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길에서 만난 봄내음 & 산내음 ( 090419)
4.19 아침- 미완의 혁명에 대한 기억이 뒷걸음치고 있는 현실과 무력하게 맞닿는 쓸쓸함을 달래며 먼 산행길에 올랐습니다.
매월 세째 주에 있는 배봉산장 정기 산행일에 우리집 옆지기랑 두째가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엔 경상북도 청송에 있는 주왕산입니다.
날이 참 맑아보여 좋습니다.
약속 장소에 다다르니 차 안과 밖 자리자리에서 반가운 이들이 환하게 반겨줍니다.
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들수 있는 것은 먼 산행길이 주는 또다른 맛이려니 다섯시간여란 적잖은 시간을 그저 즐기기로 했습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차가 내주는 길 위에서 대자연의 봄길을 쫓아 흥겹게 내달렸습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올라탄 찻속에서 준비해주신 김밥이랑 비바리님의 쑥찐빵이랑 산악대장 님의 생수는 빈 속을 든든하게 해준 고마움입니다.
뭣보다도 쑥찐빵을 꼭 일년만에 다시 맛보게 되니 더 맛있습니다.^^
연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산에 피어나는 꽃들이 모둠을 이루고 있으니 영락없이 꽃불이 난 산같습니다.
산 속 깊이에서 나홀로 피어있는 꽃들은 흩어지는 꽃 연기가 되어 곳곳에서 '불이야~ 불~' 하는 것처럼 흩날립니다.
일년에 딱 한번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맘껏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주기로 작정한 깊은 산 속 꽃나무들의 외침은
묘한 생명력이 되어 찻속에 있는 제게까지 전해져옵니다.
이곳저곳에서의 외침은 또다른 메아리가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차 창을 따라오며 설렘을 안겨줍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새로 나기 시작한 연초록 잎새들과 어우러진 꽃들도 나무들도 전해지는 거리감속에 더욱 환상적여보입니다.
생명을 지닌 온갖 풀과 나무들 모두가 새 생명을 잉태하며 자신들만의 봄빛으로 물들여 나가고 있는 산-
이산에 눈길따라 드는 것만으로도 마냥 포근해집니다.
냅다 달려가 아는 체 해주고 싶은 맘 간절하건만 차 속에서 꼼짝 못하게 안전밸트로까지 묶여진 저였습니다.
안타까움에 멀리 멀리 내다보며 눈인사라도 놓치지 않으려 부지런 떨어봅니다.
'저 꽃무덤은 무슨 꽃들일까? 저긴 무슨 나무들이 있길래 저 빛일까? ......야~ 저 깊은 골짜기에서도 꽃들이 손짓하네...'
안동으로 진입해선 청송으로 향했습니다.
몇 년 전에 왔던 여름휴가 길에 본 듯한 낯익음이 반갑기만합니다.
이제 주왕산이 금세 반겨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몸도 마음도 들썩거립니다. 근데 그도 오래 걸렸습니다.
꼬불거리는 거리가 막판 어지러움증을 주기도 했지요.
주왕산에 도착하니 저 멀리 기암(旗岩)이 우직한 모습으로 반겨주며 우리나라 3대 암산( 설악산 월출산) 임을 말없이 온몸으로 전해줍니다. 주차장엔 벌써 여러 팀들이 산행을 준비하는 부산한 모습이고 그 사이에서 솔비알님이 우릴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모두가 늦어진 만큼 서둘러서 단체사진 한장을 찍고는 바로 산에 들 채비를 했습니다.
A팀 B팀으로 나눌 것이 제안되면서 잠시 우왕좌왕 갈팡지팡하다가는 멀리 인천에서 오신 나무늘보 님과 홍복희 님의 독려속에
모두가 A팀으로 다시 합류했지요. 그리하여 배봉산장 전체가 A팀 한 팀으로 꾸리고 다만 선두와 후미 책임자를 정한 뒤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마다 배봉산장 배너를 붙이고 중간중간 깃발이 인도하니 안심입니다.
내려가기 전엔 몸이 힘들어 언저리에서 놀다 오려고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기암괴석을 보니 마음이 변해 시침 뚝떼고
A팀 대열에서 있었던 저 은근히 겁나서 앞질러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몸이 가벼운 듯한가 싶더니 금세 고비를 맞은 저이기도 하지요.
어질어질 숲이 흔들리고 속은 뒤집히고 낯빛은 백지장이됩니다. 다행히 옆지기가 바로 옆에 있어 그냥 나몰라라
자리에 털석~ 주저 앉아서는 '나 못가'라고 배짱을 부렸습니다.
난감해하는 옆지기 배낭을 달랍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가잡니다. 옆에서 다른 분들도 거들어주십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사탕과 물과 오이 따위를 먹으며 기운을 모둬 일어섰습니다.
