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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로뎀나무와 숯불에 구운 떡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이스라엘에 대해 이란이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 주에는 이스라엘이 다시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교묘하게 했습니다. 이란의 핵시설은 건드리지 않고 핵시설 옆에 있는 특정한 지역을 타격했습니다. 그 말은 이란의 방공망을 깨버렸고, 이란의 불특정 미사일 공격과 달리 필요한 곳에 정밀 타격할 수 있다고 이란을 협박한 것입니다. 직접 교전이 일어나면 이란은 이스라엘에게 박살이 나게 돼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쟁은 곧 일어날 것 이라 봅니다. 이란의 시아파는 이스라엘을 멸망되어야 할 민족이고, 언젠가 이스라엘을 없앨 것이라 가르칩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를 이맘(이슬람교의 종교 공동체를 지도하는 통솔자)이라 생각하고 기다리며 자기들이 전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두 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계속 이스라엘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먹고 살 길이 막연할 때 일어납니다. 예전에는 서울 가면 코 벤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소매치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 없어졌습니다. 잘 살게 되니까 물건 훔쳐봐야 남는 게 없습니다. 팔 데도 없습니다. 소매치기가 없어진 것은 사람들 인격이 훌륭해져서가 아닙니다. 잘 살게 되고 풍족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근과 세계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사는 미국도 가난한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물건을 훔칩니다. 똑같습니다. 지금 세계엔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 진행되면 2027년부터 2033년에는 임계점에 이르게 됩니다. 해수면이 올라가고, 도시들이 물에 잠깁니다. 올해 4월엔 기상이변이 전 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두바이에서는 2년 반치의 강우량이 단 하루만에 쏟아졌습니다. 그 옆에 있는 오만도 홍수에 휩쓸려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도 하루 만에 한 달치 강우량이 쏟아졌고, 미국 남동부 북동부 쪽에서 약 7,500만 인구가 악천후와 강폭풍인 토네이도에 갇혀 있었습니다. 중서부도 토네이도가 강타했고, 서부쪽은 엄청나게 가뭅니다. 미국만 해도 재앙이 세 군데에서 일어났습니다. 올 4월 달에 일어난 것입니다. 중국 강시성 난창 등에 강풍과 폭우로 바람에 날려 일가족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브라질은 남동부 쪽 온도가 섭씨 62도까지 올라갔답니다.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폭풍우가 평소 3월 강우량의 2배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에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여름 날씨에 갑자기 눈이 오기도 합니다. 이런 기상재해는 가뭄과 기근으로 연결되고 기근은 전쟁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전염병을 창궐하게 합니다. 지금 이란과 이스라엘이 미사일 폭격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우리에게 재앙에 들어갈 것이니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비해야 할지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5절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을 가지고 지난주에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온유는 히브리어로 하면 [아나브]로 순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땅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슨 뜻일까요? 땅 사면 부자 된다는 뜻일까요? 전혀 그 뜻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땅과 관련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는데 땅에 창조하시고 땅에 복을 주셨습니다. 땅은 원래 흑암이 갇혀 있던 곳인데, 뭍을 올라오게 하시고, 식물이 나게 하시고, 동물을 만드시고 복을 주셔서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말씀드리냐면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은 에덴 동산이 회복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에덴 동산 주변의 땅들도 다 축복의 땅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과거의 에덴 동산이 이스라엘, 새 예루살렘 성이 됩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에덴 동산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났을 때 화염검과 그룹을 두어 지키게 하십니다. 그룹은 하나님을 호위하는 호위 천사입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은 하나님이 친히 계시던 곳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의 에덴 동산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곧 천년왕국이고, 잃어버렸던 사람을 축복하고 이 땅을 축복하셨던 그 축복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이 회복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옴으로써 이 세상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이 말씀은 놀랍게도 순종의 예수, 온유하신 예수가 어떠한 축복을 받으실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온유하신 예수가 이 땅에 친히 내려오셔서 다스리는 나라가 올 것이므로 온유한 자는 예수님 따라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마지막 때에 천년 왕국을 다스리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온유한 자의 비밀을 몰랐던 것입니다. 온유한 자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면,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하며, 어떻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이제는 온유, 곧 순종함으로 땅을 기업으로 받을 자들이 나타나는 세대입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창세기 25장 27절부터 34절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28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32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이삭의 자녀인 에서와 야곱 두 형제에게는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애굽으로 가지 말고 이곳에 머무르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면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겠다,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하며, 이 땅을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이삭은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을 것이라는 복을 받고, 세상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100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물만 파면 물이 나오는 엄청난 축복을 받습니다. 