고 성을 등진채 진을 치게 하여 적을 유인하고자 한다. 적이 만약 강을 건너 교전 하려고 하거든 귀공은 정예의 기병 100기(騎)를 성 옆에숨겨 두었다가 적이 반쯤 건너왔을 때를 노려 공격해 주게" 나예는 설만균의 계략에 따랐다. 과연 두건덕의 군사가 강을 건너오기 시작하자 반쯤 건넜을 때 나예는 맹공격을 감행하여 크게 격파 하였다. 아마도 손자 시대에는 강이 가장 구체적인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무릇 강뿐만 아니라 장애물을 통과하려면 상당한 힘을 그 장애물과의 격투에 쏟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만큼 전력은 저하하게 되는 셈이니, 그때야말로 적을 격파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손자는 말하고 있다.그러나 상대가 강을 건너지 않으면 그러한 기회는 생기지 않는다. 이전에 다음과 같은일이 있었다. 춘추시대 진(晉)의 장군 양처보(陽處父)가 초(楚)의 장군 자상(子上)과 지수(泜水)를 사이에 두고 대진 하였다. 양처보가 초의 군에게 강을 건너게 하려고 진을 거두어 퇴각 태세를 취하자, 자상도 후퇴를 하였다. 오히려 진의 군에게 강을 건너게 할 생각이었다. 결국 양군 모두 강을 건너지 않아 싸우지도않고 그냥 돌아갔다. 싸움에 있어서 자기가 강을 건너면 불리하고, 상대가 강을 건너면 유리하다는 것은 양처보나 자상이 아니더라도 쉽게 알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강을 건너기를 기다리지 말고 기발한 계책을 꾸며 억지로라도 상대로 하여금 강을 건너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신(韓信)은 제(齊)나라를 공격해서 제도(齊都) 임치(臨菑)를 평정하자, 도망친 제나라 왕 전광(田廣)을 추격하여 고밀(高密)서쪽에 이르렀다. 그런데 초나라에서 용저(龍且)를 대장으로삼아 20만명의 대군을 파견시켜서 제나라를 도우려고 왔으므로, 제의 왕 전광은 용저와 군을 합쳐서 한신과 싸우려 하였다. 잠시 후 한신의 군사가 도착하자, 양군은 유수(濰水)를 끼고 진을 쳤다. 밤이 되자 한신은 1만개가 넘는 포대에다 토사(土砂)를 넣은 토낭을 만들어서 유수의 상류를 막게 하였다. 그리고 날이 밝아질 때 군사를 이끌고 이미 물이 빠진 유수를 건너서 용저의 군사를 습격하였다. 용저의 군사가 반격하자 한신의 군사는 지는 척하고 도망쳐 돌아왔다. 용저는 그 관경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한신이 겁쟁이란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곧 추격 명령과 함께 전군이 말라버린 강바닥으로 들어가자, 한신은 번개같이 흐름을 막고 있던 토낭벽을 터놓았다. 물이 내리쏟아져 용저의 군사는 그자리에 못박히고 말았다. 때는 왔다고 급습을 가한 한신이 어렵지 않게 용저를 죽이니, 유수 동쪽 언덕에 남아 있던 용저의 군사는 그 광경을 보고 패주하고, 제의 왕 전광도 도망쳤다. 그러자 한신은 도망치는 적을쫓아 드디어 성양(城陽)에 이르러 초의 군사 전부를 포로로 삼았다. 한신은 인위적으로 강을 말렸다가, 적이 마른 강을 틈타 건너 올때 다시 인위적으로 강을 재현시켜서 적병이 강을 건넌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손자병법>의 고도한 응용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응용과 갖가지 변화를 예상하면서 손자는 말하기를, "적이 강을 건널 때는 강물 속에서 공격하면 안된다.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라고 한 것이다. (3) 척택을 건너면, 속히 떠나되 머무르지 말라. 絶斥澤(절척택) 惟亟去無留(유극거무류) 척택을 건너면, 속히 떠나되 머무르지 말라. 若交軍於斥澤之中 (약교군어척택지중) 만약 군을 척택 속에서 싸우게 할 때는, 必依水草而背衆樹 (필의수초이배중수) 반드시 물이나 풀을 의지하여 뭇나무를 등지라. 此處斥澤之軍也 (차처척택지군야) 이것이 척택에 처하는 군사이다. 음습지를 넘어서 가야 할때는 빨리 그곳을 지나 오래 머물러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좋다.만약 음습지에서 부득이 조우전(遭遇戰)이라도 하게될 경우에는 가급적 물이나 풀이 있는곳을 앞으로 하고 숲이나 나무를 배후로 포진하는 것이 현명하다. 물이나 풀을 앞으로 한다는 것은 전면에 전망을 두는 것이고, 삼림을 뒤로 하는 것은 대오의 형태를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일종의 요해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음습지대에서 군사를 움직이는 방법이다. 이것은 악조건에서 벌인사업이 고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다. 그곳에서 속히 떠나라고 해도 조건 여하에 따라서는 떠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경제 조건의 악화라든가 극단적인 사회정세의 혼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헛된싸움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결국 머무르지 않고 떠나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오직 국부적으로 자사(自社)만이거나 한 업종만이 악조건이라면 전력을 다해서라도 이탈을 꾀하는 것이 당연하다. 만사를 젖혀 놓고 악조건의 영향에서 벗어 나도록 전념 해야 할 것이다. 부득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될 때는 전방의 전망을 좋게 하라는것은, 신변을 정리하여 손쉽게 전환할수 있는 태세를 항상 갖추어 만사에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고, 악조건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막아 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뭇나무를 등지는 것이다. (4) 평륙에서는 죽음을 앞으로 하고 삶을 뒤로 하라. 平陸處(평륙처) 평륙에서는, 易而右背高(이이우배고) 쉬운 곳에 처하고 오른쪽 높은 곳을 뒤로 하여, 前死後生(전사후생) 죽음을 앞으로 하고 삶을 뒤로 하라. 此處平陸之軍也 (차처평륙지군야) 이것이 평륙에 처하는 군사이다. 凡此四軍之利(범차사군지리) 무릇 이 네 가지 군사의 이로움은, 黃帝之所以勝四帝也 (황제지소이승사제야) 황제가 사제를 이긴 것이다. 평탄한 곳에서는 가급적 활동 하기 편한 곳을 골라서 포진하고, 같은 평지라도 높은 곳을 오른쪽 등 뒤로 하는 지형 이라야 한다. 그리고 황폐지를 앞으로 하고, 수목이 무성한 곳을 뒤로 해야 한다. 이것이 평지에서의 포진법이다. 이상 산(山),수(水),척택(斥澤), 평륙(平陸)의 4지(四地)에서의 포진법은 선조인 황제가 사린(사린)의 왕들을 정복하였을 때의 전법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조항도 해설로서는 특별한 것이 없다. 거의 전 조항과 같으므로 생략한다. (5) 군사는 높은 곳에 포진해야 한다. 凡軍好高而惡下 (범군호고이오하) 무릇 군사는 높은을 좋아하고 낮음을 싫어하며, 貴陽而賤陰(귀양이천음) 양지를 귀히 여기고 음지를 천시하며, 養生而處實(양생이처실) 軍無百疾(군무백질) 삶을 기르고 실한 데 처하면, 군사에게 백질이 없다. 是謂必勝(시위필승) 이것을 필승이라고 한다. 군사를 두는 곳은 높고 마른곳을 택하는 편이 좋고, 낮고 습한 곳은 피해야 한다.이것은 전략적이나 군사들의 생리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즉 동남쪽의 햇볕이 잘 드는 곳은 호적지(好適地)이며, 서북쪽의 그늘지고 추운 곳은 부적당하다. 