- 어찌 그 먼 곳까지 가서 낙오자가 될 수 있으리오. 불끈! 아자!ㅎㅎ -
기대를 크게 하고온 주왕산인데 여느산과 다를바가 없는 듯해 적잖은 실망감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망대쯤 되어보이는 곳에서의 주변은 웅장했고 소나무가 어떤 산 보다 많았지요.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아직까지도 빗살무늬로 진하게 남아있어 마음을 아프게했지만 쭉쭉 뻗은 소나무가 또다른 볼거리이기도했습니다.
오름길이 어렵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정상까지도 멀지 않았습니다. 한차례의 고비를 잘 이겨낸 뒤 산사람이랑 배고문 또 나짱님이랑 혜니님이랑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오르자니 크게 힘들지 않게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 - 그땐 죽을 맛이었지만요.헤헤~-
정상이 참 밋밋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주왕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722m를 알려주며 우뚝 서있으니 정상이구나 싶었을 따름이지요. 때마침 그곳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다른 산행팀을 지켜보다간 바로 우리의 ' 노상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빗긴 곳에서 먼저 오른 분들이 자리를 잡고 점심을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대식구가 한자리에 한꺼번에 앉을 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어설프게나마 한자리에 다 앉아서 저마다 준비해온 먹거리를 이리저리 공수하면서 나눠 먹으니 언제나처럼 넉넉합니다. 불나비님이 준비해주신 컵라면과 솔비알님의 항정살이 인기만점입니다. 거기다가 누군가가 통채로 준비한 수박 한 통을 내놓으니 모두가 환호성입니다.
커피로 후식까지 다 마시고나니 남은 것은 '하산'뿐입니다.
남은 '하산'을 모두가 맛나게 나눠 먹기위해 주섬주섬 일어섭니다. - 주왕산의 하산은 그 어떤 산보다 맛났습니다.^^-
오름보다 조금 길지만 하산이니 내리막이 많을 것이란 기대감에 발걸음은 가볍워만 집니다.
몸도 풀린지라 적어도 짐이 되진 않겠단 자신감이 붙습니다.
옆지기도 이제 안심이 되는지 앞질러갑니다. 저도 잡지 않습니다. ^^ 덕분에 내림길 내내 언니들이랑 정답게 내려올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울 옆지기 기껏 앞서 가더만 깊고깊은 상념에 빠져있습니다. 전 이때 마냥 신났는데요.^^ 이 틈에 울 아들도 살 길 찾아 명식품 님네로 잠시 입양된 듯합니다. ^^ ㅋㅋㅋ 백의천사님이 어깨까지 걸쳐주시며 보듬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막 하산길로 접어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은 곳에서 아주 귀한 꽃을 만났습니다.
전날 누군가 찍어서 보여준 꽃을 보면서 나도 이번 산행에서 만나면 좋겠다 싶어했던 족두리풀이 눈에 번쩍 띄였습니다.
낙엽사이에서 얼굴 수줍게 감추고는 절 불러준 고마움이지요.
'어~ 저건 족두리풀? '하면서 다시 고개돌려 자세히 보니 정말 낙엽사이에 족두리 고이 모셔놓고 있는 것입니다.
반가워서 요리조리 살피면서 낙엽을 치워주니 족도리가 쏘옥 얼굴 내밀면서 반겨줍니다.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에서 짧은 꽃대를 내세우고는 족두리 하나씩 쓰고 있는 모습이 참말로 신기하기만합니다.
한 송이 찾으니 그곳 주위에 꽤 여러송이들이 모여있습니다. 지켜서서는 제 뒤에 오던 식구들에게 '이꽃 보고 가세요~' 라며 한참 머물러 있던 저이기도 하지요. 산 들머리에서 만난 노란 양지꽃들도 참 반가웠는데 그 이상의 기쁨이었고 산세에 감흥이 그다지 없던 저는 그래 이꽃 한 송이 만났으니 '됐다' 했던 저이기도 하지요.
이때부터 작게 피어나고 있는 꽃들이 이곳 저곳에서 더 진하게 손짓해옵니다.
노란 현호색, 괴불주머니 피나물 여러종류의 제비꽃들 작은 붓꽃들~~ 다 그리운 벗들이 되어 제 감성을 자극해옵니다.
힘에 겨워 디카조차 아들녀석에게 맡긴 것이 어찌나 후회스럽던지요. 그래 한송이도 제가 직접 모셔오진 못했습니다.
△ 족두리풀 △ 피나물
왜 많은 이들이 주왕산을 그리 멋지다고하고 꼭 가보라고 했을까 갸웃거릴 때 달력에서 본 듯한 바위가 드디어 나타나 줍니다.
급수대랍니다. 그 옆은 학소대 또 시루봉.... 바로 제 1폭포 주변이지요. 주왕산 하면 떠오를 명소입니다.