물의 축복, 곡식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핍박하면 도망가고 핍박하면 도망가고 아무리 핍박을 해 봤자 우물만 파면 또 물이 솟아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어떤 일만 하면 그들이 축복을 받고 잘 되던 시대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 시대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목사님들이 이삭의 축복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축복에 대해서 계속 설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잘 맞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에서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의 시대로 바뀝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 시대로 바뀌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하나님이 예비하게 하십니다. 이 두 아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에서나 야곱 둘 다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았습니다. 둘이 태어나고 나서도 아브라함은 15년 더 생존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충분히 교육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이 다릅니다. 에서는 이삭이 축복 받고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는 걸 보고 자라서,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는 생각에 꽉 잡혀있습니다. 에서는 어떡합니까? 들에 나가서 사냥을 하는데, 익숙한 사냥군이라 할만큼 잘 합니다. 세상에 나가 많은 이익을 거두는 자, 일만 하면 잘 되는 자입니다. 에서가 바라본 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나님을 통하여 받은 복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약속에 주목합니다. 현실이 아닌 미래에 주목합니다. 이것이 야곱과 에서의 차이입니다.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사는 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것에 주목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장차 올 하나님의 왕국 혹은 천국을 소망하여 바라보느냐로 나뉩니다. 지금 예수님 곧 오시니 이 땅에 소망을 두면 안 된다고 하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상한 데 다니냐며 이단에 빠진 것이 아닌가 걱정합니다. 대부분 교인이 복에 익숙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를 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또 하나 미래에 대한 약속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미래를 약속받은 자입니다. 놀랍게도 야곱은 장차 올 축복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행동이 완전히 다릅니다.
에서는 바깥에 나가서 이익을 추구하는 들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종용한 자라 합니다. 종용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야곱을 영악한 술수에 능한 사람, 머리를 굴려 복 받으려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고생을 시키고 인간 개조를 해서 돌아오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추구하는 것이 괜찮은 줄 착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야곱을 완벽한 자라고 합니다. 바울도 베냐민 족속, 가브리엘 문하에 있다고 한 것을 대단히 학문이 높은 것으로 들어왔지만,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족속은 유다 족속으로 베냐민은 소수 족속에 불과합니다. 가브리엘 문하도 무슨 하버드대, 서울대 나왔다가 아닙니다. 나도 너희만큼 공부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높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도 너희만큼 공부했으니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이 바울에 대해 얼마나 과장해서 이야기합니까? 야곱도 그렇게 잘못 전달된 부분이 많습니다.
야곱은 장막에 거했습니다. 장막은 성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갈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과 에서의 차이입니다. 그동안 에서가 언제 사냥에서 돌아올지 알고 죽을 쑤고 일부러 기다렸다고 하는 설교를 얼마나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자기가 먹으려고 죽을 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붉은 죽은 굉장히 맛이 있다고 해서 별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떡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에서가 들이닥친 것입니다. 에서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좀 나눠달라고 했을 텐데 그냥 다 달라고 합니다. 욕심이 많아 보입니다. 야곱은 평소 에서의 말을 잘 들어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야곱은 잘 됐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형이 받을 장자의 축복을 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비단치마 한 벌로 꿈을 사서 왕비가 됐다는 이야기(신라시대 김유신의 누이 김문희가 언니인 김보희로부터 꿈을 사서 김춘추, 즉 태종무열왕의 비(妃)가 된 설화:높은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면 그 오줌이 장안에 가득 차게 되고, 그 꿈을 꾼 사람보다 산 사람이 국모(國母)가 된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언니는 비단 받는 것이 좋아 팔았던 것처럼 에서는 현재의 먹을 것이 중요하니 장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축복, 장자가 받는 축복은 자기와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되고, 바닷가 모래같이 되는 것이 나와 무슨상관이냐며 지금의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도 천년왕국을 말하면 우리 때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볼 때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사람이 친구에게 판교에서 농지를 사서 농사짓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판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논밭으로 되어있었겠지요. 그러다 보니 친구는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며 거절하고, 한 명만 판교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불과 10-20년 만에 땅값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지금 투자하는 자그마한 일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은 현재 갖고 있는 것이 별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야곱은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반면, 에서는 현실을 봅니다. 오늘날 교회도 두 경우로 양분됩니다. 여러분들도 현재의 현실에 집중하겠습니까? 아니면 장차 올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심을 바라보겠습니까? 미래를 볼 때 현재의 믿음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되돌아보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와 야곱의 미래는 바뀝니다. 하나님이 이 말을 들으셨고, 리브가를 동원합니다. 야곱은 소망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소망을 이끌어 주십니다. 야곱을 바꾸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창세기 27장 15절부터 18절