무엇보다도 생활적인 자연요구에 맞도록 하여, 만사가 평실해야 세력이 구축된다. 이점을 유의한다면 결코 군사가운데 병자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세심한 배려와 조심성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지 않는다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필승의 비결이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건간 관리, 보건 시설이 그대로 필승으로 통한다고 논단하고 있는 것이다.논리의 비약이 심하여 당돌한 느낌이 들겠지만, 이것은 진리이다. 하기야 근래에는 이것이 당연한 경영상식으로 되어있는 듯하다. 한걸음 더나아가 삶을 기르고 실한데 처해 있는 쪽의 급여를 가급적 풍부하게 한다는 사고방식이 바로 필승의 길로 통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예화] 군사는 높은 곳에 포진해야 한다 凡軍好高而惡下 (범군호고이오하) 무릇 군사는 높은을 좋아하고 낮음을 싫어하며, 貴陽而賤陰(귀양이천음) 양지를 귀히 여기고 음지를 천시한다. 진(秦)나라 말기에 질병으로 거의 죽게 된 남해(南海)의 도위(都尉) 임효(任囂)는 용천(龍川)의 영(令) 조타(趙佗)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듣자하니 진승(陳勝) 등이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진(秦)이 비도(非道) 행하여 천하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바람에 항우(項羽), 유기(劉奇),진승(陳勝),오광(吳廣)등이 각각 자기 고을에서 군사를 일으켜, 크게 천하를 다투고 있다. 중국은 혼란해질 대로 혼란해져 안정을 모르고, 호걸은 진을 배반하고 날뛰고 있다. 남해는 벽지의 장소이나, 나는 적군들이 여기까지 침입해 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군사를 일으켜 진이 건설해 놓은 새도로를 차단하고 방비태세를 굳혀서 제후의 변사(變事)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렇게 병에 걸리고 말았다.이 번우(番禺)는 산을 등지고 있는 험조한 땅이고, 남해 수천 리의 땅에는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서로 돕고 있으므로, 이곳도 한 주로 독립시켜서 나라를 세울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郡)의 장관들 중에는 의논할 만한 자가 없기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이다" 말을 마치자 임효는 조타에게 조서(詔書)를 만들게하고 남해 군위(郡尉)의 정무를 보게 한 후 세상을 떠났다. 조타는 곧 격(檄)을 날려 횡포(橫浦), 양산(陽山), 황계(湟谿)등 각 관문에 통고하였다. "적군이 침입하려고 한다. 급히 길을 막고 군사를 동원하여 스스로 지키도록 하라" 이리하여 조타는 점차 법에 의하여 진나라에서 임명한 장관들을 주살하고 자기 파의 임시 군수로 임명 해 나갔다. 이윽고 진나라가 망하자, 조타는 계림(桂林), 상군(象郡)을 공격 하여 합병하고, 산간의 험조한 곳에 자립하여 남월(南越)의 무왕(武王)이라고 칭하였다. 여후(呂后) 시대가 되자, 한(漢)나라는 남월과의 철기교역(鐵器交易)을 금지시켰다. 조타는 분노하여 스스로 남월의 무제(武帝)라 칭하고, 군사를 동원시켜 장사(長沙)의 국경을 공격하였다. 여후는 장군 융려후(隆慮侯) 조(竈)를 파견해서 남월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심한 더위와 습기를 만난 조(竈)의 군사는 역병(疫病)으로 고생하다가 끝내 양산령(陽山嶺)을 넘어 진격할 수가 없었다. 그후 1년이 지나 여후가 죽자 한나라는 군사를 철수시켰다. 이에 조타는 그 변경에서 크게 위엄을 떨치게 되었다. (6) 거품이 있는 강은 건너서는 안 된다. 丘陵隄防(구릉제방) 구릉과 제방은, 必處其陽而右背之 (필처기양이우배지) 반드시 그 양지에 처하여 이를 오른쪽으로 하고 배후로 한다. 此兵之利(차병지리) 地之助也(지지조야) 이는 병(兵)의 이로움이요, 땅의 도움이다. 上雨水沫至(상우수말지) 위에 비가 내려 물거품이 이르면, 欲涉者待其定也 (욕섭자대기정야) 건너려는 자는 잠시 안정됨을 기다리라. 구릉이나 제방근처에 포진할 때는 가급적 동남쪽을 향하여 양광(陽光)이 비치는 곳을 택하고, 그 높은곳을 오른쪽 뒤로 두는것이 좋다. 이렇게 하는것이 승리의 길로 통하는 지형의 활용이기 때문이다. 강을건너 싸워야 할때 작전상의 주의로는, 상류에 비가 내리면 그 흐름에 다소 거품이 떠 보인다.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는 자칫하면 많은 물이 내리 밀리는 수가 있다. 따라서 잠시 기다리며 관찰하는 편이 좋다. 이곳도 구체적인 예에 대한 자세한 주의 이므로, 별다른 해설이 필요없다. 일에 처하여 변화에응한 하나의 보기이므로,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심을 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화] 거품이 있는 강은 건너서는 안 된다. 上雨水沫至(상우수말지) 위에 비가 내려 물거품이 이르면, 欲涉者待其定也 (욕섭자대기정야) 건너려는 자는 잠시 안정됨을 기다리라. 선혜왕(宣惠王) 시대 한(韓)나라에 있어서, 진(秦)나라는 마치 홍수를 이루는 강의 존재와 같았다. 선혜왕 14년에 진나라는 한나라를 공격하여 언(鄢)에서 격파하고, 16년에는 수어(脩魚)에서 격파하여, 한의 장군 수(鰽)와 신차(申差)를 생포하였다. 한의 공중(公仲)은 홍수질 염려가 있는 강은 건너지 않을 생각으로, 왕에게 진나라와 화친하도록 설득하였다. "진나라는 초(楚)나라를 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로서는 영토의 일부를 진나라에 뇌물로 주어 친교를 맺고, 함께 초나라를 쳐야 합니다" 한의 왕이 좋다고 하자 공중은 강화를 위해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초나라 왕은 크게 놀라 진진(陳軫)을 불러 의견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군사를 일으켜서 한나라를 돕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도로 가득히 전차를 출동 시키고, 한나라로 가는 사신에게는 많은 뇌물을 주어 보냅니다.아무튼 왕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한의 왕이 믿도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가령 한나라가 우리 초나라의 말을 듣지않는다 하더라도, 왕의 덕을 칭찬하여 진나라와 합세하고 공격해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한걸음 나아가 한나라가 우리 말을믿고 진나라와 화친을 끊게되면 대성공입니다.크게 노한 진과 한나라가 서로 물고 뜯게 되면 초나라는 우환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초의 왕은 진진의 말대로 한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한의 왕은 크게 기뻐하며, 진나라로 출발하려는 공중을 제지하였다. 그러자 공중이 말하였다. "초나라는 이미 공격당할 형세에 있으므로 군을 동원시켜서 우리 한나라를 구하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의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와 단교 하였다. 