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왕자, 범공선사 얼과 숨결이 서린 법수사지
- 해인사 성지 순례 봉행사
안녕하십니까 !
황 왕자 범공 선사의 얼과 숨결이 서린 보물 1656호 법수사지삼층석탑과 경순대왕 어진이 봉안된 세계문화유산인 법보종찰 해인사에 나주김씨 후손이 순례를 봉행하게 된 경과를 보고 드립니다.
범공선사는 914년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이신 경순대왕과 정비 죽방왕후 박씨의 계자 막내아들로 탄생하셨는데 본명은 황(湟)이고, 자(字)는 진용(珍用), 시호(諡號)는 의영공(懿英公)으로, 마의 태자 동생으로 역사에 충절과 효심의 표상(表象)으로 기록되어 숭앙(崇仰)되고 있습니다.
범공(梵空)선사는『삼국유사』,『증보문헌비고』,『조선왕조실록』,『동사강목』, 신라김씨 문헌 등을 참구한 바에 따르면 935년 경순대왕이 경천순민의 대의에 따라 천년사직을 고려에 손국(遜國)하자, 충절을 지켜 고려 태조가 제수한 평장사를 받지 않고 기처자하고 가야산 법수사로 입산·출가하면서, 부왕의 어진을 해인사에 봉수하고, 법수⦁해인사를 왕래·주석(駐錫)하시다 해인사에서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왕자께서는 빈 옥저 하씨(沃沮河氏)사이에 출생한 운발(雲發), 우발(雨發) 두 형제를 속세에 두고 입산하여 범공선사가 되었는데. 고려에서는 장자인 운발을 문하시중 나주군에 책봉하였고, 차자인 우발은 경주군에 봉군하였습니다.
나주김씨중앙종친회에서는 2007년에 문화재 당국에 나주김씨 비조이신 황 왕자께서 입산, 범공 선사가 된 사실을 법수사지 삼층석탑에 기록을 제안하여 고증 끝에 드디어 2009년 7월7일 사실이 기록됨으로서 천년 만에 만고에 푸르른 범공 선사의 충절과 효심을 길이 기리고 선양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가 문화재에 개별 문중 비조의 사실이 기록된 것은 흔치않은 일입니다.
경순대왕 어진은 해인사에 봉안되다가, 이후 대화재가 일어나자, 영천 은해사 상용암에 이운하여 봉안 되었습니다.
경순대왕 어진의 최초 봉안 원본은 전하지 않으나, 2007년 경주 숭혜전 수장고에서 조선시대에 초상화가 이명기, 불화승 이진춘 등 유명 화가들이 모사한 다섯 본이 발견되어 현재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되어 보존처리 중에 있습니다.
2010년 제20회 한국미술사 학술세미나(발표자 경주대 정병모 박사)에서 현존 다섯 본의 경순대왕 어진은 범공께서 해인사에 최초 봉안되었던 어진의 모사본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어진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이 어진은 2019년에 해인사 주최, 사) 범공선사숭선연구회 주관, 나주김씨중앙종친회의 후원으로 한국 전통서화 공예 대명장인 백미자 화백이 모사하여 천년 만에 최초 봉안처인 해인사에 “환귀본처 천년의 귀향”으로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어진 봉안은 2007년부터 2019까지 13년에 걸쳐 나주김씨 중앙종친회 와‘사)범공선사숭선연구회’임원 등과 문손인 청강 스님 등의 꾸준한 노력으로. 해인총림 방장이신 원각 대종사님의 각별한 당부와 강한 의지력이 있어 가능하였습니다.
천 년 여 만에 봉행한 어진 봉안식과 범공선사 다례재는 해인총림 방장 등 대중스님들과 나주김씨 신라김씨 종친 등 천 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봉행하였습니다.
경순대왕 어진은 문헌기록상 대한민국 역사 최고(最古)의 어진으로 확인되고 있고, 이 어진을 935년부터 지금까지 장구한 세월 속에서 계속 모사하여 전승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나주김씨 등 신라김씨 자손과 관람객들에게는 경순대왕 어진을 참배, 조상을 숭상하고 선양하는 숭조위선(崇祖爲先) 정신을 기리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 됩니다.
범공의 입산사실이 국가보물에 기록되고, 해인사에 봉수했던 최고의 어진이 <환귀본처 천년의 귀향>으로 2019년에 봉안된 일은 나주김씨 천년역사에 기념비적인 쾌심사입니다.
우리 후손들은 나주김씨의 성지인 법수사지와 해인사를 방문해 충절과 효성의 표상인 선사의 얼을 기리고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문중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다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엄중한 코로나 상황 때문에 3년 만에 순례하게 된 불민함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만,
일족의 번창에 보은하고 문중의 기운이 대하장강 장대한 산맥과 같이 계계승승 이어지기를 염원하고 다짐하면서 이번 성지 순례를 삼가 봉행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66.7.2.
사단법인 범공선사숭선연구회 회장 김근학 합장 돈수
첫댓글 근학회장님께서 열성적으로 조사연구한 결과 이제는 울산김씨에서 가타부타 할수가 없게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자손들이 조상에 대한 역사 기록을 참견하여 아는자만이 승리하리라는 옛 성인의 말씀을 되뇌여 봅니다.
울산김씨 대종회 홈페이지 세계도에는 아직도 덕지를 경순왕의 제 2자로 표기하고 있네요~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둘째 왕자이다. 학성(鶴城)을 식읍으로 받고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에 봉작되어 울산 김씨 시조가 되었다.[2] 학성(鶴城)은 울산(蔚山)의 옛 지명이다.
사기에 의하면 그는 935년 10월 아버지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신라의 천년 사직을 양위하려 하자 불가함을 극력 간(諫)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자를 버리고 형 마의태자를 따라 개골산(금강산의 겨울 이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일설에는 화엄종에 귀의하여 법수사와 해인사에 드나들며 도를 닦으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하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다. 이러한 행적들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어 자세하게 상고할 수 없다.
나무위키에 올려진 글입니다.........최근 수정 시각: 2022-09-07 19: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