15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17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리브가가 야곱에게 어린 염소를 잡아서 별미를 만들게 합니다. 그 어린 염소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어린 양 예수입니다. 어린 양 예수의 별미, 즉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를 본받고 예수를 따라가는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어린 양 예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 야곱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바꿉니까? 첫째,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합니다. 옷을 바꾸십니다. 바로 예수의 옷,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예수의 옷으로 바꿔주십니다.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손과 목의 매끈한 곳을 꾸밉니다. 염소 새끼 가죽으로 손과 목에 두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처럼 사랑을 베푼다는 의미입니다. 목이 꼿꼿한 백성, 굳은 백성이 예수를 닮아서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언약을 지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야곱을 무엇으로 바꿉니까? 예수를 닮은 자로 바꾸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로 바꾸고,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하고 구제하며 전도하는 자로 바꿉니다. 야곱을 그러한 자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다시 볼까요? 밑에 보면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만든 별미와 무엇을 가져갑니까? 떡을 가져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별미와 떡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이 떡이 무엇일까요? 떡은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가 늘 가지고 사는 자란 뜻입니다. 별미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가 내 삶의 맛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라 그 성품 따라 사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말 한마디 하실 때도 여러분이 선한 말, 그리고 행할 때도 이웃을 생각하는 삶을 사시길 축복드립니다. 그것이 주님이 받기를 원하신 별미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갔을 때 순종하는 자의 모습이고, 이런 순종의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27장 25절부터 29절
25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자기가 받았던 축복을 다 야곱에게 줍니다. 그래서 뭐라고 합니까?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처음은 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장차 올 축복에 주목한 자, 하나님께 주목한 자입니다. 약속에 주목한 자입니다. 그랬더니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야곱의 삶에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너의 땅이 복을 받을 것이다. 당장 받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받을 축복입니다. 사실 야곱의 일생을 돌아보았을 때 현실에서 그런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후손이 받는 축복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받는 축복이고 예수님을 따라간 자들, 온유한 자들이 받는 축복입니다. 야곱은 이 축복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축복을 야곱에게 주십니다.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 곧 이스라엘이 받을 축복, 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길 원하노라.’ 누구의 복입니까? 아브라함의 복, 장자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지금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 나아온 자들에게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이스라엘이 될 자들이 있는데, 요한계시록은 이들을 이긴 자라고 합니다. 이긴 자가 받는 축복을 야곱이 받는 것입니다. 즉 현실에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서는 망가지고 꼬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장차 받을 축복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지금 어려움 당하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장차 더 큰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으로 여러분과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창세기 28장 1절부터 4절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이 마지막에 야곱에게 또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고’, 놀랍게도 야곱에게 어떻게 복을 주었습니까?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여러 족속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야곱의 족속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긴 자들이 여러 족속에서 나오는 현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길 원하노라.’ 놀랍게도 땅의 축복을 받으라 하십니다. 야곱은 땅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죽이려 합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밧단아람에 가서 숨어 있으라고 합니다. 이것을 목사님들이 야곱이 도망가느라 돌베개를 베고 잘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가진 것이 없다고 설교합니다. 아닙니다. 당시 이삭은 거부입니다. 떠나는 아들을 그냥 보냈을까요? 라반이 어떤 사람인 줄 아는데 빈털터리로 가게 했을까요? 라반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제법 재물을 가져갔다는 뜻입니다. 이삭이 축복하고 많은 재물과 식솔을 함께 보냈을 것입니다. 대신 양 같은 동물은 걸음이 느려 에서에게 잡힐 수 있으니 신속하게 갈 수 있도록 하며 낙타 정도는 끌고 갔을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0절부터 15절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한 곳에 이르러 돌을 취하여 베고 잡니다. 이걸 가지고 가난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쫓기면서 베개까지 가져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돌을 베개하였다는 것은 돌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장차 자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고민하며 잤다는 뜻이고, 이때 예수님이 친히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꿈에 사닥다리가 서고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 하고, 하나님과 교류하며 천국을 소망하면 그분은 만나주십니다. 