후에 한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았으나, 초나라에서는 끝내 구원병이 오지 않았다. 진은 한 뿐만 아니라 초에게도 거세게 흐르는 강 이었다. 억지로 건너려고 한 것은 한의 왕이었으니, 격류에 휩쓸리는 꼴이 되었다. 격류를 피하려고 꾀를 쓴 것은 초나라 왕이었다. 한동안 초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7) 6해(害)의 땅은 나는 멀리하고 적은 가깝게 하라. 凡地有絶澗天井天牢天羅天陷天隙 (범지유절간천정천뢰천라천함천극) 무릇 땅에 절간,천정,천뢰,천라,천함,천극이 있으면, 必亟去之(필극거지) 勿近也(물근야) 반드시 속히 떠나, 접근하지 말라. 吾遠之(오원지) 敵近之(적근지) 나는 이를 멀리하고, 적에게는 이를 가까이하게 하라. 吾迎之(오영지) 敵背之(적배지) 나는 이를 맞이하고, 적에게는 이를 등지게 하라. 여섯군데의 험한 지역을 6해(害)의 땅이라고 하는데, 이와같이 험한 장소에는 가급적이면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부득이 접근할 경우에는 속히 빠져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쪽 으로서는 피해서 멀리 해야 하지만, 적에 대해서는 반대로 이것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침내 그부근에서 적과 조우전을 할때는 험한지역이 전방이 되도록 위치를 잡고, 적에게는 그것이 배후가 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 위험지역에 접근하였을 때의 주의점과 그 역이용 방법이다. 사업 경영에도 이러한 6해(害)의 땅은 여러 모로 있을 것이다. 군자는 위험한 곳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나, 경계만이 능사는 아니다. 위험한 일은 가급적 남에게 밀어 붙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상대에게 위험한일이 닥쳐서 진퇴가 부자유한 지경에 빠지는 것은 이쪽으로서는 천만다행한 일이다. 6해(害)도 일종의 무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이용한다는 뱃심도 하나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8) 험조,횡정,겸가,임목,예회는 반드시 수색하라. 軍旁(군방) 군사로서 근처에, 有險阻橫井蒹葭林木蘙薈者 (유험조횡정겸가림목에회자) 험조,횡정,겸가,임목,예회가 있을 때는, 必謹覆索之(필근복색지) 반드시 삼가 이를 반복하여 수색하라. 此伏姦之所處也 (차복간지소처야) 이는 복간이 처하는 곳이다.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부근에 험한곳이나 샛길, 소택지, 우묵한 곳, 갈대가 무성한 곳 등이 있을 때는 그곳을 정성껏 반복하여 수색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곳에는 대개 적의 복병이나 척후가 숨어서 이쪽형편을 탐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의 정보탐색에도 적당한 대책을 강구해둘 필요가있다. 정보가 새는 곳은 대개 정해져 있다. 정체가 불분명한 판매원이나 권유원등이 빈번하게 찾아드는 등 이쪽으로 침투해온 자의 수색에도 주의가 필요하며, 알콜을 제공하는 장소등은 크게 경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러한 곳으로 정보를 가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화려한 장소, 번화한 곳 등 사람의 출입이 많은 곳이 바로 초목이 무성한 지역에 비유할 수 있겠다. (9) 접근해도 조용한 곳은, 그 험함을 믿기 때문이다. 近而靜者(근이정자) 恃其險也(시기험야) 접근해도 조용한 곳은, 그 험함을 믿기 때문이다. 遠而挑戰者(원이도전자) 欲人之進也(욕인지진야) 멀면서 싸움을 거는 것은, 사람이 나아감을 바라는 것이다. 其所居易者(기소거이자) 利也(이야) 그 있는 곳이 평탄한 것은, 이롭기 때문이다. 적과의 거리가 접근해 있는데도 전혀 동요가 없는 것은 요해지임을 믿기 때문이다. 또 접전거리에 있지 않으면서도 도전해 오는것은 아군을 앞으로 유인하여 그 도중을 습격하려는 작전이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공격이편한 평탄한 곳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유혹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편의 시장에 꽤 손을 대기 시작하였는데도 상대가 전혀 동요됨이 없이 태연하게 있을 경우에는, 상당히 유력한 배후가 있어서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든가, 또는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깔보다가는 뜻하지 않은 엉뚱한 곳에서 반격을 받게 된다. ‘좀더 접근해 와야 할 텐데...’하고 이쪽에서 촉각을 세우며 신중을 기하고 있을 때 마침 저쪽에서 손을 써 온다고 해서 마음놓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오히려 잘못 말려들면 혼이 나게 될 것이다. "좋군요, 동업자가 많아져서 마음 든든 합니다. 힘껏 해보셔야죠. 대단치는 않지만 도와 드리죠..." 이와 같이 크게 환영하는 상대의 인사에 넘어가 안심을 하고 있다 가는 뜻밖에 골탕을 먹는 수도 있는 법이다. 친절에 대한 방심은 금물이다. (10) 수목의 움직임으로 적의 동정을 판단한다. 衆樹動者(중수동자) 來也(래야) 뭇나무가 움직임은, 오는 것이요, 衆草多障者(중초다장자) 疑也(의야) 뭇풀에 장애가 많음은,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鳥起者(조기자) 伏也(복야) 새가 일어남은, 복병(伏兵)이요, 獸駭者(수해자) 覆也(복야) 짐승이 놀라는 것도, 복병(覆兵)이 있는 것이다. 塵高而銳者(진고이예자) 車來也(거래야) 먼지가 높고 날카로움은, 전차가 오는 것이요, 卑而廣者(비이광자) 徒來也(도래야) 낮고 넓은 것은, 보병이 오는 것이요, 散而條達者(산이조달자) 樵採也(초채야) 흩어져 나뭇가지 같음은, 땔나무를 하고 있는 것이요, 少而往來者(소이왕래자) 營軍也(영군야) 적고 왕래하는 것은, 군사를 재우는 것이다. 산림을 멀리서 전망하고 있는 넓은 범위에 수목이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적군의 내습(來襲)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 풀숲에 많은 결초(結草)로 만든 함정이 있을 때는 어떠한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다. 낮게 날고 있던 새들이 떼지어 높이날아 오르면 반드시 복병이 있다고 보아도 좋다.짐승들이 놀라서 달아나는 광경을 보았을 때도 또한 어딘가에 복병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모래 먼지가 높이 날아 오르고, 그 상부가 예각일 때는 병거(兵車)가 다가 오고 있다고 생각 해도 좋다. 반면에 모래 먼지가 높이 오르지 않고 낮게 널리 퍼질 때는 보병이 진격해 오는 것이다. 모래 먼지가 한군데 뭉쳐있지 않고 여기저기 가늘게 줄지어 오를 때는 군사들이 땔나무를 하고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런데 이러한 먼지줄기가 곳곳에서 올라올 때는 막사를 만들기 위하여 마땅한 장소를 찾고 있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추찰하여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어떻게도 숨길 수 없는 자연 현상에서 구하는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사업 경영에서도 여러가지 용도품 조달과 정을 관찰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움직임이 판단되는 것과 같다. 