'우와~와와~바로 여기구나~' 고개 높이 쳐들고 바위 끝과 하늘을 올려다보며 좋아라했지요. 정말 굉장한 바윗덩이들이 산속에서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뿜어내는 기운속에 물이 함께 하니 신비스럽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느 암석들보다도 크고 멋집니다.
다른 산이랑 특별히 다를 것도 없네 하면서 시시해 하던 생각을 일거에 날려준 1폭포주변의 웅장한 바위들은 지금도 눈에 삼삼하기만 합니다. 깊은 골짜기를 바위로 갈라친 모습이 참 신기하고 멋드러졌지요.
그에반해 폭포는 마치 어린아이 오줌발같았다고나 할까요? ^^ 오랜 가뭄 탓이었겠지요? 어쩌면 엄청난 바위의 기세에 눌린 것은 아닐까도 싶기에 물 많은 장마철에 다시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
시루봉앞에서 우리집 세 식구는 겨우 한식구였씀을 확인하는 사진 한장 남겨놓았습니다. ^^ ㅎㅎㅎ
그러고는 늦어진 하산길을 빠른 걸음으로 재촉했습니다.
아주 편안한 산책길 정도여서인지 두 손 꼭 잡고 오르는 연인들이 눈에 곧잘 띕니다. 이에 질소냐 우리들도 두런두런 이야기 꽃 활짝 피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올수 있었던 길이지요. 비록 '나 잡아봐라~' ?는 못했지만 여유있어 좋았던 하산길입니다.^^
이제 끝으로 대전사입니다.
대전사는 기암을 든든하게 뒤에 모시고 주왕산 입구에 있는 절로 천년이 넘은 고찰이랍니다.
그덕에 입장료를 톡톡히 챙기고 있는 절이기도 했지요. 솔직히 곱게보이진 않았습니다. 굳이 그곳에서 입장료를 꼭 챙겨야했을까싶기도 했지요. 또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하며 달아놓은 등도 왠지모르게 순수하게 다가오질 않고 세속에 물든 초라함으로 다가오기도 했지요. 보는이가 순수하지 않았던 까닭도 있겠지만 급조된 듯한 등걸이 대가 영 어설퍼 보여서이진 않았을까 싶기도요.
이리하여 11시 30분경에 들어선 주왕산 입구 탐방안내소에서 대전사- 주왕산 정상- 후리메기 삼거리- 제1폭포- 대전사- 탐방안내소를 약 다섯시간여에 걸쳐서 모두 무사히 잘 다녀왔지요. 약 12~13Km정도이진 않았을까 싶습니다.
발이 빠르셨던 분들은 제 2,3 폭포도 들리셨을 텐데 전 늦어서 들어설 생각도 못하고 내려온지라 다음에 여유롭게 곳곳에 있던 암자랑 못가본 폭포에 가보기로 합니다.
그보다도 봄에 꼭 가보고 싶었던 주산지를 코앞에 두고도 들려보지 못하고 올라온 것이 못내 아쉽지요. 하지만 이 또한 다음을 기약하며 차에 오릅니다.
먼 길 무탈하게 잘 다녀옴에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 내려놓으며 다음 소백산 산행을 기다립니다.
아랫녘에서 담아온 봄빛이 모두의 일상에 고이 스밀 수 있길 바라며 주왕산의 산내음였습니다. (090424)
ㅎㅎㅎ
첫댓글 배봉산장에서 함께 갔던 주왕산 산행 후기를 옮겨 왔습니다. 맨 아래 분이 산내음님이십니다. 저는 이날 앞으로 뒤로 오가며 얼마나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던지 코가 다 헐었습니다. ㅎㅎㅎㅎ
하하하~ 그리하여 후보 닉네임 하나 건지셨잖아요. 번개라고나 할까요? ㅋㅋㅋ 정말 대단하셨어요.^^ 막판 기운 빠질라 할 때 나타난 대전사 정말 반가우셨지요? 그때 제가 드린 오이 기억하고 계시지요? 푸히힛~ 전 솔직히 사진기를 가지고 갔다가도 한장도 찍지 못했거든요. 언제나 나무늘보님 내공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요? 나무늘보님이랑 산그림자님이 오시면 그냥 마음이 푸근해지는거 아세요? - 요건 배봉산장 지기님이랑 회장님이 봐도 된다는거요~ ㅍㅎ- 느을 든든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코가 좀 커서 사진 찍기가 힘든 것아니신지? ㅎㅎ
저 쑥찐빵 한바구니 냉동고에 넣어 놓고 먹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쪄 먹으면 참 좋겠네요. ㅎㅎ
우리 언제 쑥뜯어다가 진빵 만드는 날 만들어볼까요? 한 십년 뒤쯤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요. 언니 지두르세요~ 적어도 십년 뒤엔 그렇게 살고 싶은데... 언니가 먼저 자리 잡아 보시던지요.ㅎㅎㅎ
비바리님께 함 부탁해 볼까요, 반 바구니라도,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