그럼에도 이럴 때 괴롭히는 자가 있습니다. 형 에서입니다.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 제대로 믿으려하면 주변의 그리스찬들이 잘못 믿네, 광신이라며 핍박합니다. 현실에서 겪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다.’ 무엇입니까? 네가 그렇게 바라며 받은 약속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언약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이삭에게 주신 축복을 하나님이 보증해 주십니다. 약속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제일 중요한 건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받으려고 그리고 그 언약에 마음을 두는 이 조그마한 투자가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판교 땅을 살 것이냐, 여주 땅에 머물 것이냐, 똑같습니다. 제가 현실감 있으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여기서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무엇입니까? 야곱의 후손은 지금 이스라엘 민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전 세계 동서 남북에서 다 나옵니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장차 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땅입니다. 지금 가나안 땅입니다. 이 가나안 땅을 예수님이 친히 다스릴 것이며 전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복을 얻습니다. 천년왕국입니다. 천년왕국을 안 가르치다 보니까 이게 이상한 말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안 갔었는데, 천년왕국을 알게 되니까 확실해집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이것은 알리아에 관한 것입니다. 전 세계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알리아로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건이 마지막 때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가 친히 이 땅을 다스리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알리아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귀환을 돕고 있습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을 안 떠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간혹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내 곁을 떠났습니까? 나는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쫄딱 망합니까? 하나님 나 버리셨습니까?” 지금 누가 이 얘기하는 것입니까? 야곱이 쫓기고 있습니다. 야곱이 75세고 장가도 안갔습니다. 왜 안 갔을까요? 미래를 바라봤더니 현실감이 없어 장가 가고 자식 낳는데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아내를 얻길 원해서 기다렸습니다. 이삭이 아내를 얻기를 원할 때 얼마까지 기다렸습니까? 이삭은 40세까지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곱빼기로 기다렸습니다. 그만큼 야곱의 복은 이삭이 받는 복보다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야곱은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동안에 형 에서는 장가를 두 번이나 갔습니다. 한 번에 두 명의 아내를 얻고, 야곱이 도망간 후 또 아내를 맞습니다. 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좋은 대로 행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이 주신 짝을 원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길 원해서 결혼도 안 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여러분 지금 현실은 비참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립시다. 당장 삶이 바뀌지 않지만 바뀝니다. 야곱도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쫓겨가고 있습니다. 장막에 살던 자가 들판에서 돌베개 베고 잡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장차 그가 꿈꾸던 미래를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도 현재 큰일을 당하고 재산을 잃었지만 재산을 돌려주시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약속을 확인해 주실까요? 약속을 받읍시다. 야곱이 이삭에게 나갔을 때 떡과 별미를 가져갔고, 포도주를 가져갑니다. 룻기서에서도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갔을 때 보아스가 룻에게 초에 찍은 떡을 줍니다. 초에 찍은 떡과 물, 구운 떡을 줍니다. 이후 룻은 복을 받습니다. 쫄딱 망해 갔지만 장차 받을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자가 장차 복을 받는지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초에 찍은 떡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성만찬 때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와 맺은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나와 너는 장차 미래에 결혼할 것이다. 룻은 예수님과 혼인할 자라는 것입니다. 룻은 여호와께 돌아온 이방인입니다. 또 구운 떡을 줍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입니다. 룻의 마음에 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고난받는 예수,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지옥에 끌려가서 불에 소금침을 당하신 예수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 제사를 지낼 때도 이 말씀이 나옵니다.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고기를 날로도 먹지 말고 삶아도 먹지 말고 구워 먹으라 합니다. 밤에 구워 먹고 남으면 소각해 버립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육시와 구시에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이때 예수님이 지옥에 끌려가서 불에 소금침을 당하시듯 고통을 당하십니다. 숯불에 구운 떡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네 대신 지옥의 형벌을 받았으니 너희는 천국에 들어갈 너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내가 덮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어린 양의 피로 씻어서 희게 한 자들에게 주시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룻도 언약의 복음을 받습니다.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언약, 혼인 언약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부터 7절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엘리야가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미 이 땅에 기근이 올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엘리야 시대 기근을 겪는 이야기는 놀랍게도 이 땅에 남겨진 자들이 겪어야 될 일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에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3년 반의 기근은 바로 앞으로 두 증인이 3년 반 동안 활동한 기간에 있게 될 일의 예표입니다. 이때 남겨진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먹어야 합니까? 떡과 고기를 먹어야 하고, 시냇가 물을 마셔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처럼 이 땅에 남겨진 자들이 얼마나 비참할 지와 한때 두때 반때에 관한 메시지를 다음 주에 전하겠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다가는 에서 족속처럼 남겨지게 됩니다. 야곱의 후손은 예수를 만나러 갈 것이고, 에서의 후손은 이 땅에 남아서 기근에 들어갈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절부터 8절