특히 출입하는 인쇄소 등에서 인쇄물의 양의 증감, 그 종류 등을 알아 내면 상당히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좀더 자세하게 말하면 공원(工員)등의 복장의 더러움에 변조가 없는지를 조사 하거나, 쓰레기, 유출하는 진액, 매각된 스크랩을 조사하는 등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상대를 알고 싶을 때는 이러한 곳을 빠짐없이 관찰해야 한다. [예화] 수목의 움직임으로 적의 동정을 판단한다. 衆樹動者(중수동자) 來也(래야) 뭇나무가 움직임은, 오는 것이요, 하수(夏首) 남쪽에 연촉량(涓蜀梁)이란 사나이가 있었다. 이 사나이가 어느시대의 사람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열선전(列仙傳)>에 보면,"제인(齊人) 연자(涓子)가 있어 이름을 촉량이라고 한다"라는 글이 나온다.탕산(宕山)에 숨어살며 풍우를 불러 일으키는 재주가 있고, 산엉겅퀴의 정(精)을 마시며 300 살을 살았다고 하였는데, <순자(荀子)> 해폐편(解蔽篇)의 기술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순자에는 말하기를, "연촉량은 어리석기가 짝이 없는 데다 간도 작았다. 달밤에 혼자 거닐다가 무심코 자기 그림자를 돌아보고 복귀(伏鬼)인가 싶어, 간이 덜컥 내려 앉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다시 위를 쳐다보니 이번에는 머리를 풀고 산발한 귀신이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질겁을 하여 도망치듯 집에 왔는데,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당도하자 마자 숨이 끊어져 버렸다"라고 하였다. 물건을 똑똑히 보려고 할 때는 머뭇거리며 의심하거나 우물쭈물 뒤로 물러나며 편안치 않게 움직여서는 진정한 판단을 할 도리가 없다. 더욱이 사활이 거린 것으로서 적의 동정을 판단하는 일에 있어서랴. 예를들면 오장원(五丈原)에서 숨진 제갈공명이 나타나 위(魏)나라 장수 사마중달(司馬仲達)을 도망치게한 고사등, 전쟁터에서 냉정을 잃어서 빚어지는 일들은 일일이 열거할수 없을만큼 많다.그러므로 잘 관찰하여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11) ‘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한다’는 말이다. 辭卑而益備者(사비이익비자) 進也(진야) 말은 겸손하면서도 대비를 굳게 하는 자는, 진격하려는 것이다. 辭强而進驅者(사강이진구자) 退也(퇴야) 말은 강경하게 하되 나아가 달리는 자는, 퇴각하려는 것이다. 無約而請和者(무약이청화자) 謀也(모야) 궁약함이 없이 화(和)를 청하는 자는, 책모가 있는 것이다. 외교사령(外交辭令)이란 말이 있을정도로 원래 외교접촉은 듣기 좋은 말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요이상으로 이쪽뜻에 영합하거나 온갖 아부를 하며 은밀히 군비를 증강하고 있을때는 반드시 가까운 시기에 진격해 올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반대로 사신이 자신있게 큰소리를 치며 어마어마하고 극단적인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돌아 간다면 실은 퇴각할 작정임이 틀림없다. 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까닭이라면 몰라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화의를 청해 오는일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남모를 계략이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진용을 재정비하기 위하여 시간을 벌자는 속셈따위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의 이면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는 말과 속셈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 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부자연한 과장이 뒤따른다. 근본은 상대의 그와 같은 행동에 충분히 수긍이 갈만한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이다. 그것을 유리하게 해석한다면 엉뚱한 속임수에 떨어지게 될것이다. 당연히 눈치채야 할 계략에 걸리면 그것은 어느모로 보나 이쪽의 실수가 된다. 한대 맞고 나서 비겁 하다고 떠들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쪽의 무지만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예화] ‘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한다’는 말이다. 辭卑而益備者(사비이익비자) 進也(진야) 말은 겸손하면서도 대비를 굳게 하는 자는, 진격하려는 것이다.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는 호상(胡傷)을 장으로 삼고 병력 20만 명을 주어, 한(韓)나라의 알여(閼與)를 포위 하게 하였다. 이에 한의 이왕(釐王)은 곧 사신을 보내어 조(趙)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군신을 모아놓고 알여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으니, 조의 명장 염파(廉頗)와 악승(樂乘)은 말하였다. "길은 멀고 또 험한 곳입니다. 구하기가 어렵겠습니다" 그런데 조사(趙奢)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길이 먼데다 험하고 좁다면 예를 들어 두 마리의 쥐가 구멍 속에서 싸우는 격이니, 용기있는 장군이 있는 편이 이길 것입니다" 이 말에 조의 왕은 곧 군사 5만명을 주어 조사를 장으로 삼고, 알여를 구하게 하였다. 조사는 조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나오자, 겨우 30 리쯤 행군한 곳에 포진하고 오로지 방벽(防壁)을 굳힌 후 28일 동안,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바로 근처까지 적의 척후대가 밀려와 싸움을 걸어도 조사는 나가서 싸우려고 하기는커녕 더욱 방벽을 굳히기만 하였다. 진의 호상은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사신을 조사에게 보내어 싸울 것을 전하였다. "우리 진나라는 알여를 공격하여 곧 함락 시키겠다. 싸울 생각이 있거든 빨리 해야지 늦으면 소용이 없어진다" "천만에, 인방에서 급보가 들어와 한단을 수비하고 있는 것이다. 진나라와는 싸울 생각이 없다"조사는 이렇게 대답한후 진의 사신을 후대하고 방벽등도 구경시켜 주었다. 사신이 돌아가서 보고하자 그제서야 호상은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수도에서 30리쯤 나와 더 이상 군을 진격 시키지 않고 방벽만을 굳히고 있는 상대라면 싸울 의사가 없다고 보아도 좋겠지. 알여는 이미 내 것이로구나" 그리하여 호상은 조사의 군에 대비함이 없이 알여의 공격에만 전념 하였다. 그러나 조사는 진나라 사신을 보내기가 무섭게 곧 군사를 무장시키고 출발하였다. 