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9장1절~43절
바울의 회심, 아나니아의 바울 안수, 바나바와 바울의 만남, 죽은 도르가를 살림 베드로의 복음 전도'
사울의 회심, 사울의 회심은 사도행전 네러티브에서 갑자기 끼어든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이 단락(6~12장)에서 누가는 주로 흩어진 헬라어 유대파와 사도 베드로를 통한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 전파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의 회심은 이 시간의 틀에 잘 들어맞으며 바울 자신도 헬라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즉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결국 이방인을 향한 전도에 있어서 으뜸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사도행전에서 세 번, 즉 여기서는 이야기 형식으로 뒤에 두 번은 유대인 군중들 앞과 아그립바 2세 앞에서의 바울의 증언 속에서 자세히 소개됩니다. 누가는 바울의 회심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그 시기를 추측해보면 주후 33~34년경이 됩니다.
1절~9절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울과 그리스도의 만남, 사울은 다메섹에 있을지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그리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휘황찬란한 빛에 눈이 먼 채 이후의 지시를 기다리도록 성 안으로 이끌려갔습니다.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받은 문건은 공식적인 범인 송환 문서거나 '다메섹 여러 회당'에 보내는 소개 '공문'이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어떻게 다메섹에 전파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오순절에 회심한 이들이나 스데반의 순교 이후 흩어진 이들을 통해 전파됐을 것입니다. 이 구절은 사도행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의 길이나 하나님과 관련된 참된 생명의 길을 뜻하는 '그 도를 따르는' 이들로 묘사하는 첫 번째 구절입니다(1~2절).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217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이는 도보로 6일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이미 주전 2천 년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다메섹은 아라비아 사막의 경계선과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주요 도로 위에 있는 오아시스 였습니다. 나바테아 왕 아레다 4세는 다메섹에 한 행정 장관(즉, 총독)을 두었습니다. 오늘날의 다메섹은 고대 유적 위에 서 있지만 아직도 동편 문과 역사적인 아치가 있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은 "직가라 하는 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3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나를 박해"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의 긴밀한 일체감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었습니다(4절).
'주여 누구시니까', 바울은 결국 밝은 빛으로 인해 눈이 멀었지만 다른 곳에서 자신이 실제로 이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 장면은 단지 바울의 회심 때문만이 아니라 바울이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부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따라서 왜 부활이 기독교의 메시지에 핵심적인 부분인지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도 중요합니다(5절).
사울과 동행한 이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훗날 유대인들에게 증언할 때 그들이 빛을 보았으나 음성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22:9). 그들은 예수님의 환상도 보지못했고 사울을 향한 메시지도 듣지 못했지만 밝은 빛과 소리에 대해서는 증언할 수 있었고 이는 이 시각 사건이 사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 객관적인 사건이었음을 가리킵니다(7절). 사울이 앞을 보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한 것은 형벌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강렬한 만남의 결과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누가복음 1장에서 사가랴가 귀가 멀고 말을 못한 것과 비슷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갔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9절).
10절~19절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사울과 아나니아의 만남, 예수님은 다메섹에 있는 한 신자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에게로 가서 시력을 되찾도록 돕고 그의 특별한 소명을 알려줄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는 성부가 아닌 예수님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나니아의 대답은 아브라함(창 22:1, 11), 야곱(창 11:11), 모세(출 3:11), 사무엘(삼상 3:4~8), 이사야(사 6:8) 등과 같은 구약의 선례가 되는 인물들을 상기시킵니다(10절). '직가라 하는 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지속적으로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의 하나입니다(11절).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에서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들뿐만 아니라(각 성에서 언제나 먼저 유대인 회당부터 찾아가므로) '이방인과 임금들'(아그립바 2세)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15절).
아나니아의 사울 안수는 사울이 상실된 시력을 고치고 새 언약에 충만함으로 사울에게 내주하시기 위해 임하시는 성령의 보이지 않는 능력에 대한 물리적인 상징입니다(17절).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이 물리적인 사건 또한 사울이 영적인 눈멂이 극복되어 사울이 이제 진리를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사울의 이름이 바울로 바뀐 것은 그의 회심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바울에게는 첫 번째 유대식 이름과 두 번째 로마식 이름을 계속해서 둘 다 유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구브로에서 사역할 때(13:9)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사울이라고 부릅니다. '세례를 받고', 세례를 통해 사울은 즉시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18절).
20절~31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 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의 사울의 복음 증거, 이 단락은 사울이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한 일을 전합니다. 사울은 아마도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에게서 기독교의 '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 시기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갈 1:17). (여기서 '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사해 남동쪽의 나바테아 왕국을 뜻합니다). '회당',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패턴은 회당에서 복음에 대한 반대가 생겨나는 패턴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등장합니다(20절).
