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18문학상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서나루
공공고고학저널, 2716년 여름호
-2716 학년도 여름학기 도시발굴고고학 연례세미나-
700 년 전 조상들은
보고싶은 사람이 멀리 있을 때
'기프티콘'이라고 부르는 물건 교환증을 주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조상들은 서로 그다지 먼 거리에 살지 않았다
2500 년대까지 이어진 중기 고전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그들은 보잘것없는 가처분소득에도 불구하고
적다고는 단정하기 힘든 여가시간을 누렸지만
다른 도시에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행동은 드물었다
이런 행동을 한 까닭은
현재의 행복을 당장 '써 버리지 말고'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상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시간을 아껴서 시험 공부를 하면
훗날 사랑하는 사람을 볼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Watson&Hwang, 2710)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면 간직할수록
나중에 금으로 된 옷을 입고 환영을 받으면서 만나러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흘러넘치는 사랑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서 그들도 일기에 보고픈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정말 연락한 빈도는
16 분의 1 도 채 되지 않았다
그들도 종종 사랑을 고백했지만
실제로 사랑을 느꼈던 빈도에 비하면 32 분의 1 도 채 되지 않았다 (Yang et al., 2698)
조상들이 살던 시절에는
걱정없이 편안하고 사랑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운이나 돈이 따라야 한다고 여겨졌다
자신이 가진 작은 운과 돈을 지금 바로 써버리면
이제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일상을 얻을 수 없을까봐
두려워했다
사랑은 희귀재였다
사람들도 그것을 알았다
따듯함을 너무 소중하고 희귀하게 여긴 나머지
그것을 음미하고 만끽하면 사라져버릴까봐
가장 귀한 사랑일수록
어금니와 윗니로 꽉 눌러서 혀의 서랍에 숨겨 두었다
터진 입술처럼 흘러나오는
사랑을 숨긴 사람들은
주로 정제된 두려움과 외로움을 소염용제에 말아 먹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초조한 인생을 살았다
무상공급되는 것은 모멸밖에 없는
증오는 공공재였다
우리가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전지구적 변화가 시작된 시대였고
헐뜯는 것이 스포츠 경기처럼 생각되었다
남을 잘 비난하는 사람은 쉽게 권력을 얻었다 (Bryan, 2703 ; Mbappé, 2712)
선행이 아니라 돈을 자랑하는 시대였고
누가 남을 더 많이 부릴 수 있는지 자랑하는 것이 유행했고
남을 부려서 번 돈으로
사실상 구분하기 힘든 유기발화엔진형 운송수단이나
석영측량식 시계표식장치와 같은 재래식 장비들을
누가 더 3 시그마, 4 시그마가 넘는 가격을 주고 구매할 수 있는지를 자랑하는 것이 유행했다
이는 고고발굴객관해석주의 관점에서조차 바람직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고
당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저항했으나
디지털포렌식복원고고학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그 손가락질에서 마음 깊숙히 자유로웠던 조상은
단 한 명도 발견되지 않았다 (Mbappé, 2709)
그들은 쉬거나 놀거나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것은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돈과 상관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
지금 이 순간도 뒤쳐지고 있고 미래가 불안정해지고 있다는죄책감이었다
삶을 음미하는 공공명상참여 연결망이 자리잡은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들이지만
도시고고사회학자들의 발굴연구에 따르면
조상들은 죄책감을 갖는다는 그 사실에조차 슬퍼했고
효율적 인생 같은 것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조상들은 그것을 '몸과 마음의 여유'라고 불렀다
그들은 '몸과 마음의 여유'라는 것을 평생 찾아다녔다 (Drolma&Tsering, 2695)
조상의 알루미늄 자기 기록장치에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음미하며 살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 후회하는 일기들도 발굴되었다
그러나 발견윤리검토연결망 권고합의(제 2716Y-090237-075 호) 결과
해당 내용은 너무 많은 슬픔에 관련있고
중대한 공감피로를 야기한다는 지적에 따라
확신을 가진 신청자에 한한 열람으로 제한되었다
이번 도시고고학 프로젝트를 총괄한 정보발굴사는 이렇게 말했다
"조상들은 행복을 배터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써 버리면 방전되어서 내일 쓸 몫이 없다고 생각한 거에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행복이 태양발전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태양패널을 활짝 열고 있으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지만
태양패널을 움츠리고 있다가 흘려보낸 어제의 햇볕은 다시 잡을 수 없어요"
(계간 공공고고학저널, 2716 년 여름호)
5‧18문학상 시 부문 신인상 심사평
응모된 850여 편의 시들 중 다수의 시들이 여전히 당시의 뜻하지 않았던 학살과 이에 따른 상실과 고통에 대한 애도와 진혼의 시들이어서 아팠다. 40여 년이 흘러서도 1980년 5월의 비통과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터라 매 시편들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숭고했던 5월에 대한 정치 사회적 왜곡마저 끊이지 않는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한 편 한 편 뜻깊은 추모의 마음을 담아 준 모든 시들이 소중하고,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 한 편의 시를 선정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 마지막까지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이는 「금남로4가역의 기원」과 「행방불명자 900호」 등을 내주신 분과 「존재론의 마지막 쓸모」, 「공공고고학저널, 2716년 여름호」 등을 내주신 또 한 분이었다. 「금남로4가역의 기원」 등은 5‧18 당시 희생자들의 죽음을 오늘 여기에 진정성 있게 재현해 내고 있었다. 정제된 언어 속에는 오랜 시간 5‧18에 대해 숙고해 온 흔적이 역력했다. 이미 어느 기성 시집 속에 들어 있어도 나름의 감동을 주며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시들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나름의 설득력과 안정감 있는 5월의 재현 이상의 새로움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인’의 느낌보다는 익숙한 ‘기성’의 문체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고민을 더하게 했다.
논의 끝에 수상작은 SF라는 남다른 실험을 보여주면서 요설 등으로 빠지지 않고, 현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공고히 하고 있는 「공공고고학저널, 2716년 여름호」로 결정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인’에 준할 도전적 발상과 개성의 새로움이 느껴졌다. 긴 호흡과 자유로운 발화들이 자칫 설익은 언어의 유희나 상투적인 삶에 대한 이해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지점들을 훌륭히 벗어나 있기도 하다. 함께 투고해 준 아홉 편의 시들 역시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고른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또한 신뢰가 갔다. 많은 젊은 시인들이 개인의 방에 갇혀 오늘 여기의 사회 역사와 적극적으로 교통하지 못한 채자의식 과잉의 불가해한 독백들에 사로잡혀 있는 이때 남다른 경험과 용기, 투지가 <5‧ 18문학상 신인상>이라는 특별한 자리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부디 더 깊고 예리하면서도 풍요로운 생의 감각을 잃지 않는 강인한 시인으로 나아가시길 바란다.
심사위원 고영서 / 송경동
첫댓글 ☆2716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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