주야 겸행하여 2일과 하룻밤이 걸려서 국경을 지나 알여에서 15리 쯤 떨어진 지점에 도착하자 포진을 하고 누(壘)를 쌓는한편 1만명의 군사를 파견하고 북상(北上)하여 산성을 점거했다. 이것을 보고 호상이 크게노하여 군사일부로 알여를 포위하니 조의 군사가 습격해 왔다. 그러나 이미 조의 군대를 잔뜩 업신 여긴데다 산성까지 정압(征壓) 당하고 있어서 싸울 실마리 조차 잡지 못한 채 헛되이 비석(飛石)과 화살의 밥이 될 뿐이었다. 이 때 조사는 번개같이 군사를 풀어서 공격하여 진의 군을 크게 격파 하였다. 뿔뿔이 흩어져 패주하던 진의 군은 마침내 알여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였다. 대국 진나라를 상대로 알여의 성을 구한 조사는 진실로 용기가 있는 장수였다. 정면대결로는 도저히 승리할수 없는 우세한 적에 대하여 싸우지 않으려는 척하여, 적이 방심하고 무방비 상태에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일거에 분쇄하는 신중한 전법을 썼던 것이다. [예화] ‘한다’는 것은 곧 ‘안한다’는 것이다. 辭强而進驅者(사강이진구자) 退也(퇴야) 말은 강경하게 하되 나아가 달리는 자는, 퇴각하려는 것이다. 오(吳)나라의 왕 부차(夫差)는 북쪽 정벌 이후 진(晉)나라의 정공(定公)과 황지(黃地)에서 회합을 가졌다. 주왕실(周王室)을 받들고 중국의 패자로서 제후에게 호령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틈을 타서 월(越)의 왕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공격하였다. 월의 군사 5천 명이 오나라를 침입 하더니, 드디어 오의 태자를 포로로 삼기에 이르렀다. 빗살이 떨어져 나가듯 패전의 보고가 부차에게 이르렀다. 누설을 겁낸 부차는 사자를 막하에서 목을 베었다. 그러나 "주실(周室)에서 오(吳)는 형의가계(家系)이므로 오가 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주(周)와 동성(同姓)인 희성(姬姓) 중에는 오가 자작(子爵)인데 대하여 진(晉)은 백작이므로 마땅히 진이 장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시비가 끝없이 계속되는 회맹(會盟)은 용이하게 결착이 날것같지 않았다. 사태를 우려한 오의 왕 부차는 대신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사태가 이러한데 회를 중단하고 귀국 하는 것과, 회를 속행 하여 진을 앞지르는 것 중 어느 편이 좋을까?" 그러자 왕손락(王孫駱)이 말하였다. "절대로 회를 속행하여 진을 앞질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앞지를 수가 있겠는가?" "오늘 밤 싸움을 걸어서 민심(민심)을 넓힌다면 반드시 앞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의 왕 부차는 무장군사 3만명을 인솔하고 진의 군으로부터 1리쯤 떨어진 지점으로 가서 천지가 울릴 정도로 함성을 올렸다. 진의 군에서는 무슨일인가 싶어서 동갈(董褐)에게 밖의 정세를 살피게 하였다. 그러자 오의왕 부차가 스스로 나와동갈에게 말하였다. "내가 주군을 모시는 것도 오늘에 있고, 주군을 모시지 않는 것도 오늘에 있다" 이 말을 듣고 놀란 동갈은 급히 진 안으로 들어가서 진 정공에게 보고 하였다. "오의 왕의 안색을 살피니 크게 결심한 바가 있는 듯합니다. 독살을 꾀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진정공은 맹세의 피를 먼저 마시는 것을 오나라에 허락하니 오의 왕 부차는 그날 중으로, 무사히 회맹을 끝내고 귀국할 수가 있었다. 대개 유리한 태세로 빨리 물러가고 싶을 때는 대언장담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것이다. (12) 반쯤 진격하고 반쯤 퇴각함은 유인하는 것이다. 輕車先出居其側者(경거선출거기측자)陳也(진야) 가벼운 병거가 먼저 나와 그 옆에 있음은, 진을 치는 것이다. 奔走而陳兵車者 (분주이진병거자) 期也(기야) 분주하게 병거를 포진함은, 기약하는 것이다. 半進半退者(반진반퇴자) 誘也(유야) 반쯤 진격하고 반쯤 퇴각함은 유인하는 것이다. 가벼운 병거가 최초로 움직여 나와 양측에 대열을 짓는다면 이는 그중간에 진형을 만들려는 준비로 진발태세(進發態勢)를 정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만약 급히 서두르는 태도가 보일 때는, 무엇인가 미리 예정되어 시일이 촉박한 것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쪽 진중에 내통자가 있어서 약속이 되었거나, 밖으로부터의 내원이 있어서 시각을 맞추어 협격할 예정이거나 아무튼 온당치 않은 사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또 한 쪽에서는 진격을 시작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후퇴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틀림없이 유인하는 수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번에는 직접 상대편의 징후에 따라 그 움직임, 목적, 이유등을 간파 하려는 것이다. 한 회사의 이야기이다. 이 회사에서는 새롭게 큰 일에 착수하려고 할때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전원에게 유급 휴가를 준다. 이것을 눈치 챈 경쟁 회사에서는 당황하여 새로운 계획이 무엇인가를 탐지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 상당히 대폭적인 배치 전환이 있는 것은 보통이나, 당연히 손을 뻗쳐 타사에서 유능한 기술자를 뽑아 오는 것이 새사업의 개시를 예정하였을 때의 뚜렷한 특징인 회사도 있다. 이와 같은 점에 계속 날카로운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13) 규율이 문란한 틈을 타서 공격하라. 倚杖而立者(의장이립자) 飢也(기야) 지팡이를 의지하고 서 있음은, 주린 것이다. 汲而先飮者(급이선음자) 渴也(갈야) 물을 길어 우선 마심은, 목마른 것이다. 見利而不進者(견리이부진자) 勞也(노야) 이로움을 보고도 나아가지 않음은, 피로한 것이다. 적병들의 일거일동을 관찰한 추리이다. 병기를 지팡이 처럼 짚고 그것에 의지하여 서 있는 모습이 보일 때는 상당한 식량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또한 물을 길어온 군사가 우선 그물을 마신다면, 그 마시는 모습으로도 다른 군사가 얼마나 물부족으로 인하여 목이 마른가를 알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상태로서 절호의 기회인데도 진격해 오지 않는다면, 상대편은 상당히 피로에 지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사원이나 종업원을 관찰함으로써 상대 회사의 상태를 알려는 것이다. 전체를 평균하여 갑자기 복장이 좋아 졌다거나, 현장종업원의 구두가 잘닦여 번쩍번쩍 한다거나, 소지품이 사치스럽다거나 할 때는 급여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딘지 모르게 여러사람들의 복장이 초라하거나 떨어진 신을 끌고있는 사람이 많을때는 급여지불이 좋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즉 회사 경영이 순조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정도는 한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관찰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급적 눌러 감추지 못하는 인간 욕구에 초점을 맞추어 세밀한 곳을 보아야 한다.이것이 그회사의 표정이며, 인간의 얼굴에 상당한다. 