'유대인들'은 물론 모든 유대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바울 자신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이 시점부터 보통 '유대인들'이라는 문구를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단축된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이러한 배척에 관여하는 이들은 보통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입니다.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복음의 원수들은 자유롭고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복음을 물리치지 못하여 그래서 종종 폭력, 거짓, 살인, 정부의 탄압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 바울은 '아레다 왕의 고관'이 자기를 죽이려는 시도를 거들었다고 밝힙니다(고후 11:32~33). (23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성령은 사울을 보호하시기 위해 거듭해서 개입하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저항하다 목숨을 잃기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알려주신 위험에서 피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의 제자들이'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바울의 생명은 미래의 사역을 위해 보전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바울은 아직 주요 선교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신약성경에 포함된 어떤 편지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4~25절).
'바나바'가 사울을 위해 중간에 나서서, 처음에는 사울의 회심에 대해 의심했던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바나바가 사울을 소개했습니다. 이 방문은 바울이 회심한지 3년 뒤에 있었고, 따라서 이 해는 주후 37년경이 됩니다. 바울은 보름동안 베드로와 만났지만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만난일 외에는 다른 사도들과는 실질적인 교류가 없었습니다(27절). 여기서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6장1절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불린 유대인 신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유대인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니었고 아마도 스데반을 붙잡은 이들 중에 일부였을 것입니다(29절).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바울의 고향 다소는 수리아에서 소아시아 중앙까지 이어지는 도로상에 있는 소아시아 남동부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길리기야 지방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다소를 "소읍이 아닌" 도시라고 부릅니다. 키드노스 강의 강둑 위에 세워진 도시 다소는 (키드노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대략 8킬로미터 떨어진) 레그마 호의 중요한 항구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타우로스 산맥
타우로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이 나있는 중요한 길리기아의 관문들은 북쪽으로 대략 40킬로미터 지점에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다소에 머문적이 있었고 폼페이우스는 이 도시에서 해적과의 전쟁을 위한 기지를 건설했으며 안토니우스는 다소에서 클레오파트라를 처음 만났습니다. 다소는 철학자들, 특히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고향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소로', 이는 갈 1:21에 상응하여 거기서 바울은 다소가 위치한 속주인 '길리기아'로 갔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13:9에서 바울이라고 불리기 시작할 것입니다(30절).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 이 넓은 지역 전체에 걸쳐 작은 도시와 마을에 수백 개의 교회들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모든 교회가 전부 하나의 '교회'(헬라어, '에클레시아')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한 가정(롬 16:5), 한 도시전체(고후 1:1), 한 넓은 지역, 또는 온 세상(고전 12:28)에 교회 모임에 '교회' 라는 단수형 단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장 큰 박해자가 회심하고나자 교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주를 경외함'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진에서 경건한 경외심, 경의, 헌신으로서의 두려움이나 하나님의 진노와 부성애적인 징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주제입니다(31절).
32절~43절
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하니라
베드로가 해안 마을에서 복음을 전함, 베드로는 예루살렘 밖에 유대 해안 평야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며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치고(32~35) 도르가의 생명을 되살렸습니다(36~43). 그 후 하나님은 베드로로 하여금 가이사라에서 일단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복음 전도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사론의 비옥한 해안 평야를 향했고 거기서 기록된 다음 두 번의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룻다'는 욥바로 가는 길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37킬로미터 떨어진 구약시대에 룻입니다 룻다는 유대 지방의 지역 행정 도시역할을 했고 중요한 무역로 위에 있었습니다(3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보이지 않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자리를 정돈하라", 이는 아마도 그가 누워 있었던 거적을 접는것을 가리킬 것입니다(34절).
'주께로 돌아오니라', 사도행전에서 보통 그렇듯이 이 치유 사건과 같은 기적은 복음의 진보로 이어졌습니다. 이 소식은 룻다 마을을 넘어 사론 해안 평야 전채에 퍼집니다. '욥바'는 룻다에서 북서쪽으로 18킬로미터 떨어진 해안가에 있었습니다. 항구 도시 욥바는 유대의 하스몬 왕조(주전 2세기)에 의해 점령당했고 1차 유대인 반란(주후 66~73년) 이전에는 상당수의 유대인 인구가 살고 있었습니다(35~36절)..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이는 사도들에게 비상한 수준의 성령의 능력이 있었다는 이해를 반영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베드로 자신의 말에는 아무런 초자연적인 능력이 없었지만 주님은 베드로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행하실 일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셨고 베드로의 마음에 그가 이 말을 할 때 다비다의 생명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주셨습니다(40절).
'일으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신약 전체에 걸쳐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단어(헬, '아니스태미')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녀의 생명 회복은 영구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부활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41절).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다시 한 번 복음이 확산되면서 놀라운 기적이 더 많은 진정한 회심을 가져오는 패턴이 나타납니다(42절). '무두장이'인 '시몬'은 짐승 가죽을 가지고 일했고 이 사실은 그의 집이 해변에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이는 시몬이 대체로 부정한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하지만 그는예루살렘에서 살지 않았으므로 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4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