1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는 굉장한 일을 벌입니다. 이적과 기사를 일으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고, 이단들을 벌하고, 이 땅에 비가 오게 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이 땅에 부흥이 있고, 회복될 것이라고 항상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말씀은 주님 오시기 직전에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도망을 갑니다. 야곱이 쫓겨 도망가듯, 엘리야도 쫓겨 도망갑니다. 룻기서에서도 시아버지 죽고, 남편 죽고 세 여자만 덜렁 남습니다. 룻과 나오미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상징입니다. 이 둘만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때의 이방인과 이스라엘로, 예수님께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실까요? 아니면 고난을 주실까요? 고난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게 하십니다. 세상 소망을 끊으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부흥은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것 때문에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흥은 위대한 부흥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불꽃이 올라가다가 사그러지는 부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통하여 한국 땅의 수도 없는 분들이 돌이킬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복음이 자꾸 전해지고 있는 현장에 대해 듣습니다. 한 명이라도 주님께서 더 깨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부흥에 주목하지 맙시다. 어떤 분이 제가 한국에 부흥이 있을 것이라고 하니, 예수님 오실 때 다 됐는데 무슨 부흥이냐고 댓글에 적어놓으셨습니다. 전 그 댓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이 땅이 아닌 하늘 나라의 부흥을 꿈꿉니다. 대부분 말을 안 듣습니다. 엘리야도 이적과 기사를 일으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 세대는 다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돌아옵니까? 오히려 죽이려고 합니다. 핍박을 당하고 도망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낙망합니다. 엘리야가 우울증에 걸립니다. 이 땅의 부흥을 꿈꾸면 우리도 우울증 걸립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에 앉아 죽기를 구합니다.
로뎀나무는 사막에 있는 나무인데, 한 2~3m 되는 관목으로 작은 편입니다. 이러니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대싸리나무라고도 하는데 싸리나무가 가지만 많고 잎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늘져봐야 얼마나 그늘이 생기겠습니까? 그런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그나마 더위를 피하며 있는 상황은 비참한 상황입니다. 죽으려 하니 하나님이 로뎀나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도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있으신 분들 많습니다. 로뎀나무에 앉아 내 소망, 부흥과 회복의 꿈을 끊으십니다. 죽기를 소망하며 앉았다가는 이제 누워 자버립니다. 일사병 걸리기 딱 좋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누워 자버리겠습니까? 완전히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깨웁니다. 천사가 어루만집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은 어루만져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위로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때 일어났을 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주십니다. 숯불에 구운 떡이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예수십니다. 그냥 십자가입니까? 지옥의 고통을 대신 당한 예수입니다. 너희는 이 땅의 부흥을 꿈꾸지 말고,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을 꿈꾸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여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생각이 늘 천국을 사모하는자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이 느껴질지라도 천국을 소망하여 다시 일어나라고 하시며 물을 주십니다. 물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여러분을 일으켜서 힘을 주십니다. 당장 해결할 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위로를 주십니다. 여러분이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있을 때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로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어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주 40날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여러분 지금 쓰러진 것 같고 넘어진 것 같고 힘든 것 같지만 주님이 숯불에 구운 떡을 주십니다. 천국을 소망합시다. 예수로 인하여 여러분의 소망이, 눈동자가 천국을 향하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령께서 위로해 주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40일 40주야를 걸어갑니다. 우리 그 호렙산 곧 천국을 향하여 걸어갑시다. 밤낮으로 걸어갑시다. 저는 여러분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그리고 물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 단에서 그 일을 하겠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새 힘을 얻고 천국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끝까지 하늘나라에 소망을 둡시다. 그때 반드시 사랑하는 예수님 만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반드시 숯불에 구운 떡을 먹어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예수로 인하여 우리 대신 지옥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 때문에 우리가 천국을 가게 됨을 깨닫고 천국을 소망하여 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으나 성령께서 새 힘을 주시사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40일 40주야를 천국을 향하여 가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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