곧 사업체의 얼굴이다. 공표되는 사업의 손익 계산서보다도 훨씬 더확실한 조고서가 아닌가 한다. [예화] 규율이 문란한 틈을 타서 공격하라 倚杖而立者(의장이립자) 飢也(기야) 지팡이를 의지하고 서 있음은, 주린 것이다. 汲而先飮者(급이선음자) 渴也(갈야) 물을 길어 우선 마심은, 목마른 것이다. 見利而不進者(견리이부진자) 勞也(노야) 이로움을 보고도 나아가지 않음은, 피로한 것이다. 산동성 사수현의 변성(卞城) 동북 변산(卞山) 그늘에 도천(盜泉)이란 샘이 솟고 있었다. 춘추(春秋)말, 유세중에 있던 공자는 저녁때 그곳을 지났으나 피로해 있는데도 쉬려고 하지 않고, 목이 마른데도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도천이란 이름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름이 나쁘다는 점만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크게 곤란한것이 현대이지만, 불의를 미워하고 예를 중히 여기며 왕도(王道)를 논하던 당시의 윤리 기준으로 보면 ‘도적(盜)’이란 글자가 붙은 물은 마실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또 날이 저물어도 숙박을 하지 않았던 토지의 이름은 승모(勝母)였다고 한다. 어버이를 공경함이 두터웠던 공자로서는 그곳에서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남(河南)의 악양자(樂羊子)가 길을 걷고 있을 때 길가에 절병(돈)이 하나 떨어져있었다. 그가 그 절병을 주워들자 아내가 말하기를, "지사(志士)는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고, 염결(廉潔)한 선비는 차래(磋來: 동냥)로 주는 음식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어느날, 남의 집 닭이 악양자의 밭으로 들어 왔다. 시어머니가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하자, 악양자의 처는 울면서 손을 대지 않았다. 남의집 고기가 소반에 오를 정도로 딱한 처지가 분하다고 우는 것이었다. 이윽고 시어머니는 그 닭을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가 사졸, 잡역, 군무의 서민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소박하여 마음내키는대로 행동하엿을 것이다. 윤리도 군령도 없어진 상태라면 그야말로 공격할 기회가 아니냐고 손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14) 말을 잡아서 육식함은, 군량이 없는 것이다. 鳥集者(조집자) 虛也(허야) 夜呼者(야호자) 恐也(공야) 새가 모이는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밤에 부름은, 두렵기 때문이다. 軍擾者(군요자) 將不重也(장부중야) 군이 떠들썩한 것은, 장수가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旌旗動者(정기동자) 亂也(난야) 史怒者(사노자) 倦也(권야) 정기가 움직임은, 혼란한 것이다. 관리가 노하는 것은, 지쳐있는 것이다. 殺馬肉食者(살마육식자) 無糧也(무량야) 말을 잡아서 육식함은, 군량이 없는 것이다. 懸缻不返其舍者 (현부불반기사자) 窮寇也(궁구야) 부(缻)를 걸고 막사로 돌아가지 않음은, 막다른 지경에 빠진 적군인 것이다. 들새(野鳥)가 많이모여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으면 그곳은 이미 철수하여 텅빈 곳이라고 보아도 좋다. 야조는 습성적으로 인간이 생활하던 곳에는 반드시 식량이 되는 것이 흩어져 있음을 알고 모여 든다. 그러나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다. 어두운 밤에 사졸들이 큰소리로 서로 부르는 것은 공포심이 꽉 차있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불안한 심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퇴각 심리가 가득하다고 보아도 좋다. 적진이 어쩐지 어수선하고 질서를 잃은 상태라면, 그것은 지휘관의 위령(威令)이 미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군기나 신호기류가 정연함을 잃고 움직여 돌아 다닌다면 대오가 통솔을 잃고 있다는 증거이다. 책임 있는 자가 부하를 야단치고 다닐 때는, 그 군대는 장(長)이 진(陣)에 싫증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또 중요한 군마를 잡아 그 고기를 먹고 있을때는, 마침내 식량이 다한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취사도구를 주변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채 막사로 돌아갈 기미가 없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결전을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다. 여기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생물의 본능적 습성에서 상대의 동향을 살펴 알아내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경우 전부 적진의 관찰이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자기 진영의 상태를 아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숨길수 없는 것, 즉 자연히 나타나는 현상에서 그 본질을 잡는다는 것에 착안점을 두어야 한다. 자기 진영의 동정을 관찰 하는데, 표면적인 관찰로는 도저히 진실된 것을 알 수가 없다. 자세한 것,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잡아 그것을 분석함으로써 본태를 알아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15) 수시로 상을 주는 것은 괴로운 증거이다. 諄諄翕翕(순순흡흡) 徐與人言者(서여인언자) 失衆也(실중야) 순순흡흡하여 서서히 남에게 말함은, 무리를 잃은 것이다. 數賞者(수상자) 窘也(군야) 수시로 상을 내림은, 군색한 것이다. 數罰者(수벌자) 困也(곤야) 수시로 벌함은, 곤한 것이다. 先暴而後畏其衆者(선포이후외기중자) 不精之至也(부정지지야) 먼저 사납고 후에 그 무리를 두려워 함은, 부정의 지극함이다. 부하와 말을 하는데 되풀이하여 길게 이야기 하면서 단정적인 말을 못하고 상대의 안색을 살피는 것은 이미 사졸(士卒)의 마음을 잡고 있지 못한 증거이다. 그리고 마구 은상을 주어서 비위를 맞춘다면 이것도 인심이반(人心離反)의 막다른 골목에 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걸핏하면 엄벌을 앞세우는 것은 군령이 만족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는 탓으로 보면 된다. 또 처음에는 상당히 거칠고 엄한태도로 부하를 대하면서, 점차 이반을 겁내어 심약해지는 것 등도 병사를 지휘 통솔하는 올바른 방법을 제대로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을 보고 마음이 찔리는 사람이 없다면 다행이다. 첫번째 이야기 같은 것은, 수완이 없는 과장급 사람들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내심으로는 극히 냉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여자같이, 아니 공손한 말씨로 달콤한 말을한다. 그러다가도 조금만 약점이 드러나면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핀다. 이래서는 남을 부리지 못한다. 아무리 거친 말투로 척척 명령을 내려도 평소 진정으로 부하를 사랑하고 있는 지휘자라면 책망을 하고 화를내도 부하는 기꺼이 따르는 법이다. 인사(人事)의 상벌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줄 것만 주면 그것으로 사람을 쓸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부터 잘못이다. 그러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모두가 움직이지 않게 된다면, 일은 끝장 난 것이다. 처음에는 지독하게 고자세로 나와 제멋대로 사람을 쓰다가 점차 그방법이 통하지 않게되면 당황하여 저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을 쓰는 법으로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2천수백 년전의 손자시대나 오늘날이나 사람을 쓰는 방법은 같다고 하겠다. [예화] 수시로 상을 주는 것은 괴로운 증거이다 數賞者(수상자) 窘也(군야) 수시로 상을 내림은, 군색한 것이다. 數罰者(수벌자) 困也(곤야) 수시로 벌함은, 곤한 것이다. 진(秦)나라 소왕 원년에 화리자(樺里子)는 장수로서 포(浦)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포(浦)의 장수는 이를 겁내어 호연(胡衍)에게 조정을 의뢰하니, 호연은 포를 위하여 화리자에게 말하였다. "공이 포를 공격하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위(魏)나라를 위해서인가? 위나라를 위해서라면 좋지만 진나라를 위해서라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위(衛)나라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포(浦)가 있기 때문인데, 이제 포를 치면 포가 위(魏)나라에 붙게되므로, 위(衛)나라도 독립심을 잃고 위(魏)를 따를지도 모른다. 위(魏)가 전에 서하(西河)의 바깥을 진나라에 빼앗기고,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는것은 군사가 약하기 때문이나, 만약 위(衛)가 위(魏)와 합병을 하면 위(魏)는 반드시 강대해질 것이다. 위(魏)가 강대해지면 서하의 바깥땅도 위험을 면치못할 것이다. 더욱이 진의 왕은 공의 군사 행동이 진나라에 해가 되고 위(魏)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공을 문책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포를 용서하고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공을 위하여 포로 가서 수장에게 설명을 하여 위(衛)의 군이 고마워 하도록 주선을 하겠다" "좋다" 호연은 포로 들어 가서 수장에게 말하였다. "화리자는 포가 피폐되어 있는줄을 알고 반드시 포를 함락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라면 포를 용서하고 공격하지 않도록 설득할 수가 있습니다" "부디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황금 300근을 보내며 말하였다. "진의 군이 정말 퇴각을 한다면 당신을 위(衛)의 군에게 추천하여 성주(城主)로 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리자는 드디어 포의 포위를 풀고 돌아 갔다. 이렇게 하여 호연은 포에서 돈을 받고, 또 자연스럽게 위(衛)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16) 오랫동안 대치하여 떠나지 않으면 삼가 관찰하라. 來委謝者(내위사자) 欲休息(욕휴식) 와서 위사함은, 휴식을 바라는 것이다. 兵怒而相迎(병노이상영) 久而不合(구이불합) 군사가 노하여 서로 맞선 채, 오랫동안 합하지 않고, 又不相去(우불상거) 必謹察之(필근찰지) 또한 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삼가 이를 관찰하라. 인질을 보내며 정중히 인사를 해와도 진심으로 화목을 원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잠시 싸움을쉬고 진용을 재정비하거나 구원을 기다리는 등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경우도 있다. 상대가 상당히 화를 내고 있을텐데 서로 흘겨 보기만 하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공격해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퇴진하는 기색도 없을 때는 절대적이라고 할만큼 어떠한 계교를 가지고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므로, 잘 관찰하여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물에는 무엇이든 그에 상당한 이유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에 충분한 납득이 없는 한 간단히 승낙하였다가는 그야말로 혼쭐이 나게 된다. "그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 하였는데 설마 이렇게 남을 속이리라 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며 나중에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다. 이상하다거나 납득이 가지 않았을 때는 반드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점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의문을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이 잘못의 근본이니, 생각지 못했다는 말은 변명이 아니라, 바로 원인이 되는 것이다. (17) 군사가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兵非益多也(병비익다야) 병(兵)은 많음을 익으로 할 일이 아니다. 惟無武進(유무무진) 오직 무진함이 없이, 足以倂力料敵取人而已 (족이병력료적취인이이) 힘을 합하고 적을 요량하여 사람을 취함으로써 족할 뿐이다. 夫惟無慮而易敵者 (부유무려이이적자) 必擒於人(필금어인) 깊은 생각없이 적을 가볍게 보는 자는, 반드시 사람에게 사로잡힌다. 군사란 인원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좋다고 할수 없다. 지나치게 많아서 오히려 주체를 못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적세(敵勢)를 잘 계산해 보고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정도가 좋다. 그리고 자칫 적을 경시하게 되면 사람의 부족으로 인하여 전원이 생포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할 것이다. 적재적소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적량적소(適量適所)라는 말도 중요하다. 수량이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수량으로써 밀고 나아 가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과여부족(過如不足)이란 말과 같이 오히려 그것이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익 채산이 된다고 해서 불필요한 인원을 데리고 사업을 운용 하다가는 그 때문에 실패하는 수도 있는법이다. 최적의 인원은 일을 소화시킬만큼의 적당한 인원이며, 그것이 가장 높은 능률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적은 인원으로 큰 일을 소화시키려는 무리가 따른다면, 일에 끌려서 만족한 성취를 이룰수가 없다. 근대에는 기계화라는 수단이 있지만, 이것은 기계의 능률과 인원의 작업량을 같은 단위로 계산하므로 관계는 같다. (18) 경우에 따라서 부하를 처벌하라. 卒未親附(졸미친부) 而罰之(이벌지) 則不服(즉불복) 군사가 아직 친부하지 않은데, 벌하면, 곧 복종하지 않는다. 不服則難用也(불복즉난용야) 복종하지 않으면 곧 쓰기가 어렵다. 卒已親附(졸이친부) 而罰不行(이벌불행) 則不可用也(즉불가용야) 군사가 이미 친부하여, 벌하지 않으면, 곧 쓰지 못한다. 위아래가 아직 변변하게 친해져 있지도 않은데 엄벌주의를 내세워서 위압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그들은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다. 일단 백안시하게 되면 이처럼 다루기 곤란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너무 무관하게 친해지면 버릇이 없어지고, 친함이 한도를 넘어 제대로 벌도 주지 못하게 되면, 또한 쓸모가 없어지고 만다. 통솔자와 일하는 사람 사이에 상호, 이해가 조성되는 것, 이것이 인사(人事)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압력만으로 사람을 다루려고 하는것은 하책중의 하책이다. 특히 상호 이해가 아직 없었는데 서투르게 처벌을 하면 생기는것은 반발뿐이니, 통솔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역효과 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자신이 일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한다. 아주 힘이 들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노력 여하에 정비례하여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의 비위만를 맞추는 것이 좋은 사용법이냐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졸리매야 할때 엄하게 졸라매지 않으면 기어오르기 십상이다. 서로 잘 이해하고 친밀도를 깊이 하면 큰 과실이 있어도 좀처럼 표면에 내세워서 처벌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정에 끌린 듯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된다. 이것이 재앙의 근본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도는 엄하게 정해놓고, 그리고 한가족같이 지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사람을 능숙하게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예화] 경우에 따라서 부하를 처벌하라 卒未親附(졸미친부) 而罰之(이벌지) 則不服(즉불복) 군사가 아직 친부하지 않은데, 벌하면, 곧 복종하지 않는다. 不服則難用也(불복즉난용야) 복종하지 않으면 곧 쓰기가 어렵다. 卒已親附(졸이친부) 而罰不行(이벌불행) 則不可用也(즉불가용야) 군사가 이미 친부하여, 벌하지 않으면, 곧 쓰지 못한다.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제나라 경공(景公)에 의하여 진(晉)과 연(燕)나라의 군을 공격하고자 장군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경공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나는 비천한 출신으로, 발탁되어 장군이 되었으므로, 사졸은 아직 진심으로 나를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이래서는 명령을 해도 복종하지 않을까봐 걱정입니다. 그러하오니 주군께서 총애하시는 신하로서 누구나가 존경하는 사람을 군감찰로 소신에 게 붙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장고(莊賈)가 선택되었고, 양저는 장고에게, "내일 정오에 군문(軍門)에서 만납시다" 하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음날이 되었다. 정오가 되었어도 장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장고가 도착한 것은 약속 시간보다 훨씬 늦은 저녁때였다. 양저는 이미 부대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군령을 정하여 통달하였다. 따라서 군사들 사이에 골고루 전달이 되어 있었다. 친척과 측근들의 전송을 받느라고 늦었다는 장고의 변명을 듣고 양저는 말하였다. "장수가 된자는 출진 명령을 받는날 집을 잊고, 군령을 정하면 육친을 잊고, 공격의 북이 울리면 몸을 잊는 법이다. 우리 백관중서(百官衆庶)의 생명은 귀관에게 달려있다. 사삿일로 늦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군법관을 불러 물었다. "군법에서는 약속 시간에 늦는 자는 어떠한 죄에 해당되는가?" "참죄(斬罪)입니다" 곧 군법에 따라 장고는 참죄에 처해지고 이사실은 전군에 알려졌다. 전군의 사졸은 몸을 떨었다. 양저는 장군으로서의 급여를 전부 사졸에게 주고 양식도 사졸과 평등하게 나누었다. 숙사나 우물, 취사도구까지 돌봐주고 병자를 조사하여 약을 먹이기도 하였다. 사졸은 용약해서 양저를 위하여 싸우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진의 군과 연의 군은 아예 군사를 거두어 퇴진하고 말았다. 이윽고 양저는 침략 당하고 있던 제나라 영토를 되찾아 귀환하였다. (19) 문무를 겸비해야 백전백승이 가능하다. 故(고) 令之以文(영지이문) 그러므로 명령하는 데는 문(文)으로써 하고, 齊之以武(제지이무) 이를 가지런히 함에 있어서는 무(武)로써 한다. 是謂必取(시위필취) 이를 필취(必取)라고 한다. 令素行(영소행) 以敎其民(이교기민) 則民服(즉민복) 영이 처음부터 행해져서, 백성을 가르치면, 곧 백성이 복종한다. 令不行素(영불행소) 以敎其民(이교기민) 則民不服(즉민불복) 영이 처음부터 행해지지 않은 채, 백성을 가르치면, 곧 백성이 불복한다. 令素行者(영소행자) 與衆相得也(여중상득야) 영이 처음부터 믿음이 있게 드러남은, 무리를 얻는 것이다. 사졸을 이끌려면 질서와 상호 이해가 기본이나, 이것을 정비하여 실전에 적합하게 하는 것은 무덕(武德), 즉 위력적인 힘이 된다. 문과 무 양쪽을 겸비해야 비로소 백전백승이란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질서가 충분히 잡히고 피차간에 이해가 원만하였을 때 지시교도(指示敎導)가 있으면, 민중은 모두 따르고, 이것이 없으면, 억지로 지시하고 호령을 하여도 여간해서는 따라오지 않는것과 같다. 상호 이해가 원만하다는 것은 민중과 일체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손톱만큼도 빈틈이 없는 굳은단결이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행군 편의 결문(結文)이지만, 기실 일하는 사람과 지도자 사이의 호흡이 꼭 맞는다는 것은 모든것의 근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려면 충분하고도 좋은 이해와 훌륭한 질서가 없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움직이는 것도, 사업을 운영하는 것도 전부 이 점이 기본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